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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59)화 (394/486)

제159화

“리, 리니도 엄마 이쪄~!”

내가 서러운 울음을 엉엉 터뜨리자 아까 연회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를 기특하단 눈빛으로 지켜보던 리콘 남작 부인이 화들짝 놀라 달려나온다.

“공녀님! 무슨 일이세요!”

나는 리콘 남작 부인과 함께 내게 다가온 다미아 백작 부인의 물음에 콧물을 찔찔 흘리며 입을 열었다.

“째가아, 나 엄마 업따구, 크흥, 글서 압빠한테도 곧 버림받을 거라구 해써~!!”

“뭐, 뭐라고요?!”

내 대답에 넘어진 아이를 옹호하던 소녀와 뮤리엘에게 쏟아지던 동정의 시선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질된다.

‘평민 고아라고 다들 자신을 불쌍하게 여겨 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여긴 사교계라고.’

그것도 수도 사교계의 중심이나 마찬가지인 황성에서 열리는 연회였다.

신분제 사회의 젖과 꿀을 쪽쪽 빨아먹는 기득권층만 우글우글한 곳이었는데 평민 아이가 공녀에게 망발을 한 것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복지를 위해서 연회에 초대된 평민 고아가 감히 공녀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인가요?”

“후에엥~!”

나는 넘어진 아이에게 괜한 화살이 갈까 봐 여자아이를 정확하게 콕 짚으며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어구, 어구. 공녀님이 얼마나 속상하셨으면 이리 서럽게 우실까.”

나를 안아든 리콘 남작 부인이 잘게 떨리는 내 등을 토닥이며 혀를 찬다.

“공녀님은 늘 씩씩하고 아이답지 않게 점잖아서 쉽게 우는 아이가 아니지 않았나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우리 다들 쁘띠 플뢰르를 지켜봤잖아요? 용맹하게 마물과 싸우는 모습도요.”

다미아 백작 부인이 맞장구를 치는 것과 동시에 입구 쪽에 대기하던 호명관이 예의 뿔나방을 집어 들었다.

“루카스 선황자 전하와 가스파르 하차니아 공작 각하 드십니다!”

‘음. 타이밍이 안 좋네.’

나 말고, 저 아이에게.

아빠와 루카스가 왔다고 연기를 멈출 수도 없어서 나는 빨개진 코끝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굵은 눈물방울을 흩뜨렸다.

“리니!”

“히끅.”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가스파르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다.

“압빠~!”

드디어 내 아군을 찾았다는 양 그에게 손을 뻗자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더 짙어진다.

“어떤 새끼가 울렸어.”

나는 가스파르를 뒤따라온 루카스의 살벌한 목소리에 침을 꼴깍 삼키며 시선을 회피했다.

‘여기서 진범을 알려 주면 사달이 날 것 같은데.’

가스파르는 나를 울렸다고 어린아이를 죽일 성정은 아니었지만, 루카스는 또 모른다.

루카스는 내가 극심한 감정을 느끼면 마나가 소모된다고 우는 것도 싫어했으니까.

“누가 울렸느냐고.”

“…그, 그게요. 크흥!”

루카스의 물음에 내가 손가락만 옴질거리자 가스파르가 나를 재촉하지 말라는 듯 앞으로 나서며 두팔을 벌렸다.

“그만 울고 이리 안겨라.”

“그래, 뚝해. 안아 줄 테니까.”

문제는 동시에 루카스도 내게 팔을 벌렸다는 것이다.

“선황자 전하, 제 딸이니 제가 달래겠습니다.”

“공작보다는 내가 더 아이를 잘 달랠 수 있다. 내게 더 익숙할 테니까.”

뼈가 있는 듯한 루카스의 말에 가스파르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아웅다웅하는 그들을 지켜보는 나만큼 어두운 안색은 아닐 터였다.

‘아니, 나는 몸이 한 개인데요….’

하지만 둘로 쪼개고 싶어질 만큼 둘다 무척 흉흉한 눈빛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결국 루카스와 가스파르의 시선을 모두 피하며 이제 막 연회장에 들어선 사뮈엘 대공에게 뽀짝뽀짝 걸음을 옮겼다.

“할부지한테 안길래.”

“……!”

내 선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가스파르와 루카스가 두눈을 홉뜨는 순간, 나를 안아 든 사뮈엘 대공이 그들을 비웃듯 입꼬리를 올린다.

“허허. 이거 참, 내가 공녀의 마음에 꽤나 든 모양입니다.”

너네보다 더.

왠지 대공의 뒷말이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레오노라를 에스코트한 건 카렌이었지만, 연회장에 레오노라의 사람은 그녀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감히 우리 아가씨를 울리다니!”

이번 연회의 초대 가수로 초청받은 벨루치는 화려한 나비 모양 반가면을 추켜올리며 입술을 짓씹었다.

“아가씨가 각하께 어린아이들을 일러바칠 리가 없으니 우리가 나서야 해요, 카렌.”

“네. 그리고 제 추측이 맞다면, 그 아이들은 아가씨를 납치했던 사이비 교단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라면 흥분한 벨루치를 말렸을 카렌이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카렌 경?”

“레이디 뮤리엘이 데리고 들어온 아이들인 것 같은데 전 처음부터 그녀가 수상했습니다.”

“레이디 뮤리엘? 그게 누구죠?”

극장에 소속되어 더는 공작가에 머물지 않는 벨루치는 어쩔 수 없이 카렌이나 셀리아보다는 레오노라에 대한 정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더는 아가씨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아니라는 사실에 탄복하며 쥘부채로 벽을 내려쳤다.

“작고하신 공작 부인의 사촌 동생입니다.”

“타이틀부터 마음에 들지 않네요. 분명 공작 부인의 빈 자리를 노리는 여자겠죠.”

벨루치 브리넨, 그녀는 이제 치정극과 신파극이라면 어김없이 대본이 들어오는 인기 배우였다.

‘죽은 부인의 사촌 동생이라니, 너무 뻔하잖아.’

아까 얼핏 본 뮤리엘의 얼굴을 떠올린 벨루치는 쥘부채를 단단히 쥐며 눈을 반짝였다.

“공작 부인의 친척이든 뭐든, 우리 아가씨를 위협하는 것들이라면 제거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생각해 놓은 바가 있으신 겁니까?”

“내 추종자들을 움직여 레이디 뮤리엘이라는 사람을 사교계에서 추방시켜 버릴 거예요.”

“그렇다면 저는 세르주라는 소년에게 대련을 신청하겠습니다.”

벨루치는 얼핏 차분하고 정중하게 들리는 카렌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팔다리를 분질러 놓겠다는 거군요.”

“내가 할 일은 없을까요? 저도 그 세르주라는 애, 패 줄까요?”

흡족한 벨루치가 쥘부채로 카렌의 어깨를 토닥이자 불쑥 끼어든 셀리아가 두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뇨. 셀리아는 다음에 나서도록 해요.”

“어째서요?!”

카렌은 독려하던 벨루치가 셀리아의 말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젖자, 셀리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우리 아가씨 절대 지켜> 클럽의 1기 멤버인데요!”

“셀리아, 황성에는 무기 반입이 금지되어있다는 거 모르지 않죠?”

“무, 무기같은 거 안 들고 왔는데요.”

셀리아가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지만, 벨루치는 날카롭게 그녀를 쏘아보며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래요? 그럼 바지 들춰 봐요.”

머뭇머뭇 거둔 바지춤 사이로 달빛을 받아 시퍼렇게 빛나는 단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벨루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레설레 고래를 저으며 셀리아의 은장도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아가씨가 해코지를 당할 거라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은장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인데, 그런 셀리아가 움직이면 피바람이 불 것 아니에요? 너무 과한 움직임은 지양해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 아가씨께 들킬 테니까. <우리 아가씨 절대 지켜> 클럽은 레오노라의 공식 팬클럽과 달리 비밀리에 움직이는 암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읍. 다음 기회에 나서게 해 줄게요.”

“좋아요. 그래도 맨입에는 못 참겠어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셀리아는 단호한 벨루치의 목소리에 태도를 바꾸며 두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영상구요, 삽화요?”

“당연히 영상구죠.”

냉큼 대답하는 셀리아를 얄밉게 노려본 벨루치는 슬쩍 카렌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카렌경, 혹시 남는 영상구 있나요?”

“없습니다.”

“정말 없어요?”

“네. 정말 없습니다.”

카렌의 맑은 녹안을 빤히 들여다본 벨루치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제 드레스 안주머니를 뒤적였다.

“…아가씨 영상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단 말이에요? 클럽 멤버 자격은 다들 있나 몰라.”

불만 섞인 목소리로 작게 궁시렁거리던 그녀의 손에 곧 흰빛이 섞인 푸른색으로 빛나는 영상구가 들린다.

“셀리아, 이거 절대 깨트리면 안 돼요. 복제본이 없는 영상구니까.”

“어머나!”

영상구를 받아든 셀리아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마력을 불어넣자, 영상구 속 어린 레오노라가 아장아장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 아가씨 네 살 때의 모습~ 꺄악~!”

“맞아요. 제일 귀여워서 늘 소지하고 다니는 영상구예요.”

“너무 귀여워요!”

“이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따구가 정말 예술이지 않나요?”

셀리아와 벨루치가 호들갑을 떠는 동안, 카렌은 자신의 영상구를 품 깊숙이 감춰 놓았다.

그녀는 우리 아가씨의 영상구도 절대 지키고 싶었으니까.

* * *

“뭐라고?!”

‘아이네스의 배동이 되면 특전으로 이런 걸 준단 말이야?!’

나를 마나통으로만 보는 황녀의 배동이라면 죽어도 되고 싶진 않았지만, 꽤 탐이 나는 상이긴 했다.

나는 제 배동이 되어 달라며 오디션 비슷한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아이네스를 힐끔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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