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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52)화 (387/486)

제152화

“여기서 끊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하차니아 공작가의 상징인 늑대가 섬세하게 인각된 천장 모서리를 노려보다 아차 싶어 냉큼 무릎을 꿇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요, 신님!”

신인지 악마인지, 내게 원작 책을 던져 준 존재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리니가 부탁드릴게요….”

그러나 자그마한 두 손을 맞잡은 채 얼굴도 모르는 존재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려 보았는데도 뚝 끊긴 문장의 뒷말이 추가되는 일은 없었다.

‘야! 너 전에는 천장 보고 비니까 문장을 추가해 줬었잖아!’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나는 쒸익쒸익 거센 콧김을 내뿜으며 더는 빛을 뿜어내지 않는 원작 책을 손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아니, 왜 이런 부분에서 끊기고 난리냐고?’

이건 절단 신공이 아니라 그냥 절단 수준 아닌가.

나는 찝찝한 기분으로 책을 덮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쨌든 루에르 병이 내 마나와 관련이 있다는 건 알게 됐네.’

어쩐지 각혈을 시작한 순간 본능적으로 루카스의 마나가 지금 내 몸에 필요하다는 게 느껴졌었다.

‘루카스가 가스파르와 함께 나를 구출하러 오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겠어.’

나는 루카스에게 감사 인사를 할 겸, 그간의 근황도 물을 겸 그를 찾아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쟤넨 왜 저기 몰려 있지?’

사부작사부작 별관을 벗어나자마자 본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옹기종기 모인 삼 형제가 눈에 들어온다.

‘…꼭 우루루 몰려와서 자카리를 괴롭히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설마 하는 마음에 에녹과 실비 뒤로 슬금슬금 다가간 나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또렷해지는 형제들의 목소리에 기가 막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형님. 레오노라가 가장 좋아하는 가족은 저입니다.”

“…상관.”

“아냐, 저예요. 실비 형도 자카리 형님도 둘 다 리니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어.”

“…없다.”

“아니, 레오노라가 가장 좋아하는 오빠는 나다. 너나 착각하지 마라, 에녹 그웬달 하차니아.”

“뭐? 형이나 헛소리하지 마!”

나는 아옹다옹하는 에녹과 실비의 목소리에 짧게 혀를 찼다.

‘아니, 자카리는 상관없다는데 왜 애꿎은 자카리를 붙잡고 저 난리들인 거야?’

가뜩이나 나와 함께 교단에 붙잡혔던 터라 피곤할 첫째를 괴롭히는 둘째와 셋째의 만행에 내가 손을 뻗을 찰나,

“…하지만 나만 오라버니라고 부르던데.”

자카리의 느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꽂히듯 날아든다.

“네?”

“게다가 나를 건드리면 죽어 버리겠다면서 교단원을 협박하기까지 했다.”

나는 입을 헤 벌린 에녹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을 잇는 자카리의 모습에 머쓱해져 턱을 긁었다.

‘자카리를 구하기 위해 셀레네를 협박한 건 맞지만….’

그게 자랑할 일은 아닐 텐데.

“흠흠. 다들 뭐 해?”

뒤에서 불쑥 들려오는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에녹이 가장 먼저 고개를 돌린다.

“리니!”

“응, 에녹. 설마 몸도 다 회복하지 못한 자카리 오라버니를 괴롭히고 있었던 건 아니지? 내 오해겠지?”

눈을 가늘이며 묻자 당황한 삼남은 허둥지둥 손을 내저었다.

“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셋째인 내가 어떻게 장남인 자카리 형님을 괴롭히겠어.”

“그래? 하지만 방금 포즈가 너무….”

수상했는데.

짝다리를 짚은 채 자카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에녹은 너무 전형적인 건달처럼 보였다.

“자카리 오라버니, 어디 아픈 곳은 없어요?”

“…강하다. 나는.”

“이 형님은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녹과 실비보다 자카리 오라버니가 강하다는 말인 것 같아.”

나는 자카리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는 차남과 삼남에게 그의 말을 번역해 주며 고개를 돌렸다.

“얘들한테 당한 거 말고요. 교단에게 붙잡혔을 때 다친 곳 없는 거 맞아요?”

내 물음에 자카리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우리 사이로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민 에녹이 입을 삐죽인다.

“난 다쳤어.”

“응? 어쩌다?”

“너 구하러 가야 된다고 내 하위 기사단원들을 데리고 가겠다고 개기다가 단장한테 엄청 맞았어.”

“뭐?! 바리스탄에게 맞았다는 말이야?”

나는 에녹의 말에 화들짝 놀라 인상을 찌푸렸다.

‘바리스탄 그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트리스탄을 도와서 그가 하루라도 더 빨리 적랑의 단장직을 차지할 수 있게 돕든지, 에녹을 단장직에 앉히든지 해야겠다.

“우리 에녹이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니까. 나 너무 아팠어.”

내가 분개하며 발을 구르자 에녹이 맞장구를 치며 제 팔뚝에 든 손톱만 한 작은 멍 자국을 내보인다.

“이거 봐봐. 리니가 호 해 줘야 할 것 같아.”

나는 에녹의 뒤에 서서 ‘자신도 교단원에게 당했다’고 주장하는 실비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다야? 너무 멀쩡한 것 같은데?”

“아냐. 엄청 아파. 흉도 질걸?”

“난 죽기 직전이다.”

‘이 자식들, 정말 군기가 다 빠졌잖아.’

나는 엄살을 부리다 못해 꾀병을 앓는 형제들을 차갑게 올려다보며 양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아빠가 나 때문에 힐다를 공작 성으로 불러왔으니까 아프면 병동에 가 보지 그래? 가요, 자카리 오라버니.”

낼름 혀를 내민 내가 멀뚱멀뚱 서 있는 자카리의 팔뚝을 붙들자 에녹이 와그작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리니 너, 자꾸 그렇게 자카리 형님만 챙길 거야?”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막내-내가 막내지만-의 울망울망한 눈망울에 흠칫하며 몸을 굳혔다.

“우, 울어?”

내 물음이 기폭제라도 된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문 에녹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 서운해서 심장이 아파. 섭섭해서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고.”

‘우리 셋째가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 표현이 격해졌지?’

“끄, 끄윽!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따지고 보면 에녹이 날 키운 게 아니라 내가 에녹을 키운 거지만, 나는 서럽게 우는 에녹을 안아 주기 위해 자카리의 팔을 놓았다.

‘셋째가 우리 중에 제일 감성적이긴 했어도 어릴 때 이후론 잘 안 울었는데.’

내가 자카리만 챙기는 게 퍽 섭섭했던 모양이다.

“미안해, 에녹. 울지 마! 뚝!”

“크흑!”

“응? 내가 잘못했어.”

“…나, 오늘은 리니랑 같이 잘래.”

“응응, 알았어. 같이 자자. 호도 해 줄게.”

나는 내 대답에 씨익 올라가는 에녹의 입꼬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 * *

엉엉 우는 에녹의 품에 안긴 채 멀어지는 레오노라의 모습을 지켜보던 실베스테르는 자카리를 돌아보며 차갑게 눈을 빛냈다.

“지금 이 상황을 그냥 관망만 하실 겁니까?”

“무엇을.”

“형님도 에녹이 레오노라를 독차지하기 위해 수를 쓰는 걸 보셨지 않습니까.”

“…나는.”

실베스테르의 말에 자카리는 기가 막히다는 듯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너희처럼 유치한 작전은….”

“펼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

“레오노라는 마음이 약해서 이제 에녹만 챙기려고 들 텐데요.”

자카리는 실베스테르의 말에 에녹에게 대롱대롱 매달린 레오노라의 뒷모습을 힐끔했다.

“식사도 에녹과 함께하고.”

“…….”

“놀이도, 훈련도 늘 에녹이랑만 함께하려고 들 텐데.”

“…….”

실베스테르는 제 말에 감흥을 보이지 않는 자카리의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벌렸다.

“뭐, 형님이 저와 손을 잡지 않으신다고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아니, 하겠다.”

차남의 말을 썩둑 자른 장남이 점점 멀어져 가는 삼남과 막내를 노려보다 그에게 손을 뻗는다.

“너와 손을 잡지.”

“좋습니다.”

하차니아 공작가의 장남과 차남, 자카리와 실베스테르가 8년이란 긴 세월의 단절을 잊는 계기가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 * *

서글픈 울음을 터뜨린 에녹을 잘 달래 연무장에 집어넣은 나는 루카스의 행방을 알기 위해 빨래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하녀를 붙잡았다.

“루카스 어디 있는지 알아?”

내 물음에 주근깨가 자잘하게 박힌 어린 하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가씨! 선황자 전하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막 부르시면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아, 맞네.”

사람들은 내가 루카스와 친분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를 테니 놀랄 만도 했다.

“루카스 선황자 전하는 어디 계셔?”

나는 내 실수를 무마하듯 귀엽게 두 눈을 깜빡이며 하녀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방금 리니가 루카스 이름, 아니 선황자 전하의 존함을 막 부른 건 잊어 줄 거지?”

‘아구, 우리 아가씨는 손도 조그매…’하며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선황자 전하라면 오전에 아가씨의 서재를 둘러보신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고마워. 레이디 뮤리엘과 그 아들놈은 어디 있는지 알아?”

“레이디 뮤리엘은 정원에 계셨고, 아드님은… 저기 오시네요.”

나는 하녀의 말에 복도 끝에서 오만상을 찌푸린 채 내게 걸어오고 있는 세르주를 힐끔했다.

“너-.”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 세르주가 윽박이라도 지를 것처럼 입을 벌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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