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41)화 (376/486)

제141화

“지금 당장 외벽 공격을 중지하라는 황명이 떨어졌습니다! 공녀님도, 카르스텐 경도 당장 동작을 멈추시랍니다!”

나는 확성기 아티팩트를 손에 쥔 채 목소리를 높이는 엘레노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공격을 중단하라고? 지금?’

미친 건 알고 있었지만, 멍청하기까지 하다니.

나는 그레고르의 판단에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저었다.

나야 고로나 처치를 돕는다는 핑계로 마물의 탈출을 돕기 위해 황성 외벽을 부수고 있었으니 차치하더라도, 자카리는 정말로 제 기사들을 이끌고 마물과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런 자카리마저 막아선다면 정말로 마물이 황성을 점거하게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그전에 내가 고로나들에게 명령을 내리겠지만, 그레고르가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잖아?’

“카르스텐 경, 당장 흑랑을 제어하십시오!”

황성의 거대한 정원을 달려나온 황실 근위대장이 자카리를 향해 외친다.

“황명입니다!”

“…….”

그러나 자카리는 그에 말에 대꾸도 없이 검을 움직일 뿐이었다.

주군을 섬기는 기사보다 대장을 따르는 용병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흑랑의 기사들도 그를 따라 묵묵하게 고로나를 베어 낼 뿐, 근위대장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잇, 뭐 하느냐! 카르스텐 경을 저지하라!”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자카리의 행태에 잔뜩 열이 오른 근위대장이 자신을 뒤따라 나온 황성 마도사들에게 명령한다.

“도대체 왜 지금 오라버니를 말리시려는 건데요?!”

나는 마도사들이 주문을 외우기 전에 다급히 근위대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지금 황성이 마물로 뒤덮이기 일보직전인 상황이란 걸 모르시나요?”

우리를 뒤따라 나왔으면 자카리를 도와 고로나와 싸워야지, 왜 자카리를 견제하냐 이 말이다.

기함에 가까운 내 물음에 마도구로 그레고르와 통신하는 듯한 근위대장이 엄한 얼굴로 입을 연다.

“천년의 세월에도 견고했던 백색 외벽이 무너지면 백성들의 상심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보십시오, 공녀님!”

“뭐라고요?”

나는 근위대장 목 위에 달랑이는 건 머리가 아니라 돌덩이인가 의심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바하무스의 백성들이 절대 더럽혀지지 않는 순백의 성에 가진 자부심을 배려하고자 하십니다!”

‘배애-려?’

근위대장의 대답에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은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그, 아니, 그 너머에 있을 그레고르를 노려보았다.

‘이제 와서 백성들 걱정하는 척하고 있네.’

이미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도입하려고 했던 것과 황제인 그가 황도의 위기에 백성들을 버리고 혼자만 피신하려던 것이 전국에 중계된 참이었다.

그렇게 민심을 잃은 상황에 황성까지 무너져 내리면 사람들이 황실을 우습게 여길까, 그레고르는 지금 그런 하찮은 걱정 따위를 하는 모양이었다.

“여러분, 친위대장이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는지, 근위대장에게 확성기를 바짝 가져다 댔던 엘레노어가 타닥, 탁 담벼락을 밟고 올라서며 마경을 돌아본다.

“폐하께서는 마물을 처단하는 것보다 예쁘게 반짝이는 성벽이 중요하시답니다~!!”

“저, 저 망할 기자를 구금하고 마경을 떨어뜨려라!”

엘레노어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지 근위대장이 크게 당황하며 제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어멋, 이거 놓으세요!”

일반인치고는 몸놀림이 재빠르긴 했지만, 훈련받은 병사들을 따돌리지는 못한 엘레노어가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제 입을 막는다고 진실이 가려지진 않을 터-!”

‘베리타스사의 종군 기자라더니 지조 하나는 끝내주네.’

나는 아까운 인재가 희생당할 거라는 생각에 내 옆에서 맨손으로-도대체 왜, 맨손인지는 모르겠지만- 벽을 부수고 있는 히스를 돌아보았다.

“히스, 엘레노어를 도와줘.”

“공녀는.”

“나도 내 몸 하나 정도는 건사할 수 있어. 무시하지 마.”

공명으로 뜻을 전하자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던 히스가 고개를 까딱하며 엘레노어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순간, 자카리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이던 마도사들이 마법진 연성을 끝마쳤는지 일제히 팔을 들어 올린다.

“럭스-미아!”

쉐도우나이츠로 이루어진 흑랑(黑狼)에게는 최대 약점일 빛무리를 소환하는 마법이었다.

나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하게 명멸하는 빛무리가 쏟아지는 곳을 향해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오라버니! 자카리 오라버니!”

‘앞이 안 보여!’

빛 속으로 정통으로 뛰어든 탓에 나까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괜찮으세요?”

그림자를 잃은 탓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흑랑의 기사들 사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자카리를 발견한 나는 실눈으로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 상황에서 졸고 있었어?!’

내가 눈을 꾹 감고 있는 자카리에게 손을 뻗으려는 찰나였다.

그의 손바닥에서 새까만 인(印)이 피어오르더니 단검이 새까만 검기로 휩싸인다.

휙-!

자카리가 양손에 쥔 단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일류로 손꼽힐 황성 마도사들이 만들어 낸 빛무리가 한 획에 갈라졌다.

이제 막 성인이 될락 말락 한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이었지만,

‘안 돼! 이러다 우리 고롱이들 다 죽겠어!’

나는 자카리의 날카로운 검기에 화들짝 놀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고로나 모은다고 내가-히스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동부며 서부며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열심히 고로나를 잡아 온 건 히스였지만, 그래도 길들이는 건 그리즐리를 통해 마물 다루는 법을 터득한 내 몫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물릴 수도 없는데!’

지금 외벽에 달라붙은 고로나들은 내 명령 한 번이면 물러설 만큼 잘 길들여지긴 했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 갑자기 마물들이 도망치면 의심을 살 여지가 있었다.

이도 저도 못 하고 방황하던 나는 입술을 짓씹은 채 고로나 무리를 돌아보았다.

‘그냥 도망치라고 할까?’

“물러서십시오, 공녀님.”

어느새 빛무리 안으로 밀려 들어온 병사 한 명이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황명을 거역한 자들이다! 흑랑의 기사들을 붙잡아라!”

그림자에 숨어 기생하는 고롱이들은 쏟아지는 빛무리에 정신을 못 차리지, 친위대의 병사들은 사방에서 나와 자카리를 압박하지, 아주 정신이 없었다.

“앗!”

병사의 손길을 피해 뒤로 물러나던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순간이었다.

“끼루?”

“끼루루룩!”

내가 다친 줄 알고 화들짝 놀란 고롱이들이 자카리의 검기를 맞아 가면서까지 내게 달려온다.

‘이건 좀 감동이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보송보송한 검은 털뭉치들은 분명 나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내가 고로나의 습격을 당해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일 터였다.

“……!”

나와 눈이 마주친 자카리의 눈이 본 적 없이 크게 뜨인다.

검기를 횡으로 길게 날린 그가 도약하듯 마물을 뛰어넘으며 내게 다가오자, 친위대장은 기다렸다는 듯 제 병사들을 움직였다.

“카르스텐 경을 포박하라!”

‘안 돼…!’

방금 막 반역의 누명을 벗었으니 지금 현행범으로 잡히면 고신을 당할지도 모른다.

“고, 고롱이들아~! 이러면 안 돼~! 오지 마!”

“끼루루루?”

나는 내 곁을 맴도는 고로나들을 치우기 위해 허둥지둥 팔을 내저으며 언령을 사용했지만, 그리즐리와 달리 하급 마물인 탓에 그들은 내 명령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꺄악!”

쾅!

콰콰콰콰쾅-!!

고로나가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내 몸을 완전히 뒤덮자마자 자카리의 날카로운 검기와 바주카포의 마탄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황성의 외벽이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져내린다.

아니,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렸다.

“물러나라.”

‘루카스?’

나는 정수리에 꽂히듯 내려앉는 차분한 목소리에 숨을 헐떡였다.

‘아냐.’

루카스와 똑같은 목소리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누구에게도 곁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까칠한 말투가 아니었으니까.

그보다는 조금 더 따뜻하고, 안온한 목소리.

“한낱 미물이지만 내 딸에게 애정을 가진 것들을 해치고 싶지 않으니, 어서 물러서.”

“끼루….”

냉정하진 않았지만 거스르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명령에 내 언령조차 듣지 않았던 고로나들이 꾸물꾸물 물러난다.

파스스.

사방에서 부서진 벽의 잔해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만, 내 주변에는 먼지 한 톨 떨어지지 않았다.

“…….”

나는 내 몸 전체를 몽글몽글 두르는 연기 같은 다정한 그림자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끄읍.”

울음이 되다 만 목소리를 쥐어짜려고 했지만, 쉬이 입이 열리지 않는다.

“리니.”

그런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내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나는 나를 안심시키는, 안개 같은 불안 속에서 나를 꺼내줄 것만 같은 단단한 손을 붙잡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빠, 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