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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39)화 (374/486)

제139화

내가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돌프가 얇고 뾰족한 눈썹을 찌푸리며 흠, 헛기침을 한다.

“또 질문이라도 있는 겁니까?”

“네!”

그의 물음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한 나는 스콜라홀에 모여든 학자와 귀족들이 전부 들을 수 있도록 우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윌레탄인만이 우월한 민족이라면, 열등한 민족은 제국 내에 벨네르니인들만이 아니지 않나요?”

내 질문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아돌프가 은근슬쩍 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긴 합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사소한 논점이 아니고,”

“박사님 논문에 따르면 벨네르니인, 자브뤼켄인, 사크인, 아크레아인, 이오네스코인, 그리고 또….”

나는 아돌프가 화제를 돌리기 전에 재빨리 그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아레아인도 윌레탄인에 비해서는 열등한 거라고 주장하셨던데요.”

나는 아돌프의 조수가 칠판에 건 연구 포스터에서는 쏙 빼놓은 연구 논문들을 학자들이 볼 수 있도록 원탁 중앙에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허. 라노오레 박사의 말이 전부 사실이군요! 이 논문들에는 아레아인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레아인이라면 제국이 칭제하기 전부터 이 땅에서 윌레탄인들과 함께 뿌리를 내린 민족이 아닙니까?”

“라노오레 박사, 눈빛이 똘망똘망하니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음? 주제에서 벗어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데.’

수런거리는 학자들의 반응에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누군가의 감탄사에 잠시 흠칫 몸을 떨었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었다.

“아돌프 박사님과 갈고리 상아탑 연구자들의 논지에 따르려면 아레아인들도 제국에서 도려내야 해요.”

윌레닌 제국의 인구는 절반 가까이 윌레탄인으로만 이루어져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윌레닌이 윌레탄 왕국이었을 때부터 이 땅에 정착한 아레아인들은 소수민족들 중에서 가장 파이가 큰 편이었다.

‘당연히 귀족으로만 이루어진 이 회의장 내에도 순혈 아레아인이 몇 명 있을 정도니까.’

내가 예상한 대로 자신이 아레아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남부 출신의 학자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돌프 박사님, 어째서 아레아인들이 윌레탄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보다 열등하다는 겁니까?”

“게다가 아레아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제국민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오, 아돌프 박사?”

“그, 그건….”

아렌 출신 학자를 따라 목소리를 높이는 나이 많은 학자가 꽤나 명망이 높은 사람이었는지, 아돌프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르델 박사님의 말이 그르지 않습니다. 아레아인은 윌레닌이 칭제하기 전부터 이 땅에서 살아왔는데요!”

아르델 박사라는 사람의 발언에 힘을 얻은 학자들-주로 원탁에서 아돌프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이 단체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찌푸린다.

움후후.

나는 얼굴을 푹 숙인 채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비열한 웃음을 흘렸다.

‘내가 인종 위생의 개념을 확장시켜서 당황스럽지, 이 자식아.’

황망하게 일그러진 아돌프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절로 웃음이 나왔으니까.

물론 나중에는 분명 아레아인에게까지 손을 뻗을 계획이었겠지만, 막 우생학을 정책으로 들이미는 작금의 상황에는 시기상조였을 터였다.

“진정들 하세요. 논문은 그저 실험에 따른 결과를 서술했을 뿐입니다. 아레아인은 윌레탄인에 비해 참을성도 없으며 끈기도 부족하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기에-”

“제국의 전쟁 영웅 네오르딘 장군도 혈통만 따지면 순수 아레아인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선황께서는 어찌 참을성도 없고 끈기도 없는 그를 전방에 내세워 동부의 반란을 잠재우실 수 있으셨단 말입니까?”

학자들의 말에 아돌프의 조수가 원탁 중앙을 장식하는 그의 논문을 허둥지둥 치우며 입을 연다.

“네오르딘 장군님 같은 경우가 희귀 케이스입니다. 저희 갈고리 상아탑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레아인은 윌레탄인에 비하면 오러 발현자도 월등히 적고, 강대한 성력이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도 드물다고요.”

나는 조수의 말에 비스듬히 고개를 꺾은 채 강대한 성력을 뜻하는 백발 백안의 소유자, 발레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 교황인 발레리아누스 3세께서도 아레아인 아니었나요?”

‘사실 확실하진 않지만, 남부 출신이라고 했으니까 그냥 던져 보자.’

내가 휘둥그레 눈을 뜨며 묻는 말에 조수가 당황한 얼굴로 떠듬떠듬 대답한다.

“그, 그렇다면 그것도 특이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요.”

“또 황제 폐하의 모후께서 아레아인에 뿌리를 둔 가문인 데본가의 사람이 아니셨나요?”

“…그랬지. 짐의 어머니께서 아레아인의 후손이시다.”

‘그레고르의 모친이 아레아인이라는 건 이본느가 알려 준 정보라 확실하지.’

나는 아예 고개를 그레고르쪽으로 돌린 채 똘똘하게 말을 이었다.

“아, 아레아인의 특징이 적금발에 녹안이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폐하께서 그토록 태양 같은 머리칼을 가지신 거군요!”

손뼉까지 짝 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그레고르의 머리칼에 향하게 한 나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었다.

“저는 늘 폐하의 머리색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거든요.”

“…짐의 머리칼을 좋게 봐줘서 고맙구나, 공녀.”

내 말에 떨떠름히 대꾸한 그레고르가 불쾌하다는 듯 아돌프를 돌아본다.

“우생학이란 게 짐이 여태 그대에게 들은 연구와는 조금 다른 방향인 듯싶은데.”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아레아인에 대한 연구는 저희 상아탑에서도 아직 실험을 다 마치지 못해 다소 논리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아니, 네 연구는 다 틀려먹었어.’

피부색이나 눈색, 머리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말살하겠다는 목표를 둔 학문에 무슨 논리가 필요하겠는가.

아돌프는 다수의 학자들이 자신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크게 입을 벌렸다.

“폐하, 어찌 됐든 벨네르니인들이 소르베 지구에 역병을 몰고 오지 않았습니까? 인종 위생을 정책에 도입하면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아직도 죄 없는 소르베 지구의 사람들을 탓하는 아돌프의 주장에 작은 이마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그 역병 말인데, 원인은 제대로 규명하신 건가요?”

“역병은 원인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는 재앙이기에 역병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하지만 방금은 소르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대개 벨네르니인이라 역병이 도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나는 큰 눈을 꿈뻑이며 당황해 얼굴까지 붉어진 아돌프를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콧수염을 매만지면 진정이라도 되는지, 뾰족하게 다듬은 제 수염만 연신 매만지던 아돌프가 입술을 달싹인다.

“그, 그러니까, 우생학에 따르면… 허! 그렇다면 라노오레 박사님은 소르베 지구에 전염병이 도는 이유를 찾으셨습니까?”

당연히 찾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묻는 말이겠지만,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타닥.

내가 가볍게 두 손가락을 맞부딪혀 튕기자 너도밤나무로 만들어진 스콜라홀의 멋들어진 문이 느릿느릿 열린다.

“들어와, 히스.”

내 말에 저벅저벅 회의실에 들어선 히스가 그레고르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내가 미리 숙지시킨 예법으로- 검은 천에 가려져 있던 새장을 높이 들어 올렸다.

“…저게 도대체 뭡니까?”

금제구로 이루어진 새장 안에서 힘을 잃은 고로나가 끼룩, 끼루룩 우는 소리가 적막이 깃든 회의실에 울려 퍼진다.

“마물인 것 같은데요.”

“고로나라는 마물입니다. 공격력은 없으니 그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특징은, 아!”

누군가의 물음에 마물을 연구하는 학자 한 명이 대신 나서서 대답하다 알았다는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려친다.

“고로나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특수한 능력이 있는 마물입니다!”

“네, 맞아요.”

나는 그의 말에 서둘러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저희 오라버니가 황성의 외벽을 공격한 이유도 이 마물 때문이에요. 고로나가 황성 외벽에 숨어들었거든요.”

“허어. 그래서 황성의 외벽을 공격했던 거군요.”

“자카리 오라버니가 이끄는 흑랑(黑狼)이 마물이 들끓는 땅 자브뤼켄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제국의 국경을 방어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들 잘 아실 테니까요.”

“그럼요. 흑랑의 노고를 모르는 자는 없지요.”

아돌프는 사람들이 내 말에 휩쓸리는 분위기에 퍽 당황한 눈치였다.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던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목소리를 높인다.

“즈, 증거는! 고로나가 황도에 숨어들었다는 증거는 있는 겁니까?”

“네. 안타깝게도 있어요.”

“안타깝다니, 그게 무슨….”

“저희 공작가와 흑랑이 협력해 고로나와 싸워 봤지만, 전부 다 잡지는 못했거든요.”

나는 마침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절대 더러워지지 않는 순결한 백색의 벽을 가리키며 침울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지금도 황성의 드높은 외벽에 길게 진 그림자에 고로나가 잔뜩 숨어들어 있을 거예요.”

물론 속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마물은 아이네스, 너만 이용할 줄 알았지?’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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