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27)화 (362/486)

제127화

“이거… 목줄 아니야?”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황궁에 불려갔다던 히스가 손에 들고 돌아온 물건을 응시했다.

검은 가죽 줄에 은사슬 장식.

앞구르기를 하면서 슬며시 봐도 목줄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을 만큼 전형적인 모양새였다.

‘아냐, 그냥 목걸이일 수도 있어.’

현대에서도 한때 목줄 비슷한 초크 장식 유행이 전국을 강타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목줄 맞습니다.”

하지만 슬그머니 고개를 든 내 희망을 짓밟기라도 하듯 히스가 단호하게 입을 연다.

“목줄을 왜 들고 왔어?”

내 물음에 예쁜 얼굴로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얌전한 아이를 가장하며 내게 공손히 목줄을 내민다.

“채워 주세요.”

“……?”

도대체 목줄을 왜 채워 달라는 거야.

‘설마 히스의 숨은 욕망이 패션의 선두 주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이 너무 낮아 보이지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히스 눈에는 이 목줄이 예뻐 보이는 거야? 그렇다면 장식으로 쓸 수 있도록 아그네스나 코코에게 말해 둘게.”

“예뻐서 들고 온 건 아닙니다.”

나는 아까부터 내 희망의 싹을 썩둑썩둑 가차 없이 잘라 대는 매정한 소년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지. 인간이 아닌 병기로 지낸 세월이 너무 길어서 맛이 가 버린 걸까?’

“하지만 히스, 이건 사람에게 채우는 물건이 아니야.”

“싫다면 내게 공녀의 사람이라는 표식이라도 남겨 주십시오.”

나는 히스의 황당한 요구에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넌 내게 소유되고 싶은 거야?”

내 물음에 단정한 입술만 달싹이던 소년이 느릿느릿 말문을 연다.

“그게 안 된다면,”

“응?”

더는 이어지지 않는 히스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떠봤지만, 히스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을 뿐입니다.

“…아닙니다.”

‘뭐, 어디선가 족쇄를 잃은 노예는 또다른 족쇄를 갈망한다는 말을 본 것도 같은데.’

스톡홀름 증후군도 비슷한 심리라고 들었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을 선호하는 법이니까.

‘그 긴 시간을 누군가의 소유물로 살아왔으니 지금처럼 자유로운 생활이 불편한 걸지도 몰라.’

나는 히스의 남다른 욕구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알았어.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목… 줄, 채워 줄게.”

나는 내 자그마한 손으로 쥐기에는 꽤나 위화감을 주는 가죽 목줄을 꼭 쥔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히스가 새하얀 뒷목을 내보이며 내 앞에 꾸벅 고개를 숙인다.

딸깍.

“자, 됐지?”

사슴처럼 길고 가느다란 흰목을 흘깃하며 고민만 하던 내가 히스의 목에 겨우 목줄을 다 채웠을 무렵이었다.

“아가씨, 간식 시간이에요!”

“…….”

발랄하게 내 서재 문을 열고 들어온 로제와 라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오, 오해야!”

로제와 라비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눈에 훤히 보여서 나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본 거, 전부 다 오해야!”

“…저, 저는 아가씨를 이해해요!”

“저는 아가씨가 어떤 성향이시든 지지할 거예요! 레오노라 팬클럽 수도 지부 회장의 명예를 걸고!”

‘뭐야. 뭐 그런 이상한 이름의 클럽이 다 있어?!’

게다가 수도 지부라니. 설마 지역 곳곳에 있는 건 아니겠지.

변명하듯 허둥지둥 입을 여는 라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인영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시, 실비.”

‘앗, 우리 둘째는 이런 거(?) 보기엔 아직 너무 어린데!’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실비의 투명한 적안을 마주한 채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게 뭐지? 개목줄 아닌가?”

의아한 듯 묻는 그의 뒤로 실비보다는 조금 작은 인영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뭐야. 그거 뭔데?”

‘에녹은 또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던 거야!’

나는 에녹과 실비의 물음에 당황해 하동거리며 고개를 빠르게 내저었다.

“그런 게 아니라…!”

“이건 내가 공녀의 것이라는 표식입니다.”

그러나 내 대답을 빠르게 가로챈 히스가 자랑스레 제 목을 오빠들에게 들이밀며 입을 연다.

“보십시오.”

“뭐야? 왜 얼굴을 들이밀고 난리야! 꺼져!”

소년의 행동에 질겁한 에녹이 사납게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밀어낸다.

“별것도 아니구먼. 그냥 목줄이잖아?”

히스의 머리를 밀치면서도 그의 목에 걸린 장식을 확인한 에녹은 툴툴대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렇군. 목줄이군.”

에녹의 말에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인 실비는 내 변명은 들어보지도 않고 먼저 방을 나서버렸다.

“…….”

그러더니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목줄을 들고 와 내게 들이민다.

“안돼, 실비.”

“왜.”

“그냥 안 돼! 이상하잖아!”

히스나 우리 집 둘째 셋째가 멍멍이도 아니고 왜 목줄을 채워 둔단 말인가.

실비는 사고치고 다니는 성정이 절대로 아니었고 에녹도 내 말은 잘 들어주는 편인데다가, 히스는 워낙 얌전해서 가끔 살아 있는지도 헷갈리는 애였다.

‘전쟁귀라고 불리는 첫째면 또 몰라.’

내 거절에 불퉁하게 얼굴을 찌푸린 실비가 내가 받아 주지 않는 목줄을 그러쥐며 잘생긴 미간을 좁힌다.

“왜 저놈은 채워 주고 난 안 된다는 건가.”

“맞아! 우리도 채워 줘!”

“…절대 싫어, 이 바보들아~!”

하아.

나는 오빠들의 되도 않는 고집에 소리를 빽 지르며 그들이 서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문까지 쾅 닫아 버렸다.

“히스, 날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목줄 불편해?”

이제 다시 풀어 줄까? 물으며 눈을 반짝이자 히스가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다.

‘…소유되지 않으면, 소유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순간 히스가 꾹 삼킨 말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 * *

“아가씨, 이 제과점이 영지에서도 소문이 돌던 그 천재 파티셰 라쉬레가 오픈한 가게래요!”

나는 휴가를 받아 수도 저택으로 내려온-왜 휴가를 받았는데 내 수발을 들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지만- 룰루랄라의 반짝이는 눈망울에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역시 룰루랄라야, 내 입맛을 제일 잘 알아!”

“그쵸. 로제나 라비보다는 저희가 모시는 게 훨씬 더 편하시죠?”

으응, 응응.

나는 내 최측근 하녀 자리를 빼앗길까 걱정이 되는지 동공까지 떨어 대는 룰루랄라를 안심시키기 위해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쪼로륵, 라쉬레 제과점의 특제 딸기 주스를 빨아먹었다.

‘쁘띠 플뢰르도 막을 내리고 사교계 시즌도 슬슬 끝나 가는 시점이라 우리도 영지로 복귀해야 할 텐데….’

저주를 완전히 풀 방법을 찾았다고 선언한 발레리가 루카스를 신전으로 데려간 이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신전에 찾아가 봐야 하나? 가주 없이 영지로 돌아갈 순 없는데.’

혹시나 일이 잘못된 걸까 봐 슬금슬금 불안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룰루, 혹시 신전이나 교황청에서 무슨 연락-”

발레리에게 기별이 없었느냐고 룰루를 채근하려는 순간이었다. 룰루랄라가 달달한 마카롱과 다쿠아즈, 에클레어 따위를 가득히 채운 쟁반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쿠구궁-!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쿠쿵! 쾅!

물음표가 떠오른 룰루의 얼굴 뒤로 제과점 문을 벌컥 열어젖힌 치안대가 다급한 목소리를 높인다.

“황성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모두 대피하십시오!”

나는 치안대 병사의 말에 촘촘히 난 솜털 같은 눈썹을 찌푸렸다.

‘황성이 공격을 받는다고?’

윌레닌 황실의 궁전은 ‘절대로 더럽혀지지 않는 순백의 성’. 말 그대로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건설 당시의 우아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특별한 건축물이었다.

‘초대 교황이었던 아크리누스 1세와 강대한 마력을 자랑했던 건국 황제의 합작으로 탄생한 거대한 아티팩트나 마찬가지지.’

“황성을 공격하다뇨. 그건 자살 행위 아닌가요?”

병사의 말에 제과점 손님 중 하나도 의아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 확실히 이상해. 궁전 자체도 거대한 마력으로 지켜지는 아티팩트인데다 겹겹이 쌓인 결계가 어마무시한 곳인데 어떤 멍청이가 황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해?’

게다가 원작에는 묘사되지도 않았던 사건이었다.

‘…아이네스 짓도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몰라 황급히 원작 책을 뒤적인 나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페이지를 확인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가씨, 상황이 위험해지기 전에 대피해야 할 것 같아요.”

원작에 나오지 않았었다면 딱히 조심할 만큼 위험한 테러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룰루랄라는 무서울 수 있으니까 집에 가야지.’

나는 나를 재빨리 안아 드는 룰루의 품에 안겨 제과점을 나섰다. 그러자 정말로 저 멀리 수도를 내려다보고 있는 황성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만…. 저 깃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는 황성 근처에서 흩날리는 새까만 깃발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 깃발, 흑랑(黑狼) 기사단의 표식이잖아!’

“황성을 공격한 수괴가 흑랑의 기사단장 자카리 하차니아로 밝혀졌습니다!”

황성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마경으로 생생하게 중계하던 발렌타인사의 기자가 목청 높여 울부짖는 말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 오매불망 기다려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던 전쟁귀 첫째 오라버니가 왜 반군 우두머리로 등장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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