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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15)화 (350/486)

제115화

알랑 뤼지앙의 자백이 담긴 영상구를 소중히 품에 안고 조심조심 저택으로 복귀하는데, 현관이 소란스럽다.

“리니 어디 갔어?”

“레오노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훈련으로 잠시 수도 저택을 비웠던 에녹과 실베스테르가 그새 복귀한 모양이었다.

‘이크. 내가 밤에 나다녔다는 걸 알게 되면 또 난리치겠네.’

실비나 에녹은 내가 평범한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처럼 대했기 때문에 내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걸 꺼려 했다.

“에녹, 실비. 훈련은 잘 다녀왔어?”

나는 가벼운 산보라도 다녀온 척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오빠들에게 다가섰다.

“리니!”

그들 사이로 불쑥 고개를 들이민 나를 에녹이 재빨리 끌어안는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에녹은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나는 빨갛게 물든 그의 코끝을 툭 건드리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나도 보고 싶었어, 에녹.”

내 말에 실실 웃는 에녹을 휙 밀쳐 낸 실베스테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왜, 실비?

“…….”

“응?”

나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하는 실비의 행동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실비도 엄청 보고 싶었어.”

“에녹보다도 말이지.”

그런 말은 딱히 한 적 없는데.

혼자 알아서 오해한 실비의 한 쪽 입꼬리가 만족한 듯 비스듬히 올라간다.

“이 밤에 산책이라도 다녀온 건가?”

“응. 조금 갑갑해서.”

실비의 물음에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는데 성큼 다가온 그가 내가 뒤로 감췄던 손을 쓱 빼내 제 코앞에 펼쳐 보인다.

“풀 냄새가 난다.”

“어? 어어. 수도 마… 마구간에 다녀왔어.”

“왜지.”

“요, 요즘 승마에 관심이 가더라고.”

차마 수도 외곽에 위치한 마구간에서 뤼지앙 후작을 반 죽이고 왔다는 말은 할 수 없었던 나는 슬그머니 실비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런데 마구간의 주인이라는 뤼지앙 후작이 문을 열어 주지 않아서 그냥 돌아왔어.”

“감히 내 동생을 문전박대했다고.”

나는 실비의 살벌한 목소리에 뻘쭘한 뒷목을 긁었다.

“으응. 그래서 금방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자르파라가 뒷수습을 맡긴 했지만, 혹시라도 실비가 알랑 뤼지앙과 네르바 추기경이 얽힌 사건을 파고들려고 하면 큰일이었다.

‘실비는 눈치가 빠르니까 내가 위험한 일에 말려들었다는 걸 알아차리면 곤란해.’

“뤼지앙이라… 이제 막 백랑에 입단한 종기사 이솝 뤼지앙이 뤼지앙 후작의 조카다.”

나는 실비의 뜬금없는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서?”

“네가 원한다면 밟아 줄 수도 있어.”

가스파르를 닮아 도덕 교과서 같은 말밖에 못하던 실비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언행이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왜 이렇게 좋아진 거야?’

이제 막 변성기를 지난 실비의 목소리는 낮지만 무겁지 않아 매혹적인 중저음을 완성시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실비. 겨우 마구간 출입을 시켜 주지 않았다고 그의 조카를 괴롭힐 생각은 하지 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입을 연 내 대답에 실비가 아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하지만 사적인 공간도 아니고 고작 마구간에 들어가려는 네 출입을 막았다면 후작가에서 하차니아를 무시한 거나 마찬가지야, 리니.”

뤼지앙의 행동이 마음에 차지 않는 건 에녹도 마찬가지였는지 셋째는 한숨처럼 말을 덧붙였다.

“가끔 네가 너무 착해서 곤란할 때가 있어.”

“……내가 착하다고?”

“그래. 어디 날개라도 떨어뜨리고 온 거야?”

나는 에녹의 물음에 기가 막혀 입을 벌렸다.

에녹은 이제 적랑에 입단한 정식 기사인데다 검술 스승까지 따로 있었다.

그 덕에 나는 훈련에서 손을 뗐더니 마차 바퀴에 나를 싣고 달리던 시절은 죄 까먹어 버린 모양이다.

“어디 가서 사기나 안 당하고 오면 다행이지, 리니 너는.”

“괜찮다. 우리가 지켜 줄 테니까.”

나는 콩깍지가 쓰여도 아주 단단하게 쓰인 형제들을 허망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다 대꾸 없이 등을 돌렸다.

“나, 피곤해서 자러 갈래.”

탁.

문까지 닫고 침실에 들어선 나는 큼큼,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예, 빛이시여.

은은한 빛을 뿜는 통신구에서 자르파라의 충성스러운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뤼지앙은 처리했어?”

-예. 대충 마구간에서 여자를 겁탈하려다 놀란 말 뒷굽에 치여 죽은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피해자인 네르바의 신분은 철저히 감춰야 해.”

-알겠습니다, 나의 태양이시여.

“그리고 뤼지앙 후작가와의 거래는 후계가 정해질 때까지 싹 끊어 버려.”

알랑 뤼지앙 같은 놈이 또다시 후작가를 다스리게 될 수도 있으니 아예 멸문 직전까지 몰아세우는 게 나을 것이다.

‘다행히 뤼지앙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영지라 상단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지.’

하지만 소유한 광산이 제법 괜찮아서 탈탈 털어 빼앗기엔 나쁘지 않은 가문이었다.

움후후.

입가로 새어나오는 내 사악한 웃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자르파라의 통신구가 지지직거리며 빛을 내뿜는다.

-역시 인애로우신 나의 태양….

“응?”

-네르바 추기경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감춰야 할 테니 그녀를 대신해 후작에게 복수를 해 주는 것이로군요!”

“…….”

“나의 태양께서는 어쩜 이리 상냥하시고 다정하시고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바다와 같이 깊으신지…!

뚝.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자르파라의 말 같지도 않은 말에 재빠르게 통신구를 끊어 버렸다.

‘외간 남자 낭심을 깨뜨려도, 멀쩡한 가문 하나를 멸문시킬 마음을 먹어도 날 착하게 본단 말이지.’

진짜 어디 가서 사기라도 당할까 걱정되는 건 내가 아니라 자르파라와 오빠들이었다.

* * *

“뭐, 뭐라고요?! 깃발잡기?”

쁘띠 플뢰르의 본선 주제에 나보다 더 경악한 사람은 트리스탄의 사촌인 스텔라 솔로아-발렌이었다.

“쁘띠 플뢰르는 차기 사교계의 꽃을 선정하는 대회잖아요! 그런 대회에 육탄전이 어째서 본선의 주제인 거죠?!”

쁘띠 플뢰르의 예선을 통과한 사람은 모드 이아론, 스텔라 솔로아-발렌, 그리고 나였다.

‘모드의 표정을 보아하니 카라나 아이네스가 손을 쓴 모양이네.’

나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 쪽을 향해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모드를 뚱하게 마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아이네스도 카라도 나를 단순히 마력을 사용하는 술자라고만 알고 있을 테니까.’

마법사를 포함한 술자들은 시동인이나 마도구를 이용해 힘을 발휘하는데다 학구적인 타입이 많아 상대적으로 일반인보다 체력이 약했다.

솔로아 공작가의 방계인 스텔라도 이능력을 타고나긴 했지만 소울나이츠가 아닌 연금술사였다.

“쁘띠 플뢰르가 준비한 깃발잡기는 단순한 육탄전이 아닙니다. 심사 위원분들은 이번 난관을 통해 영애들의 기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스텔라가 암만 펄펄 뛰어도 운영 위원은 평정을 잃지 않았다.

“단, 참가자들이 몸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영애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레이디를 지킬 슈발리에 한 명과 함께 본선에 참가할 수 있다는 룰을 추가했습니다.”

나는 토끼 모양 반가면을 쓴 사내의 설명에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모드 이아론도 육탄전이라면 젬병일 텐데 왜 깃발잡기 따위를 주제로 선정했나 싶었는데….’

지금 말하는 ‘슈발리에’, 즉 기사 선정이 관건인 모양이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토끼 반가면을 노려보는데, 내 옆에 얌전히 앉아 초롱초롱 눈만 빛내던 모드 이아론이 손을 번쩍 들며 발랄하게 입을 연다.

“저는 같이 참가할 기사님이 계셔요. 지금 말씀드려도 될까요?”

제 기사님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싶었다.

“깃발잡기가 본선이라는 건 지금 발표된 건데 어디서 미리 언질이라도 들었나 봐?”

모드 이아론의 물음에 운영 위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스텔라가 신경질적으로 그녀를 흘깃하며 입술을 깨문다.

“비열하긴.”

스텔라는 남자 주인공인 트리스탄의 피가 흐르는 여자아이답게 새빨간 눈을 자랑했다. 흉흉한 살기가 흐르는 스텔라의 날카로운 적안에 모드는 얄밉게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지, 지금 말씀드려도 되냐니까요?”

“네, 모드 이아론 영애. 생각해 둔 슈발리에가 있다면 말해도 좋습니다.”

“제 슈발리에는 라르스 발탄 자작님이 맡아 주실 예정이에요!”

모드는 제 인맥을 자랑이라도 하듯 만개한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라, 라르스 발탄?”

“발탄 자작이라면 사계절의 검 중 하나이지 않나요?”

모드가 기대한 대로 그녀의 발언에 발표회장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라르스 발탄이라.’

나는 원작에서는 크게 비중이 없었지만, 제국 제일검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기사인 라르스 발탄을 떠올리며 비스듬히 고개를 꺾었다.

“레오노라 영애, 영애 또한 생각해 둔 슈발리에가 있는 겁니까?”

나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토끼 반가면을 마주한 채 입술을 달싹였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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