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14)화 (349/486)

  

제114화

  

  

  


  

“물론 추기경인 네르바와 약탈혼을 올리게 되면 후작인 네 명예가 아주 잠깐 실추되긴 하겠지.”

카라는 뱀 같은 혀를 움직이며 소심하게 움찔거리는 알랑 뤼지앙을 자극했다.

“하지만 널 밀어내는 네르바의 진짜 속마음을 알면서도 그녀를 포기할 셈이야?”

“…….”

“네가 그러고도 남자라고 할 수 있어, 알랑?”

“정말 네르바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

“응. 같은 여자라서 느끼는 게 있는 거야. 날 믿어.”

“조, 좋아. 카라! 널 믿어 보겠어.”

알랑 뤼지앙은 카라가 은밀하게 내민 네르바의 출장 루트 지도를 품에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카라!”

그가 카라의 집무실을 빠져나가자마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아이네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후우. 드디어 저 머저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구나. 수고했어, 카라.”

“네, 황녀 전하.”

“네르바가 약탈혼을 당해 추기경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면 네 앞길을 막는 건 마크뿐이겠구나.”

아이네스는 카라가 기특하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으며 제게 공손하게 읍하는 추기경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마크는 어떻게 제거해 주실 건가요, 황녀 전하?”

카라는 사람들을 부리는 데는 능했지만, 악독한 계획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아이네스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 내가 생각해 둔 게 있지.”

피식, 어린 황녀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연다.

  


  

‘생각해 둔 계획은 너만 있는 줄 알아?’

자르사워 용병단 후드를 걸쳐 입은 채 용병들 사이에 숨어든 나는 움후후, 아이네스보다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뛰는 여주 위에 나는 악당-조무래기지만- 있다, 이거야.’

원작을 통해 뤼지앙과 카라의 계획을 대강 파악한 나는 뤼지앙이 네르바를 덮칠 만한 장소 곳곳에 미리 탐지 아티팩트를 설치해 놓았다.

‘강대한 신성력 사용자인 네르바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금제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뤼지앙은 자신과 네르바의 친분을 이용해 방심한 그녀에게 금제구를 채울 셈일 터였다.

후작의 어리석은 계획이 어찌나 뻔히 읽히는지 나는 탐지 아티팩트를 가장 먼저 설치해 놓은 마구간에서 그의 덜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만둬!”

마구간 밖을 지키던 뤼지앙의 기사들을 전부 기절시킨 나는 마구간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내 작은 손에도 착 감길 만큼 앙증맞은 리볼버를 치켜들었다.

“너, 너네 다 뭐야!!!”

정신을 잃은 네르바를 지푸라기 더미 위에 눕히고 있던 알랑 뤼지앙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쏠 테니까.”

총기는 아직 제국민들에겐 익숙한 무기가 아니었지만, 특유의 소심함 덕에 직감적으로 내가 제 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뤼지앙은 입술을 꾹 깨물며 두 손을 높이 들었다.

탕-! 탕-!

“아아악!!!”

나는 부러 그의 손가락에 마탄이 스치도록 리볼버를 조준한 후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아, 안 움직였잖아!!!”

양손가락이 잘려 나간 뤼지앙이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 그냥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었다.

“네르바 예하를 마차로 모셔.”

“존명!”

무슨 금술에 당한 건지 신성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네르바를 턱 끝으로 가리키자 내 뒤에 시립해 있던 자르사워의 용병들이 공손히 읍한 후 그녀와 함께 마구간을 벗어난다.

“넌 뭐야! 네가 뭔데 우리 사이를 방해해! 네르바도 사실 날 원하고 있었다고!”

덩치가 커다란 용병들이 사라지고 나만 남자 용기를 되찾은 건지, 뤼지앙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꽥꽥거리기 시작했다.

‘뭐래, 이 미친놈이.’

“네르바가 정말로 당신을 원한다고 생각했으면 왜 금술까지 써 가며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흐트려 놓은 건데?”

네르바의 몸에서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그녀는 의식까지 잃은 상태였다.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짓는 나를 올려다보며 우물쭈물하던 뤼지앙이 머뭇머뭇 입을 연다.

“…그, 그건 네르바가 추기경이니까. 억지로 강제하지 않으면 절대 제 마음을 인정하지 않을 거라고!”

“설령 정말로 네르바가 당신을 조금이나마 좋아한다고 해도 남자가 아닌 추기경의 지위를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존중했어야지.”

신관은 결혼과 동시에 자격이 박탈되는 직업이었다.

‘게다가 네르바는 일반 신관이 아닌 추기경인데, 결혼을 위해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거야.’

그런 사람을 상대로 약탈혼을 계획하다니.

“넌 그냥 성범죄자일 뿐이야, 쓰레기.”

“마, 말이 심하군. 도대체 누가 내 뒤를 따라붙으라고 널 고용한 거지? 요, 용병 같은데 네가 받은 의뢰금의 배를 주겠으니 네르바를 돌려줘.”

나는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헛소리를 해 대는 뤼지앙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글쎄. 내 몸값은 매우매우 비싼 편인데 과연 당신이 날 고용할 수나 있을까?”

툭,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용병단의 후드를 벗어던졌다.

“레… 레오노라 하차니아? 하차니아의 공녀잖아?”

후드 아래로 감추고 있던 키높이 신발 덕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키가 커진 모습이었지만, 그는 내 앳된 얼굴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래. 제국의 공녀를 용병으로 고용하기 위해 도대체 얼마나 지불할 수 있는데? 10억 골드쯤은 각오한 거야?”

게다가 하차니아 공작가는 엄청나게 부유했다.

찰칵.

내 손가락 사이로 빙그르르 도는 리볼버를 힐끔한 뤼지앙은 돈으로는 나를 절대 현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제, 젠장!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하겠어. 그러니 목숨만은-!”

“목숨은 살려 줄 거야. 대신 당신 죄를 자백해.”

주머니에서 영상구 하나를 꺼내든 나는 뤼지앙 앞에 툭, 아티팩트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바로 치안대에 송부할 생각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후작가의 명예가 바닥에 떨어질 거다! 사회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럼 정말 뒈지시든지요, 후작님.”

나는 총구로 그의 머리통을 정확히 겨냥하며 방긋 웃어 보였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 무기 내려놔, 제발! 흐윽! 지금도 손가락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단 말이다!”

겨우 손가락 끝이 스쳤을 뿐인데 마탄 맛을 본 뤼지앙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몸을 웅크린 채 영상구를 집어 들었다.

“뤼지앙 후작가의 가주인 나, 아, 알랑 뤼지앙이 감히 제국의 추기경인 네르바 예하를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뤼지앙의 목소리를 탐지한 아티팩트가 빙그르르 돌아가며 그의 모습을 녹화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건 모두 나와 네르바의 오랜 친우이자 추기경인 카라의 조언 때문에 저지른 실수에 불과합니다!”

나는 뤼지앙의 헛소리에 어이없는 한숨을 삼켰다.

성범죄자들은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변명이 다 비슷비슷할까.

술을 먹어서, 홧김에, 누군가 자신을 자극해서.

‘남 탓하는 방법을 배우는 학원이라도 다니는 건가.’

“전부 카라 때문입니다! 카라가 나 보고 네르바도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 강제로 취하면 좋아할 거라고 했다고!”

나는 점점 더 격해지는 뤼지앙의 목소리에 어깨를 으쓱하며 그에게 다가섰다.

‘자백은 이정도면 된 것 같고.’

카라까지 알아서 술술 불어 줘서 일이 더 쉽게 풀릴 것 같다.

“영상구 꺼.”

내 명령에 말 잘 듣는 개처럼 고개를 끄덕인 뤼지앙이 감히 희망이 깃든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어. 이제 날 보내 줄 거지?”

탕!

나는 그의 목소리가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방아쇠를 빠르게 잡아당겼다.

“허억!”

탕!!!

“끄아아악!!!”

바지춤에 마탄이 꽂힌 뤼지앙이 헉, 숨을 삼키며 옆으로 쓰러진다.

“모, 목숨은… 살려 준다고 했, 잖아?”

나는 다 죽어가는 뤼지앙의 물음에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죽였잖아.”

트리스탄의 마탄으로 낭심만 깨트렸을 뿐이다.

‘황제인 그레고르가 성범죄자나 마찬가지니 제국법은 성범죄에 관대할 수밖에 없지.’

겁탈을 한 것도 아니고, 시도했을 뿐이니 제대로 된 형량을 받을 리도 없었다.

“그런데 성기를 마탄으로 파괴해 버리면 결국 죽지 않나?”

나는 의식을 잃은 뤼지앙을 흘깃하며 마구간 문을 지키고 선 자르파라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급소이다 보니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운이 좋으면 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태양이시여?”

“그런가?”

“예. 방금 빛께서는 자비를 베푼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나이다.”

뭐, 죽든지 말든지.

악당은 원래 약속 잘 안 지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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