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12)화 (347/486)

제112화

촤라락.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코코는 품에 안은 드레스를 자랑스레 펼쳐 보였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드레스는 처음 봐요!”

“천사의 날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겠어요.”

기대했던 반응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파니에 덕에 좌우로 활짝 펴진 스커트 레이스 한 올 한 올에 다이아를 수놓았기 때문에 희붐한 달빛 아래 요정이 입는 옷처럼 오색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신인 디자이너 코코 리베라, 제국의 신사숙녀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씩씩하게 꾸벅 고개를 숙인 코코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는 것이 쑥스럽다는 듯 발그레하게 뺨을 붉힌 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저는 마담 아그네스 티에리께서 직접 의복에 대해 전수한 도제입니다. 오늘 공녀님이 주최하신 연회에서 제가 제작에 참여한 드레스를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어 영광입니다!”

발랄하게 웃은 코코가 별이 수놓인 새까만 밤의 장막 위로 드레스를 집어던진다.

휘익-!

코코가 난데없이 드레스를 버리는 줄 알고 놀란 귀부인들이 웅성댔다.

그리고 그 사이로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낸 벨루치 위로 드레스가 정확히 착지했다.

‘후후. 무대 장치에 신경 좀 썼지.’

벨루치를 감싼 드레스가 순간적으로 번쩍이더니, 이내 수수했던 그녀의 드레스는 코코가 디자인한 드레스로 갈아입혀졌다.

“어머나! 저 사람, 디바 벨루치 아닌가요?”

“디바 벨루치라면 지금 제국, 아니 서대륙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오페라 가수잖아요?!”

이제 완연한 성인이 된 벨루치는 만개한 장미처럼 아름다웠다.

순금을 녹여 만든 듯 반짝이는 금발, 여름의 녹음을 한가득 담은 녹안이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에서도 선명하게 빛났다.

‘모델이 좋아야 상품이 돋보이는 법이지.’

게다가 벨루치는 대히트한 오페라 <레베니아>의 악역을 맡은 이후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은 디바 중의 디바였다.

“감사해요, 벨루치 님. 제 드레스의 모델이 되어 주셔서요.”

“코코다이아로 장식한 드레스를 처음 입어 보는 영광을 안겨 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하네요.”

코코의 말에 벨루치는 우아하게 웃으며 가슴이 노출된 스퀘어 네크라인을 쥘부채로 톡톡 두드렸다.

네크라인까지 전부 다이아가 박혀 있었기 때문에 벨루치는 마치 한밤에 떨어진 태양처럼 빛이 나고 있었다.

벨루치는 심지어 코 옆에 찍힌 제 애교점에도 하트컷 다이아몬드를 붙인 채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천연 다이아몬드보다도 코코다이아가 더 마음에 들어요. 광채가 남다르달까.”

코코와 벨루치의 대화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코코다이아?”

“제랄드 아티팩트 공방에서 개발한 보석의 이름이 코코다이아랍니다.”

호기심 많은 귀부인의 물음에 모자를 장식한 세련된 깃털 장식을 손으로 매만진 벨루치가 차분히 대답한다.

“코코다이아라… 디자이너 코코 리베라의 이름을 딴 거군요.”

“네! 공작가에서 개발한 보석이긴 하지만, 코코는 앞으로 티에리 님과 함께 살롱 티에리코코의 운영을 맡아 줄 인재니까요.”

나는 내 앞에서 나지막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귀부인의 말을 놓치지 않고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종의 입사 선물이에요, 코코.”

‘코코다이아’라는 이름은 코코 리베라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방에서 개발한 인공 다이아몬드의 브랜딩을 위해 붙인 이름이기도 했다.

‘가짜 다이아몬드라는 인식이 생겨 버리면 사람들의 구매욕이 떨어질 거야.’

현대에서도 제조사들이 인공 다이아몬드에 괜히 모이사나이트라든지 랩그로운 따위의 새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었다.

‘결함이 있다고 무시 받던 갈색 다이아몬드도 샴페인 다이아몬드나 꼬냑 다이아몬드 같은 이름을 붙인 이후에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으니까.’

코코다이아.

나는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의 귀여운 어감에 만족하며 내게 다가와 울먹이는 코코의 손등을 붙들었다.

“정말 감사해요, 공녀님. 의복에 관한 아무런 지식도 없는 제게 이런 기회까지 주시고, 공녀님께서 열심히 개발한 보석에 하찮은 제 이름까지 붙여 주시다니….”

“코코를 거두자고 한 건 티에리 님이에요. 그러니까 내게 감사할 필요 없어요, 코코.”

물론 재능 넘치는 인재인 코코를 아이네스가 선점하기 전에 티에리 앞에 떨궈놓는 뒷공작을 펼친 건 나였지만.

“티에리 님과 공녀님께서는 제가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베푼 은인이세요. 도대체 이 빚을 어찌 갚아야 할지….”

울먹이는 코코의 말에 그녀와 벨루치를 빤히 구경하던 귀부인 몇몇이 서로를 힐끗하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럼 아그네스 티에리가 코코 리베라의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건 전부 헛소문이었네요?”

“표절을 당했다면 레이디 티에리를 은인으로 생각할 리 없죠.”

“하여간 쓰레기 가십지 아니랄까 봐, 일간특급은 죄 거짓뿐이었군요!”

“미스터 발렌타인이 그렇게 돈을 밝힌다잖아요. 뇌물만 먹이면 아무 기사나 실어 준대요.”

쯧쯧, 혀를 차는 귀부인들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 멜리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연다.

“일간특급은 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타블로이드지예요. 너무 마담 아그네스와 저 디자이너의 말만 믿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왕녀님께서도 일간특급에 실린 왕녀님에 대한 기사가 전부 루머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건…!”

이제 와서 일간특급에 실린 제 스토킹이 전부 사실이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였다.

“됐어요. 다들 말이 안 통하는군요!!!”

멜리사는 귀부인의 반박에 대응하지 못하고 입술을 악문 채 등을 돌렸다.

* * *

“레오노라는 예선전도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하셨잖아요!”

바락바락 목청을 높이는 모드를 힐끔한 카라는 아이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공방에서 개발한 인조 보석을 이용해 게스트들에게 답례품을 안겨 주더니 초대 손님이었던 여배우를 이용해서 광고까지 해 버렸다고?’

웬만한 거대 상단을 이끄는 상단주도 따라가지 못할 수완이었다.

‘만만하게 볼 계집이 아니야.’

카라는 검지손가락 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예하, 저를 도와주기로 하셨잖아요!”

“시끄러워! 모드도 예선은 통과했으니 된 거잖아!”

모드는 처음 보는 카라의 날카로운 모습에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가, 곧 제정신을 차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레오노라가 예선전을 1위로 통과했는데 본선에서도 1등을 하면 어떡해요? 그럼 전 예하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게 되는데요.”

모드는 카라의 예상보다도 더 악랄하고 발칙한 아이였다.

교황의 축복을 받을 때 발레리를 찌르겠다는 약조만 해주면 쁘띠 플뢰르의 자리를 차지하게 해 주겠다는 그녀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다 못해, 되레 카라를 역으로 협박할 만큼.

“아무 힘도 없는 어린아이인 제가 발레리 성하를 다치게 하려면 성하께서 쁘띠 플뢰르인 저를 축복하기 위해 집중하는 틈을 노리는 수밖에 없잖아요?”

“쁘띠 플뢰르로 만들어 주겠다니까, 모드!”

카라가 괘씸한 모드의 말에 사납게 인상을 찡그리는 순간, 추기경의 알현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모드만큼이나 잔뜩 흥분한 인영이 걸어 들어온다.

“카라!”

“무슨 일이십니까, 왕녀님.”

“폐하께서 나를 다시 받아 주실 거라면서!”

레오노라의 선상 파티에서 창피를 당한 멜리사는 일간특급에서 다룬 특집이 거짓이 아니었냐며 자신을 추궁한 귀부인, 세렌디 백작 부인을 그레고르를 통해 혼쭐을 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심지어 밤에 찾아갔는데도!’

그레고르는 멜리사와 자신의 관계가 완전히 끝이 난 것처럼 굴었다.

“사근사근하게 웃지 않는 왕녀에게는 더는 짐의 구미가 당기지 않아. 이만 나가 보아라.”

“폐하, 제가 폐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허. 루카스에 관한 비밀을 말하는 건가? 왕녀가 의식을 잃은 비운의 황자에게 집착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걸 모르는 제국민이 없는데,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믿을 리가.”

멜리사는 마치 제 파멸을 바란다는 듯 비죽 웃던 그레고르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카라, 당신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진정하세요, 왕녀님. 폐하께서 왕녀님에 대한 애정을 되찾으실 수 있도록 제가 루엘라 님께 기도를 올려 보겠습니다.”

“닥쳐! 아스텔리우의 왕녀인 내가 왜 제국을 수호하는 여신인 루엘라 따위에게 기대야 하지?!”

멜리사는 카라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며 휙 등을 돌렸다.

“루카스도 내 힘으로 찾겠어! 더는 카라,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까.”

멜리사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루카스의 몸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카라의 말을 믿고 얌전히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그레고르도 추기경도 믿을 수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교황의 손안에 들어간 루카스의 몸이 시시각각 상해 가는 중일 수도 있었다.

“루, 루카스 황자님을 되찾으시겠다고요?”

“그래! 교황에게 빌든, 왕국의 힘을 빌리든 내 뜻대로 할 거야!”

카라는 생떼를 부리는 멜리사를 앞에 두고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무리 그녀가 딸이라고 한들, 타국 황자에게 반해 망명까지 한 그녀를 아스텔리우 왕이 도울 리 없지 않은가.

되레 발레리만 자극해 그의 몸을 더 빼내기 어렵게 만들 뿐일 터였다.

“말리지 마! 지금도 루카스가 보고 싶어서 가슴이 다 타 버릴 것 같다고!!!”

“왕녀님! 저도, 저도 왕국의 도움을 받고 싶어요! 반드시 레오노라를 꺾고 쁘띠 플뢰르가 되고 싶어요!”

‘이 미친년들이 진짜….’

카라는 멜리사와 모드의 뺨이라도 내려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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