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10)화 (345/486)

제110화

“레오노라 공녀는 선상 파티를 준비했다고요.”

“선상 파티라면 배 위에서 하는 연회인 건가요? 특이하네요.”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귀를 쫑긋 세웠다.

함선을 소유한 귀족들이라면 몇 있었지만, 제국은 아직 개인 선박을 이용한 항해를 취미로 즐기는 요트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곳이었다.

‘아크레아의 함선은 항구에 정박되어 있으니까 바다를 나갈 일은 없겠지만.’

나는 걱정스럽다는 듯 천천히 함선에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움후후, 손가락을 맞부딪히며 웃었다.

“어머! 너무 아름다워요. 마치 요정의 바다에서 건너온 함선 같네요.”

아티팩트 공방에서 제작한 최고급 야광주로 장식한 아크레아의 함선은 도금이 조금 벗겨진 구석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섬세한 세공을 자랑하는 예술 작품이었다.

세이렌이 조각된 뱃머리를 감싸 안은 생화 장식이 희붐한 달빛 아래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배는 처음 봐요. 아크레아의 유물이라면 가치가 어마어마하겠어요.”

설레하며 배에 오르는 귀부인들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인영 하나가 불만스러운 입을 연다.

“바다에 가라앉았던 함선이라는데 비린내가 나지는 않을지 걱정이에요. 전 특히 비위가 약해서….”

클라하 부인의 말에 멜리사 왕녀와 친한 귀부인 몇몇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자정에 파티를 여는 거죠?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할 생각인 걸까요?”

“뱃멀미나 안 나면 다행이게요.”

멜리사와 친한 귀부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손뼉으로 대기하고 있던 로제와 라비에게 신호를 주었다.

파파박-! 팟-!

자르사워 용병들이 열심히 잡아 온 반딧불이가 일제히 날아올라 야광주 주위를 맴돌며 빛을 밝히기 시작한다.

“세상에. 반딧불이인가요? 너무 아름다워요!”

야광주는 너무 비싸서 많이 준비하지 못했지만, 반딧불이는 용병단이 잡아 온 거라 공짜였다.

야광주에 50골드, 함선을 옮겨 오는데 10골드가 들었으니 남은 돈은 40골드뿐이었다.

“제가 주최한 파티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여러분!”

선체 한가운데 높게 솟은 브리지 위에 올라선 나는 함선 파티에 맞게 준비한 깜찍한 세일러 원피스 자락을 들어 올리며 아이답게 활짝 웃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선물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내 말에 일제히 앞으로 나선 하차니아의 사용인들이 공손하게 읍한 후 게스트들에게 작은 상자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남은 돈 절반 이상을 인공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준비하는 데 썼지.’

돈보다는 시간이 빠듯하긴 했지만, 연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답례품으로 선보이기 위해서 제랄드가 힘을 내줬다.

‘제국에는 없는 문화지만, 한국은 돌잔치만 가도 답례품을 주는걸?’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선물을 마다하는 귀족은 더더욱 없었다.

‘공방에서 개발한 인공 다이아를 선보이기에 적합한 무대이기도 하고 말이지.’

쁘띠 플뢰르는 기본적으로 수도 귀족들이 향유하는 축제와 마찬가지였기에 함선 파티에 초대된 게스트들은 사교계의 유행을 이끄는 선두주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천연 다이아가 아니라고 값어치를 깎아내리는 사람은 분명 나오겠지만,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 분명 더 많을 거야.’

다이아몬드는 이 세계에서도 가장 값비싼 보석 중 하나였다.

그런 천연 다이아몬드와 탄소를 압축해 만든 인공 다이아는 육안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없었다.

‘이 세계에는 아직 인공 다이아가 등장하지 않았지만, 탄소를 압축하는 일 자체는 연금술사나 술자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어.’

다이아몬드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보석을 연금술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해 개발되지 않았을 뿐, 공방의 기술자들에게 아이디어 하나를 던져 주자 인공 다이아몬드 제작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후후. 적은 예산으로도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게스트 답례품으로 준비하는 게 가능해졌지.’

물론 제랄드와 내가 열심히 연구한 끝에 개발한 인공 보석이라 원가로 계산해서 가능한 거지만.

만약 예선에서 모드에게 밀린다고 해도 인공 다이아를 홍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이득인 셈이었다.

“어머. 이 광채 좀 보세요!”

“제가 어머니께 물려받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도 세공이 섬세하네요. 너무 아름다워요.”

예상치 못한 선물에 귀부인들은 기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그네들이 뺨이 귀여워 후후 웃음 짓는데, 아까부터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부릉부릉 시동을 걸던 클라하 부인이 탁 소리가 나게 보석함을 닫으며 목소리를 높인다.

“잠깐만! 이거 다이아몬드 목걸이잖아요? 예산은 분명 100골드였을 텐데! 반칙 아닌가요?”

클라하의 목소리에 동조하듯 모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입꼬리를 비죽 올린다.

“예산을 초과했으니 자동 탈락이겠네, 레오노라.”

어차피 파티가 끝나갈 무렵에 인공 다이아몬드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던 나는 듣지 못했다는 듯 모드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자 내가 대답을 회피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드의 옆에서 우아한 미소만 짓고 있던 카라가 앞으로 나선다.

“실망이네요, 공녀님. 공명정대한 루엘라 님의 뜻을 따르는 분이시라기에 성실한 자세로 예선에 임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정말 안타깝다는 듯 입술을 꾹 깨물며 말을 이었다.

“이기고 싶다는 욕망에 져 버려 어린 공녀님의 눈이 멀어 버렸어요.”

“저 시력 좋은데요.”

루카스를 괴롭히는 멜리사나 멍청한 모드도 싫었지만, 나는 청순한 얼굴로 사람을 뒤에서 조종하는 카라가 가장 꺼림칙했다.

“제가 예산을 넘겼는지 넘기지 않았는지는 심사 위원분들이 판단하실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예하.”

나는 내게 다가오는 그녀를 피해 몸을 스윽 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앗! 이베트 부인!”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공식에 맞게 이베트, 아니 이본느 황비는 항상 파티에 느지막이 도착했다.

“아악!”

카라에게 어깨빵을 날린 후 부인에게 오도도 달려간 나는 붕붕방방 팔을 내저으며 그녀를 반겼다.

“또 만나 뵙고 싶었어요. 오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매우 아름다운 목걸이네요. 고마워요.”

이본느 황비를 위해 준비한 목걸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준 답례품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화려한 목걸이였다.

‘목걸이 체인을 인공 다이아몬드로 만들었으니 당연하지.’

천연 다이아몬드로 이런 목걸이를 제작하려면 단가가 3천 골드는 기본으로 넘길 터였다.

‘물론 인공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세공비가 비싸서 남은 예산을 전부 이 목걸이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고 말았지만….’

이본느 황비는 그 정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준 목걸이보다 제게 준 목걸이는 훨씬 값비싸 보이는데, 내게 부탁할 거라도 있는 건가요?”

“네, 부인. 사실은….”

말꼬리를 흐린 나는 나비 모양 반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를 브릿지(지휘실) 내부로 이끌었다.

“부인께서 제 친구를 후원해 줄 사프롱을 소개시켜 주셨으면 해요.”

“…입양, 말인가요?”

“네. 부인께서는 수도 귀족들을 많이 알고 계시잖아요.”

나는 내 말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마주한 채 조가비 모양 의자에 덜렁 걸터앉았다.

“몇 년 전에 브리넨 구휼원이 습격을 당한 사건, 혹시 아시나요?”

“그 습격 사건을 모르는 제국민이 있을까요.”

“바로 그 사건으로 지낼 곳을 잃은 아이들 중 몇몇을 하차니아 공작가가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보호하고 있었거든요.”

“각하께서 좋은 일을 하시네요.”

‘전부 내가 한 일이지만.’

나는 이본느가 짧게 감탄하며 하는 말에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그런 아이들 중 원래 귀족이었던 아이들도 있어서 되도록이면 사교계에 데뷔를 시켜 주고 싶어서요.”

구휼원 출신 아이들은 희망하는 아이들에 한해 학술원 지원까지 해 주고 있었다.

‘사프롱만 찾으면 바로 사교계에 데뷔할 수 있는 아이들도 수두룩하지.’

그리고 자르파라가 확인해 준 아이들 명단에는 이베트가 애타게 찾고 있는 아이와 인상착의가 거의 일치하는 아이가 존재했다.

프레데릭 브리넨.

특별한 오러나 마나를 소유하지 않아 마정석 추출에는 이용당하지 않았지만, 귀족가 출신이라 값비싸게 팔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후작이 특별히 관리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이 아이가 이본느 황비의 아들이 맞아야 할 텐데….’

나는 부러 다른 아이들의 서류와 함께 프레데릭의 초상화를 넘기며 반가면 아래로 드러난 이본느의 표정을 흘깃했다.

‘빙고.’

나는 티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긴 했지만, 덜덜 떨리는 그녀의 입술을 확인하고 남몰래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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