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73)화 (308/486)

제73화

“움화화.”

드디어 악당다운 발음으로 웃을 수 있게 된 나는 거울 속 소녀를 들여다보며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움화화화! 리니 이제 곧 여덟 살이야!”

‘그래, 이 느낌이야! 이제 겨우 악당스러운 웃음소리가 나는구먼!’

“아가씨, 여덟 살이 되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응!”

거울 앞에서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나를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룰루가 묻는 말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좋아!”

일주일 뒤, 드디어 여덟 살 생일을 맞게 된 나는 그냥 여덟 살이 아니었으니까.

‘무려 초슈퍼 울트라 갑부 여덟 살이지!’

아이네스가 사업 투자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마다 쏙쏙 빼먹은 나는 자르파라와 그녀의 상단을 통해 공작가의 자산과 내 비자금을 눈덩이처럼 불릴 수 있었다.

‘불린 자금 대부분이 내 비자금 형성에 쓰였지만, 그래도 더는 하차니아가 하찮지 않게 됐으니까!’

아직 공국으로 독립할 정도의 명성은 아니었지만, 지난 5년 동안 하차니아가 손대는 사업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인식이 온 제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하, 지난한 시간이었다.’

물론 자르파라에게.

아이디어는 원작에서 훔쳐 온 것인데다 사업을 성공시키느라 이리저리 발로 뛰어다닌 사람은 내가 아닌 자르파라였으니까.

난 놀았다.

‘아냐, 그래도 공작성에서 무럭무럭 자라느라 정신이 없긴 했어.’

하긴, 나도 가스파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루카스를 보조하며 공작가를 관리했으니 마냥 논 건 아니었다.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5년의 세월을 떠올린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룰루가 가져다준 드레스에 손을 뻗었다.

“아이고, 우리 공녀님!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쁘게 크셨을까~?”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엽고 상냥한 우리 아가씨! 조금 음흉하시지만, 너무 사랑스러워!”

룰루와 랄라는 씩씩하게 혼자 옷을 갈아입는 내가 기특하다는 듯 눈물까지 글썽이며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연분홍색 레이스 드레스가 아가씨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있다면 제가 죽여 버릴 테니까.

나는 마침 뚜왈렛룸에 들어선 셀리아가 살벌하게 덧붙이는 말에 민망한 턱을 긁었다.

‘그 정도인가?’ 싶어 금장으로 장식된 거울을 흘깃하니 새초롬하게 생긴 여자애가 나를 따라 눈매를 치켜세운다.

‘으음. 좀 못되게 생기긴 했지만 예쁘긴 하네.’

만발한 제비꽃처럼 반짝이는 눈이 초상화 속 노엘과 빼닮아 있었다.

나는 누가 봐도 악녀같이 사랑스러운 미모를 자랑하는 여자애를 향해 후후 웃어 준 다음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럼 나 일하러 갔다 올게.”

탁탁, 가볍게 손을 턴 나는 셀리아의 팔을 붙잡고 워프(공간 이동 마법) 아티팩트를 발동했다.

* * *

셀리아와 당도한 곳은 브리넨 후작가의 지하실을 개조해서 만든 아티팩트 공방이었다.

아티팩트 제작 및 판매는 움베르토 제약과 더불어 하차니아가 내세우는 메인 사업 중 하나였다.

“공녀님 오셨군요!”

내 방문에 제랄드가 환히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응. 일찍 출근했네.”

힐다처럼 원작에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내 훈련모를 제작했던 제랄드는 숨은 인재였다.

뭘 시켜도 뚝딱 만들어 내길래 아티팩트 제작을 맡겨 봤더니, 그가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빛나는 실력을 슬그머니 드러내는 게 아닌가.

하차니아 공작가 전문 대장장이였던 제랄드는 일반인인지라 제품에 마나나 오러를 담을 수는 없었지만, 기막힌 아이디어와 빛나는 기지로 아티팩트를 설계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넘치는 마나를 담고 있는 인간 그릇이지.’

제랄드의 설계로 생산된 제품에 마나를 담아 아티팩트로 만드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예! 어제 생산량 검수해 주시면 곧장 마탑으로 보내겠습니다요!”

물론 비밀이었지만.

내가 하차니아의 이름으로 세운 마탑은 소속된 마법사가 히스와 나, 단둘뿐이었다.

‘일명 페이퍼 마탑이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얼음산맥 위에 지은 마탑은 내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응. 그럼 검수 시작할게.”

제랄드와 일꾼들이 생산한 제품을 손끝으로 훑으며 살피는데 헤벌쭉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오구오구. 우리 공녀님은 아직 어린데 어쩜 저리 똘똘하실까! 각하께 배운대로 직접 아티팩트 검수까지 다 하시고 말이야.”

“날이 가면 갈수록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뻐지셔.”

“그러게나 말이야. 미모가 눈이 부셔서 아티팩트 빛깔이 죽는구먼.”

음.

“그, 그냥 검수 이따 할게?”

‘단순히 룰루와 랄라만 피해서 될 일이 아니었네.’

나는 하녀들 버금가는 공방 일꾼들의 팔불출 발언에 민망한 뒷통수를 긁적이며 사무실 안으로 쏘옥 몸을 숨겼다.

“빛이시여-!”

“악!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자 공작가의 고용인들 중 제일 가는 팔불출이 된 자르파라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달라붙는다.

“빛을 빛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뭐라고 부른단 말입니까?”

내 비명을 여상히 무시한 그녀는 나를 달랑 안아 올린 다음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금화 사이에 놓인 멋스러운 의자에 내려놓는다.

“빛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사업의 초안을 준비해 놨습니다.”

자르파라가 정리한 서류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뒤적인 나는 어김없이 깔끔한 사업안에 옅은 탄성을 내질렀다.

“응, 고마워. 역시 자르파라야.”

“종복에게 감사 인사를 하시다니!”

나는 울망울망해진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귀를 막았다.

“역시 당신은 빛 그 자체! 자애로운 태양이시여-!”

“아, 좀! 시끄러워!”

그럼에도 뚫고 들어오는 자르파라의 탄성에 내가 질색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공작성의 집무실과 연결된 아티팩트 문이 벌컥 열린다.

“레오노라.”

루카스였다.

전보다 조금 길어진 듯한 검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반듯한 이마가 드러난다.

그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꽉 짜인 근육으로 이루어진 가슴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심심하다고 검술을 단련하더니, 몸이 더 좋아졌네.’

나는 오늘도 서늘한 미모를 자랑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얼굴이 점점 변해 가고 있어.’

가스파르와 완전히 다른 성정이기 때문인지, 루카스의 영혼이 차지한 가스파르의 얼굴은 벼린 칼날처럼 날마다 조금씩 더 날카로워졌다.

우뚝 솟은 콧날이 전에는 남자다운 느낌을 줬다면, 지금은 예민한 예술가처럼 섬세해 보인다.

‘그 점이 여심을 자극하는 건지 사교계 내에서 인기는 많아졌지만….’

많아지다 못해 거의 폭발적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일명 얼음 공작 팬클럽까지 몰고 다니는 신세가 된 루카스를 흘깃한 후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나는 다정한 가스파르의 인상이 좋았는데.’

무뚝뚝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얼굴이 그립다.

“어서 와.”

나는 이제 제법 친밀해진 루카스를 반가운 얼굴로 맞아 주면서도 쓰라린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수업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오지 않길래.”

씁쓸하게 웃는 나를 묘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루카스가 느릿느릿 말문을 연다.

“아, 검수하는데 방해꾼이 많아서 아직 상단 일을 다 못 끝냈어.”

나는 그의 말에 그제야 일정이 기억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지금 할까?”

상단의 자금과 공작가의 힘을 이용해서 루카스의 몸을 찾는 작업에 착수하는 대가로 그는 내게 마법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심심하기도 할 거고.’

그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뭐, 대마법사에게 특별 과외를 받는 거니까 나로서는 완전 이득인 셈이지.’

덕분에 나는 아이네스가 대마법사 할아버지에게 마법을 배우는 부분은 전부 스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빨 빠진 노인네는 젊었을 때도 내게 이겨 본 적이 없다.”

자신만만했던 루카스의 말대로, 그가 알려 주는 수식과 언어들이 원작의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었으니까.

“나 아빠랑 수업 다녀올게, 자르파라.”

“모든 것은 빛의 뜻대로.”

나는 별거 아닌 내 말에도 심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자르파라의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쉬며 루카스의 손을 잡았다.

“가자.”

“그래.”

짧게 대답한 그가 시동어도 없이 워프를 시전한다.

“남들 앞에서 마법 쓰지 말라니까!”

출발 장소가 공방이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가 마법사인 걸 들킬 수도 있었다.

“우리 아빠는 마법 못 쓴다고!”

간신히 땅을 밟은 내가 깜짝 놀라 소리치는 말을 여상히 무시한 루카스는 드넓은 들판을 손끝으로 스윽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이 근방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게 좋겠다.”

“공작성이 아니라? 왜?”

의아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묻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느릿느릿 대답한다.

“신전에서 공작가로 사절단을 보내왔더군.”

“……뭐?”

나는 루카스의 말에 기가 막혀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걸 왜 이제 말해! 언제 왔어?!”

“네가 신전의 행보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는데.”

“당연히 많지!”

한때 여러 속성의 오러를 원로들에게 선보이며 ‘소울마스터의 자질을 보이는 천재 아기’소리를 듣던 내가 누구 때문에 힘을 감추고 사는데!

얼굴도 예쁘고 아티팩트를 설계할 만큼 머리도 좋지만 결국 마나 그릇은 텅텅 빈 하찮은 하차니아 공녀-라며 나를 동정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떠올린 나는 울컥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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