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차악-!
스파게티 면이 따개비처럼 카멜리아의 뺨에 달라붙는다.
“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야!!!”
파스타 소스가 범벅이 된 불륜녀는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웬만한 아이였다면 눈물이 찔끔 나올 법한 우악스러운 눈빛으로 그녀가 나를 쏘아봤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보통 아기가 아니었다.
“엉니 모메 더러븐 거 부터 이써쩌요.” (언니 몸에 더러운 거 붙어 있었어요.)
“뭐?!”
“웅? 아직 남아 인네!”
스파게티 한 접시를 카멜리아를 때리는 데 전부 써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빈손으로도 야무지게 그녀의 목덜미를 후려칠 수 있는 아기였다.
“커억!”
내 넥슬라이스를 얻어맞은 카멜리아가 바닥에 철푸덕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공녀님! 카멜리아 양은 이아론 후작 각하의 대리로 오신 분입니다!”
“예,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놀란 사람들이 숨을 헉 들이마시며 침묵이 찾아온 가운데 이아론 후작 쪽에 붙은 듯한 가신 두 명만이 간신히 입을 연다.
‘네놈들 얼굴을 기억해 주겠어.’
가느스름히 뜬 눈으로 그들을 흘긋한 나는 당당하게 볼록 배를 내밀었다.
“엉니 몸에 도롱뇽 이써서 니니가 떼 준 고야.”
“도롱뇽이요?”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도른자인 거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웅. 엉니 모게 모 무더떠.” (응. 언니 목에 뭐 묻어있어.)
내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희멀겋게 질린 카멜리아의 목에 걸린 화려한 목걸이에 집중된다.
“크흠! 지금 보니 차림새가 자리에 맞지 않는군요. 저녁 만찬에 무도회에서나 할 법한 목걸이라뇨.”
“에그머니나. 게다가 이 자리에 레이디 티에리가 계시지 않나요? 저 목걸이에 세공된 장식은 이아론 후작가의 문양 같은데요.”
마침 공작가의 저녁 만찬에 초대되었던 봉신 가문의 부인들이 민망한 헛기침을 토해내며 쥘부채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 이건…. 후작님의 선물이었어요! 사랑의 증표라고요!”
부인들의 시선이 민망했는지 화르륵 얼굴을 붉힌 카멜리아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며 항의한다.
“허! 그러고 보니 레이디 티에리께서 이아론 후작님의 전처 아니었나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뻔뻔하기 그지없네요. 정말 아가씨 말마따나 도롱뇽이네요.”
카멜리아의 변명에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가라앉기는커녕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도롱뇽이 그녀의 공식 별칭처럼 굳어질 즈음, 주저앉아 씩씩거리기만 하던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노려본다.
“너!”
“……녜?”
나는 눈앞에 팔랑이는 후작가의 인장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작 대리인 나를 모욕하다니 귀족들간의 위계질서를 어지럽힌 죄로 재판에 넘기겠어!”
아무리 아이인 내가 그녀의 목걸이를 벌레로 오해해서 생긴 해프닝이라지만, 엄밀히 따지면 작위가 없는 귀족이 무려 ‘후작’의 대리에게 모욕감을 안긴 것은 맞았다.
“지금 공녀님을 고소하겠다고 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공녀를 고소하겠어요!”
어느 귀부인의 물음에 자신이 박박 우기면 내가 재판에 소환되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 판단했는지 카멜리아가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제가 후작님의 대리로 임명된 이상 지금은 공녀조차 제 아랫사람 아닌가요?”
카멜리아의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아기의 실수에 너무 과하게 발끈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아기인 공녀님을 재판에 세우시겠다고-”
“시끄러워요! 후작님이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했어!”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발끈한 카멜리아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당신들 내가 누군지 알아?! 무려 후작 대리라고!!!”
드르륵.
그 말을 끊어 내듯 자리에서 일어난 루카스가 나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온다.
“아반니…?”
어리둥절한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온 그는 거침없는 손길로 자신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공작가의 인장을 빼내었다.
“지금부터 공녀를 가주 대리로 임한다.”
삐용삐용삐용-!
그의 말에 만찬장 샹들리에가 번쩍번쩍 발광하며 귀에 익은 사이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이게 지금 무슨 소란이람?’
당황한 내가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콰쾅, 쾅-!
로더릭을 위시한 기사들이 군장 소리를 내며 만찬장에 뛰어든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신변에 위기라도 닥치신 건지-!”
“계엄령을 선포하라!!”
정식적인 인가도 없이 갑작스레 인장의 소유권이 이전된 탓이었다.
‘이거 아티팩트였어?!’
내 작은 손에 맞게 줄어든 앙증맞은 인장을 경악하며 내려다본 나는 식탁을 길게 에워싼 백랑 기사들의 모습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하긴, 가주의 인장인데 보호 마법이 걸려 있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
“이리하면 공녀가 아까부터 떽떽거리는 저 여자보다 위인 거겠지.”
하지만 가주도 아닌 루카스가 인장에 걸린 마법을 알 리 없었다.
내 머리가 아파오든 말든, 뚱한 얼굴로 카멜리아와 나를 번갈아 바라본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아무리 카멜리아가 얄미워도 그렇지, 공작가의 인장을 내 손에 끼워주다니!’
그도 참 철이 없었다.
‘어른답지 못하긴. 정작 제일 열이 받을 티에리는 이렇게 침착하게 지켜만 보고 있는데.’
카멜리아의 발악에도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는 티에리를 존경을 담아 올려다보자, 그녀가 내 쪽으로 허리를 숙이며 무언가를 건네준다.
“아가야, 이 할미의 인장도 받거라.”
“…….”
나는 어느새 내 손에 굴러 들어온 티에리 자작가의 인장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공녀님, 미천하지만 제 가문의 인장도 손에 끼시지요.”
티에리의 행동에 할 말을 잃은 내가 멍을 때리자 가르덴 백작이 제 가문의 인장을 끼워 주며 나를 달랑 안아 든다.
“제 것도 여기 있습니다.”
“공녀님, 제 인장도 껴 주세요!”
그러자 너나할 것 없이 봉신들이 내게 제 가문의 인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 저는 인장은 없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반지예요!”
셀리아가 들꽃을 엮어 만든 반지를 마지막으로 내 열 손가락은 빈틈없이 꽉 채워지고 말았다.
“흠. 그럼 이제 우리 공녀님은 하차니아 공작 대리이자 가르덴 백작 대리이자 티에리 자작의 대리이신 거군요. 그것도 모자라서 론도 남작가, 어쩌구 자작가, 저쩌구 가문 가주의 대리이시고요.”
반짝반짝 빛이 나다 못해 눈이 부셔 쳐다볼 수도 없는 각양각색의 보석들로 장식된 내 손을 들여다본 헨리가 씨익 웃으며 카멜리아를 돌아본다.
“고작 이아론 후작의 대리 따위가 우리 공녀님을 재판에 회부시킬 수 있겠습니까?”
“허! 참! 기, 기가 막혀서! 제가 언제 꼭 공녀님을 재판에 회부시키겠다 했었나요?!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헨리의 물음에 버벅거리며 대답한 카멜리아는 입맛이 없어졌다는 핑계로 빠르게 만찬장을 빠져나가 버렸다.
“아효….”
나는 하나같이 고소하다는 듯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돈녀주께. 모두 가져가세오.” (돌려줄게. 모두 가져가세요.)
후두둑.
공작가의 인장과 달리 아티팩트가 아닌 다른 가문의 반지들은 내 손에 너무 헐렁했다.
“니니 배고푸고 반지 부편해.”
반지들을 식탁에 얌전히 올려놓은 내가 다시 식사를 시작하자, 호기심에 들뜬 얼굴로 나를 관찰하던 귀부인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 공녀님…. 그나저나 카멜리아 양은 왜 때리신 건가요? 정말로 목에 벌레라도 붙으신 줄 아셨어요?”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나는 그녀의 대답에 경직된 얼굴로 스테이크만 노려보고 있는 티에리를 힐끗했다.
‘내가 티에리가 신경 쓰여서 그랬다고 하면 기특해하기 전에 속상해하겠지.’
아기는 어른들 일에 끼어드는 거 아니라고, 티에리는 곧잘 나를 염려하듯 말했었으니까.
“몬생겨서요.”
“……네?”
“몬생겨서. 니니 몬생긴고 젤 시러.”
부인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한 나는 아까 카멜리아의 역성을 들며 내게 목소리를 높였던 가신 두 명을 손끝으로 짚어 냈다.
“째네두 몬생겨서 시러요. 내쪼츨래.” (쟤네도 못생겨서 싫어요. 내쫓을래.)
“저, 저희 말씀하시는 겁니까? 공녀님, 저희는 하차니아를 위해 오래 봉사한 가신들입니다! 게다가 공녀님이 무슨 권한으로-”
“니니, 아직 요 반지 끼구 인는데.”
나는 놀란 가신들의 말을 일축하며 왼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내쪼챠. 몬생겨서 퇴지끔은 업따.” (내쫓아. 못생겨서 퇴직금은 없다.)
“네, 가주 대리님!”
가주 대리의 권한으로 내린 명에 소환된 백랑의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잠깐만요! 잠깐만!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기사들에게 양팔이 붙들린 채 아둥바둥거리는 남자들의 모습에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어머. 아기 공녀님이 얼굴을 매우 밝히시네요.”
“우리 아가씨는 잘생긴 남자를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뭐, 아이들은 솔직하니까요.”
이런 헛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나갈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 * *
이튿날, 나는 뚜왈렛룸에 옹기종기 모여 팩을 하고 있는 남자 셋을 끌어냈다.
“나가소 훈뇬바다, 이 바부들아!” (나가서 훈련받아, 이 바보들아!)
한시가 바쁜 이때에 훈련까지 빼먹고 피부 관리라니, 다들 미친 건가?
‘루카스도 가주로서 처리할 일이 산더미였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리니 네가 잘생긴 게 좋다며!”
“에녹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이놈들보다는 내가 낫지.”
“시끄러어~!!!”
남자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빽 질러 내쫓은 나는 기둥 뒤로 삐죽 튀어나온 발 모양에 뽀짝뽀짝 걸음을 움직였다.
“……히스. 요기서 모해?”
내 말에 얇게 썬 오이 사이로 유일하게 보이는 눈을 데구르르 굴린 소년이 느릿느릿 입을 연다.
“공녀. 공녀를 위해 제국 최고의 미인이 되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그의 손에는 제국 미인대회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