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67)화 (302/486)

제67화

로판 세계에 유럽 동화라니요?

이 무슨 혼종이란 말인가.

‘그림 형제에게 허락은 받은 거야?’

죽은 지 오래되어서 괜찮은 건가.

나는 신데렐라 원작자를 떠올리며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계모를 올려다봤다.

“못 씻어서 꼬질꼬질한 게 생쥐 같군. 엄마가 없으니 이렇게 볼품없는 몰골로 밖을 나다니는 것이 아닌가!”

“니니 아까 씨섯눈데….” (리니 아까 씻었는데….)

나는 괜한 트집을 잡으며 나를 깎아내리는 계모의 말에 우물쭈물 손가락을 옴질거렸다.

룰루와 랄라가 오늘 아침에 욕조에 장미꽃잎까지 쏟아 넣고 나를 얼마나 뽀득뽀득 씻겨 줬는데!

계모의 힐난에 조금 억울해졌지만, 여자의 사나운 눈빛을 마주하자 나는 조금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이런 게 정말 찐악당의 눈빛인가.’

브리넨 후작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카리스마였다.

“레이디 티에리.”

소란스러운 현관을 눈치챈 집사 코제트가 달려 나와 계모를 맞이한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흐음. 공작께서 성 관리는 제법 잘했어도 아이들 관리는 못하는 모양이로군.”

넘어진 나를 살피던 코제트의 얼굴이 계모의 핀잔에 차갑게 굳는다.

반질반질하게 닦은 외알 안경을 치켜올린 그녀는 자로 잰 듯 칼각이 잡힌 바짓자락이 펄럭일 정도로 거칠게 몸을 돌렸다.

“레이디 티에리,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공녀께서 내게 달려오다 넘어지기까지 하셨네. 얼마나 엄마 품이 그리웠으면 생전 보지도 못한 내게 달려오겠나.”

아마 내가 노엘과 닮았기 때문이겠지.

나는 계모가 짧게 덧붙인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당신 우리 엄마 하나도 안 닮았거든?’

눈꼬리 좀 올라갔다고 다 비슷하게 생긴 줄 아나.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짓는 나를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애 취급한 계모가 달랑 안아 올린다.

“일단 공작님부터 뵈러 가지.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나는 분명 그녀를 난생 처음 보는데 계모는 공작성 내부가 익숙한 듯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가스파르.”

집무실 문까지 거침없이 열어젖힌 레이디 티에리가 오만한 턱을 치켜들며 감히 가주인 가스파르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뭐지? 아빠랑 아는 사람이었나?’

갑작스레 나를 안아 들고 쳐들어온 티에리를 힐끔한 루카스가 내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누군지 묻는 듯한 얼굴인데, 나도 몰라서 힌트를 줄 수가 없네.’

내가 머쓱한 입을 양옆으로 벌리며 이빨을 드러내자 루카스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왜?”

“…뭐? 왜?”

“당신이 방금 날 불렀잖아. 용건이 뭔데.”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루카스의 시큰둥한 대답에 레이디 티에리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지금 노엘이 행방불명되었다고 장모인 내게 하대를 하는 건가?”

헙.

나는 여인의 말에 화들짝 놀라 턱을 벌렸다.

“-요. 뭔데요, 라고 하려던 거였습니다.”

그녀의 발언에 당황한 건 루카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답지 않게 더듬더듬 변명을 내놓는다.

“웃기지 말게! 내가 이아론 후작과 이혼했다고 자네까지 나를 우습게 보는 게지!”

아아, 노엘의 친부인 이아론 후작과 이혼을 해서 마담 이아론이 아니라 레이디 티에리라고 불리는 거였구나.

“아닙니다. 진정하십시오.”

“아니긴 뭐가 아닌가!”

나는 버럭버럭 역성을 내며 지팡이로 루카스를 후려칠 기세인 티에리의 목을 꼬옥 끌어안았다.

“할머미, 그마내오!”

이렇게 싸우다가 루카스가 빡쳐서 자긴 가스파르 아니라고 윽박이라도 지르면 큰일 난다고.

내 만류에 새빨간 루비가 박힌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던 티에리가 흠칫 몸을 떤다.

“지금 뭐라고?”

“할머미, 그만하새오. 아반니가 잘몬해때.” (할머니, 그만하세요. 아버지가 잘못했대.)

“하, 할머니? 지금 나를 할머니라고 부른 거냐? 레이디 티에리가 아니라?”

나는 엄숙하게 굳은 그녀의 얼굴에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아, 이거 예법에 맞지 않는 처사였나?’

젠장, 룰루랄라가 예법 공부해야 된다고 할 때 그냥 배울걸.

“데… 데둉해오. 례디 톄리.” (죄… 죄송해요. 레이디 티에리.)

“허! 됐다. 가르칠 게 아주 산더미겠군.”

그렇게 말하는 레이디 티에리의 입꼬리는 왠지 모르게 씰룩쌜룩 움직이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루카스가 가스파르를 대신해 맞선을 보게 된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여자 세 명이랑 말이지.’

아무리 하찮았어도 5대 귀족에 속하는 공작가라 그러한지, 공석이 된 공작부인의 자리에 지원한 명문가의 딸이 무려 셋이나 되었다.

‘레이디 티에리는 누가 제 딸 자리를 차지하나 감시하러 온 건가?’

나는 안 그래도 정적이 흐르는 디너테이블에 살얼음을 끼얹고 있는 꼬장꼬장한 계모, 아니, 할머니를 힐끔하다 입을 열었다.

“아반니.”

“어.”

“쟤혼하꼬에오?” (재혼할 거예요?)

나와 상의하지 않고 결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내 질문에 루카스가 크게 당황하며 양갈비를 썰던 나이프까지 내려놓는다.

“뭐? 난 재혼은커녕 결혼조차,”

“에치!”

나는 말실수를 하려는 루카스의 말을 끊기 위해 콜록콜록 헛기침을 했다.

“추운 건가.”

그러자 내 왼편에 앉은 실비가 제 외투를 벗어준다.

“어머! 실베스테르 도련님이 참 다정하시네요, 각하.”

“그러게요. 얼굴도 각하를 닮아 참 잘생기셨어요, 각하.”

“정말 보기 좋은 우애를 지닌 남매네요, 각하.”

실비의 행동을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던 여자 셋이 동시다발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너네라도 떠들어라.’

나는 어떻게든 루카스의 눈에 들기 위해 상냥한 목소리를 꾸며내는 여자들의 모습에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실베스테르.”

“네, 레이디 티에리.”

“외투 다시 가져가도록.”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레이디 티에리가 냉정하게 입을 연다.

“예? 하지만 레오노라가-”

“숙녀는 품이 맞지 않는 옷은 걸치지 않는 법이다.”

실베스테르가 반기를 들었지만, 결국 하차니아 차남은 그녀의 살벌한 기에 눌려 제 외투를 도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에찌.”

따뜻한 온기를 품은 외투를 둘렀다 빼앗기니 정말로 몸이 으슬으슬 추워 온다.

‘감기 걸릴 것 같은데….’

에피타이저로 나온 따뜻한 옥수수 수프라도 호로록 마시고 싶었지만, 식사 예법에 어긋난다고 레이디 티에리가 또 호통을 칠 것만 같았다.

‘흑흑. 신데렐라 계모보다 배는 더 무섭잖아.’

그녀의 눈치를 보며 양고기만 뜯어먹던 나는 결국 체하고 말았다.

* * *

“공녀님, 괜찮으세요? 제가 직접 뒷산에 올라가 약초를 따 왔어요!”

“저는 저희 영지에서 보내온 영약을 달여 왔답니다!”

“열이 나시니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 드릴까요?!”

‘얘네 때문에 더 아픈 것 같아.’

나는 급체한데다 열까지 올라 기운이 떨어진 내게 득달같이 달려드는 여자들을 피해 등을 돌렸다.

“아니. 피료업써오. 니니 피고내….”

“하지만 공녀님, 저희가 간호해 드리고 싶은 걸요!”

날 간호해 주고 싶은 게 아니라 루카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잖아.

버럭 짜증이라도 내고 싶었지만 잔뜩 쉰 목소리에 좀처럼 힘이 담기지 않았다.

“쩌리 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꾹 감은 채 그녀들을 외면하는 것뿐이었다.

‘잠든 척이나 하자.’

코오.

고롱고롱한 숨까지 내쉬자 그제야 내게 달라붙었던 여자들이 떨어져 나간다.

“아휴. 아픈 건 알겠는데 공녀님 좀 버릇이 없지 않니? 나도 명문가의 영애님인데 나한테 짜증을 내고 말이야.”

내 한결같은 거부 반응에 기분이 상했는지, 루카스의 맞선 상대 한 명이 짜증 서린 목소리로 대화의 물꼬를 틀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사실 전 공작님과 결혼하게 되면 아이들은 전부 친정인 이아론 후작가로 보내 버리고 싶어요.”

“나도. 공작님도 깨끗한 새출발을 바라시지 않을까? 아직 그렇게 젊으신데.”

“잘생기시기도 했고! 하지만 전 실비 도련님 정도는 키워 줄 수 있어요. 잘생겼으니까.”

나는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에 기가 막혀 콧방귀를 뀌었다.

‘키워 주긴 누굴 키워 줘?’

아픈 애한테 찬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수건을 덮어 놓을 정도로 기본 상식도 없는 여자들이!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룰루와 랄라를 제 가문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내보냈단 말인가.

‘아파….’

아프니까 정신력이 무너졌고, 그러자 정말 아이처럼 서러워졌다.

나는 여자들의 간호 전보다 배는 오들오들 떨려오는 몸을 끌어안은 채 끙끙 앓기 시작했다.

“니니 아포….”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수다 삼매경에 빠져든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귀 따갑게 울려 퍼진다.

“호호호! 내가 그래서 승마대회에서 로버트 님과 함께~!”

“니니 추오!!!”

더는 추위를 참을 수 없었던 내가 안간힘을 써서 목소리를 높이자 제 첫사랑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여자가 귀찮다는 듯 차가운 물수건 하나를 더 얹어 준다.

“자, 여기요.”

‘아니, 이거 덮으면 더 춥다고….’

잔뜩 서러워진 내 눈가에 눈물이 핑 고일 즈음이었다.

“꺄아악!!!”

어디선가 튀어나온 루비 박힌 지팡이가 여자들의 머리채를 한 번에 휘어 감았다.

“아악! 악!!! 이거 놓으세요, 부인!!! 아파요!!!”

“내 손녀가 추워하잖아, 이 우매한 것들!”

레이디 티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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