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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54)화 (289/486)

제54화

프라치의 발작을 지켜보던 나는 그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서둘러 다이닝룸으로 돌아왔다.

내게 의자를 빼 주기 위해 일어난 벨루치의 도움을 받아 식탁에 안착하니 아까와는 달리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어째서.”

나는 날벼락이라도 떨어졌다는 듯 무섭게 굳은 얼굴로 제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는 가르덴 백작을 힐끗했다.

“왜 저래?”

벨루치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여 보지만, 그녀도 가르덴이 절망하는 이유를 모르는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어째서 행운의 요정이 나와 함께하는데도 불운한 선택을 해 버린 거지?”

정례 회의 때 늘 보여 주던 차분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가르덴 백작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크게 불안해하며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어느새 다이닝룸으로 돌아온 프라치가 허겁지겁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런, 내일은 불운한 날이로군요.”

“하지만 프라치, 아까 말했듯이 저분은-!”

“가르덴, 말했잖아요. 당신은 더는 행운의 요정 따위에 기댈 필요가 없다고.”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마나로 청력을 살짝 강화한 나는 프라치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이는 목소리에 사납게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의 부모가 당신이 불운을 가져왔기에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그래서 당신은 나를 만날 수 있었던 거라고.”

“프라치… 역시 내게는 그대밖에 없군.”

“그래요, 가르덴. 나는 인간이지만 행운의 요정인 니켈리아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까요.”

프라치의 말은 전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쓰레기 같은 거짓말이었다.

누가 쁘락치 아니랄까봐.

‘요정의 피가 어떻게 인간에게 흐를 수 있어?’

게다가 가르덴 백작이 조실부모를 한 이유는 그가 행운의 시험에서 불운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헨리가 그의 부모는 전사했다고 했어.’

가문을 위해 목숨을 불사한 그들의 죽음을 한낱 불운으로 치부하는 건 무례한 일이었다.

‘가르덴이 프라치에게 저토록 의지하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내가 아는 가르덴 백작은 명석하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오랜 세월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사고가 흐려지긴 하겠지.’

가령, 아까 그의 말대로 소금을 찍어 먹은 날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생겼지만 프라치를 만난 이후로 소금을 찍어 먹는 빈도수가 현저히 줄었다면 말이다.

“…니니두 해 볼래.”

프라치와 가르덴이 서로에게 속삭이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은 스테이크 접시를 앞으로 내밀며 방긋 웃었다.

“네? 공녀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니니두 그거 해 볼래오. 행운 점치는 고.”

“죄송하지만 이건 가르덴 백작가의 사람들만 치르는 일종의 의식입니다.”

가르덴 백작가의 사람도 아닌 주제에 냉큼 끼어들어 대답하는 프라치를 뾰족하게 세운 눈매로 노려본 나는 크흥,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가르덴 백잔니가 섬기는 주군이 누구야?”

“…하차니아 공작님이시지요.”

“그럼 가르덴 백잔니, 하차니아 사람이지?”

내 말에 가르덴 백작의 표정이 오묘해진다.

“호오. 그렇지요. 저는 하차니아 공작가의 가신이지요.”

그는 세 살배기 아기에 불과한 내가 자신에게 위계질서를 가르치려는 모습에 불쾌하기보다는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집사, 공녀님께 이 쟁반을 가져다드려라.”

“가르덴!”

가르덴의 결정에 프라치가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그가 나를 방해하기 전에 냉큼 은쟁반을 받아 들었다.

“에. 쨔.”

오른쪽에 위치한 가루뭉치를 푹 찍어 먹은 나는 혀끝을 얼얼하게 만드는 짠맛에 조그마한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공녀님께서도 내일은 불운한 하루를 보내시겠군요.”

프라치가 꼴좋다는 듯 킥킥 웃으며 입을 벌린다.

“집사, 이제 은쟁반을 니켈리아 제단에 보관하도록 해.”

“예, 자작님.”

프라치의 명령에 공손히 허리를 숙인 집사가 내 앞에 놓인 은쟁반을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는다.

나는 그가 내게서 은쟁반을 빼앗기 전에 냉큼 왼쪽 가루뭉치도 찍어 먹었다.

“으에-! 이건 더 쨔!”

이럴 줄 알았다.

나는 두 개의 소금뭉치를 내온 집사를 찌릿 노려보며 입을 벌렸다.

“둘 다 짜오, 백잔니! 한 개는 설탕이라구 해쓰먼서, 니니한테 거진말해써!!!”

“예? 아닙니다, 공녀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내 외침에 당황한 가르덴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그가 집사가 든 은쟁반으로 손을 뻗기도 전에 프라치가 집사를 밀쳐 버렸다.

챙그랑, 은쟁반이 바닥을 나뒹구는 소리와 함께.

“집사!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행운의 시험이 가르덴 백작가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식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프라치가 버럭버럭 목소리를 높인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자작님.”

사과할 대상이 잘못되었다.

나는 가주인 백작보다 자작을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집사의 행태에 눈을 가늘게 뜬 채 제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 가르덴에게 다가갔다.

“백잔니, 오늘 백잔니가 디너파티에 초대해 줘쓰니까 니니도 백잔니 초대하구 시퍼요.”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 보시지요.”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지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하는 듯 보이는 가르덴의 흐린 얼굴에 그의 손등을 톡톡 두드린 뒤 등을 돌렸다.

* * *

“아가씨, 오셨어요?”

“웅. 쎌랴 나 기다려써?”

나는 나를 실은 마차가 마구간에 도착하자마자 헐레벌떡 달려오는 셀리아의 모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은 딱히 셀리아에게 시킨 일이 없는데.’

“혹시 뚜왈렛룸에 히스를 보내셨나요?”

“…아니?”

나는 셀리아의 쌩뚱 맞은 물음에 작은 미간을 모았다.

히스가 아직 힘 조절을 제대로 못한 덕에 반쯤 무너진 마구간을 이제 막 수리한 참이었다.

그런 애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뚜왈렛룸의 일꾼으로 보낼 리가 없지 않은가.

“히스가 아까부터 뚜왈렛룸에 들여보내 달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요. 하녀들이 곤란해 하고 있으니 가 보실래요?”

“웅, 아라써.”

나는 셀리아의 설명에 먼지가 묻은 손을 탁탁 털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말대로 별관의 뚜왈렛룸 근처 한산한 복도에 평소와 달리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안 된다니까, 히스! 너는 뚜왈렛룸에서 일할 만한 애가 아니라니까?”

“그래. 제니아 말대로 롬베르디 주방장님 밑에서 힘쓰는 일을 하거나, 정원사 폴을 도와주렴!”

당황한 얼굴의 하녀들이 당장이라도 뚜왈렛룸에 들어가려는 소년을 설득하고 있었지만, 무뚝뚝한 얼굴의 소년은 단호하게 뚜왈렛룸 앞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싫습니다. 나도 오늘부터 뚜왈렛룸에서 일하겠습니다.”

“아니, 너 같은 소년 일꾼이 뚜왈렛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니까?”

“그래, 얘! 아가씨의 드레스를 전부 찢어 놓을 생각이야? 도대체 왜 뚜왈렛룸에서 일하고 싶은 건데?”

기가 막힌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제니아의 물음에 히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연다.

“나는 예뻐져야 합니다.”

“…….”

나는 삽시간에 침묵이 찾아든 복도를 힐끗하며 한숨을 삼켰다.

“…미찌인.”

설마 아까 내가 벨루치를 데려가며 한 말 때문인 걸까.

“아코, 머리야~!”

내가 정말 제명에 못산다.

“아가씨, 오셨어요? 히스 좀 말려 보세요! 문을 부술 기세예요!”

히스를 만류하던 하녀가 코너 뒤에 몸을 숨긴 나를 발견하고 말았기에 나는 별수 없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히스.”

차분하게 소년을 부르자 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묘한 회색빛을 띠는 청안이 나를 바라본다.

“너, 안 그래두 예뻐.”

내가 이 말을 왜 해 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심이긴 했다.

“니니가 여태 만난 사람 중에 너가 젤 예뽀, 히스.”

먼지가 부스스하게 앉은 듯한 잿빛 머리칼, 그리고 묘하게 차가워 보이는 푸른 눈동자의 소년은 몇 번을 마주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긴 했으니까.

‘내가 히스를 데려왔을 때 사람들이 사람처럼 생긴 인형인 줄 알았을 정도인걸.’

나는 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빚은 작품처럼 섬세한 선으로 이루어진 소년을 빤히 올려다보며 한숨처럼 웃었다.

“그로니까 걱정하디 마.”

“……정말입니까?”

“어어.”

“나, 예쁩니까?”

벨루치에 이어 얘까지 공주병에 걸려 버리면 어떡하지 싶었지만, 나는 히스의 등 뒤에 선 하녀들의 서슬 퍼런 눈빛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제 공녀를 위해 일할 수 있겠군요. 벨루치처럼.”

나는 여전히 미소 한 점 보이지 않았지만, 묘하게 들떠 보이는 히스의 얼굴에 떨떠름히 웃었다.

‘꼭 예쁜 사람만 쓰고 싶은 건 아니지만, 지금 일 안 시키면 보이지 않는 꼬리가 뚝 떨어져 버리겠어.’

나는 왠지 모르게 꼬질꼬질한 강아지가 생각나는 히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적미적 입을 열었다.

“그럼 사람 한 묭 차자 줄래?”

물론 히스가 정말 찾아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시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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