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38)화 (273/486)

제38화

나와 셀리아를 맞이한 건 재수 없게도 ‘레오노라 하차니아’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름이 빌헬름이라고 했나?’

나는 격한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실비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인상을 쓸 정도로 싫어하던 소년을 마주보았다.

다행히 소년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싶었다.

“구휼원에는 무슨 일인가요.”

피처럼 붉은 소년의 입술 사이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미성이었지만 고저가 없어 마치 기계음처럼 들리는.

“아이를 맡기러 왔어요. 술자의 자질을 보이는 아이예요.”

셀리아는 내 얼굴을 제 몸으로 반쯤 가리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셀리아의 말에 고개를 까딱인 소년이 손을 뻗어 내 몸안의 마나를 탐지한다.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지 않길 잘했어.’

셀리아의 옷자락을 붙잡고 손가락을 옴질거리던 나는 그의 마나 탐지가 끝나자마자 한숨을 내뱉었다.

“구휼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법으로 모습을 바꿨더라면 입구에서 걸릴 뻔했다.

탐지 마법을 쓸 정도의 마법사라면 아직은 ‘마법’ 자체에 서투른 내가 쓰는 술법은 금세 눈치챌 테니까.

“아이는 저쪽으로. 부인께서는 저쪽 카운터에서 1000골드를 받아 가시면 됩니다.”

1000골드. 일반 영지민의 한 달 생활비가 100골드 정도였으니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아이를 구휼원에 맡기면 돈을 주는 거구나.’

브리넨 후작은 쓸모가 없어진 아이는 노예로 팔아 치우곤 했으니 그걸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안넝.”

내가 금방 나올 계획이라는 걸 알면서도 셀리아가 정말 아이를 두고 가는 엄마처럼 연신 뒤를 돌아보며 울먹여서, 나는 덩달아 울적한 기분으로 손을 흔들었다.

“따라오세요.”

셀리아와 나의 작별 인사를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던 소년이 먼저 등을 돌린다.

‘열 살쯤 되려나?’

에녹보다는 조금 더 컸고 실비보다는 작은 소년의 나이를 대강 추정한 나는 앞서가는 그에게 도도 달려 나가 소매 끝을 붙들었다.

“?”

목각 인형처럼 뻣뻣한 고개를 돌린 소년이 나를 내려다본다.

“너, 이름이 모야?”

나는 회색 구름이라도 낀 것처럼 눅진한 빛을 띠는 그의 청안을 마주하며 작게 속삭였다.

“없습니다.”

빌헬름 아니었나? 싶었지만 소년의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나는 무안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 당신이 쓸 방입니다. 후작님이 바쁘셔서 심사는 내일 오후에나 진행될 겁니다.”

“심사?”

“후작님이 직접 당신의 쓸모를 평가하실 겁니다.”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바로 노예로 팔아 치울 셈이겠지.

나는 소년의 설명에 고개를 까딱이며 낡았지만 깔끔한 원목 가구로 채워진 방을 흘긋했다.

‘어쩐지 내가 전생에 썼던 방이 생각나는 풍경이네.’

사용감은 남았지만 사람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 방이었다.

“우웅. 다른 아이들은 언졔 만날 수 잇서?”

“구휼원의 아이들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습니다.”

“…머?”

나는 소년의 설명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구휼원에서 보호하는 아이들의 수만 해도 어림잡아 100명은 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전부 격리시켜 놓았다고?’

“심사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면 일주일에 한 번, 낮은 등급을 받으면 한 달에 한 번 후작님과 식사를 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브리넨 후작과의 식사 따위 1년에 한 번도 하고 싶지 않다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무감한 얼굴의 소년이 어쩐지 나를 안심시키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내가 뭘 걱정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의 궁금증은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르고 나서야 해소되었다.

* * *

어스름한 달빛이 유독 푸른 밤이었다.

낯선 곳에 와 잠을 설치는 척 몸을 뒤틀던 나는 방 주변을 감시하듯 어슬렁거리던 소년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났다.

‘진짜 구휼원은 지하에 있을 거야.’

소년이 날 안내해 준 방은 말 그대로 임시일 뿐이다.

원작에서 아이네스와 트리스탄이 파괴했던 구휼원은 지하에 존재했었다.

‘그딴 장소를 구휼원이라고 부르는 게 코미디지만.’

실처럼 길게 뽑아낸 마나로 복도를 샅샅이 훑은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고 작은 발을 움직였다.

타닥, 탁.

혹시라도 누군가 내 존재를 눈치챌까 투명 망토까지 뒤집어쓴 나는 작은 철문 뒤로 펼쳐진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입을 벌렸다.

“137번. 생존.”

“151번. 생존.”

“168번. 부재.”

거대한 지하실은 서로가 서로를 절대 볼 수 없는 구조의 독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브리넨 후작이잖아.’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번호를 읊는 소년을 왼편에 두고 느긋하게 걷는 후작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아이들의 얼굴만 겨우 보일 만큼 작은 창문으로 168번 방을 들여다본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168번은 어떻게 된 거지?”

“마정석 추출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년의 대답에 후작의 얼굴이 안타깝다는 듯 일그러진다.

“그렇다면 겨울 계열 마정석 수량이 모자라겠군.”

물론 아이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수급 가능한 마정석의 개수를 세는 후작의 모습에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곤란한걸. 황제 폐하께서 투스론 공성전을 대비해 마정석 공급을 요구하셨는데. 나쁜 놈들이 몸을 숨긴 성벽을 얼려야 하거든.”

“모자란 양은 제가 채우겠습니다.”

조급함을 드러내는 후작을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눈으로 올려다보던 소년이 차분하게 입을 연다.

“고맙구나. 역시 내가 구휼원에서 가장 아끼는 아이다운 태도야.”

후작은 소년의 대답이 흡족스러운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소년의 잿빛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자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난 그때 후작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외로움이구나.

소년이 내가 겁내고 있다고 예상한 것, 그리고 지금 후작이 이용하고 있는 것도 아이들의 외로움이었다.

‘빌어먹을 놈이었네, 정말.’

나는 망토 안에 숨긴 작은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세상에 이용할 게 없어서. 나쁜 놈.

그가 아이들을 전부 격리시킨 채 독방 생활을 하게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고립 끝에 외로운 아이들이 그의 애정을 갈구하고 매달리게 될 테니까.

‘그런 시스템으로 구휼원이 비밀리에 유지됐던 거야.’

외로운 아이들은 절대 자신의 보호자-이름뿐인 보호자일지라도-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과거에 내가 혼자 지내던 쓸쓸한 방, 살기 위해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던 식사 따위를 떠올리며 가쁜 숨을 가다듬은 나는 고개를 돌려 셀리아의 아기를 찾아 나섰다.

‘볼에 흉터가 있다고 했지.’

갓난아기를 맡긴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 셀리아의 아기는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이들의 연령대가 낮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보다 깊은 지하실에 들어섰다.

응애, 응애.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우는 아기들을 달래는 어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마정석을 이용해 허공에 둥둥 뜬 요람 사이를 헤치며 셀리아의 아기를 찾아 나섰다.

“찾아따.”

갓난아기는 총 다섯 명. 그중 볼에 하트 모양 흉터가 있는 아기는 단 한 명이었다.

내가 연보라색 담요를 두른 아기가 든 요람을 집어 든 순간,

달칵-

지하실의 뒷문이 열렸다.

“혼자 할 수 있겠지.”

언제 더 깊은 지하로 내려온 건지 모를 후작의 목소리에 나는 집어 들었던 요람을 돌려놓고 서둘러 벽에 달라붙었다.

“네, 후작님.”

후작의 물음에 단정하게 고개를 끄덕인 소년이 그를 배웅하듯 허리를 숙인다.

“추출을 마치면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구휼제가 마무리되면 네가 선택한 아이와 식사를 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후작의 말에 건조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한 소년은 후작과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년이 우뚝 멈춰 선 곳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더 깊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었다.

‘도대체 구휼원을 얼마나 깊게 파 놓은 거야.’

직감적으로 소년이 향하는 곳이 구휼원의 중심부라는 것을 눈치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아기의 뺨을 퉁 튕긴 다음 걸음을 뗐다.

소년을 뒤따라 가장 깊은 지하에 당도한 나는 그가 망설임 없이 몸을 구겨 넣는 기계 장치를 발견하고 턱을 벌렸다.

‘…미친놈.’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보이는 소년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정신이 나간 인간인 줄은 몰랐다.

‘저게 스스로를 고문하는 것과 뭐가 달라?’

마정석 추출은 당연히 고통스럽다.

혹독한 기사 훈련을 받는 트리스탄마저 소량의 오러석을 추출하는 것만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할 만큼.

게다가 지금 소년이 스스럼없이 몸을 맡긴 마정석 추출기는 바리스탄과 거래하던 지배인이 들고 다니던 휴대용 추출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했다.

‘공성전에 필요한 만큼 추출한다고 했었지.’

전쟁에 필요한 마정석의 양을 인간 한 명에게서 뽑아내는 건 자살 시도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나 보유량이 방대한 사람이라도,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쇼크사나 안 당하면 다행일 텐데!’

하지만 소년은 이런 고통이 여상한 듯 보였다. 웅웅 울리는 추출기의 진동 속에서 찢겨나간 소년의 옷 사이로 해묵은 흉터가 눈에 들어온다.

작은 몸을 가득 채운 흉터는 분명 마정석 추출의 부작용이리라.

‘…진짜, 진짜 미친놈이야.’

미친놈이니까 그냥 내버려 두자.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는 애잖아.

“읏.”

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머리칼을 헤집었다.

“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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