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어카지….”
바리스탄의 매서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달아날 방도를 궁리하던 나는 곧 우악스러운 손길에 의해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아코.”
궁뎅이가 조금 아팠지만 괜찮다.
‘나는 낙법 쓸 줄 알지롱.’
“이 망할 계집! 자꾸만 제 오빠 수업을 훔쳐 들으려고 용을 쓸 때부터 네가 무슨 속셈이 있는 아이라는 건 알아봤다고!”
작은 몸으로 완벽한 낙법을 구사해 낸 내가 바리스탄의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양말 안에 숨겨 뒀던 단검을 꺼내 들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고 내게 다가오는 바리스탄의 발걸음을 누군가가 나서서 저지한다.
“이렇게 어린 아기인데 설마 때리시려는 건 아니시겠죠?”
“뭐? 네가 무슨 상관이야!”
“경은 기사님이시잖아요. 원래 기사는 어린아이와 레이디를 지켜 주는 법이라고- 꺄악!”
놀란 얼굴로 나를 때리려는 바리스탄을 말리는 셀리아를 그가 거칠게 밀어 버린다.
“허. 노예 주제에 건방지게, 여기가 어디라고 나서?”
“…하지만 저번에 오셨을 때는 애덤스라는 기사분이 여자인 제게 함부로 군다며 혼내 주셨잖아요.”
셀리아는 바리스탄에게 밀려 몸을 비틀거리면서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 그가 작금의 상황이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비튼다.
“그건 네X이 노예라는 걸 몰랐을 때고. 레이디는 무슨.”
바리스탄의 독설에 셀리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네X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물건이야.”
“…….”
“이봐, 지배인. 물건을 사고 싶으니 이 돈이나 받게. 오늘밤은 도무지 게임에 참가할 맛이 안 나서 말이야.”
바리스탄이 집어던진 금괴를 엉거주춤 받아 든 지배인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순식간에 주인이 바뀐 셀리아를 내 쪽으로 집어던진 바리스탄은 재미있다는 듯 두꺼비 같은 입술을 들어 올렸다.
“셀리아, 네 새로운 주인의 첫 번째 명령이다. 아이를 죽여라.”
“……네?”
바리스탄의 잔혹한 명령에 셀리아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게 무슨, 저렇게 작은 아기를 어떻게 죽이나요?”
그녀의 갈색 눈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이 명백했는데도 지배인과 바리스탄은 희극이라도 지켜보는 것처럼 불쾌할 정도로 유쾌해 보였다.
“넌 이제 날 섬길 노예다. 그럼 주인의 안위를 위해 일해야지.”
바리스탄은 지배인에게 넘겨받은 가는 막대기로 제 손바닥을 탁탁 내려쳤다.
나무 막대기의 중앙에 자리 잡은 검붉은 보석이 웅웅 울자 셀리아의 몸이 나무토막으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삐걱삐걱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 싫어요!”
노예의 행동을 제어하는 마도구인 모양이었다. 나는 바리스탄이 손에 든 막대기가 움직일 때마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그녀의 발찌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저 망할 꼬맹이가 제집에 돌아가서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냥은 절대 못 보낸다고. 어서 죽여!”
목격자도 없겠다, 바리스탄은 설사 자신이 이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밝혀져도 노예가 폭주했다 뒤집어씌울 속셈인 듯싶었다.
“제발요, 싫다니까요!”
셀리아는 제 의지 없이 내 쪽으로 움직이는 제 팔을 떼 내고 싶다는 얼굴로 바리스탄을 돌아보았다.
“제 손으로 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아요. 그만둬 주세요, 경!”
부르르.
내 코앞에서 멈춘 그녀의 손끝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나는 셀리아가 나를 해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모호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생판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고? 노예인 자신이 무슨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이쯤 되니 대뜸 그녀의 성이라도 물어보고 싶어진다.
혹시 하차니아세요? 하고.
“마도구의 제어를 거부하다니. 지배인, 아무래도 이 노예는 불량품인 것 같은데. 값을 좀 깎아 줘야겠어.”
어떻게든 제 도박 빚을 줄여 보고 싶은 건지 바리스탄은 악착같이 눈을 빛내며 지배인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상황을 관조하던 지배인이 느릿느릿 걸어 나와 셀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셀리아, 브리넨 구휼원으로 보낸 네 아이를 생각하렴. 여기서 네 가치가 떨어져 내가 손해를 입게 되면 저 아기 공녀님 대신 네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단다.”
언뜻 다정한 어투였지만 무척 잔인한 말이었다.
‘인질로 잡힌 아이가 있는 모양이네.’
그나저나 브리넨 구휼원이라….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느낌에 눈썹을 꼼톨 움직인 나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셀리아의 유약한 눈을 마주한 채 앙증맞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마내두 대.” (그만해도 돼.)
“……네?”
내 만류에 셀리아가 당황해 움츠러든 사이, 나는 앞으로 도도도 달려 나가 막대기를 든 바리스탄의 손을 왕 깨물었다.
“아악!!!”
토끼 앞니같이 작은 이빨에 물린 것치고 바리스탄의 비명이 꽤나 고통스럽게 울려 퍼진다.
‘후후. 마나로 이빨을 감싸 뒀지.’
대마법사 루카스 윌레닌의 마나를 이어받은 나는 마나 보유량만큼은 세계 최강 수준이었고, 트리스탄의 외전을 훔쳐본 덕에 마나의 운용에도 스킬이 붙은 상태였다.
마나를 촘촘하게 두른 내 이빨은 지금 웬만한 오러소드 이상의 예기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난 원래 몸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던 사람이니까.’
극강으로 신체를 단련한 사람이라도 어디를 물리면 꿈쩍을 못하는지, 제일 아픈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더 아프게 할 방법도 알고 있지만….’
이 세계는 전연령가이니까요.
“으윽, 아악!!! 내 손!!!”
너무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기 때문인지 바리스탄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파 위로 엎어졌다.
하긴, 찌릿찌릿한 전기 속성의 마나를 사용했으니 그는 지금 전기 충격기 수십 대로 몸을 지진 고통을 겪고 있으리라.
“퉤.”
나는 바리스탄을 악 물었던 입을 움직여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맛두 드릅게 업네.”
손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그를 노려보며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속칭 미친개.
전생의 내 좌우명은 단 하나였다.
죽기 전에, 죽이면 된다.
* * *
“쎄랴. 얼마면 대?”
“……예?”
“쎄랴. 얼마면 대냐구.”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대답은 셀리아가 아닌 지배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이고, 제가 대단한 아기님을 몰라봤군요. 적랑의 단장님이신 바리스탄 경을 저 꼴로 만들어 버리시다니.”
‘내가 아기라서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없었을 일이지.’
나는 대뜸 너구리같이 비굴한 얼굴을 셀리아와 나 사이에 들이밀며 후후 웃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넌 머야.”
“셀리아의 가격은 저와 상의하시면 됩니다. 그녀의 원주인이 저니까요.”
나는 셀리아를 물건 취급하는 그를 새초롬한 눈으로 노려보다가 바리스탄에게서 빼앗은 막대기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뽀각.
마나를 실어 던졌기 때문에 막대기 자체는 산산조각 났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발찌에서는 여전히 빛이 산란한다.
“소용없습니다. 제가 그녀의 노예 계약을 해지하지 않는 한은요.”
“노애, 부뻡이야.” (노예, 불법이야.)
“네네. 하지만 현 황제인 그레고르 폐하께서도 노예를 여럿 소유하고 계시죠.”
누가 폭군 아니랄까 봐, 역시 미친놈이었다.
‘빨리 아이네스가 그놈 좀 갱생시켜 줬으면 좋겠네.’
나는 보통 아기가 아닌 내가 무섭지도 않는지 자꾸 실실 웃고 있는 지배인을 마주한 채 쒸익 콧김을 뿜었다.
‘이제 어쩌지?’
다 때려 부수고 나올까 싶었지만, 전전긍긍하는 셀리아를 보니 생선 가시라도 잘못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따갑다.
‘인질로 잡힌 제 아기를 걱정하는 거겠지.’
바리스탄을 처치하고 나서야 ‘브리넨 구휼원’이 어떤 곳이었는지 기억이 났다. 그곳은 <아.황.장>의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끔찍한 형태의 보육원이었다.
‘아니, 그딴 걸 보육원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
황실과 귀족, 그리고 노예를 운영하는 상단이 결탁해 만든 브리넨 구휼원은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착취해 각종 오러석과 마정석을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빌어먹을 양부가 생각나네.’
그 미친놈이 과학의 발전을 핑계로 내 몸에 했던 끝없는 실험을 떠올리면 지금도 공포가 발끝을 잠식했다.
“니니가 너 신고하꼬야.”
나는 구휼원의 정체를 모를 셀리아의 순진한 얼굴을 힐끗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증거 있으세요?”
“트리쯔딴한테 이써.”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솔로아 공작님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운영하는 상단의 주요 투자자이시니까요.”
“구래?”
나는 하차니아 공작가가 원작 남주 집안인 솔로아와 달리 돈에 관심 없는 한미한 가문인 것에 새삼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롬 울 압빠한테 이르면 대지!”
“하차니아 공작님께서는 지금 아르델에 계시지 않을 텐데요.”
삐이익-!
나는 지배인의 반박을 무시하며 목에 건 호루라기를 있는 힘껏 불기 시작했다.
삐익-! 삐이익-!!!
오러로 증폭되어 귀를 찢을 것처럼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온 도박장을 울린다.
가스파르가 아르델에 내려가는 내가 걱정된다며 챙겨준 호신용 호루라기였다.
‘호루라기를 불면 가스파르가 바로 소환되지.’
“후엥. 니니 납치당해떠요.”
나는 아빠가 등장하면 납치당한 척 연기할 심산으로 눈물까지 짤 준비를 마쳤다.
“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납치라뇨?!”
“히잉. 니니 납치당해떠~ 무셔~!”
당황한 지배인의 반응에 내가 왈칵 눈물을 쏟아 낼 무렵.
쾅-!
우르르, 콰콰쾅-!!!!
도박장의 지붕이 날아갔다.
“……?”
아무리 내가 위기에 처한 신호를 보냈다지만, 가스파르는 이렇게 대책 없이 건물을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반니 왔다.”
나는 훤히 드러난 밤하늘을 가르며 등장한 얼굴에 콧물을 삐죽 흘렸다.
아니, 왜 당신이 오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