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22)화 (257/486)

제22화

원작이 진행될 때 내 마나가 빠져나가던 것처럼, 트리스탄의 외전도 내 마나를 잡아먹는 건 마찬가지였다.

‘당 보충을 미리 해 놔야 아기처럼 사고하지 않을 수 있어.’

허둥지둥 방으로 돌아와 쿠키를 한입 가득 베어 문 나는 트리스탄의 외전을 천천히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셋째가 트리스탄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어.’


“에녹의 오러가 타고 나길 트리스탄 너보다 강력하니, 네가 에녹에게 지지 않으려면 수십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질 수 없다는 트리스탄의 강박증을 마구마구 강화시키는 바리스탄의 대사에 밑줄을 쳤다.

‘바리스탄이 이 정도로 에녹을 경계한다는 건, 에녹의 잠재력이 트리스탄에 비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야.’

바리스탄은 써머나이츠를 이끄는 적랑의 단장임과 동시에 솔로아 공작가의 원로인 사람이었다.

걸출한 써머나이츠를 배출한 솔로아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그는 트리스탄의 외전 속에서 솔로아 공작가도 아닌 주제에 ‘써머나이츠’의 오러를 타고난 에녹을 견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견제하는 데에 아까운 기운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불과 며칠 전에 트리스탄과 마주친 것으로 묘사된 검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회색 눈의 검사는 트리스탄에게 스스로의 기운에 집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람이었다. 일평생 다른 가문의 써머나이츠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온 소년은 검사의 단호한 충고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였다.


‘이 사람이 트리스탄의 진짜 스승일 텐데.’

원작에서 트리스탄은 써머나이츠의 완전한 힘을 각성한 유일한 기사였고 그를 가르친 스승은 바리스탄이 아니었다.

‘이름이 어디 안 나와 있으려나?’

검사의 이름을 찾아 외전을 샅샅이 훑던 나는 결국 탁 소리를 내며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검사님, 제게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 실력이 향상되면 당신을 찾아가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게는 남길 이름이 없습니다.”


“……웃기는 넘이네.”

회색 눈의 기사로만 묘사되는 남자는 트리스탄에게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무슨 노므 인가니 이름이 업써?” (뭔 놈의 인간이 이름도 없어?)


“아직 저는 소공작님을 저의 제자로 삼을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건국제에서 당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십시오.”


다행히 이런 대사가 있었으니, 매해 열리는 건국제의 메인 이벤트 중 하나인 검술 대회에 등장할 인물인 모양이었다.

‘바리스탄 같은 쓰레기 선생 대신 이 검사를 에녹의 스승으로 만들어야 해.’

트리스탄의 외전은 아이네스의 원작과 마찬가지로 스토리가 많이 진행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이름 없는 검술 선생이 제자에게 원하는 바는 명확히 나와 있었다.

“일둥!”

와사삭.

외전을 읽으며 쿠키 한 통을 전부 비운 나는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훔치며 다짐했다.

나는 우리 셋째를 무조건 검술 대회의 우승자로 만들어야 했다.

* * *

그리즐리로 에녹을 자극해 둔 덕인지, 에녹은 전과 달리 제 검술 실력을 향상하는 데 상당한 의욕을 보이는 상태였다.

‘문제는 바리스탄이 에녹을 가르칠 의욕이 전혀 없다는 거지.’

“어허, 에녹! 너는 오러를 되도록 사용하지 말라니까! 지금 상태에서 오러를 남용하면 신체의 피로도만 쌓일 뿐이다!”

물론 바리스탄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외전에서는 트리스탄에게 오러를 한계치까지 끌어서 사용하는 훈련을 시켰으면서!’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오러를 담는 그릇이 커진다는 것을 소드마스터에 가까운 경지에 오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오러의 사용을 잘 자중하던 녀석이, 요새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든 거냐?”

“저도 트리스탄만큼은 아니더라도 더 강해지고 싶어서요.”

“어허, 헛된 욕망은 네 명만 단축할 뿐이다!”

“……네, 스승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기가 죽어 바리스탄에게 고개를 숙이는 에녹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외전에서 트리스탄의 특별 교육법 부분을 전부 머릿속에 담은 나는 지금 에녹의 검술 커리큘럼이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었다.

‘일부러 저러는 거야. 에녹이 트리스탄보다 강해지면 곤란하니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괜히 더 연습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도록!”

뾰족한 눈으로 바리스탄을 노려보던 나는 내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에녹을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에노끄!”

“많이 기다렸어? 심심했지?”

에녹이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즐기던 나는 셋째의 물음에 나풀나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에노끄 훙룡하는 거 너모 머쪄서 하아나~두 안 심심해떠.”

두 손을 맞잡은 채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나를 내려다보던 에녹이 너털웃음을 흘린다.

“멋지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트리스탄의 반의반도 못 따라잡는걸.”

‘바리스탄에게 수업만 받았다 하면 애 자존감이 반쪽이 되어서 돌아오네.’

한숨을 폭 내쉰 셋째가 나를 번쩍 안아 든 채 힘없는 미소를 짓는다.

“역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는 걸까. 형들이나 트리스탄을 따라잡기에는 말이야.”

“에노끄, 그러치 아나.”

“날 애써 위로해 주려고 할 필요는 없어, 레오노라.”

‘위로가 아니라 넌 정말 재능이 있는 아이라니까!’

답답한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작 여덟 살 먹은 주제에 요새 부쩍 어른스러워진 에녹이 제 뺨을 긁는다.

“재능이 부족하다 해도 노력하긴 할 거니까.”

“웅?”

“사실 위험에 처한 널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앞으로 엄청 노력해야겠다는 각오를 했거든. 동생인 널 지키려면 오빠인 내가 강해야 하는 거잖아.”

“……에노끄.”

셋째의 기특한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감성적인 아기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꽤 감동한 나는 자그마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에녹의 예쁜 얼굴을 눈에 담았다.

‘내가, 확실하게 널 강하게 만들어 줄게!’

절벽 위에서 널 굴려서라도!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한-내 눈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는 열정이었지만- 에녹과 눈을 마주한 나는 주먹을 야무지게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에노끄, 니니는 에노끄를 응언해! 에노끄는 할 수 이떠!”

“고마워, 리니. 나도 정말 강해지고 싶어.”

쑥스럽다는 듯 씨익 웃는 에녹의 손을 붙잡은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입을 열었다.

“에노끄, 니니 믿찌?”

“응?”

“니니가 에노끄 강하게 만드러 줄 수 이떠.”

“네가? 어떻게?”

“니니 말야, 사시른 전생을 기억캐.” (나, 사실은 전생을 기억해.)

“……뭐라고?”

“니니, 전생에서 완죤 대다난 검사여떠. 제자두 마나따.”

정확히 말하면 킬러였지만, 내 밑에서 훈련받은 요원이 수십 명이 넘었던 건 사실이었다.

“니니가 에노끄 훈뇽(훈련) 시켜 주께!”

낭떠러지에서 맨몸으로 떨어져 조각칼 한 자루만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는 훈련이 확실히 체력 단련에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셋째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 * *

아직 해맑기만 한 여덟 살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전생의 기억들로 혼란스러워했기 때문인지 에녹은 내가 검사였던 전생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삐익-! 삑!

나는 내가 새로 짠 훈련 커리큘럼에 맞춰 새벽부터 연무장을 열 바퀴나 돈 에녹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지팝!!!” (집합!!!)

내 부름에 냉큼 달려온 에녹이 바짝 긴장한 채 내 앞에 바로 선다.

‘훈련 전에 37:1로 싸운 전생 썰을 좀 풀어서 그런가. 그래도 군기가 바짝 들긴 했네.’

나는 긴장한 듯 굳은 에녹의 입매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삐빅, 다시금 휘파람을 불었다.

“쟈로 구름미다, 씰씨!”

“실시!”

“우로 구름미다, 씰씨!”

“실시!”

그래도 검술 훈련으로 기본기를 다져 놨기 때문인지, 에녹의 체력은 내가 계산한 것보다 쓸 만했다.

‘문제는 정신력이지.’

나는 내 구령에 맞춰 구르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헉헉거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에녹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리, 리니, 나 너무 힘들어. 조금만 쉬면 안 될까?”

‘체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쓰면 삼백 번은 더 구를 수 있을 텐데!’

나는 에녹의 나약한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에노끄 안 힘드러.”

“아냐. 나 힘들다니까?!”

‘안 힘든 거 맞지. 내 말에 반박할 기운도 남아 있고.’

나는 에녹의 말대꾸에 가늘게 좁힌 눈매를 풀지 않은 채 발끝으로 땅을 툭툭 두드렸다.

“에노끄 훈뇬병. 니니 말에 말대꾸하지 안슴미다.”

“마, 말대꾸가 아니라 진짜 힘들다니까…….”

나는 내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셋째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에노끄 힘든 거 안 힘든 거 니니가 정해.”

“……하지만 바리스탄 경이 오러를 낭비하면 안 된다고 했어! 늘 적당히 훈련하라고-”

“훈룐에 적당히는 업떠, 에노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