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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8)화 (253/486)

제18화

“레오노라!”

발작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가스파르가 테이블 위에 올라선 나를 안아 든다.

“그러다 다친다!”

음, 이런 걸로는 화를 안 내는구나.

나는 가스파르의 인내심이 생각보다 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압빠, 니니한테 화내.”

“뭐?”

“니니한테 화내라구!”

눈치도 없다, 참.

가스파르의 목덜미를 부둥 끌어안고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인 나는 그의 뒷목을 작은 손가락으로 꼬집었다.

“악!”

“언넝!”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맨살을 꼬집꼬집하자 가스파르는 정말 반쯤 화가 난 듯싶었다.

“저 도자기는 갑자기 왜 던진 거고!”

나는 가스파르의 언성이 높아지자마자 그의 품안에서 폴짝 뛰어내린 다음 당황한 얼굴로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실베스테르에게 달려 나갔다.

“바. 압빠 니니한테 막 화내. 무셔.”

내가 제 다리를 덥석 끌어안자 내가 정말로 가스파르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했는지, 착한 실비는 나를 제 몸으로 가려 주었다.

“아버지, 아니, 가주님. 레오노라가 저 때문에 벌인 일이니 혼내지 말아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이냐, 실비.”

실베스테르의 목소리가 차분하기 때문인지 가스파르는 또 쉽게 이성을 되찾았다.

‘눈치 챙겨!’

나는 그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나직해지자마자 옆에 굴러다니는 쿠션을 냅다 그에게 집어던졌다.

“레오노라!”

“바. 압빠, 시삐랑 또가치 화내. 압빠는 어른인데두 저케 화내자나.” (봐. 아빠, 실비랑 똑같이 화내. 아빠는 어른인데도 저렇게 화내잖아.)

내 말에 가스파르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싶었다.

‘으휴.’

잔뜩 벌어졌던 그의 잘생긴 입매가 서서히 다물어지더니, 그가 고민에 잠긴 얼굴로 나와 실비에게 다가온다.

“실베스테르, 리니에게 오러를 사용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거냐.”

“…….”

“너는 아직 아이에 불과하니 실수할 수도 있다. 감정 조절에 능숙하지 못한 게 당연하고.”

나는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다정하게 실비의 안색을 살피는 가스파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버러지 같은 년. 그렇게 가르쳤는데 아직 이 간단한 기술마저도 숙지하지 못하다니.”

문득, 내가 제 훈련을 조금만 따라오지 못해도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다그쳤던 양부가 떠오른다.

‘폭탄 해체 제대로 못한다고 욕 먹었던 게 내가 몇 살이었더라. 지금의 실비보다는 어렸던 것 같은데.’

아이니까 서툰 게 당연하다.

지금처럼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삐, 드렀지? 압빠도 서툴고 화도 낼 줄 아러.” (실비, 들었지? 아빠도 서툴고 화도 낼 줄 알아.)

그러니까 아이인 실베스테르가 오러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일이 생기는 건 너무 당연했다.

‘겨우 그런 걸로 스스로가 사생아일까 봐 겁을 내다니.’

이건 가스파르의 잘못도 분명히 있었다.

실비를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 주지 않은 잘못.

“글구 압빠 지금도 쪼굼 화나써.” (그리구 아빠 지금도 조금 화났어.)

아효,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아직까지 불만이 있는 듯 콧잔등을 찡그리는 가스파르에게 삿대질을 했다.

“아니다, 레오노라.”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건지 그가 내 말을 서둘러 부정했지만,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압빠, 시삐가 가준니라고 부르는 거 섭섭하면서요.” (아빠, 실비가 가주님이라고 부르는 거 섭섭하면서요.)

“…….”

“눈썹 꼼톨거리는 거 니니가 다 봤눈데요.” (눈썹 꿈틀거리는 거 리니가 다 봤는데요.)

내 발견이 무척 의외라는 듯 실비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러셨습니까?”

맑은 적안은 분명 아이답지 않게 차분한 빛을 띠었지만, 지금만큼은 천진하다 못해 순진해 보였다.

“……뭐. 너무 딱딱한 호칭이질 않느냐. 네가 벌써 작위를 받은 것도 아닌데.”

얼핏 핀잔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실비의 입매는 칭찬이라도 들은 것처럼 풀어졌다.

“그렇습니까. 그럼 아버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압빠.”

“뭐?”

“압빠라구 불러.”

내 강요에 실베스테르의 단정한 입매가 바짝 굳는다. 아이의 반응에 내가 찌릿 눈꼬리를 치켜뜨자 가스파르는 나를 따라 입을 열었다.

“그래. 실비 너는 너무 과하게 예의를 차리는 경향이 있어.”

가스파르의 말에 실비가 입술만 달싹이다 겨우 목소리를 낸다.

“……아빠.”

“…….”

“…….”

“…….”

내가 부를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실비의 입에서 튀어나온 호칭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간지러워 침묵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내려앉은 훈훈한 공기에 콧잔등을 찡긋했다.

“아효. 이 바부들.”

하차니아 공작가의 남자들은 다들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었다.

‘에녹 것만 먼저 조여 주고 나머지도 바짝 조여 줘야지.’

움후후.

* * *

“눈누.” (룰루.)

“…….”

“눈누!” (룰루!)

대답이 없는 룰루에게 화가 난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십자수에 열중하던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든다.

“네?!”

‘얘네 월급 줄여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보통 아이답지 않게 야무진 아이라서 그런지, 룰루와 랄라는 나를 돌보면서 딴짓을 참 많이 했다.

‘물론 그 덕에 아빠 눈을 피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벌일 수 있는 거지만.’

“니니, 정언 가따오께.” (리니 정원 다녀올게.)

“앗, 혼자 가시는 건 안 되는데요. 저 이것만 하고 같이 가요.”

“난나 정언에 이쩌.” (랄라가 정원에 있어.)

나는 룰루의 만류에 창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잘 닦은 유리 너머로 입을 헤죽 벌리고 있는 랄라의 모습이 보인다.

정원사 폴에게 홀딱 빠진 랄라는 요즘 휴식 시간을 모조리 정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아, 그렇네요.”

내 놀이방의 발코니는 정원과 이어진 산책로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룰루는 다녀오라며 놀이방의 문을 직접 열어 주었다.

정원을 향해 아장아장 걸으며 나는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뒤를 돌아 손을 흔들었다.

“눈누! 나 여기쩌!” (룰루, 나 여기 있어!)

내가 정원 입구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룰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는다.

나는 그녀가 방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틈을 타 재빨리 수풀 안으로 몸을 숨겼다.

‘정원이랑 이어진 숲에 분명…….’

나는 일전에 에녹과 산을 오르며 발견했던 환수의 위치를 떠올리며 호다닥 짧은 다리를 움직였다.

‘에녹한테 뭐라고 할 게 아니었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달리 험악한 숲길을 아기 몸으로 직접 걸으려니 점점 발이 아파 온다.

‘역시 그냥 근성으로 버티기만 하는 건 한계가 있겠어.’

나는 원래 내게만 관대하다.

버티는 것을 빠르게 포기한 나는 숲의 마나를 움직여 발 주위를 감쌌다.

발의 피로를 녹이는 은은한 기운과 함께 꼭 솜털 신발을 신은 것처럼 걸음걸음이 푹신해진다.

마나를 이용해 손쉽게 숲의 공터에 도착한 나는 적당한 높이의 나무 밑동에 걸터앉은 채 손을 탁탁 털었다.

“나아.” (나와.)

“…….”

“죤마랄때 나아.”(좋은 말할 때 나와.)

크르르르르.

멀리 떨어진 수풀 속에서 한 쌍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을 낸다.

짐승 우는 소리가 스산하게 숲을 울렸지만, 나는 겁먹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쯔리.” (그리즐리.)

“!”

내가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게 의외였는지, 사방으로 흔들리던 수풀이 우뚝 움직임을 멈춘다.

나는 연녹색 풀잎 사이로 쫑긋 튀어나온 검회색 귀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인누와.” (이리와.)

내 마지막 경고에 검회색 아기 곰이 쭈뼛쭈뼛 얼굴을 내민다.

“우쭈쭈.”

나는 그리즐리의 잿빛 눈을 바로 마주하며 품을 뒤졌다.

‘그리즐리의 주식은 꿀과 생선이지.’

내가 롬베르디에게 갖은 애교를 피워 얻어 낸 생선 꿀 절임-웩-을 바닥에 내려놓자 햇볕을 받은 그리즐리의 둥근 눈이 커다랗게 뜨인다.

“요거 주께. (이거 줄게.)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푸석푸석한 곰의 털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어미를 잃은 아기 그리즐리였어.’

공작가 근처의 숲은 이따금 가스파르가 사냥 대회를 열만큼 넓었으니 그리즐리가 서식한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르르-”

며칠을 굶었는지 허겁지겁 생선 꿀 절임을 먹어 치운 그리즐리는 배은망덕하게도 식사가 끝나자마자 내게 이빨을 드러냈다.

“어쮸.”

나는 건방진 아기 그리즐리를 향해 주먹을 들었다.

그리즐리는 생긴 건 곰이랑 비슷했지만, 성체는 한 손으로 바위를 찢을 만큼 강한 환수였다.

아이네스는 마나를 이용해 환수를 다루는 테이머(tamer)였으니 성체 그리즐리도 길들일 수 있었지만, 오러를 다루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테이머의 기질도 타고나는 것이니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얘는 아직 아기니까….’

나도 환수인 그리즐리를 길들일 수 있을 거다.

나는 마나를 응축해 오러처럼 강력한 빛을 발화하는 주먹을 그리즐리에게 메다꽂은 나는 깨갱 넘어지는 그리즐리의 등 위에 발을 올렸다.

‘이 방법도 마나를 사용해서 길들이는 게 맞긴 하잖아?’

에녹의 특훈에 필요한 필수 아이템 1을 획득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훈련에는 곰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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