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0)화 (245/486)

제10화

“지금 뭐 하는 거지.”

문을 열고 영웅처럼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가스파르였다.

“가주님!”

나를 허공에 붕 들어 올렸던 노라가 화들짝 놀라 손에 힘을 풀자, 그가 재빨리 나를 안아 든다.

“다행히 깨어나셨네요. 이 노라, 각하께서 크게 다치셨을까 마음을 졸이느라 힘들었답니다.”

노라는 가스파르의 품에 폭 안긴 나는 더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감히 가주의 몸에 멋대로 손을 올린 노라를 힐끗 내려다본 그가 냉정하게 그녀의 팔을 치워 버린다.

“각설하고,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는데.”

“공녀님께 예법을 알려드리기 위해 훈육 중이었습니다. 이제 곧 공녀님도 제 수업을 들으실 테니까요.”

수업 두 번 들었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않겠다.

나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술술 나오는 그녀의 거짓말에 기가 막혀 인상을 찡그렸다.

“겨우 세 살짜리 아이에게 예법이라…….”

노라의 말에 가스파르가 나를 안지 않은 손으로 제 날카로운 턱을 쓸어내린다.

약간 초췌해 보이긴 했지만, 그는 그런 꼴을 하고도 감탄이 나올 만큼 미남자였다.

“네가 그 나이가 되도록 배우지 못한 걸 가르치려 든 건가.”

작게 중얼거리는 가스파르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일반인에게 오러를 사용하려고?’

나는 가스파르의 발밑에서 슬금슬금 퍼져 나오는 새까만 그림자에 식겁하며 그의 가슴팍에 매달렸다.

곧이어 쿵! 소리와 함께 노라의 몸이 복도 밖으로 내던져진다.

“아악!”

“가주를 대할 때는 건방지게 얼굴을 치켜들지 말고 발등을 보도록 해라.”

쓰러진 노라를 보지도 않고 말을 덧붙인 가스파르가 쾅 문을 닫아 버렸다.

‘죽진 않았겠지.’

가스파르가 아무리 공작가의 주인이래도 가정 교사씩이나 되는 준귀족 고용인을 함부로 죽이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나무 문 건너편에서 헐떡이는 그녀의 숨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셩질머리 하곤.”

가스파르의 무감한 얼굴을 물끄러미 관찰하던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친 다음 바닥을 가리켰다.

“이졔 내려 조.”

가스파르는 내 말에 군말 없이 나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후움….”

나는 마주한 그의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턱을 치켜들었다.

“용껀이 모야.”

“아빠가 딸을 찾는 데 용건이 필요한가.”

“너, 울 압빠 아니라구 며 뻔 마럐.” (너, 우리 아빠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가스파르의 건장한 몸이 내 날카로운 말에 움찔한다.

“…마나를 감췄는데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나는 그에게서 희미하게 맡아지는 그림자의 향기에 이마를 짚었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가스파르의 육체에서는 분명 가스파르가 사용하는 검은 오러의 냄새가 났다.

‘아까는 분명하게 다른 마나가 느껴져서 구분이 쉬웠는데.’

설마 이 빌어먹을 영혼이 아빠의 몸을 완전히 잠식해서 그의 이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걸까.

“어떻게 안 거냐고.”

나는 가스파르, 아니, 가스파르의 몸에 들어간 남자의 재촉에 뚱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입술을 움직였다.

“우리 압빠는 그론 식으루 사람 안 때료.” (우리 아빠는 그런 식으로 사람 안 때려.)

“제 자식에게 해를 가하려는 고용인조차도?”

“웅. 마땅한 벌을 내리게찌.”

내 대답에 기가 막힌다는 듯 남자의 고개가 비스듬히 돌아갔다.

이윽고 허,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잘생긴 입매가 씨익 올라간다.

“물러 터졌군.”

그건 나도 인정하는 바였다.

나는 남자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테이블 앞에 앉았다.

“여긴 무슨 일로 와써. 날 주기려고?”

남자가 날 죽이려고 든다면 지금의 나는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일반인인 노라 한 명 막아 내지 못할 만큼 마나도 다 떨어진데다 사생아인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도와줄 만한 사람은 가스파르인데, 아빠는 저 남자에게 정신이 먹힌 상태잖아.’

“아효.”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 냉랭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남자를 향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번 생은 포기하고 다음 생을 노려볼까.’

마나가 쑥 뽑혀 나가던 끔찍한 기분을 떠올리자 절로 부르르 몸이 떨린다.

그래, 이번 생은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자.

‘시한부 엑스트라인 것도 모자라서 쓸데없이 체내 마나량만 방대해서 이용만 당할 신세잖아.’

“채대한 안 아프게 주겨조.” (최대한 안 아프게 죽여줘.)

“뭐?”

남자가 마나를 뽑아가기 쉽게 바닥에 발랑 드러누운 나는 조그만 발을 팔랑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샬샬, 니니 샬샬 주기라고.” (살살, 리니 살살 죽이라고.)

살살 죽이라는 게 말인지 방구인지 모르겠다는 듯 남자의 매끈한 얼굴이 일그러진다.

“무슨 개소리야. 내가 아기에 불과한 널 죽여서 얻는 이득이 뭐가 있다고.”

남자는 자신을 그런 파렴치한으로 모는 내가 불쾌한지 콧잔등을 찡그릴 뿐이었다.

‘안 죽이나?!’

나는 갑작스레 찾아온 희망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그치만 너, 아까 니니 주기려고 했자나.”

“내가 언제.”

“마나 다 뽑아서 주기려고 했자나!”

이 세계에서 ‘마나’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도 전부 마나를 가지고 태어나니까.’

마법사나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은 일반인보다 체내 마나량이 방대했고, ‘레오노라’는 그중에서도 특히 마나를 담는 그릇이 어마어마하게 큰 인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를 전부 뽑아내면 죽는 게 당연했다.

“죽을 정도로 흡수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지.”

“압빠 몽 훔찐 도동놈?” (아빠 몸 훔친 도둑놈?)

“…….”

“그거뚜 아니면 구냥 나뿐놈?” (그것도 아니면 그냥 나쁜놈?)

나는 점점 더 좁혀지는 남자의 미간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개새기?” (개새끼?)

“쥐방울만 한 게, 진짜 죽여줄까.”

나는 남자가 이를 으득가는 소리에 재빨리 일어나 양팔로 몸을 보호했다.

“…무셔.”

‘엑스트라지만 악역은 악역이라고, 인상 쓰니까 무섭게 생겼네.’

가스파르는 내게는 늘 다정한 얼굴이었기에 사납게 찡그린 남자의 얼굴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무섭긴 개뿔. 무서운 게 내 앞에서 입을 그리 놀려.”

“그치만 할 말은 하구 주거야지.”

안 그러면 여한이 남아서 눈도 제대로 감기 힘들다.

‘전생에서 양부 못 죽이고 뒤진 게 아직도 후회가 되는걸.’

“안 죽여. 생각해 보니까 넌 도움이 꽤 될 것 같거든.”

무심한 얼굴로 손에 턱을 괸 남자가 느릿느릿 말을 덧붙인다.

“공작과 나를 구분할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기민한데다, 그 작은 몸에 내 마나를 꽤나 담고 있으니.”

나는 먹이를 탐하는 포식자 같은 남자의 눈빛에 부르르 떨며 양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역시, 원작 여주처럼 내 마나를 노리는 게 맞았어!’

잠깐.

하지만 남자의 마나라니?

“그게 무슨 마리야? 네 마나?”

“그래, 내 마나. 아까도 말했잖아. 넌 내 자식이다.”

“걔소리야.” (개소리야.)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네 영혼에 내 마나가 담겨 있으니 확실하다. 뭐, 육체는 공작과 노엘 이아론의 자식이겠지만.”

그러니까 영혼은 저 남자의 마나로 만들어진 것인데, 육체는 가스파르와 노엘의 딸인 레오노라의 것이 맞는다는 건가.

‘그럼 사생아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겠네.’

나는 남자의 불친절한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소 너가 누군데?”

“루카스 윌레닌.”

‘윌레닌?’

나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친숙한 성에 눈썹을 옴찔 움직였다.

‘윌레닌이라면, 여주인 아이네스의 성이잖아.’

“현 황제 그레고르의 이복형이다.”

그레고르라면 원작 여주인 아이네스의 아빠, 즉 폭군이었다.

‘제 형제를 전부 죽이고 황위에 오르는 건 폭군의 정석 코스 같은 거지.’

“그레고르한테 당해꾸나.”

내가 빼꼼 내민 턱을 끄덕이자 남자가 한쪽 눈썹을 매섭게 추켜세운다.

“그 빌어먹을 놈이 비겁하게 저주 따위를 걸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긴 싸움이었어. 정식적으로 황위를 쟁취한 건 나였으니까.”

“아하. 글쿠나.”

나는 남자의 으스대는 듯한 말투에 입꼬리를 삐죽 내렸다.

“그론 귀-하신 분께서 왜 우리 압빠 몸에 드러가 잇서?” (그런 귀-하신 분께서 왜 우리 아빠 몸에 들어가 있어?)

황족이고, 능력도 있는데 왜 엑스트라 악당 몸 따위에 빙의를 했단 말인가.

내 물음에 답답하다는 듯 루카스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다.

“나도 모른다. 황위에 오르기 바로 전날 습격을 당했고, 눈을 떴을 땐 공작의 몸이었으니까.”

“구래서 압빠는 어디 갓서?”

“이 안에 잘 있다. 아까 너의 마나를 흡수해서인지 내가 오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원 육체의 주인이 공작이니 곧 제 몸을 되찾겠지.”

나는 제 널따란 가슴팍을 퍽퍽 두드리며 말하는 루카스를 흘깃하다 작게 입을 벌렸다.

“…무당이라두 불러소 구슬 해야 대나.” (무당이라도 불러서 굿을 해야 하나.)

들으라고 중얼거린 말은 아니었는데, 귀는 또 어찌나 밝은지 루카스가 한쪽 귀를 쫑긋 세운다.

“무당? 그게 뭐지?”

“귀신 내쪼치는 사람.”

나는 루카스가 조금이라도 빨리 아빠 몸에서 나가길 바라며 그의 다리를 뚱땅뚱땅 두드렸다.

“훠이, 훠이.”

나가라, 써억 꺼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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