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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230/486)

제246화

콰앙-!

바주카포를 붙든 손이 가늘게 진동했다.

총구를 장식하는 보석이 오색찬란하게 반짝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옅게 퍼지는 연기 속에 보이는 에티모스를 노려보았다.

“내 말 알아들었으면 꺼져, 에티모스.”

내 마탄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에티모스는 애석하게도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다고 차려입은 건데, 태워 먹을 줄이야.”

나는 새까맣게 탄 소매 끝을 내려다보며 혀를 짧게 차는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옷이 아니라 온몸이 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면 꺼지라고.”

트리스탄의 붉은 오러로 이루어진 마탄은 소울나이츠들의 검기를 응집해 날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바주카포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를 믿기지 않는 수준으로 집약해 총알처럼 날린다.

내가 만약 노스 왕국을 자리 잡게 하느라 바쁘지 않았더라면 대륙 재패를 노려볼 수도 있음직한 능력이었다.

“방금 그 마탄, 트리스탄의 오러던데.”

한눈에 내 능력을 파악한 에티모스가 흥미롭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내가 만든 인물들의 힘으로 내게 대적할 셈인가?”

나는 그의 손이 올라감과 거의 동시에 기울였던 바주카포를 다시 치켜올렸다.

콰앙-!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내 몸통만한 무기가 굉음을 내며 마탄을 발포했지만, 트리스탄의 오러를 집약한 마탄은 에티모스에게 닿지 못했다.

파파팟!

알레테이아의 성력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에 맞고 튕겨 나간 마탄이 부스스 공기 중에 흩어진다.

“소용없는 짓이다, 레오노라.”

바주카포를 끌어안은 채 미간을 찌푸린 나를 비웃듯 입을 연 에티모스가 빙그레 웃는다.

“트리스탄의 오러가 얼마나 강력하든, 내가 정한 한계를 뛰어넘진 못할 테니까.”

“네 이야기를 토대로 변형된 이 세계엔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존재하고, 그들은 네가 정한 설정 값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겠지.”

나는 에티모스의 말이 지겨워 코웃음 쳤다.

‘아이네스도 늘 했던 말인걸. 나는 아이네스에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고 결국엔 죽임당할 캐릭터라고.’

“하지만 넌 내가 빈번하게 아이네스를 막아 섰다고 했어. 네 설정 값에 그런 게 있었나?”

내 조롱에 에티모스의 표정이 찰나 굳는다.

나는 쉬이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향해 다시금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결국 너는 이 세계에 권한이 없다는 거야, 에티모스.”

“넌 내가 만들어 낸 조연에 불과하다고 말했잖아!”

드디어 빙글빙글 재수 없게 웃는 얼굴을 벗어던진 에티모스가 차갑게 일갈한다.

“네가 내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만큼 네 설정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래? 그럼 조연으로 만들어 줘서 감사해야겠네.”

타인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게 주인공이라면 절대 사절이었으니까.

“넌 날 이길 수 없어. 네 힘의 한계는 정해 놨으니까.”

“벌써부터 그렇게 단정 짓기엔 내 수련의 시간이 아까워서 말이야.”

나는 나를 노려보며 아득바득 이를 가는 에티모스를 향해 생긋 웃어 보인 후 어깨를 으쓱했다.

우우웅.

총구를 바닥으로 돌린 채 방아쇠를 잡아당기자 바주카포를 장식한 보석 중 가장 강렬한 빛을 발하는 노란 사트린이 차라락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팡!

이윽고 총구에서 퍼져 나온 노란 안개를 독이라고 생각했는지 에티모스는 서둘러 코를 틀어막았지만, 연기는 그가 아닌 아이네스와 그녀를 둘러싼 황군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쏴아아.

“모두 숨을 참아라!”

황군을 이끄는 장군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안개가 그들 진영을 잠식한 후였다.

“이, 이미 마셔 버렸습니다!”

“젠장, 독인가?!!”

대비할 새도 없이 우왕좌왕 연기를 흡입한 황군들의 소란이 이내 잠잠해진다.

에티모스는 제자리에서 쓰러지지도, 앞으로 고꾸라지지도 않는 황군을 돌아보며 피식 조소했다.

“이게 네 ‘수련의 시간’의 결과인가? 다들 멀쩡해 보이는군.”

‘제 이야기의 악역이었던 벨루치의 진능력도 모르는 게.’

이죽이는 에티모스의 얼굴에 한 방 먹여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자, 다들 여기 서 있는 이 남자 보이시죠?”

주먹을 꽉 쥔 채 황군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내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황군에게 닿는다.

철제 갑옷을 입은 황군이 일제히 그를 향해 돌아서는 소리가 황성을 가득 채웠다.

나는 에티모스의 목이라도 노릴 듯 황군이 움켜쥔 날카로운 창들을 훑으며 작게 읊조렸다.

“공격하세요.”

“와아아-!”

내 명령에 자신들의 위치와 지위를 잊기라도 한 듯 황군이 에티모스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뭐야! 아이네스, 황군을 제대로 통솔해라!”

자신에게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황군의 행보에 당황한 에티모스가 아이네스를 돌아보았지만, 벨루치의 안개를 흡입한 그녀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위해 아이네스를 움직이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녀는 정신력이 낮지 않으니까, 가만히 있게 하는 정도가 최선이겠지.’

원작 <아.황.장>에서 등장한 벨루치의 능력은 남자를 매혹시키는 외모와 사교계를 휘어잡는 화술이었다.

하지만 에티모스나 당사자인 벨루치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한 그녀의 진짜 능력은 그녀 본연의 매력에 있었다.

‘한 번 빠지면 자발적인 노예가 되고 싶을 정도로 벨루치를 숭배하게 된다는 묘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어.’

바주카포로 그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나는 동물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일정 시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그녀의 능력을 개발했었다.

나는 에티모스가 자신에게 몰려든 황군이 귀찮다는 듯 허공에 떠오른 덕에, 원작 책과 벌어진 거리를 가늠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빼앗으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겠지.’

황군을 이용해 그를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원작 책과 거리를 벌리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쳇. 별 같잖은 재주로 나를 귀찮게 하는군.”

나는 짜증스레 중얼거리는 에티모스의 말을 무시한 채 뒤를 돌았다.

‘이제 카렌의 힘을 빌려야겠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기사들을 이끌고 황군과 대치하던 카렌이 앞으로 나선다.

“카렌.”

나는 내 앞에 무릎 꿇은 고귀한 기사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부탁하건대, 나를 위해 싸워 줄 수 있겠어요?”

“레오노라, 그대는 내게 평생 부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주한 카렌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하고 강인해 보였다.

멜리사 아스텔리우에게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어머니인 그녀의 애정을 얻고 싶어 전전긍긍하던 소녀 카리나였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당신이 나를 구했으니 내 남은 인생 전부를 당신을 위해 바치리라 다짐했으니까요.”

나는 내게 고백하듯 말하는 카렌이 든든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청금의 이름과 제 명예를 걸고, 제 생애를 레오노라 당신을 지키는 데 쓰겠습니다.”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맹세하는 카렌을 뒤따라 청금의 기사를 따르는 기사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다.

“저, 저도.”

“저도 대장님을 따라 공주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싶습니다!”

황성을 울릴 정도로 많은 기사들의 외침에 나는 멋쩍은 뒤통수를 매만졌다.

개중에는 카렌을 따르는 기사가 아닌, 적랑이나 흑랑의 기사들도 섞여 있어 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난 카렌만으로도 충분한데.’

하지만 나를 위해 싸워 주겠다는 사람들을 지금 상황에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요. 그대들이 나의 명예를 위해 나서 준다면, 나는 나의 영광이 향하는 곳으로 그대들에게 보답하겠습니다.”

아이네스와 에티모스가 부숴 버리려는 세계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평온하고 공정한 세계로.

‘내 주제에 그런 걸 꿈꾸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지만…….’

그렇다고 에티모스와 아이네스가 휘두르는 대로 몸을 맡길 수는 없지 않겠나.

“와아아아-!!”

멋대로 말을 내뱉고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는 나를 바라보며 기사들이 검을 높이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공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카렌이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뒤로한 채 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인다.

“공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카렌을 따르는 기사들의 외침에 나는 뭉근뭉근한 가슴을 억지로 잡아 누른 채 웃어 보였다.

“우리 리니, 당장 왕위에 올라도 문제가 없겠는데요.”

언제고 내 옆을 지키는 에녹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역시 내 딸이다.”

“아니, 역시 내 딸이군.”

나는 내 연설 능력의 지분을 다투는 가스파르와 루카스를 번갈아 바라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허튼 데 열 내지 말고,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요.”

이제부터는 나도 직접 육탄전에 참가할 작정이었으니까.

바주카포의 보석을 청금석으로 돌린 나는 좀처럼 빼 들지 않던 레이피어의 손잡이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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