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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157/486)

제162화


“이게 진짜 ‘푸른 독수리’를 만들 수 있는 금술진이라는 말이지?”

아이네스는 제 침실 중앙에 펼쳐진 거대한 진(陳)이 일렁이는 모습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았다.

“내 명령을 거부하면 심장이 터져 버리게 하는 금술이라니!”

“네, 전하. 교단에서 드디어 전하를 위해 완성시켰답니다. 진정한 전하만의 노예 부대를 기르기에 적합한 금술이죠.”

율리아의 설명에 아이네스는 기쁘다는 듯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만개한 벚꽃처럼 활짝 웃었다.

“완벽해! 실험을 해 봐야 하니까 배동을 여러 명 뽑아야겠네.”

금술로 신체와 정신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면 어린아이에게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이왕이면 군대를 지휘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아이로 뽑는 게 좋겠어. 아빠가 황녀군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거든.”

“그럼요, 전하. 신체 능력부터 지능까지 다양하게 보고 선발하세요. 전하만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를 고르는 자리니까요.”

“응! 다 크면 내 보좌도 맡기고 싶어.”

“좋은 생각이에요. 배동이 될 아이도 기뻐할 거랍니다.”

아이네스는 율리아의 말에 헤헤 웃으며 금술진이 녹아든 상자를 끌어안았다.

“당연하지. 누구 배동 자리인데 안 기쁘겠어?”


‘이 미친 것들아…!’

원작 책을 던지듯 덮은 나는 지끈지끈 울리는 골을 누르며 시종장이 올라선 단상을 노려보았다.

배동은 단순히 어린 황녀의 놀이 상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 이런 주제는 말도 안 된다.

나처럼 생각한 아이가 한둘이 아닌지 시종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예비 황군을 훈련시키는 거랑 황녀의 배동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주제가 이따위야?”

“쁘띠 플뢰르를 선발하는 조건도 이상했잖아요. 그 연장선인가 보죠.”

“내정자가 있다는 뜻이네요.”

‘아니, 왜 날 봐?’

물론 내게 유리하지 않은 주제는 아니었지만, 나는 대회 주제까지 조작해가며 황녀의 노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노엘! 역시 우리의 후원자님께서 힘을 써 주셨나 봐!”

원작 책을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아이네스의 음모에 파들파들 떠는 내 등 뒤로 들어 본 적 있는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황녀의 배동은 반드시 노엘이 될 거야! 이미 군대를 이끌어 본 경험도 있는 노엘을 이 자리에 있는 하찮은 꼬맹이들이 이길 수 있겠어?”

‘군대를 이끌어 본 경험이 있다고?’

단순한 고아가 아니었던 걸까.

“레이첼, 말조심.”

귀를 쫑긋 세우며 그들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봤지만, 노엘이 다급하게 주변을 살피며 레이첼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다.

“그럼 지금부터 예비 황군 병사들을 배정하겠습니다!”

아이들이 불만을 터뜨리든 말든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시큰둥하게 서 있던 시종장이 병사들을 향해 손짓한다.

“폐하께서 직접 서임할 황녀군으로 선출될 기회이니 병사들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나는 아주 최소한의 기초 훈련만 받은 듯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어린 병사들을 힐끔하며 이마를 짚었다.

‘얘네들도 영광스러운 황녀군이 금술로 억제된 황녀의 노예 부대라는 건 꿈에도 모를 거 아냐?’

개중에는 이제 막 다섯 살이나 되었을 법한 어린아이도 있었다.

“레오노라 에스트렐라 드 하차니아 영애는 앞으로 나오세요!”

답이 없는 아이네스의 계획에 한숨만 푹푹 내쉬던 나는 시종장의 말에 느릿느릿 앞으로 나섰다.

“자, 영애 앞으로 배정된 병사들입니다.”

그러자 도합 여덟 명의 조무래기 병사들이 내 앞에 주르륵 도열한다.

“하차니아 영애의 훈련장은 A동입니다.”

“네.”

시종장의 설명에 황궁 지도를 떠올리며 대충 고개를 끄덕인 나는 눈을 돌려 병사들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설프지만 검을 쥘 줄 아는 놈이 둘, 자세도 안 잡힌 놈이 넷,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아이가 한 명….’

그리고 기사 서임을 받을 만한 가능성이 아주 희미하게라도 보이는 놈이 한 명.

‘저놈부터 조져야겠네.’

파악을 마친 내가 턱을 한 번 까딱이며 병사들에게 따라오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그들은 제자리에 붙박인 듯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응? 못 알아들었나?’

나는 꿈쩍도 않는 병사들을 돌아보며 짝다리를 짚은 채 입을 열었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는데.”

내 말에 그나마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훈련병이 비딱한 입을 연다.

“아, 입이 없으신 줄 알았죠.”

“아~ 난 또 눈이 없는 줄 알았네?”

내가 씨익 웃으며 하는 말에 소년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진다.

“귀는 있지? 따라와.”

짧게 명령하고 등을 돌리자, 궁시렁궁시렁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병사들의 말이 귓가에 꽂힌다.

“황군 훈련을 시켜 준다고 사람을 모으더니 어린 계집아이의 지휘를 따르라고?”

“그냥 돌아갈까? 제이크,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만두면 벌금을 물리겠다잖아. 황실이 미쳐 돌아가는 거지.”

‘그 말에는 동의를 넘어서 통감하는 바이지만….’

나는 한숨 섞인 병사에 말에 멋쩍은 뺨을 긁적이며 등을 돌렸다.

‘그래도 어디 감히 지휘관 명령에 토를 달아?’

공식 지휘관도 아닌데다 배동과 황녀군 선발을 위한 임시직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저 졸병들의 상관이었다.

그러니 아까 같은 태도는 절대 묵인할 수 없었다.

“자, 훈련관에 도착했네.”

손뼉을 짝-치며 병사들을 집중시킨 나는 활짝 웃으며 작은 나무 인형들이 가장자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무장을 가리켰다.

“그럼 다들 대가리부터 박고 시작해 볼까?”

“…네?”

쿵! 쿵! 쿵!

내 말에 어리둥절한 병사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것도 잠시, 그들은 내가 손바닥 위로 피어올린 새빨간 마나에 흠칫 몸을 떨었다.

“저, 저게 뭐야? 오러인가?”

일반인들은 소울나이츠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는 오러처럼 보일 마나구를 만들어 낸 나는 아까 내게 말대꾸를 한 소년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전원, 머리부터 박는다! 실시!”

“시, 실시!”

아직 어린 병사들이라 그런지 마나구에 겁을 먹은 병사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와 눈을 마주한 소년만큼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훈련의 훈자도 모를 당신 말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까라면 까고, 기라면 긴다는 말도 모르면서 황군에 지원한 거야?”

나는 소년의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를 흘깃하며 입을 벌렸다.

“너, 황녀군이 되고 싶어서 자원한 거잖아.”

내 물음에 답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린 소년에게 저벅저벅 다가선 나는 그의 턱을 움켜잡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황녀군이 되려면 네 지휘관으로 배정된 내가 황녀 전하의 배동으로 선발되어야 하고. 내 말이 틀렸어?”

나는 내 말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와그작 일그러진 소년의 얼굴을 꼼꼼히 관찰하다 침을 꼴깍 삼켰다.

‘가까이서 보니 조금 마음이 약해지네.’

왜 괜히 잘생기고 난리람.

“그럼 내가 어린 여자아이든 늙은이든 얌전히 훈련받는 게 좋을걸.”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 큼, 헛기침을 내뱉은 나는 내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며 허리를 숙이는 소년을 노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기사를 꿈꿨을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싶지는 않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훈련을 시켜 줘야지 별수 없었다.

황궁 서고 열람권도 포기할 수 없는데다 아이네스의 계획까지 알아버렸으니까.

‘지금도 황제를 등에 업고 제국을 장악하려고 하는데, 진짜 노예 부대까지 신설하게 뒀다간 아이네스의 힘이 너무 커져 버리고 말 거야.’

나란히 머리를 박은 소년들을 흘깃한 나는 손뼉을 짝짝 치며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다.

“자, 머리 다 박았으니까 이제 뛰자~!”

가볍게 50바퀴만!

“50바퀴나요?”

내가 상큼하게 덧붙인 말에 병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무장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

정말 기초 훈련만 받았는지 소년들의 체력은 일반인의 것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일단 기초체력부터 끌어올려야지.’

“응챠-!”

나는 형아 병사들을 뒤따라 아장아장 걸음을 내딛는 아기를 안아 들었다.

‘얘까지 훈련을 받게 할 수는 없지.’

겨우 세 살 정도 된 것 같은 아기에게 뭘 시키겠나.

“너는 깍두기 하자.”

나는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는 아기의 이마를 손끝으로 툭 건드리며 웃었다.

“깍두기가 몬데요?”

“있어, 좋은 거야.”

“하지만 울 형아는 뛰고 있눈데요.”

아기 병사의 말에 나는 점점 느려지는 병사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형아 걱정되면 여기서 응원이나 해.”

“응언이요?”

“응. 저렇게 설렁설렁 뛰면 다칠 거거든.”

쾅! 콰쾅- 쾅!

“아악!”

그제야 새빨간 오러구가 자신들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소년들이 기겁하며 속도를 높인다.

‘에녹이랑 실비도 개조했는데, 오러도 못 다루는 일반 병사들쯤이야.’

의기양양하게 콧잔등을 매만지던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이네스가 괜히 그들을 예비 황녀군으로 뽑아 놓은 게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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