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이름이 노엘이라고?’
뭐, 노엘이란 이름이 엄청나게 특이한 이름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나보다는 자카리 또래에 가까워 보이는 소녀를 올려다보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레오노라예요.”
그러나 일자로 고르게 자른 앞머리 아래 자리잡은 노엘의 흑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소녀의 손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 참 뻘쭘하게 하네….’
자카리, 아니, 실비보다도 더 무뚝뚝한 아이라는 생각에 내가 머쓱한 손을 뒤로 빼자, 소녀 옆에 하녀처럼 서 있던 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콧방귀를 뀐다.
“흥. 우리 노엘 님이 단순히 공녀라는 이유로 공녀님 말에 쉬이 대답할 줄 알고요?”
“…응?”
나는 대충 봐도 내게 가진 적대감이 어마무시해 보이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노엘과 비슷한 차림이었지만, 나이는 훨씬 어려 보인다.
나는 나와 엇비슷한 키를 가진 아이를 힐긋한 후 뒤로 반보 물러났다.
‘괜히 얽히면 골치 아파질 상이야.’
하지만 아이는 나를 집요하게 따라오며 말을 이었다.
“같은 사생아라지만, 노엘 님은 개화하신 이능이 무려 세 개나 되는 천재중에 천재세요.”
“으응, 그렇구나.”
“소울나이츠보다도 더 희귀한 대마법사의 자질을 지닌 분이라고요!”
단순히 노엘의 측근이 아닌 열성팬 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격양된 아이의 말에 대강 맞장구를 치며 기둥 뒤로 피신했지만, 아이는 아예 내 손목까지 덥석 잡아가며 부득불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노엘 님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자인지 공녀님은 똑똑히 들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듣지 않으면 실랑이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신이 나서 노엘이 얼마나 위대한지 떠들던 아이가 갑작스레 주제를 바꿔 나를 공격한다.
“공녀님은 공작님의 사생아가 아닌, 공작 부인의 사생아잖아요? 노엘 님의 존재만 인지하신다면 공작 각하께서 공녀님을 버리는 건 시간 문제니까 각오하셔야 할걸요.”
‘어린애라고 봐주는 데도 한계가 있지.’
나는 어딘지 묘하게 트리스탄을 닮은 아이의 새빨간 눈을 내려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건 아닐걸.”
내 대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휘둥그레 눈을 뜬 아이가 공격적으로 입을 벌린다.
“왜요? 공녀님도 능력이 세 개쯤 되시나요?”
“아니. 나는 마나 운용밖에 할 줄 몰라.”
“그럼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공녀님은 엄마도 없잖아요?”
나는 아이의 말에 비스듬히 고개를 숙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뮤리엘이 소개한 아이는 분명 노엘이었으니, 노엘을 따라온 듯한 이 아이는 출신조차 불분명한 보육원 출신이리라.
‘나한테 이런 말한 거 사람들이 알게 되면 목이 달랑달랑할 텐데.’
성가시고 기분 나쁘긴했지만, 내게 따박따박 대든다는 이유로 열 살도 안 된 아이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가 날 엄청 사랑하니까, 버리지 않을 거라는 거야.”
“…뭐라고요?”
“능력 없어도 우리 아빠는 나 사랑해. 원래 애들은 이유없이 사랑받는 거라고 했어. 그리고 앞으로는 말조심을 하는 게 좋을 거야.”
“…….”
“아무리 노엘의 능력이 뛰어나도, 나는 공녀거든.”
나는 아이에게 간단한 사실만을 명료하게 전달한 후 뒤를 돌았다.
“그럼 안녕.”
* * *
‘그럴 리가 없잖아! 공작이 이유없이 레오노라 공녀를 사랑할 리 없다고!’
어른들이 이유없이 아이를 사랑해 줄 리 없지 않나.
‘그렇지 않다면 내가 버림받기 전에 가족들에게 왜 밥버러지 취급을 받았는데?’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레오노라를 붉어진 눈으로 노려보던 레이첼은 씩씩거리며 노엘의 손을 붙잡았다.
“노엘 님, 저 재수없는 계집을 어떻게 처리하실 건가요?”
그러나 비스듬히 고개를 꺾은 노엘에게선 감흥없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공녀의 제거는 우리의 목표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그, 그래도 노엘 님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줬는데요!”
“글쎄. 딱히 모욕받았다는 기분은 안 드는데.”
“…하여간, 노엘 님은 너무 마음이 여리시다니까요.”
희망의 집에서도 그랬다.
노엘은 무뚝뚝하고 무심해서 사람들에게 냉정하다는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았지만, 얼마 되지도 않는 식량을 저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나눠 줄 만큼 착했으니까.
“저는 저 계집이 계속 황도에서 설치게 내버려둘 수 없어요. 그럼 노엘 님이 새로운 공녀가 되어 교단의 교리를 전파하기 어려워지잖아요.”
알레테이아는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스테르가 아닌, 노엘을 새로운 공녀로 내세우고자 했다.
그리고 노엘은 레이첼이 아는 그 누구보다 고귀한 공녀 자리에 어울리는 소녀였다.
“그러니 저만 믿으세요, 노엘 님!”
노엘은 딱히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지만, 레이첼은 당차게 자리를 벗어났다.
* * *
“율리아 황비 전하와 이본느 황비 전하 드십니다!”
나는 그레고르가 오른 단상 위에 나란히 올라가는 율리아와 이본느의 모습을 확인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율리아 비(妃), 저 사람도 레이디 뮤리엘처럼 교단의 지부장이었지.’
그녀는 타 제국 황제의 딸이었다.
‘그러니 알레테이아 교단은 제국 전역, 아니,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암덩어리라는 뜻이지.’
“황제 폐하께서 새로 들인 비를 아주 아끼신다더니, 정말 귀애하시네요.”
“그러게요. 오늘도 옆에 앉히셨어요.”
황비들의 등장에 제각기 흩어져 잡담을 나누던 귀족들이 단상을 힐끗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본느 전하와 달리 율리아 전하께서는 고귀한 핏줄을 타고나셨으니까요.”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그냥 여색을 밝혀서 새로운 여자를 좋아하는 것뿐이지, 아끼긴 퍽이나 아끼겠다.’
내가 아는 그레고르는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놈이었다. <아.황.장>에서는 그나마 아이네스는 아끼는 아빠 노릇을 했었는데, 내가 빙의한 세계에서 그레고르는 망나니 폭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황비들이 때마침 등장해 줬네. 마침 이본느에게 할 말도 있었는데.’
정보길드 주목나무의 수장인 이본느 황비에게 알레테이아 교단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 참이었다.
새로운 소식이 없느냐고 묻고 싶어 내가 그녀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려는 순간이었다.
“끄앙!”
어린아이 한 명이 내게 달려오더니 발라당 나동그라진다.
“?”
“죄송해요, 공녀님! 티티, 어서 사과드려!”
나는 꽤 크게 넘어진 탓에 무릎이 죄 까진 어린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사과를 재촉하는 여자아이를 돌아보았다.
‘아까 노엘에게 붙어 있던 그 아이들이네.’
“별로 아프지 않았어. 사과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내가 손을 든 순간이었다.
“공녀님, 죄송해요! 때리지 말아 주세요!”
아이와 함께 무릎을 꿇은 여자아이가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며 개소리를 시전하기 시작한다.
‘…미쳤나?’
내가 마음먹고 때리면 단순히 무릎 까지는 것 정도로 안 끝나거든?
“저게 무슨 말인가요?”
“어머! 넘어져서 울고 있는 저 아이, 황성 연회에 특별히 초대된 고아 아닌가요? 무슨 특이한 오러를 발현했다고 하던데.”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남몰래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린 여자아이는 엉엉 우는 아이를 꼭 껴안은 채 불쌍한 척 말을 이었다.
“흐윽, 흡! 공녀님 말대로 우리는 부모님이 없어요. 하지만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니까 부디 때리지 말아 주세요!”
얼씨구.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 난리가 났네.’
내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은 사이, 단상에서 천천히 내려온 율리아 황비가 아이들을 감싸듯 뒤로 물린 후 내게 다가온다.
“…제국의 새로운 태양을 뵙습니다.”
황비가 다가왔는데 인사를 안할 수는 없었기때문에, 나는 내가 자신을 쥐어 패기라도 했다는 듯 울어 젖히는 아이들을 노려보다 꾸벅 허리를 숙였다.
“레오노라예요.”
“네가 하차니아의 공녀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단다. 본비가 나선 건 지금 신성한 황성 연회에서 공녀가 왜 소란을 벌이는지 확인하고자 함이야.”
“…일부러 소란을 벌인 건 아니에요. 죄송해요, 황비 전하.”
“죄없는 아이들을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핍박한 것 같은데, 본비의 두 눈으로 마주한 이 말도 안되는 광경이 사실인 건가?”
말은 ‘네가 ~한 것 같은데’였지만, 율리아는 이미 내가 고아들을 괴롭혔다고 기정사실화해서 말하고 있었다.
‘황비가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데 반박할 사람이 나올 리도 없고….’
그렇다면 나도 나만의 스킬을 써먹어야지 별수 없었다.
“공녀, 본비가 묻고 있질 않나.”
나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율리아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3, 2, 1.’
마음속으로 셋을 세며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커다랗게 입을 벌려 스킬을 개시했다.
“뿌앵!”
“고, 공녀?”
“뿌애앵-!”
일명 <너만 울 줄 아냐, 나도 애거든?!> 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