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138화 (138/486)

제138화

'저 인간, 아돌프 박사잖아.'

사나운 눈매의 소유자로서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싶진 않았지만, 눈이 뾰족하다 못해 송곳 같은 남자는 마탑주인-비록 페이퍼 마탑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히틀 아돌프는 요즘 가장 활발한 연구를 펼치고 있는 학자들 중 한 명이니까.

그는 저명한 생물학자로 원래는 생물학 전공이었지만 최근 들어 우생학에 관련된 연구만 열심히 진행 중인 인종 차별주의자였다.

‘윌레닌 제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윌레탄인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던데.’

이 세계에는 ‘원작’이 존재했으니 이름부터 작가가 누굴 보고 생각해 냈는지 알 수 있는 인물이었다.

“라노오레 박사는 여태 그 어떤 학회에서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으니, 아직은 공녀님이 정말로 라노오레 박사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아돌프의 차분한 말에 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내 옆에 앉은 학자를 돌아보았다.

“라노오레를 거꾸로 발음해보세요, 요나스 박사님.”

“라노오레… 아! 레오노라 공녀님의 이름을 거꾸로 붙인 가명이었던 것이로군요!”

라노오레와 레오노라를 작게 중얼거린 학자가 이마를 탁 치며 크게 외친다.

“흠흠! 어쨌든 라노오레 박사의 정체는 오늘 회의 주제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술회를 시작하지요.”

계속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돌프는 인상을 찡그린 채 원탁을 내려쳤다.

“입구에는 자격증을 검증하는 아티팩트가 있으니 자격증 자체는 가짜가 아니겠지만, 회의를 진행하다 보면 공녀님이 정말로 학자인지 아닌지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내가 가짜라고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공녀님, 입구에서 우리 갈고리 상아탑 소속 연구원이 공녀님의 신.분.을 감히 몰라뵙고 우를 범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그가 ‘신분’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듯 내뱉는 것을 알아차리고 남들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저 인간, 지금 내가 신분과 지위를 이용해서 학계에 분탕질을 칠 거란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잖아?’

“갈고리 상아탑주인 제가 지금 확실히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네. 사과 받아들일게요, 박사님.”

얌전히 대답했지만, 아돌프는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심지어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다른 학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작위도 영지도 없는 한미한 준귀족일 뿐이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입니다. 비천한 제가 학술회를 진행하며 감히 공녀님께 질문을 드릴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배움이 짧은 나는 학식 높은 자신의 질문에 절대 대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 얼마든지요. 대신 저도 박사님께 질문을 해도 괜찮겠지요?”

기가 막혀 비뚜름히 입꼬리를 올린 나를 힐끔한 그가 콧수염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럼 학술회를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탁.

원탁에 자신의 연구 논문들을 펼친 그는 뒤에 자리 잡은 거대한 칠판을 장식한 글씨를 가리켰다.

<제국의 영원한 광영과 번영을 위하여>

“폐하께서 친히 저희를 불러들여 열어 주신 학술회의 목표는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요.”

아돌프의 말에 원탁을 차지한 학자들의 절반 정도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행히 학자들 전부가 아돌프에게 동의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국가나 집단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하고 싶어 하는 학자들도 많을 테니까.’

“이번 학술회는 여러분들의 연구 성과를 제국의 광영을 위해 정책에 접합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장 큰 안건으로 떠오른 건 제가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우생학’이고요.”

아돌프의 말과 동시에 그의 조수처럼 보이는 학자가 일어나 칠판에 윌레탄인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연구 포스터를 타다닥 붙이기 시작한다.

나는 학자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그의 연구 결과를 읽어 내리는 것을 확인하고 차분히 손을 들었다.

“아돌프 박사님, 박사님께서 연구하고 계시는 우생학이 정확히 뭘 뜻하는 걸까요?”

“아아. 학술원은 입학조차 하지 못하고 단순히 마력만으로 마탑주 자리에 오른 공녀님이니 모르실 수 있죠. 제가 친히 설명하겠습니다.”

‘이 자식 봐라?’

나는 비죽 웃는 아돌프의 얼굴에 죽빵을 날릴까 고민하며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해요.”

“우생학은 종의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그럼 종의 개량에는 사람도 포함되는 건가요?”

“당연합니다. 열악한 소질을 가진 인구가 제국 내에 증가하게 되면 큰 손실을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회의장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아돌프는 열성적으로 손을 높게 치켜든 채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우리는 제국의 발전을 위해 더 나은 후대를 양성할 책임이 있습니다!”

“흐음. 그대들의 충정이 갸륵하군.”

때마침 회의장에 들어선 그레고르가 흡족한 미소를 만면에 띄운 채 학자들을 돌아본다.

“광영을 누리소서!”

“광영을 누리소서, 황제 폐하!”

“인사는 됐네. 다들 앉게.”

그레고르는 동시에 일어나 자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학자들을 향해 손을 내두른 채 원탁의 상석에 털썩 앉았다.

“흠. 그대는 하차니아 공녀가 아니던가?”

“제국의 태양께 인사 올립니다.”

나를 알아본 그레고르가 눈썹을 비스듬히 치켜세운 채 턱을 쓴다.

“오늘 이본느 황비의 티파티에 초대되었다는 말은 짐이 이미 들었다만… 잘못 찾아온 것인가? 이곳은 제국 학술회가 열리는 스콜라홀이네.”

“네. 황비님의 티파티는 오후에나 열려서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마침 제가 제 1급 학자 자격증이 있는 학자이온지라 학구적인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학술회에 참석했습니다! 괜찮을까요?”

황성에서 열리는 학술회는 명목적으로는 제 1급 자격증이 있는 학자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열린 회의였다.

어린애가 공부하고 싶어서 왔다는데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황제는 무척 치사해 보일 것이다.

“…배움에는 때가 없는 법이지.”

학자들의 눈치를 슬쩍 살핀 그레고르는 어깨를 으쓱한 뒤 가볍게 턱을 끄덕였다.

“감사해요! 제가 배움이 모자라 지금 아돌프 박사님께 질문을 드리고 있었는데 계속해도 괜찮을까요?”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라니, 입장을 허한다.”

나는 황제의 허락에 감읍한 척 꾸벅 고개를 숙인 다음 아돌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박사님, 그럼 일전에 언급하신 열등한 민족이 가진 열악한 소질은 무엇일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라노오레 박사.”

벨네르니 민족의 ‘열등함’을 때마침 발표하려던 참이었는지 아돌프는 히죽 웃으며 칠판을 장악한 연구 포스터를 지팡이 끝으로 짚었다.

“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특정 인종은 태어날 때부터 열등하며 저열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벨네르니 민족이 대부분 집시인 것을 고려하면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깝죠.

이에 비해 윌레닌 제국의 근간을 세운 윌레탄 왕국의 민족, 윌레탄인은 질적으로 우월한 인종입니다.“

아돌프가 윌레탄인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금발과 녹안을 가진 사람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 윌레탄 민족만이 제국을 지탱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

선동에 가까운 아돌프의 질문에 원탁에서 그와 가까이 앉은 학자 무리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지당한 말씀! 폐하, 저희는 이러한 우성학을 바탕으로 한 ‘인종 위생’이란 개념을 정책에 도입하시길 간청 드리옵니다!”

"인종위생이라….”

그레고르는 아돌프를 위시한 학자들의 간청에 구미가 당긴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설명해 보아라.”

“예, 폐하! 인종적으로 열등한 민족들과 선천적인 질환이 있는 자들은 아이를 낳지 말도록 강제해야 더욱 강대한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거라는 게 저희 우생학자들의 의견이자 충언이옵니다.”

‘충언 좋아하네, 미친놈들.’

나는 제국민 절반을 이루는 소수민족들을 몽땅 다 멸종시키자는 정신 나간 주장을 하는 학자 무리의 말에 슬며시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정책은 너무 과격하지 않습니까? 선천적인 질환을 가진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인종 위생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주제였는지, 황제와 아돌프의 눈치를 보느라 작게 쑥덕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러자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듯한 학자들을 쓱 둘러본 아돌프가 한쪽 팔을 위로 뻗으며 단호하게 외친다.

“이번 전염병 사태만 봐도 벨네르니인들이 제국에 위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 자명하지 않습니까? 역병이라면 황도에 금세 퍼졌어야만 하는데, 오직 소르베 지구만 천연두로 피해를 보았습니다.”

“자애로운 여신 루엘라도 그들의 방만하고 문란한 피를 괘념하시기에 그런 벌을 내리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돌프의 측근인 듯한 신학 연구자가 그레고르를 올려다보며 말을 덧붙인다.

“호오. 그래, 그대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논리에는 흠이 없는 것 같군. 짐이 그 ‘인종 위생’이라는 개념을 정책에 도입하는 것을 숙고해 보겠노라.”

나는 아돌프를 위시한 미친 연구자들에게 그레고르가 찬동해 제국을 피바다로 만들 분위기에 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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