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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132화 (132/486)

제132화

“아빠, 모드 너무 속상해! 속상해서 미칠 것 같다구요!”

실뱅은 쁘띠 플뢰르로 선발되지 못해 울분에 차 제 작은 가슴을 마구잡이로 내려치는 제 딸을 바라보다 입술을 짓씹었다.

“왜 레오노라 그 계집이 선발된 거예요? 혈통도, 미모도, 교양도 전부 모드가 더 뛰어나잖아요!”

“가스파르 그놈이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하다. 그놈은 원래 제 저열함을 숨기지 못하는 자식이었어.”

실뱅은 인상을 찡그린 채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모드를 껴안아 달래며 말을 이었다.

“노엘이나 가스파르나, 짚신도 짝이 있는 법이라고 똑같은 후안무치들이었지!”

실뱅은 여자 주제에 이아론 후작가의 운영에 감히 관여하려고 들었던 오만한 여동생 노엘을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갈았다.

“제독이 별거라고 으스대는 꼴하며…. 그년이 바다에 빠져 죽지 않았다면 내가 나서서 죽여 버렸을 거다. 이아론의 명예를 위해서 말이다.”

노엘이 제독으로 군림할 적에는 그녀 앞에서 싫은 내색 한번 해 본 적이 없으면서 실뱅은 자신이 제 여동생을 쥐락펴락했다는 듯 으스대며 말을 이었다.

“레오노라 그 계집도 제 어미를 쏙 빼닮아 아주 발칙하더구나.”

“맞아요, 아빠! 모드, 레오노라가 너무너무 싫어! 정말 싫어요! 흐아앙!”

“그만 뚝 그쳐라, 모드. 이 애비가 다 생각이 있으니.”

모드를 아끼던 추기경 카라가 추문을 뒤집어쓰고 죽은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실뱅과 모드에게는 든든한 뒷배인 이아론 후작이 버티고 서 있었다.

“네 할아버지인 후작님께서 하나뿐인 친손주인 너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잘 알지 않느냐. 네가 크게 상심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황도에 올라오시겠단다.”

“저, 정말요? 그럼 레오노라를 혼쭐내 주시겠네요?”

“그렇고말고.”

실뱅은 눈을 반짝이는 모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님은 고귀한 혈통에 목숨을 거시는 분이질 않느냐. 그런 후작님의 눈에 사생아인 그 계집이 얼마나 볼품없겠니.”

“레오노라는 그냥 봐도 볼품없어요! 실낱같은 머리칼하며, 눈도 파란색인지 보라색인지 헷갈리는 게 괴상해요!”

레오노라는 제국 최초의 여자 제독이자 남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이디로 손꼽혔던 노엘을 닮아 여덟 살에 불과한 나이에도 이미 완성형 이목구비를 가진 미인이었지만, 모드는 그녀를 마치 괴물처럼 묘사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흥. 할아버지가 황도에 올라오시면 그 못생긴 코가 아주 납작하게 눌러지겠죠. 꼬시다!”

사실 모드는 조부인 이아론 후작과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제 아비의 말만 믿고 의기양양하게 방을 나섰다.

* * *

“…오랜만이네, 모드.”

나는 씩씩거리며 내 침실에 허락도 없이 들어선 모드를 무감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모드는 쁘띠 플뢰르 우승을 축하하는 의미로 운영 위원회 측이 열어 준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본선 이후로는 처음 본다.

‘오랜만에 봤다고 딱히 반갑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야?”

헨리에게 턱짓으로 축객령을 내리며 내뱉은 내 물음에 모드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며 천진하게 눈을 깜박인다.

“사촌인 네가 곤경에 처했다길래, 모드는 착한 언니니까 네가 걱정이 돼서 와 준 거야.”

나는 모드의 말에 금시초문이라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내가 무슨 곤경에 처했는데?”

“자카리 하차니아가 황도로 귀환했다는 소식 들었어.”

아, 자카리를 걸고넘어질 생각이군.

나는 흑랑의 부단장에게 실려 가는 와중에도 쿨쿨 자고 있던 장남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응. 그런데?”

“감히 역모를 꾸민 반역자로 지목이 되었다면서? 사교계가 들썩이고 있어. 모드는 그래서 널 걱정하고 있어.”

입으로는 걱정한다면서 모드의 눈은 기뻐 죽겠다는 듯 초롱초롱 빛이 나고 있었다.

입꼬리를 비죽 올린 아이가 짧게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아빠 말로는, 애초에 하차니아는 공작가의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볼품없는 가문이었으니까 딱히 실추될 명예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래.”

나는 모드의 언급에 아주 오랜만에 실뱅 이아론의 너구리 같은 얼굴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으음. 그래? 그렇구나.”

모드는 제 말에 별 반응을 해 주지 않는 내게 바짝 약이 올랐는지 얼굴까지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하나뿐인 공녀는 비천한 사생아에 장남은 멍청하게 반역이나 꿈꾸는 역적이니까!”

“…그런데 모드 너, 공작가에 입적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내, 내가 언제?!”

모드가 펄쩍 뛰며 부정했지만, 나는 그녀가 가스파르, 아니, 루카스를 마주할 때의 눈빛을 기억했다.

어린아이치고 지독하게 탐욕스러웠던 두 눈을 떠올린 나는 가스파르가 내가 태어나자마자 주문했다는 자주색 벨벳 소파에 등을 기대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황녀 전하의 생일 연회에서 외숙부가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모드 네가 하차니아가에 입적하는 걸 특별히 허락하겠노라고.”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갖은 생색을 다 내면서 말이지.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 하차니아가 볼품이 없다라…. 그런 한미한 가문에 왜 입양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네.”

실뱅과 모드의 말을 들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니 증인도 많았다.

그제야 황성에서 젠체하듯 자신이 나를 대신해 공녀가 되어 주겠네, 어쩌네 했던 자신의 말이 떠올랐는지 모드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오른다.

“황가에 충성해야 할 귀족을 대표하는 5대 귀족의 명예를 실추시킨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나는 발끈해 버럭 목청을 높이는 모드의 얼굴을 무심히 마주한 채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네 말대로 자카리 오라버니가 반역을 준비했다 치자.”

반나무늘보에 가까운 우리 집 장남이 반역이라는 귀찮은 짓을 꾸밀 리가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지만, 나는 모드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 아빠는 그 모반, 감히 꾸밀 수나 있대?”

실뱅은 나이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작가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임명되지도 못했다.

‘이아론 후작조차 제 아들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거지.’

나는 오죽하면 그 나이를 먹고도 사교계의 망나니라는 별칭을 달고 사는 실뱅을 떠올리며 혀를 끌끌 찼다.

“아니, 꿈꿀 수는 있겠어? 네 아빠는 작위도 군대도 재력도 없는 백수인데.”

우리 아빠랑 다르게.

내가 애써 삼킨 뒷말을 용케 알아들은 모드가 부르르 몸을 떨며 두 주먹을 움켜쥔다.

“너, 너어-! 이제 이아론 후작님이 황도에 올라오신다고 했어! 그럼 지금처럼 까불지 못할걸?!”

“이아론 후작 따위 백 명쯤 데려와도 하나도 안 무서워, 모드.”

사이코패스 여자 주인공 아이네스가 백 명이면 모를까.

나는 무심코 살아 있는 비둘기의 목을 꺾는 아이네스를 떠올리며 흠칫 몸을 떨다 모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거 알아? 아그네스 티에리가 피에르 이아론보다 사유 재산이 많다는 거.”

“뭐?! 그럴 리 없어! 후작가의 재산 규모를 네가 어떻게 안다고!”

“공식적으로 공표된 재산 규모 말이지? 그것도 하차니아 공작가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내가 숨긴 비자금을 합치면 반의반도 따라잡지 못할 테고.

나는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모드를 향해 방긋 웃어 보였다.

“모드, 반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자금력이 따라 줘야 해.”

그러니까 너랑 네 아빠는 하고 싶어도 못한단다.

“아, 마침 잘 왔어! 쁘띠 플뢰르의 티아라가 막 도착했는데 구경하고 갈래?”

공식적으로 차기 사교계의 꽃이라고 임명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쁘띠 플뢰르의 우승자에게는 황실에 소속된 장인이 만든 백금의 티아라가 하사되었다.

‘아티팩트가 아닌 게 아쉽지만, 다이아몬드와 핑크사파이어가 아낌없이 들어가 화려하긴 하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모드라면 갖고 싶어 눈이 뒤집혀질 디자인이긴 했다.

“무릎 꿇고 빌면 한 번쯤 써 보게 해 줄게. 어때?”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묻는 말에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던 모드의 얼굴이 아예 창백하게 식어 버린다.

“으읏, 됐어!!!”

쾅!

나는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는 모드의 뒷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다 비스듬히 고개를 꺾었다.

‘그나저나 이아론 후작이 황도로 올라온단 말이지.’

불륜녀 때문에 피 한 방울 안 섞인 실뱅과 노엘을 친자식처럼 키워 준 티에리를 버리고, 그레고르를 황위에 앉혀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 제 배만 불리고 있는 그 돼지 같은 노인네가.

“잘됐네.”

나는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며 움후후, 웃음 지었다.

내가 준비한 무대에 오를 또 한 명의 인물이 제 발로 황도에 걸어 들어오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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