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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106화 (106/486)

제106화

쁘띠 플뢰르는 제국 귀족이라고 해서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었다.

여덟 살 이상부터, 데뷔탕트를 치르는 15세 이하의 귀족 영애로 참가자 연령대에 제한을 두는데다 명시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수도인 바하무스 사교계에서 명망이 높은 귀부인이나 영향력이 있는 신관의 추천을 받은 여자아이들만이 참가했다.

‘그러니까 보통 수도 귀족의 자제들이나 참가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지.’

5대 귀족처럼 세월이 흐름에도 견고하게 권력을 지키는 가문들은 아니었지만, 수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문들이란 대개 정해져 있었다.

쁘띠 플뢰르는 그런 귀족가의 딸들이 하하호호 왕관을 돌려 쓰는 축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게 저런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야.’

하차니아는 로열스퀘어에 수도 저택을 가지고 있는 대귀족이었지만, 바하무스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가문은 아니었으니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 한다고 생각하겠지.’

수도 사교계와는 아무런 끈도 없는 내가 단순히 교황의 추천서만 믿고 쁘띠 플뢰르에 참가하려 하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일간특급 기사의 영향도 당연히 있을 거고.’

나는 마담 아그네스 살롱의 드레스가 탐이 나 나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들던 영애들이 멀찍이 떨어져 쥘부채만 흔들고 있는 모습을 흘깃하다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관심사라곤 돈과 권력밖에 없는 내게 차기 사교계의 꽃 자리가 중요할 리 없었다.

‘하지만 모드와 멜리사 왕녀를 사교계에서 완전히 내쫓아 버리는 건 필요한 일이니까.’

추기경 카라는 명색이 중앙 신전 소속의 신관이라 사교계의 귀족들에게 존경을 받긴 했어도 파티나 살롱을 드나들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멜리사와 모드 이아론을 동시에 제거하기에는 쁘띠 플뢰르 선발전이 제격이야.’

“영애, 쁘띠 플뢰르 선발전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면서요?”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내게 다가오는 다미아 백작가 차녀의 물음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저는 영애를 응원해요!”

나는 순하고 맑은 그녀의 동그란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 방긋 웃었다.

“고마워요.”

이제 막 수도에 올라온 미네 다미아는 내가 일전에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는 로렐라인 아르델의 오랜 친구였다.

‘수도와는 거리가 먼 남부 귀족조차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만큼 내가 가십거리가 된 모양이지.’

나는 미네의 걱정 어린 시선에 민망한 턱을 쓸며 아까부터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만 있는 쥘부채 무리를 돌아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성가시게 웅웅거리지 말고.”

자신들을 날벌레 취급하는 내 말에 울컥한 듯 나보다 한 뼘 정도 큰 여자아이가 불쑥 앞으로 튀어나온다.

트리스탄과 엇비슷한 적발을 자랑하는 아이는 스텔라 솔로아-발렌, 솔로아 공작가의 방계로 이번 대 쁘띠 플뢰르 후보 중 한 명이었다.

“영애가 수도에 오신 지 얼마 안 되셔서 모르시나 본데, 쁘띠 플뢰르는 수도 귀족들만이 참가하는 게 관례예요.”

“관례일 뿐이지 참가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는 거잖아요?”

“교황 성하께서 추천하셨다는 이유로 자격도 없는 영애가 우승하리란 보장도 없어요.”

“그건 쁘띠 플뢰르의 심사 위원분들이 평가할 문제지, 같은 후보에 불과한 스텔라 영애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말에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던 스텔라가 씩씩거리며 입술을 꾹 깨문다.

“마, 말로는 절대 지지 않는군요!”

쥘부채까지 탁 소리 나게 접은 탓에 드러난 그녀의 매끄러운 얼굴을 마주한 채 나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져 줘야 하나요?”

“모드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 영애, 은근히 사람을 무시하네요.”

대놓고 무시하는 스텔라보다는 은근하게 무시하는 내가 낫지 않나 싶었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대꾸 없이 드레스 안주머니에 넣은 원작책을 만지작거렸다.

“누가 부정으로 태어난 … 아니랄까 봐.”

푸쉬식.

벨루치의 시트린을 꾹 누르자마자 피어오르는 연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그러나 내 주머니 안에서만 피어오르는 먼지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텔라가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린 무례한 말에 놀란 사람들이 숨을 홉뜨고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으니까.

“영애! 말이 너무 심하시잖아요!”

벨루치의 마탄을 살피느라 고개를 숙였을 뿐인데 내가 상처라도 받았다고 생각한 미네가 화들짝 놀라 내 어깨를 쓸어내린다.

“됐어요. 지는 게 무서워서 벌벌 떠는 쥐새끼가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어.”

나는 다정한 미네 다미아의 손등을 툭툭 두드리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뭐라고요? 쥐, 쥐새끼?”

나는 내 말에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린 스텔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주먹에는 벨루치의 마탄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를 꾹 쥔 채였다.

“그래요, 쥐새끼.”

나는 분노로 파들파들 떠는 스텔라에게 바짝 붙어 향이 퍼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주먹으로 막고 있던 벨루치의 마탄, 그러니까 페로몬 향수를 그녀의 근처에만 살짝 흩뿌렸다.

“흣.”

순간 스텔라의 표정이 모호해진다.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는 건가?’

만약 사람에게 효과가 없다면 벨루치의 능력은 내게 큰 쓸모는 없었다.

디즈x 공주처럼 숲속 동물을 몰고 다니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원작 속 벨루치는 대단한 매력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빌런이었어.’

그녀는 쉽게 말하자면 현혹계 술사였다.

그 능력으로 사기꾼 노릇을 하는 바람에 여주인 아이네스에게 퇴치당하고 말았지만.

물론 지금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오페라 스타 자리에 오른 능력자였다.

“뭐, 뭐야. 왜 그렇게 보는 거예요?!”

자신을 빤히 들여다보는 내 시선이 기분이 나쁜지 스텔라가 내 어깨를 움켜잡으며 입술을 꾹 깨문다.

나는 페로몬을 뿌리기 전과 딱히 달라진 점이 없는, 아니, 더 우악스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스텔라의 얼굴에 실망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여자에게는 쓸모가 없는 건가? 아니면 사람에게는 안 먹히는 걸까.’

“귀엽게 생기면 단 줄 알아?! 단순히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해서 내가 쁘띠 플뢰르의 영광을 양보할 줄 아느냐고!”

나는 나를 툭 밀어낸 다음 휙 등을 돌려 빠르게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스텔라의 뒷모습을 얼이 빠진 채 지켜보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인데.’

트리스탄이 옛날에 저렇게 내게 틱틱대곤 했다.

‘속마음은 귀여워 죽겠다고 울부짖으면서도 말이야.’

아무래도 현혹된 사람에게 까칠하게 구는 건 집안 내력인 모양이었다.

쁘띠 플뢰르의 유력 후보인 스텔라 솔로아-발렌이 살롱의 연회장에서 퇴장한 직후, 살롱의 주인만이 드나들 수 있는 중앙 계단과 연결된 붉은 문이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오늘 자신을 초대한 카푸신 살롱의 주인이자 비밀 사교계 클럽을 운영하는 주인의 등장에 주목했다.

“제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여러분.”

고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여자는 나비를 본뜬 반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반쯤 드러난 턱선과 입매만으로도 대단한 미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정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정재계의 고위급 인사들만 초대받을 수 있는 카푸신 살롱의 비밀 사교계 클럽을 운영하는, 검은 사교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저 가면을 쓴 여자가 이본느 황비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본느 황비.

그녀는 황후가 없는 윌레닌 제국 황실의 안주인으로 선황녀 젠나일과 함께 황실을 이끄는 양대 산맥이었다.

‘원작에서는 아이네스를 괴롭히는 계모 역할이었지.’

단순히 <아.황.장>을 즐기는 독자였던 나라면 이본느 황비를 미워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를 마냥 싫어할 수는 없었다.

아이네스가 마냥 선한 주인공이 아니었으니 그녀라고 마냥 악한 계모가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계모가 전부 아이를 괴롭힐 거라는 것도 나쁜 편견이야. 티에리는… 티에리는 우리 엄마를 정말로 사랑했는걸.’

나는 아직도 티에리가 로켓에 넣은 노엘의 사진을 가슴 속에 품고 다니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잠에 든 줄 알고 착각할 때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누군가가 보고 싶다고 눈물짓는 밤이 있다는 것도.

“티에리 아그네스가 신인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모조리 뺏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혹시 들었나요?”

“네! 들었어요. 설마 ‘그’ 레이디 티에리가 표절을 할 줄이야. 엄격한 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것도 신인 디자이너의 드레스 디자인을 카피했대요. 제 권력을 이용해서요. 정말 비열한 짓이죠.”

“그런 사람이 만든 드레스를 쁘띠 플뢰르에 출전하겠다면서 당당하게 입고 다니다니, 레오노라 영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티에리가 얼마나 드레스를 사랑하는지, 내게 어울리면서도 아이인 내가 입고 돌아다니기 편한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했는지 알고 있는 나는 마치 나 들으라는 듯 수군거리는 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뭐라고-”

내가 날카롭게 입을 연 순간,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들만 살피던 이본느 황비가 단상에서 내려와 무리에게 접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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