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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91화 (91/486)

제91화

하차니아 공작가가 아티팩트 제작 및 공급에 손을 대기 시작한 이후 막대한 부를 쌓고 있다는 사실을 그레고르에게 전한 건 다름 아닌 가스파르의 장인 이아론 후작이었다.

‘제국의 돈을 쓸어 담고 있으면서 장인인 나를 모른 척해? 괘씸한지고.’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 반열에 오른 가스파르가 제게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떠올린 이아론 후작은 주먹을 질끈 쥔 채 상석에 앉은 그레고르를 올려다보았다.

“폐하, 하차니아가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던 아티팩트 공방의 건물이 흔적도 없이 무너진 듯합니다.”

이아론의 말에 그레고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뭣이라? 지금 짐에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전하는 것이냐? 아무도 위치를 모르던 아티팩트 공방이 브리넨 후작가의 흉가였다면서!”

“예.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그 후작저의 건물이 날아갔다고 합니다.”

“허. 기가 막힌 일이군. 원인은 찾았는가?”

“폭발의 흔적을 추적해 보았지만, 마탑과 황실 정보부에 등록되지 않은 마법사의 마나였습니다.”

동부의 마탑, 현자의 탑, 그리고 황가에서 관리하는 마법부에 등록된 마나를 샅샅이 훑어보았지만 후작저를 박살 낸 붉은 마나의 주인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마나인지 오러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희미한 흔적이었던지라… 송구하옵니다, 폐하.”

“이런 고얀…! 하차니아 공작이 벌인 짓이 틀림없다. 그 좀스러운 놈이 당연히 짐에게 진상해야 하는 아티팩트가 아까워 벌인 짓이 아니겠는가?”

그레고르는 과거 매양 겸손하고 제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가스파르를 꽤나 마음에 들어했지만, 요즘의 공작은 거슬리다못해 괘씸하기까지 했다.

“제랄드 아티팩트 공방은 제 딸이 가문의 대장장이와 함께 장난치듯 운영하는 소꿉놀이에 불과합니다.”

“설마 황실의 재정난이 아이 코묻은 돈까지 탐낼 정도입니까.”

하차니아에서 운영하는 아티팩트 공방의 규모가 꽤 커지고 있으니 황실에 무료로 제품을 상납하라는 그레고르의 말에, 하차니아 공작은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저따위 대답을 내놓았었다.

‘그래서 브리넨 후작저의 영지가 명목상 황가의 것임을 트집 잡아 공방 자체를 몰수하려고 했던 건데…!’

그레고르는 공중분해된 아티팩트들이 아까워 얇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차니아에게 기껏 뜯어낸 프리미에 평야는 그 직후 기근이 들어 애꿎은 황가의 돈만 깨지는 상황인지라 더 분했다.

“브리넨 후작저는 명실공히 황실 소유의 저택이니, 허락도 받지 않고 건물을 무너뜨린 죄를 물어야겠다.”

“하지만 폐하께서 브리넨 후작저 지하실에 하차니아가 운영하는 제랄드 공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을 공작은 몰랐을 텐데요. 게다가 추적한 마나는 가스파르 공작의 검은 오러가 아니었습니다.”

‘멍청한 새끼.’

그레고르의 생떼와 같은 말에 이아론은 한숨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속내를 숨긴 채 입안의 혀처럼 굴며 황제를 설득했다.

“증거도 없이 공작가를 추궁하면 황실의 명예만 실추될 뿐이옵니다, 폐하.”

“빌어먹을. 그렇다면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하차니아가 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사실을 그대는 기억해야 할 것이야.”

“예, 폐하! 건방진 하차니아 공작가의 태도, 오직 폐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자부하는 이 이아론 후작이 반드시 기억하겠나이다.”

공손하게 읍한 이아론은 이보다 더 충성스러운 신하는 없을 거라는 듯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 짐은 늘 공을 믿고 있네.”

그레고르의 말에 이아론은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그가 루카스를 밀어내고 그레고르를 황위에 앉히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루카스 황자는 이놈처럼 휘두르기 쉬운 놈이 아니었어. 그레고르가 황제가 된 게 천만다행이지.’

그레고르가 황제위에 앉은 이후, 이아론이 황실 몰래 착복한 재산은 황가의 사유 재산과도 견줄 만했다.

* * *

멜리사 왕녀가 준비한 파티는 성대하다못해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로얄스퀘어 중앙에 위치한 저택의 외간을 슥 둘러보며 마차에서 내린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돈 엄청 썼겠는데?’

연분홍빛 저택 벽에는 야광주가 알알이 장식되어 있어 왕녀의 정원은 어스름한 저녁인데도 한낮처럼 밝았다.

“왔군요.”

하차니아의 마차를 알아본 왕녀가 여왕의 티아라 같이 화려한 루비로 장식한 관을 쓱 들어 올리며 나를 알은체한다.

“안녕하세요, 왕녀님.”

그 누구에게도 화려함으로 질 수 없다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왕녀와 달리 오늘의 나는 수수한 감람색 벨벳 원피스 차림이었다.

루카스의 몸을 찾기 위해 저택을 몰래 돌아다녀야 하는데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게 없었으니까.

“…오늘은 공녀 나이에 어울리는 얌전한 옷을 입고 왔네요.”

그런 내 차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멜리사가 생긋 웃으며 클로슈를 뒤집어쓴 내 머리를 쓱 쓰다듬는다.

“공녀 또래 아이들은 2층 소응접실에 모여 있으니 올라가 봐요.”

지난번 공작가에서 열었던 연회에서 내가 소응접실까지 꾸며 놨던 게 엄청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루카스를 숨겨 놨던 침실도 2층이었지?’

나는 결국 2층까지 개방했다는 멜리사의 말에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택에서 연회를 열 계획을 세웠으니 루카스의 몸을 다른 곳에 옮겨 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지만, 나는 멜리사가 루카스의 몸을 먼 곳에 숨겼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루카스와 떨어지는 일을 무척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

오데트의 말에 따르면 멜리사 왕녀는 수도 사교계에 데뷔한 이후 단 한 번도 황도를 벗어난 일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황도를 그만큼 사랑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닐걸.’

그녀가 수도 사교계에 데뷔한 직후 루카스가 실종되었으니까.

‘루카스와 붙어 있고 싶어서 황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거야.’

정말 혀를 내두를 만한 집착이었다.

“카리나! 오랜만이에요.”

왕녀의 말에 따라 2층 소응접실에 당도한 나는 또래 영애들과 섞이지 못하고 구석에 웅크려있는 카리나에게 다가섰다.

“리, 리니….”

나를 발견한 카리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걸까.’

나는 그녀의 둥근 얼굴선을 천천히 뜯어보다 눈매를 휘었다.

“잘 지냈어요? 상처는 다 나은….”

멍을 없애라고 움베르토 제약 제품에서도 최상 등급의 연고를 선물했던 나는 여전히 얼룩덜룩한 카리나의 손목을 발견하고 이를 악물었다.

‘전보다 더 색이 진해. 이건 새로 생긴 거야.’

내 굳은 얼굴에 당황한 카리나가 제 얇은 손목을 등 뒤로 숨기며 베시시 웃는다.

“저, 정말 잘 지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보고 싶었어요, 카리나.”

내 말에 생전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듯 휘둥그레 커진 카리나의 연분홍색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저, 저도요…. 저도, 리니 엄청 보고 싶었어요!”

‘으으. 귀여워.’

그래,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이네스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의 팔다리를 무처럼 썰어 버리는 청금의 기사일 리가 없다.

에녹도 귀엽고 실비도 나름 귀여운 면이 있었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녀의 정석 같은 카리나의 모습은 내 심장을 쿵 치고 들어올 만큼 귀여웠다.

“저번에 카리나가 마음에 들어했던 쿠키요. 공작성 주방장에게 부탁해서 준비해 놨으니까 다음에 또 놀러와요.”

나는 오늘도 어김 없이 내게 몰려드는 영애들까지 물린 채 카리나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삐빅. 삐비빅.

그렇게 파티가 무르익을 즈음, 아까 멜리사에게 인사하며 붙여 놓은 위치 추적기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하실? 파티가 한창인데 주최자가 왜 지하실로 향하는 거지?’

멜리사의 위치가 점점 연회실과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비스듬히 턱을 기울였다.

‘설마 루카스를 보러 가는 건가?’

초저녁에 시작한 파티가 이제 막 절정에 오를 시점인 데다 지금 멜리사의 저택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무리 미친 여자라도 지금 루카스를 보러 갈까 싶지만….’

그녀의 광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영애들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소파에서 엉덩이를 뗐다.

“카리나, 나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네!”

내 물음에 얌전히 대답한 카리나가 인형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귀여워라!”

나는 그런 카리나의 모습이 너무 깜찍해서 그녀가 나보다 연상이라는 사실도 잊고 뺨을 매만지고 말았다.

“리, 리니가 훨씬 귀여워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히히. 금방 다녀올게요.”

나는 부끄러워하는 카리나를 뒤로한 채 주머니 안에서 삐빅, 삐비빅 작게 울리는 추적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멜리사에게 달아 놓은 추적기와 쌍을 이루는 아티팩트가 나를 안내한 곳은 내 예상대로 저택의 지하실이었다.

‘와인이나 고기를 보관하는 저장고일 텐데 왜 꽃 냄새가 나는 거지?’

열린 문틈 사이로 진동하는 꽃향기에 인상을 찡그리며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가느다란 신음이 바깥으로 새어 나온다.

“으음, 루카스. 당신과 6시간이나 떨어져 있으려니 너무 그리워서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

멜리사는 이 구역의 미친x 정도가 아니라 그냥 이 세계의 미친x이었다.

‘히이익.’

나는 생화가 가득 메운 관 안에 누운 루카스의 뺨에 입을 맞추는 멜리사를 발견하고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파삭.

내 발치에 흑장미 봉오리가 떨어져 있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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