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78화 (78/486)

제78화

* * *

‘드디어 내 마나통이 온다.’

‘드디어 내 마나통이 온다.’

‘드디어 내 마나통이 온다.’

‘드디어 내 마나통이 온다.’

‘드디어 내 마나통이 온다.’

‘내 마나통.’

‘내 마나통.’

‘내 마나통.’

‘내 마나통.’

‘내 마나통.’

* * *

나는 책 한 페이지를 가득 덮은 아이네스의 생각에 소름이 끼쳐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아직도, 아직까지도 내 마나를 탐내고 있는 거였어?’

끊임없이 북부를 탐색하려고 드는 신전과 달리 아이네스는 카멜리아를 보낸 이후로는 하차니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 나에 대해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다.

“…나, 황궁 가도 되는 걸까.”

내 마나 그릇을 빼앗기 위해 호시탐탐 눈을 번뜩이고 있을 아이네스를 떠올린 나는 닭살이 오소소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루카스의 몸을 찾아야 하는걸.’

위험하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비를 철저히 하고 들어가는 수밖에.

“셀리아, 황성 연회 준비는 다 했어?”

연회에는 룰루와 랄라 대신 셀리아를 데리고 들어가기로 했다.

“네!”

내 물음에 씩씩하게 대답한 셀리아가 제 치맛자락을 대문처럼 열어젖힌다.

“으응, 잘했네.”

나는 그녀의 드레스 안자락을 빼곡히 채워 넣은 날붙이의 향연에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투명화 아티팩트도 챙겼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제랄드가 제작한 아티팩트 중 가장 쓸모 있는 몇몇 개는 시중에 풀지 않았다.

‘결계까지 속이는 투명화 천은 아무리 마나가 방대한 나라도 꽤 고생해 가면서 만들었지.’

물론 한 달 동안 한두 시간 쪽잠을 자 가며 설계도에 매달린 제랄드만큼은 아니었지만.

“당연하죠. 황성에 이렇게 무장하고 들어가는 거 들키면 안 되잖아요.”

내 물음에 이제 이런 짓에는 이골이 났다는 듯 셀리아가 투명화 천으로 만든 드레스 자락을 매만지며 씨익 웃는다.

“제가 아가씨 호위를 맡은 지도 벌써 5년이에요. 몰래 무기 숨기고 들어가서 싹 쓸어버리는 건 완전 제 전문이 됐다고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막 하네.’

그냥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아끔, 비즈니스적인 필요에 의해서! 무력이 필요할 때나 대동하고 다녔을 뿐인데!

물론 백랑의 기사만큼이나 강하면서도 도덕성은 0에 수렴하는 그녀는 내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인재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 무기도 챙겨 가야지.’

제랄드가 열과 성을 다해 제작한 아티팩트 중 하나인 무한대 토끼 가방에 바주카포와 카빈 소총까지 챙겨 넣고서야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뭐, 히스까지 데리고 갈 테니까 여차하면 황성 날리고 튀어 버리자.’

히스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지만 한때 인류 최강의 병기라고 불렸던 소년왕이었다.

설사 내가 황궁을 날려 버린다고 해도 황실은 아직 브리넨 구휼원을 박살 낸 범인을 잡지 못했으니 이번에도 나를 추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가씨, 연회에 가실 준비를 시작하실 시간입니다.”

“음? 나 준비 거의 끝났는데? 드레스만 갈아입으면 돼.”

문밖에서 들려오는 로제의 목소리에 휘둥그레 눈을 뜬 나는 책장에 걸려 있던 라일락빛 드레스를 품에 안았다.

‘아침에 씻었으니까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 거 아닌가.’

성인이었다면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겠지만, 나는 아직 아이였으니까.

“어맛, 호호호! 아가씨, 아가씨는 지금 황도에 계세요.”

나는 내 말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로제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으악! 아파, 로제! 살살해 줘!”

“어머낫, 호호호호! 황도에서는 원래 이렇게 피부 관리를 한답니다!”

세 시간 뒤 쯤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 * *

수도 저택의 하녀들에게 붙들려 때 빼고 광을 낸 나는 한껏 부풀려서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나풀나풀 흔들며 계단을 내려갔다.

드레스의 리본에 엮어 둔 것처럼, 제비꽃으로 장식한 땋은 머리 사이사이에서도 은은한 향기가 배어 나온다.

“레오노라.”

“공녀.”

계단 밑에서 기다리며 서 있던 루카스와 히스가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오늘 정말-”

“예쁘지? 나도 알아. 예쁠 수밖에 없을 거야.”

장장 세 시간이나 걸린 성장(盛裝)이었으니 안 예쁘면 억울할 수준이었다.

“네. 예쁩니다.”

내 말에 기가 막히다는 듯 말을 삼키는 루카스와 달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히스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인다.

“더워? 확실히 황도가 북부보다 덥긴 해.”

나는 살짝 붉어진 소년의 귓불을 흘긋하며 양손의 꽃처럼 루카스와 히스에게 팔짱을 꼈다.

“오늘 우리 셋이 입은 옷, 전부 다 마담 아그네스가 디자인한 옷이니까 되도록이면 잘 보이는 곳에 서 있어. 홍보되게.”

내가 오늘 파트너로 괜히 예쁘장한 히스를 고른 게 아니었다.

“샹들리에 아래라든지, 중앙 기둥 오른편이라든지, 아! 여기도 좋겠다.”

자르파라가 거금을 들여 구해 준 황성 설계도를 손에 든 채 포인트를 착착 짚은 나는 도통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듯 보이는 루카스를 향해 새초롬한 눈매를 치켜떴다.

“내 말 듣고 있어요, 아빠? 어디어디 서 있으라는 거 외웠어?”

“어.”

“정말? 그럼 말해 봐요!”

“중앙 난간과 제단 아래, 발코니 앞 소파에 앉아 있으면 된다는 거 아닌가.”

‘아, 그렇지. 얘 황족이었지.’

나는 설계도를 보지 않아도 사람들 눈에 잘 띌 만한 포인트를 읊어 내는 루카스의 대답에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다 어깨를 으쓱했다.

“으응. 맞아요. 누가 옷 어디서 샀냐고 하면 꼭 마담 아그네스 살롱의 것이라고 대답해 주고.”

그러라고 오늘 루카스를 황성 연회에 초대된 아빠들 중에 가장 멋지게 꾸며 달라고 하녀들에게 부탁해 놓은 거니까.

“네! 아가씨를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열과 성의가 가득했던 대답대로 로제와 아라비아타는 셔츠와 면바지만 입은 채 한량 백수처럼 수도 저택을 돌아다니던 루카스를 붙잡아 근사한 왕자님으로 탈바꿈해 놓았다.

‘뭐, 원래 황자였으니까 왕자 맞지만.’

나는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결 좋은 검은 머리를 뒤로 묶은 루카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움후후, 음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빠, 오늘 아주 잘생겼네요.”

“…고맙다.”

내 칭찬에 루카스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히스도 오늘 아주 예뻐. 정말 제국 최고의 미인 같아.”

“감사합니다.”

내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는 히스는 부스스했던 진회색 머리를 뒤로 넘겨 오늘만큼은 부내가 철철 흐르는 귀공자처럼 보였다.

‘히히. 둘 다 검은색이 아주 귀신같이 잘 받는단 말이야.’

내 눈 색과 맞춘 드레스색이 연한 보라빛이었기 때문에 칠흑같이 어두운 루카스와 히스의 옷이 더더욱 강조되었다.

‘하지만 칼라와 소매를 장식한 실이 무려 금사라고!’

심플하지만 매우 고가로 판매될 예정인 남성복이 오늘 연회의 메인 홍보 상품이었다.

‘모델료도 안 쓰고 가게를 홍보할 수 있다니, 완전 꿀이지.’

자고로 로판 사교계란 숨은 판촉의 장이 아니겠는가.

‘제랄드의 아티팩트랑 움베르토 제약도 홍보하고 와야지.’

자르파라 상단이 하차니아를 중심으로 한 북부는 꽉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아직 수도까지는 명성이 닿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덩치를 불려야 해.’

유행의 선두를 달리는 건 늘 황성이 있는 수도 바하무스였으니까.

도로록 머리를 굴려 오늘 홍보할 제품 목록을 정리한 나는 손을 탁탁 턴 후 에스코트도 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자, 가 보자고!”

내 씩씩한 말에 루카스와 히스가 연이어 마차에 오른다.

셀리아까지 마차에 탑승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당차게 발을 굴러 마차를 출발시켰다.

‘와라, 아이네스!’

따지고 보면 내가 가는 거지만, 어쨌든!

‘나는 너한테도 내 아티팩트랑 드레스를 아주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이야, 이 사이코 원작 여주야!’

* * *

하지만 막상 도착한 황성은 휑하기 그지없었다.

‘엥? 내가 꿈꿔 온 판촉의 장 어디 갔어?’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찬 연회장 어디 있냐고!

사람이 있어야 드레스를 홍보하든 말든 할 거 아닌가.

나는 텅텅 빈 연회장을 공허하게 울리는 악단의 음악소리에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황녀님의 생신 연회에 초대된 게스트가 이게 다인가요?”

당황한 내 물음에 우리를 맞이한 시종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네임카드가 줄줄이 남은 테이블을 가리킨다.

“아뇨. 초대된 분들은 저 네임카드의 개수만큼이나 많습니다만….”

“다만?”

“공사가 다망하여 참석하지 못한다는 의사를 밝히신 분들이 꽤 많습니다.”

시종의 민망한 목소리에 나는 그제야 폭군 그레고르의 평판이 원작 초반에 바닥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레고르 이 새끼, 황제 주제에 수도 사교계에서 왕따구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