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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71화 (71/486)

제71화

“안녕하세요, 공작가 여러분들. 제 이름은 카멜리아 모네랍니다.”

이아론 후작의 서신을 들고 갑작스레 공작가에 쳐들어온 여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아론 후작님의 수석 보좌를 맡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이아론 후작가에서 헨리의 역할을 맡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우리 헨리는 눈 밑이 시커멓게 죽을 정도로 바쁜데?’

나는 매일 공작가의 막중한 업무를 쳐 내느라 반 시체 꼴로 돌아다니는 헨리를 힐끔한 다음 여자를 올려다봤다.

반지르르 빛나는 달걀 같은 피부에서는 은은한 광채까지 뿜어져 나온다.

절대로 과로를 하는 사람의 몰골은 아니었다.

“네가 공작가에는 무슨 일이냐.”

여자를 관찰하기 위해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나를 등 뒤로 숨기며 티에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어멋, 간드러진 탄성을 내지른 카멜리아는 후후 웃으며 대답했다.

“후작님께서 공작 부인의 부재 탓에 공작가에 일손이 부족할 거라고 염려하셔서요. 내성 관리에 작은 보탬이나마 되기 위해 제가 파견되었어요.”

“나는 그런 요청을 한 기억이 없는데.”

카멜리아의 설명에 루카스가 무뚝뚝하게 입을 연다. 바빠 죽겠는데 후작가에서 사람이 왔다고 일의 흐름이 끊긴 탓이다.

짜증 서린 그의 눈빛에 헨리가 허둥지둥 앞으로 나섰다.

“각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공작가에서는 후작님께 인력을 보내 달라 청한 적이 없습니다만.”

“어머. 이아론 후작가와 하차니아 공작가가 어디 꼭 말로 해야만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이였나요?”

당연한 거 아닌가.

‘말 안 해도 알면 독심술사거나 세작을 부린 거겠지.’

나를 포함한 모든 공작가의 일원들이 카멜리아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후작가에서 보내온 도움의 손길을 문전박대할 수는 없는 터라 그녀를 성안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카멜리아 모네는 자신을 노려보는 티에리의 손등이 새하얗게 질린 것을 발견하고 승리감에 흠뻑 젖었다.

로라 지반니, 돌로레스 마르시에, 요한나 엘레인.

모두 카멜리아에게 남편을 빼앗긴 여자이자 그녀보다 예쁘거나, 집안이 좋거나, 인품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중 단연은 아그네스 티에리, 그 엄격하고 고상한 황실에서 이네스 황후 다음으로 우아하다고 정평이 났던 그녀였다.

‘저 고고한 여자를 내가 이겼어!’

그런 여자가 제 발아래 깔렸다는 생각에 카멜리아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래. 이 쾌감이 내 인생의 낙이나 마찬가지야.’

평범한 연애는 카멜리아에게 더는 아무런 감흥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일부러 공작가에 방문하기 전에 후작과 시간을 보낸 카멜리아는 후작이 선물한 이아론 후작가의 가보인 목걸이를 자랑하기 위해 부러 노출이 많은 드레스를 골라 입고 저녁 만찬장에 들어섰다.

‘보좌관이 입기엔 조금 과한 드레스지만, 어차피 내 품행을 지적할 공작 부인도 없는걸.’

카멜리아는 공석인 공작 부인 자리를 노리기 위해 공작가에 파견된 첩자나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실종된 가스파르는 장애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네스의 서신을 떠올리며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하차니아 공작을 유혹해 봐. 이아론 후작처럼 네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구슬려 보라고.

-어째서죠, 황녀님? 하차니아 공작가는 어차피 가세가 기울고 있는 가문 아니었나요?

-내 마나통이 공작가에 처박혀 있으니까! 세작 따위가 황녀의 명에 감히 의문을 표하지 마!

잔뜩 약이 올랐는지 아이네스의 필치에는 짜증이 서려 있었다.

카멜리아는 앞뒤 잘라먹은 아이네스의 화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푸른 독수리로서 명을 받들 황족을 그녀로 선택했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그나저나 마나통이 뭐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공작을 유혹해 마나통을 황실로 보내도록 설득하는 게 카멜리아의 임무였다.

‘레이디 티에리를 자극하라는 명은 없었지만, 이건 내 삶의 낙이니까.’

자신에게 남편을 빼앗긴 여자를 약 올리는 건 카멜리아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녀는 히죽 웃으며 티에리의 맞은편에 안착했다.

“티에리 님, 오랜만에 얼굴을 뵈니까 너무 반갑네요.”

카멜리아에게 넘어간 이아론 후작에게 이혼을 강요당한 티에리가 그녀를 반길 리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티에리가 서늘한 눈을 들어 카멜리아를 직시한다.

“내게 말을 걸어도 좋다 허한 적이 없다.”

작위와 봉토가 있는 귀족인 티에리는 당연히 일개 행정관인 카멜리아보다 위였다.

‘하지만 나는 후작의 애첩이지.’

카멜리아는 생긋 웃으며 이아론 후작가의 인장이 끼워진 손가락을 내밀었다.

“공작가에 머무는 동안 제가 구박이라도 당할까 걱정이 되셨는지 후작님께서 제게 인장을 맡기셨어요.”

이아론 후작이 카멜리아에게 무려 후작 대리의 권한을 맡겼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당신보다 내가 위라는 뜻이지.’

일그러진 티에리의 얼굴을 마주한 카멜리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자에 미춋나?”

옆에서 작게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옹알이만 아니었더라면, 카멜리아는 만찬이 끝날 때까지도 기분이 좋았으리라.

* * *

나는 카멜리아의 손가락에 끼워진 후작가의 인장에 기함했다.

‘아무리 여자에 환장한다고 해도 그렇지, 돈 거 아닌가?’

후작 부인으로 앉히지도 못할 평민 애인에게 가문의 인장을 덜컥 맡기다니.

‘미친놈일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한 말을 들은 듯 어깨를 움찔하는 카멜리아를 흘깃했다.

‘아주 쌍으로 정신이 나갔구먼.’

제 늦둥이 딸과 연치가 비슷한 여자와 바람이 나서 피도 섞이지 않은 딸을 키워 준 부인을 내쫓은 후작이나, 그런 주제에 뻔뻔한 낯으로 티에리의 약을 올리는 상간녀 카멜리아나.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티에리가 후작과 이혼해서 차라리 다행이야.’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나는 내 취향의 템포로 적당히 구워진 송아지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크, 크흠. 어쨌든, 후작님께선 매우 잘 지내고 계세요. 후후, 여전히 정정하시고요. 궁금하실까 봐-”

아무도 묻지 않은 후작의 안부를 알려 준 카멜리아는 은근슬쩍 드러난 제 목을 쓸어내리며 제 손에 들어온 이아론 후작가의 가보를 자랑했다.

“전혀 궁금하지 않으니 입 열 필요 없네.”

그러자 티에리가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의 말을 끊는다.

‘아예 입을 닥치라고 하고 싶겠지만, 후작 대리 자격으로 왔으니 명령을 할 수도 없게 생겼네.’

“어머. 그간 후작님과 살아오신 정이 있는데 너무 매정하신 거 아닌가요?”

티에리와 카멜리아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려던 나는 자꾸만 귀에 꽂히는 카멜리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미간을 좁혔다.

‘매정하긴 누가 매정해?’

그럼 바람 피워서 이혼을 강요한 전남편의 영달을 바라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아휴. 그러니까 후작님이 레이디 티에리에게 정이 떨어지신 거예요.”

“…….”

“혹시나 다음에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실까 봐 제가 친절히 말씀드리는 거랍니다.”

후작을 뒤에 업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건가.

나는 티에리를 자극하며 계속해서 입을 놀리는 카멜리아의 만행에 쩌억 턱을 벌렸다.

“나는 더는 결혼 생각이 없네, 카멜리아.”

“못 하실 것 같긴 해요. 그러니까 하실 수 있다면요.”

“남자가 달고 다니는 보석 브로치 하나 갈아치웠다고 아주 신이 났군. 타인의 호의로 얻어 낸 권력의 부스러기가 오래갈 줄 아는가.”

카멜리아의 등장에 평정을 잃었던 것도 잠시, 곧 제 모습을 되찾은 티에리는 냉정한 얼굴로 카멜리아를 향해 끌끌 혀를 찼다.

“브, 브로치요? 저를 지금 물건에 비교하신 건가요?! 게다가 저와 후작님의 사랑을 모욕까지 하시고요!”

“그대가 나를 내쫓고 얻어 낸 지위는 어디까지나 후작의 보좌관, 공식적인 지위는 코르티잔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게, 카멜리아.”

“…….”

“그래. 코르티잔 출신의 그대를 그렇게 귀애하는 후작이 도대체 언제 결혼식을 올리자고 하던가?”

티에리의 날카로운 질문에 카멜리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그녀가 침묵 끝에 악에 받쳐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인다.

“너무 천박하신 거 아닌가요? 아무리 질투가 난다고 해도 출신을 가지고 저를 비하하시다니요.”

뭐라고? 처언박?

나는 카멜리아의 단어 선택에 휘둥그레 눈을 떴다.

“게다가 티에리 님이 후작님과 이혼하게 되신 건, 남편 간수 못 한 티에리 님 잘못도 있잖아요.”

“이거 완죤 미찐뇬이었네.”

“뭐, 뭐라고?”

카멜리아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욕설을 중얼거린 나는 스테이크 옆에 놓인 스파게티를 한 움큼 움켜잡았다.

“이 도릉뇬!!!”

촤악-!

토마토를 큼지막하게 썰어 만든 소스가 잔뜩 버무려진 스파게티 면이 카멜리아의 뺨에 시원한 소리를 내며 달라붙는다.

“꺄악-!!! 이게 무슨 짓이야!!!”

“엉니 몸에 도롱뇽이 붙어 이써여~!!! 더러버~!!!”

찰싹, 찰싹!

스파게티를 양손으로 움켜잡은 나는 망설임 없이 카멜리아에게 스파게티 싸다구를 후려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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