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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62화 (62/486)

제62화

루카스가 내 보물섬 나들이에 동참하는 바람에 내 노다지섬 방문은 하차니아 공작가의 가족 여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에녹이 어떻게 아빠와 나만 여행을 갈 수 있냐고 빼액빼액 울어 대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실비까지 데리고 영지를 나서버렸잖아.’

훈련에 더 집중해야 하는데. 하여간 군기가 빠져 가지고, 이놈 자식들.

“아효.”

“리니, 리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쉬는지 전혀 모르는 에녹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창밖을 가리킨다.

“밖에 봐 봐. 여기부터는 솔로아의 땅이야.”

에녹을 따라 달리는 마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나는 황야 저편으로 사라진 하차니아 공작성을 확인한 뒤 끝없이 펼쳐진 평야로 시선을 돌렸다.

‘곧 트리스탄이 다스리게 될 땅인가.’

솔로아는 제국 내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가문이었다.

“트리쯔딴, 잘 지내구 인게찌?”

“내 알 바야? 그 자식이 잘 지내든 말든.”

내가 문득 떠오른 솔로아 소공작의 이름을 입에 담자, 에녹이 살짝 인상을 찡그린다.

‘원래 트리스탄 엄청 좋아하지 않았나.’

원작의 에녹은 남주인 트리스탄을 너무 존경해서 적랑까지 따라 들어가는 엑스트라였다.

“웅? 에노끄, 트리쯔딴 친구자나. 시러져써?”

설마 검술 대회 때문에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다 못해 상대방이 싫어진 걸까.

‘물론 트리스탄이 좀 재수 없는 면모가 없지 않아 있지.’

에녹의 날카로운 반응이 의아해 고개를 갸웃하는데 입만 삐죽빼죽 내밀던 막내가 느릿느릿 입을 연다.

“딱히 트리스탄이 싫어진 건 아닌데….”

“웅.”

“리니 네가 그 자식 생각해 주는 건 싫어. 네 기사는 내가 하고 싶으니까.”

트리스탄이든 에녹이든 실비든, 왜 이렇게 나에게 기사의 맹세를 바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걸까.

“니니 기사 할라몬 엄-쩡 강해야 해.”

어찌 됐든 에녹을 자극할 기회라는 생각에 나는 두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리며 입을 열었다.

“이-따만큼.”

“응! 나 엄청 강해질 거야!”

나는 씩씩한 삼남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 히죽 웃었다.

“나도.”

그러자 우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실비가 슬그머니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난 이미 강하다.”

나는 실비의 말을 잇는 루카스의 뜬금없는 자랑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 *

“아이고, 공작님께서 자제분들과 함께 저희 호텔을 방문해 주시다니 크나큰 영광입니다요! 제가 직접 객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제국 서부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호텔로 유명이 자자한 사계절 호텔의 지배인은 버선발로 달려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제일 비싼 스위트룸을 예약했기 때문이겠지.’

듣기만 해도 헉 소리가 날 만큼 비싼 객실이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사계절 호텔의 로열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왜냐하면, 난 이제 엄청난 부자가 될 테니까!’

아크레아의 유물들이 지닌 천문학적 가치는 반지 하나를 팔아도 고성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움후후.”

호텔 정문부터 계단까지 깔린 붉은 융단을 살포시 밟은 나는 자꾸만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시시 미소 지었다.

‘비싼 호텔이라 그런지 카펫도 푹신하구먼.’

하룻밤에 3천 골드짜리 객실에서 호캉스라니, 공무원-특수 부대 요원-이었던 전생의 나는 꿈도 꾸지 못했던 호사였다.

“리니, 그렇게 좋아?”

“웅! 넘 조아!”

나는 에녹의 물음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화려한 순금으로 장식한 방문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퐁실퐁실한 머리를 높이 묶은 나를 귀엽다는 듯 쓰다듬은 에녹이 활짝 웃으며 실비를 돌아본다.

“리니가 나랑 여행하는 게 너무 좋대, 형. 들었어?”

“나랑 여행하는 게 좋다고 한 거다.”

아니, 나 너네랑 여행하는 게 좋다고 한 적 자체가 없는데.

나는 또 자기들끼리 옥신각신 다투려는 실비와 에녹 사이에 끼어들며 아효효,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니니는 다 조아. 니니는 곤평하니까.” (리니는 다 좋아. 리니는 공평하니까.)

여기서 또 너네랑 여행하는 게 좋아서 들뜬 게 아니라고 설명하면 둘 다 삐치고 말 터였다.

“공평하게 셋 다 좋다는 말인가.”

그러자 내 설명에 불쑥 끼어든 루카스가 날카롭게 질문한다.

“웅?”

얜 또 왜 이러나, 싶었지만 나는 속을 알 수 없는 검붉은 눈을 들여다보며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하지만 내가 제일 든든하긴 하겠지. 내가 가장 강하니까.”

내 정수리 위로 툭 떨어지는 루카스의 자랑에 에녹이 기가 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형, 아빠가 원래 저렇게 유치했나?”

“요즘 유독 유치하게 구시는군.”

형제들은 언제 다퉜냐는 양 나란히 어깨를 맞댄 채 루카스의 흉을 보며 스위트룸에 들어섰다.

“니니 방은 요거!”

사계절 호텔에서 가장 비싼 객실답게 로열 스위트룸은 무려 거실 딸린 방이 네 개나 있었다.

그중 가장 넓고 화려해 보이는 방을 내가 콕 집자 내 방과 맞닿은 방에 에녹이 대뜸 제 짐을 집어던진다.

“그럼 난 이 방!”

“아니, 넌 저 방을 써라.”

그러자 루카스가 손끝으로 내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방을 가리켰다.

“싫어요! 왜요!”

“공녀가 가장 취약체이니 가장 강한 내가 붙어 있는 게 맞다.”

“…네? 취약, 뭐요?”

취약체니 뭐니, 나는 평소 가스파르가 쓰지 않는 단어만 쏙쏙 골라 입에 담는 루카스의 뒷 허벅지를 보이지 않게 꼬집으며 에녹을 향해 웃어 보였다.

“에노끄! 니니랑 놀러 가자!”

“어, 좋아! 나랑만?”

“웅. 아반니랑 시삐는 쏘로아에 가따 와야 대.”

남의 영지에 방문해 놓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아싸아! 신난다-!”

나랑 둘이서만 놀러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에녹은 제 아버지-인 척하는 생판 남-의 이상 행동은 홀랑 잊어버리고 방방 뛰다 나를 안아 들었다.

“어서 가자, 리니!”

“니니 가따 오께.”

나는 그런 삼남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실비와 루카스-얘는 왜 부러워하는지 모르겠다.-를 향해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 * *

“우와아.”

딱히 누가 내 행동반경에 제한을 둔 적은 없지만, 태어난 지 겨우 3년밖에 지나지 않은 나는 공작성을 벗어날 일이 많지 않았다.

“요기 엄-쩡 널버, 에노끄!”

난생 처음 방문한 광장의 활발함에 나는 침이 뚝뚝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커다랗게 입을 벌렸다.

‘맛있는 냄새.’

시계탑과 분수를 둘러싸듯 지어진 광장은 오색찬란한 길거리 음식의 향연으로 반짝반짝했다.

아, 이게 바로 로판의 맛이지. 길거리에서는 무조건 꼬치구이를 팔아야지.

건물과 배경은 유럽 한복판에 떨어진 듯 서구적일지라도 길거리 음식은 K의 냄새가 나는 것이 로판 세계였다.

나는 침샘을 자극하는 익숙한 데리야끼 닭꼬치 냄새에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니니 배구파.”

“그래? 뭐 먹고 싶어?! 내가 다 사 줄게!”

나는 오랜만에, 아니 생전 처음으로 오빠처럼 보이는 에녹의 모습에 물개박수를 쳤다.

“니니 닥꼬치랑 솜사땅이랑 오진어 버떠구이랑 만두 머글래.”

“좋아, 사러 가자!”

속사포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읊은 나는 에녹의 손을 잡고 뽀쨕뽀쨕 걸음을 움직였다.

“우으으. 마시써.”

명색이 5대 귀족인지라 공작가 요리사 롬베르디의 솜씨가 매우 뛰어나긴 했지만, 길거리 음식의 자극적인 맛은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에노끄 채고야.”

눈물이 핑 고인 눈으로 감사를 표하자 막내가 좋아 죽겠다는 듯 헤벌쭉 입을 벌린다.

“그렇지? 역시 내가 최고지? 실비랑 아빠보다도?”

“우웅, 웅! 에노끄가 채고야!”

원래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이 제일 착한 사람인 법이다.

‘엑스트라로 태어나게 했다고 욕해서 미안해!’

로판 세계 최고! 책 빙의 만만세!

허겁지겁 닭꼬치를 뜯어먹은 나는 존재하는지도 모를 원작의 신에게 사과하며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흐음. 돈이 아주 많아 보이는 도련님과 아가씨로구먼?”

나는 에녹과 내 위로 길게 지는 그림자에 아차 싶어 인상을 찌푸렸다.

‘야, 이러기 있어? 이런 것까지 정석을 따라가는 거야?’

시장에 놀러 나오면 꼬치 사 먹고 위기를 맞이하는 게 순혈 여주 코스이긴 했지만, 난 주인공 아니잖아!

‘방금 사과한 거 취소야, 망할 신놈아.’

낮치고 골목에 인적이 너무 없다 싶더니 어김없이 악당이 튀어나와 버렸다.

“응? 돈 좀 있어, 도련님?”

나는 건들건들 다가오며 비죽 웃는 악당의 얼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노옴, 이제 큰일 났다.’

우리 에녹이 암만 어려도 무려 소울나이츠라고.

일반인은 성인이라고 해도 오러를 다루는 소울나이츠를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거리를 좁혀 오는 건달의 수가 예상보다 많긴 하지만, 뭐! 에녹이 다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이것도 훈련의 일환으로 치자, 에녹.

꼴에 오빠라고 나를 재빨리 등 뒤로 숨기는 에녹이 든든해서 히죽 웃은 나는 곧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시장 건달들 주제에 어떻게 오러를 사용하는 거지?’

“텨! 에노끄!” (튀어! 에녹!)

전직 미친개, 현직 아기 공녀.

나는 못 이길 싸움 같은 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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