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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58화 (58/486)

제58화

나의 피나는 설득-미워하겠다는 말 몇 마디-으로 결국 실비는 내가 진행하는 특훈에 에녹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자루 구름미다~! 씰띠!”

“실시!”

“우로 구름미다~! 씰띠!”

“실시!”

나는 호루라기를 삑삑 불어 가며 차남과 삼남을 흙바닥에 데굴데굴 굴렸다.

연이은 훈련이 힘들었는지 힘이 빠진 에녹이 나를 힐끔 쳐다보며 눈물을 보인다.

“어허! 에노끄 훈뇬병, 울지 안씀미다!!”

버럭버럭 목청을 높이자 에녹은 찔끔 놀라 삐죽 나온 콧물을 들이켰다.

“우, 울지 않습니다!”

“자아, 이졔 출바!!!”

낮은 콧대 덕에 줄줄 흘러내리는 선글라스를 추켜세운 내가 태양을 가리키자, 실비와 에녹이 마차 바퀴 세 개를 매단 채 뛰기 시작한다.

룰루와 랄라가 연무장에 설치해 준 차양 아래에서 딸기 주스를 쪼로록 빨아 마신 나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실비와 에녹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기특한 자식들. 뿌듯해 죽겠네.’

둘 다 생각보다 내 커리큘럼을 착착 밟아 주고 있어서 흡족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내가 전생에 무지막지한 강자였다는 걸 홀랑 믿어 준 에녹과 다르게 실비는 내 새로운 놀이에 장단을 맞춰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다행히 실비는 내 놀이가 놀이답지 않게 혹독했음에도 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열심히 따라 주고 있었다.

‘에녹에게는 트리스탄의 검술 선생이었던 자가 접선해 온 것 같고, 로더릭이야 훌륭한 선생님이니까 실비는 걱정할 필요 없지.’

움후후.

나는 계획대로 착착 굴러가는-실제로도- 형제들이 만족스러워 손가락을 맞부딪히며 사악하게 웃었다.

“아가씨, 기분이 좋으세요~?”

“웅!”

“우리 아가씨는 어쩜 악당같이 웃으실 때도 이렇게 귀여우신지!”

얘네 또 시작이네.

나는 룰루와 랄라가 팔불출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에 질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니, 잠깐 방에 가따 오께.”

“혼자 다녀오실 수 있겠어요?”

“웅. 걱정 마, 눈누!”

생각해보니 애들 특훈 시간인데 선글라스만 챙겨 왔지 제라드가 열심히 만들어 준 훈련모는 빼 놓고 왔다.

뽀짝뽀짝 열심히 걸어 침실에 당도한 나는 한동안 보이지 않던 인영을 발견하고 휘둥그레 눈을 떴다.

“히스!”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든 소년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온다.

“공녀.”

“여태 어디 이써쩌!”

마구간에서도 뚜왈렛룸에서도 안 보인다길래 집을 나가 버린 줄 알았다.

“나를 찾았습니까?”

“당욘하지.”

나는 발그스레 달아오른 소년의 뺨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고개를 까딱였다.

“아프로는 니니한테 말하구 나가.”

마나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자유를 찾고 싶다면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뒷말을 삼킨 나를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이 천천히 입을 연다.

“네. 앞으로는 그러겠습니다.”

“어디 가따 완는데?”

사실 제국 내에서 소년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멸망해 가라앉은 아크레아로 돌아갈 수도 없지 않겠나.

“공녀가 말한 상인을 찾기 위해 잠시 영지를 벗어났었습니다.”

나는 히스의 대답에 그제야 내가 그에게 했던 부탁을 떠올리며 아, 입을 벌렸다.

“우웅. 갠차나.”

사라진 자르파라를 찾아 나선 사람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녀의 행방은 몇 년간 오리무중이었다.

“자르파라 말구 사어블 마낄 다른 인쟤를 차즈면 대.” (자르파라 말고 사업을 맡길 다른 인재를 찾으면 돼.)

당연히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소년의 어깨를 토닥이자, 그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더는 자르파라가 필요하지 않은 겁니까?”

“웅? 아니, 피료는 하지. 그치만-”

음?

으음?

“헙!”

임무에 실패했다고 기죽어할까 봐 사족을 덧붙이려던 나는 히스가 벌컥 열어젖힌 문틈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보릿자루에 턱을 벌렸다.

‘저게 뭐야?!’

곡식을 담는 거대한 자루가 뭐가 들었는지 사방으로 꿈틀거린다.

“우웁, 웁-!!!”

나는 누가 들어도 사람 신음처럼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쾅 문을 닫았다.

“히, 히스?”

“잡아 왔습니다, 자르파라.”

“내가 언졔 잡아 오라구 해써~!!!”

상단주로 삼을 사람을 모셔와야지, 납치를 하면 어떡해, 이 자식아!

묘한 뿌듯함까지 느껴지는 히스의 단정한 대답에 나는 소리를 빽 지르며 허둥지둥 자루를 풀어헤쳤다.

“개, 갠차나?”

자루의 리본을 벗겨 내자 불쑥 튀어나온 여자는 손과 발이 꽁꽁 묶인 데다 재갈까지 물고 있었다.

“허억, 억.”

황급히 속박을 풀어 주자 자르파라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분명 불같이 화를 내겠지.’

자르파라는 태양이 작열하듯 새빨간 머리칼에 홍해를 가르는 파도처럼 붉은 적안과 그린 듯이 어울리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정평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여자의 몸으로 제국 제일의 상단을 운영하며 용병단주 자리까지 맡을 수 있었던 거겠지만.’

무슨 이유로, 또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잘 살고 있던 사람을 대뜸 납치해 왔으니 화를 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요, 요기 물.”

내가 자르파라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물병을 내밀자 그녀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켠다.

“허억.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납치범인 주제에 히스가 밥도 물도 안 준 모양이야. 큰일 났다.’

운 좋게 찾은 자르파라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는 영 글렀다는 생각에 침울해진다.

“미아내요. 일부로 납치한 고 아냐.” (미안해요. 니니 일부러 납치한 건 아니야.)

물병 하나를 통째로 비운 자르파라가 내 말에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듯 눈을 굴려 주변을 살핀다.

“-!”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곧 히스를 향해 내리꽂혔다.

“앙대!”

자르파라가 히스에게 보복이라도 할까 두려웠던 나는 양팔을 벌려 소년의 앞을 가로막은 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히, 히스는 잘못 엄써!”

“…….”

“멈처! 멈추지 아느면 사람을 부르게써!”

제국어를 모를 리 없는데도 자르파라는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저벅저벅 걸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여태 손발이 묶였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당당한 걸음걸이다.

‘젠장, 무력이라도 사용해야 하나?’

살아있는 전설인 자르파라에게 제법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내가 망설이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내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내가 마나를 운용해 히스를 보호하려는 순간이었다.

털썩.

나를 지나쳐 히스에게 다가간 자르파라가 소년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

그녀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내가 고개를 갸웃하든지 말든지, 그녀는 소년의 발등에 입까지 맞췄다.

“왕이시여.”

주군을 만난 충신처럼 절절한 목소리였다.

“아크레아의 가장 낡고 지친 마지막 종복이 드디어 전하의 존안을 뵙습니다.”

나는 자르파라의 말에 그녀가 히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입을 벌렸다.

‘히스를 아는 사람인가 보네.’

그래서 그가 행방불명된 자르파라를 찾아 데려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모야, 히스. 아는 사람이어써?”

나는 자르파라가 제 발에 입을 맞추든 말든 나만 바라보고 있는 소년을 향해 물었다.

“넌 어느 집 아기이길래 전하께 말을 함부로 하는 거냐.”

그러나 히스가 입을 벙긋하기도 전에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자르파라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본다.

“전하와 본좌는 긴히 할 옛이야기가 있으니 서둘러 나가 보도록 하여라.”

“아! 녜…….”

늙은이 같은 말투도 말투였지만, 젊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그녀의 붉은 눈에는 오래 산 사람 특유의 기운이 서려 있어 나는 답지 않게 주눅이 들고 말았다.

“히스, 자르파라랑 대화 나너. 니니 이따 오께.”

자르파라의 말에 어깨를 수그린 나는 히스와 자르파라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빙글 몸을 돌렸다.

‘히스가 잘 설득해서 자르파라가 날 위해 일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런 속셈이 어느 정도 들어간 행동이었지만, 내 모습이 퍽 불쌍해 보였는지 저벅저벅 다가온 소년이 내 손을 붙잡는다.

“공녀가 나갈 필요 없습니다.”

“그치만 자르파라가 히스한테 할 말 이때.”

나는 소년의 만류에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자르파라를 가리키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니니는 이따 말해두 대.”

“예, 전하! 저는 전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르파라가 반색하며 덧붙이는 말에 히스는 그녀를 힐끗 돌아보며 오밀조밀 섬세한 선으로 이루어진 입술을 움직였다.

“저 여자 때문에 나가려는 겁니까.”

“웅? 글킨 하지.”

히스와 대화를 나누라고 나가 주는 거니까.

내 긍정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히스가 빠르게 바닥을 박차고 움직인다.

소년은 자르파라를 도로 자루에 담아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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