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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36화 (36/486)

제36화

언젠가 사랑받는다는 건 무슨 기분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햄버거집 앞이었던가, 패밀리 레스토랑 앞이었던가.’

양부의 명령을 수행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는 발등에 눈이 쌓이는 것도 모르고 김이 뿌옇게 서린 창밖에 서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나눠 먹는 가족의 모습을 한참이고 지켜봤었다.

아빠처럼 보이는 남자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모습이 망막에 새겨진 듯 아른거려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이미 다 큰 성인이었는데도.

‘결국엔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자리를 떠났던 것 같은데.’

왜 그 기억이 지금 떠오르는 걸까.

내 작은 팔목이 누군가에게 붙들려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물 밖으로 떠오른 나는 곧 모래가 곱게 갈린 해변 위에 내쳐졌다.

“아가씨-!!!”

룰루가 허둥지둥 달려 나와 나를 꼭 끌어안는다.

“괜찮아?”

에녹은 쉴 틈 없이 콜록이는 내 등을 두드리며 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나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은 셋째의 모습에 입을 벌렸다.

‘설마 물 공포증을 나 구한다고 극복한 거야?’

나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빨리 극복할 줄은 몰랐다. 공포라는 건 영혼에 지는 얼룩 같은 거라서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에노끄.”

너는 날 사랑하는구나.

막내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물은 안 먹었어? 숨 쉬어 봐, 리니.”

“우웅, 나-”

내가 에녹에게 대답을 하려는 찰나,

퍼억-!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를 무감한 눈으로 빤히 지켜보던 소년의 턱이 돌아간다.

“왜 저를 공격하는 겁니까?”

예쁜 뺨이 부풀었지만, 소년은 딱히 아프다는 기색을 내비치지도 않았다. 다짜고짜 소년에게 주먹을 날린 실베스테르는 재빠르게 몸을 틀어 소년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죽고 싶은 건가, 빌헬름.”

실비는 소년을 아는 듯싶었다. 실비에 의해 허공에 달랑 들린 소년은 숨이 막히지도 않는지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실비를 돌아보았다.

“놓으십시오. 전 공녀님 몸에 손을 댄 적이 없습니다.”

“내가 네 목숨을 거두는 데는 내 동생을 겁먹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실베스테르 에드가 드 하차니아.”

실비의 으름장에 소년의 붉은 입술이 느릿느릿 움직인다.

“브리넨 후작가에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당신은 이렇게 성미가 급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브리넨 후작가 따위에 나를 판단할 만한 안목이 있었는지 몰랐군.”

확실히 실베스테르는 차분한 사람이었다.

“시삐.”

퍼억!

“시삐!!”

퍽, 퍼억-!

가스파르를 닮고 싶어 ‘차분하려고’ 노력했으니까.

‘하지만 그래 봤자 치기 어린 소년일 뿐이지.’

실비는 소년에게 단순히 주먹질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검까지 뽑으려고 들었다.

“시삐!!!”

나는 큰 목소리로 실베스테르를 불렀다. 룰루와 브리넨의 부관이 말릴 때도 꿈쩍도 하지 않던 실베스테르의 검이 그제야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선다.

“그마냬.” (그만해.)

더 이상 일을 키울 수는 없었다.

“시삐, 니니 갠차나.”

나는 내 앞에 무릎 꿇은 실베스테르의 단정한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사랑받는다는 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늘 궁금했었는데.

‘가슴이 아픈 것도 같고.’

왠지 눈물이 날 것도 같아서 나는 실비와 에녹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은 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 *

바닷가에서의 일을 알게 된 가스파르는 신속 마법이 걸린 마차까지 보내 나와 에녹을 빠르게 소환했다.

“브리넨 후작을 만나야겠다.”

의사를 불러 내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했으면서도 내 이곳저곳을 살피던 가스파르가 한숨처럼 말을 내뱉는다.

“만나소 어쩌려구요.”

나는 분해 숨을 씨근거리는 아빠를 올려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브리넨 후작가의 소년이 딱히 나를 공격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혼자 넘어진 건데 만나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게다가 가스파르가 딱히 후작에게 엄청난 복수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항의해야지. 사유지를 침범한 것도 모자라 널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느냐.”

나는 예상에 맞아떨어지는 가스파르의 대답에 한숨처럼 웃었다.

‘이런 정중한 생각밖에 못 하니까 엑스트라 악당인 거라고.’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잔뜩 굳은 아빠의 얼굴을 흘긋했다.

“대써요. 니니, 구휼제에 참석하꺼에요.”

“어째서?”

브리넨 후작가에 대륙을 재패할 수도 있을 고대의 병기가 잠들어 있다.

“니니, 다 생각이 이쓰니까.”

나는 아빠의 의아한 얼굴에 콧잔등을 찡긋하며 웃었다.

* * *

브리넨 후작가가 주최하는 구휼제는 윌레닌 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보육원인 ‘브리넨 구휼원’을 운영하는 브리넨 후작가에서 1년에 한 번 주최하는 연회였다.

‘제국 귀족가의 아이들 중에서도 특출하게 뛰어난 아이들만이 초청장을 받는다지.’

엑스트라 중 엑스트라인 ‘레오노라 하차니아’가 원래부터 구휼제에 초대장을 받았을 리는 없고, 내가 이번 연회에 초대받은 건 정례 회의에서 오러를 선보였기 때문이리라.

‘사교계의 장이자 인재의 등용문인 셈이라고 하더니 정말 사람이 바글바글하네.’

황실 무도회에 비견할 법한 규모에 자연스레 입이 떡 벌어진다.

나는 장미 덤불 모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거대한 상아 아치를 한눈으로 훑으며 셀리아의 손을 꽉 붙들었다.

“다행이에요. 우리 아기가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어서.”

“응?”

“정말 말 그대로 낙원 같은 곳이잖아요.”

나는 홀린 듯 중얼거리는 셀리아의 말에 한숨을 삼켰다.

‘겉보기에는 그렇겠지.’

도개교를 건너자마자 펼쳐진 후작가의 정원은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오러석과 마나석을 줄줄이 엮어 장식해 밤인데도 정오처럼 환하게 꾸며진 상태였다.

‘값이 천정부지인 오러석과 마나석을 정원 장식 따위에 사용할 정도로 돈이 썩어나는 모양이지.’

이 낙원의 진실을 아는 나로서는 한숨만 나오는 아름다움이었다.

이 세계에서 오러석과 마나석을 채취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오랜 시간 자연에서 켜켜이 쌓인 농축된 광석을 채굴하는 방법과 사람 몸에서 오러와 마나를 뽑아내는 방법.

‘다들 브리넨 후작이 운이 좋아 마나석과 오러석 채굴이 가능한 광산을 끊임없이 발견한다고 알고 있지만….’

후작이 마정석(오러석과 마나석)을 저택에 산처럼 쌓아 놓을 수 있게 한 방법은 단언컨대 후자였다.

그는 구휼원에 모여드는 아이들 중 마나 보유량이 뛰어난 아이들과 오러를 쓸 수 있는 아이를 골라 한계까지 마정석을 추출하고 있었다.

‘애초에 고아들이니까 여태 들키지 않았던 거야.’

지켜 줄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었다면, 세상이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겪게 내버려 둘 리 없었으니까.

‘셀리아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게 좋겠어.’

그녀의 아이는 아직 아기에 불과했으니 후작이 손을 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그전에 구해 내야 해.’

이참에 구휼원을 없애 버릴 생각으로 연회에 참가했던 나는 생각보다 거대한 규모에 끙, 신음을 앓았다.

“이번 연회는 작년보다도 규모가 크네요.”

“올해 구휼원에서 인재들이 꽤나 많이 배출되었잖아요. 특히 영재원 시험에서 수석을 했다는 아이는 누구나 노릴 테니까요.”

“어머. 저도 그 소녀를 제 딸의 메이드로 노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내가 끙끙 앓는 소리가 더 커지자 셀리아가 화들짝 놀라 나를 안아 든다.

“아가씨, 어디 아파요?”

“아니… 아냐.”

그래 봤자 보육원이니 쉽게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휼원에 대한 귀족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대단한 모양이었다.

‘브리넨 후작이 구휼원에서 기른 아이들 중 뛰어난 아이들 몇을 다른 귀족가에 보내기 때문이겠지.’

수완 좋은 사용인에 늘 목말라 있는 것이 귀족들이었으니까.

게다가 브리넨 후작은 사람 좋은 척, 다른 귀족들에게 아이들을 보내면서 대가도 받지 않았다.

그 덕에 귀족들에게 호감도 사고 자선 사업가로 명성을 쌓은 거지만.

‘그게 애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거지, 뭐야. 나쁜놈.’

나는 셀리아의 걱정 어린 시선에 고개를 내저으며 애써 한숨을 삼켰다.

‘일단 눈앞의 과제부터 해결하자.’

셀리아의 아기를 구하고, 브리넨 후작가가 보관하고 있는 고대 병기를 빼앗는 것.

그게 내가 구휼제에 참석한 이유였으니까.

“하차니아 공녀님이 방문해 주셨군요.”

지나치게 화려한 정원을 지나쳐 홀에 들어서는 나를 맞아 준 사람은 집사도 시종도 아닌 브리넨 후작 본인이었다.

“반갑습니다, 공녀님. 또 뵙는군요.”

“니니예요. 안넝하세요.”

나는 브리넨 후작의 머리털을 뽑은 전적이 있었다.

그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부러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는 유순한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굽혔다.

“여전히 사랑스러운 분이시군요.”

느긋하게 나와 얼굴을 마주한 후작이 선뜩하게 눈을 빛낸다.

“써머나이츠의 오러를 선보이셨을 뿐 아니라 소울마스터의 자질을 보이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울 마나석은 마정석을 연구하는 저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으음.

나는 기묘한 열기를 띠는 후작의 눈빛에 침을 꼴깍 삼켰다.

‘단순히 내가 오러를 선보여서 부른 게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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