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23화 (23/486)

제23화

소울나이츠들은 타고난 오러가 강대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보다 체력이 수 배는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 훈련 커리큘럼을 생각보다 잘 따라와 준단 말이지.’

셋째는 나약한 정신력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초반에 기강을 잘 잡아 놓은 덕인지 이제는 내가 눈살만 찌푸려도 군말이 쏙 들어갔다.

“움후후. 순죠로아.” (순조로워.)

내 방 창가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연무장을 뛰는 에녹을 내려다보며 차를 홀짝이는데,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본관으로 출동했던 룰루가 침실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아가씨, 말씀하신 대로 마차 바퀴를 떼 왔어요.”

“고마오, 눈누.”

나는 칭찬을 바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룰루의 앞머리를 쓰담쓰담해 준 다음 룰루가 마구간에서 몰래 훔쳐 온 바퀴에 밧줄을 둘둘 감았다.

“그런데 마차 바퀴는 왜 필요하신 건가요? 새로 장난감이 필요하신 거면 각하께 말씀을 드리면 될 텐데요.”

“아냐. 이거 에노끄 훈룐에 피료해.”

“아아, 도련님과 놀 때 필요하신 거군요~!”

노는 게 아니라 훈련이었지만, 에녹이 매일매일 윗몸 일으키기 300번, 팔 굽혀 펴기 300회, 15키로 달리기를 포함한 내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룰루가 내 말에 손뼉을 친다.

“이 바퀴 위에 아가씨가 타고, 에녹 도련님께 끌어 달라고 할 생각이신 거죠? 썰매처럼요!”

“……웅?”

사실 그냥 바퀴만 끌면서 달리게 할 생각이었는데, 룰루가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던져 주다니?

“하지만 이대로 앉으시면 아가씨 엉덩이가 아프실 텐데요. 랄라에게 부탁해 쿠션이라도 달아 놓을까요?”

“넘 조아! 고마오, 눈누!”

나는 센스 좋은 룰루의 말에 손뼉을 짝짝 치며 웃었다. 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룰루가 조심스레 허리를 굽힌다.

“고마우시면, 저…….”

쪼옥. 쪽.

나는 룰루가 수줍게 내민 볼에 뽀뽀를 해 준 다음 창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기본적인 체력 단련은 대강 끝나가는 것 같으니까, 이제 트리스탄의 훈련 커리큘럼을 카피해 볼까?’

적랑의 단장인 바리스탄이 솔로아 공작가의 후계자인 트리스탄을 위해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짠 커리큘럼을 훔쳐 오는 셈이었지만, 내 알 바인가?

* * *

“앤쪽, 앤쪽!” (왼쪽, 왼쪽!)

랄라가 노란색 데이지 무늬 쿠션을 달아 준 바퀴에 앉은 나는 달리는 에녹의 등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쿠와앙!”

내 신호에 맞춰 대기하고 있던 그리즐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에녹에게 달려들었지만,

촤악-!

“낑!”

붉은 검기를 두른 에녹의 검이 횡을 그리며 정확히 그리즐리의 정수리를 겨냥했다.

“끼잉, 낑!”

‘보호막까지 둘러 줬는데 엄살 부리긴!’

에녹의 검기를 얻어맞은 그리즐리가 양발로 이마를 감싼 채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리, 리니! 봤어? 내가 그리즐리를 해치웠어!”

그리즐리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달리기를 멈춘 에녹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감격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우웅, 봐또.”

“아기 그리즐리이긴 하지만! 나도 트리스탄처럼 마물을 해치운 거야!”

‘숨이 붙어 있으니 완전히 해치운 게 아니긴 한데.’

애써 길들인 그리즐리를 죽이고 싶지도 않았고, 에녹의 감동을 깨뜨리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는 별말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우웅. 에노끄, 지짜 머쪄.” (으응. 에녹, 진짜 멋져.)

극기 훈련으로 체력을 끌어올린 에녹은 나를 뒤에 달고 연무장을 스무 바퀴나 돌았는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다 리니 덕분이야!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

나는 에녹의 감사 인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웅? 무슨 말을 하는 고야, 에노끄?”

“훈련 다 끝난 거 아니야? 이제 난 트리스탄만큼 강한 거잖아!”

“움후후. 에노끄. 왜 멍멍이소리를 하구 그래.”

“……어?”

“내 훈룐은 아직 시작대지두 아나써.”

나는 멍해진 에녹의 얼굴을 마주한 채 원작을 펼쳐 들었다.

「트리스탄 외전2. ~바리스탄 경과의 특별 훈련~」

‘체력 단련은 내 몫이었지만, 오러를 다루는 방법은 역시 바리스탄이 더 잘 알고 있겠지.’

바리스탄은 에녹을 경계해 불 속성의 오러를 쉽게 다루는 ‘진짜’ 방법은 에녹과 함께하는 수업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얄미운 솔로아 놈들.’

앞으로는 친목을 도모하자며 에녹을 바리스탄 밑에 넣어 놓고, 잘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방해까지 하다니!

바리스탄의 속셈과 솔로아 가주의 뜻이 일치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자 주인공의 가문치고는 너무 비열했다.

‘하지만 바리스탄이 아무리 치사하게 솔로아 공작령에서 몰래 트리스탄에게만 비법을 알려 주고 있다고 해도, 그 비법이 뭔지 외전에 전부 나열되고 있지!’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에녹이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다면 바리스탄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갈지도 몰랐다.

크크큭. 나는 바리스탄의 푸근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통쾌한 장면을 상상하며 손가락을 맞부딪혔다.

“자아, 에노끄. 훈룐 시작해야지?”

“훈련을 시작하자니? 그럼 방금까지 한 건 뭐였는데?! 그리즐리도 잡았는걸!”

“쥰비 운동이자나, 바부.”

“…….”

마차 바퀴에서 내려온 나는 손바닥을 탁탁 털며 언제 기뻐했냐는 양 울상을 짓고 있는 에녹을 돌아보았다.

“지굼부터는, 오러 훈룐을 할꼬야.”

“……하지만 바리스탄 경이 나는 어차피 타고 난 오러가 부족하다고,”

“에노끄, 바리쯔딴인지 머시깽인지의 말은 이졔 전부 잊어.”

나는 에녹의 말을 단호히 끊어 내며 자그마한 턱을 오만하게 치켜들었다.

‘오러는 기사들이 다루는 정신 에너지, 즉 정신력이라는 말씀.’

정신력 강화야말로 내 전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러를 다루는 기술적인 면은 조금 부족하겠지만, 그건 트리스탄의 외전에 전부 다 나와 있잖아?’

“우리 목표눈 이제 검술 대회 우승이야, 에노끄.”

“우, 우승? 내가 트리스탄이나 형들도 아닌데?”

“닥쵸! 하차니아는 째고만 노린다!” (닥쳐, 하차니아는 최고만 노린다!)

나는 내가 정한 가훈(방금 만든)을 외치며 밧줄에 매단 바퀴를 품에 안은 채 한숨을 푹 내쉬는 에녹을 질질 끌고 숲속으로 향했다.

* * *

“우움.”

“왜, 리니?”

“쪼꿈 곤난하네…….”

호기롭게 에녹을 끌고 숲속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트리스탄의 외전을 펼쳐 든 나는 난감한 턱을 긁적였다.

‘트리스탄의 불 속성 오러를 강화하기 위해서 바리스탄은 은퇴한 윈터나이츠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반대 속성의 오러를 지닌 소울나이츠와 합을 나누는 것이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트리스탄이나 에녹 같은 기사들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모양이었다.

윈터나이츠라면 솔로아보다는 하차니아에 더 많이 분포되어 있겠지만, 문제는 에녹의 훈련을 도와줄 윈터나이츠를 찾는 일이었다.

‘함부로 나섰다간 필연적으로 아빠 귀에 들어갈 거고, 그럼 오러의 ㅇ자도 모르는 아기인 내가 에녹을 가르치겠다고 설치는 걸 알게 될 거야.’

“여기서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혀 끙끙 앓는 내 머리 위로 헌칠한 그림자가 겹친다. 나는 잘 단련된 은처럼 시원한 느낌이 나는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삐.” (실베스테르.)

나는 방긋 웃으며 둘째의 소맷부리를 붙잡았다.

“시삐, 안넝.”

“…….”

“시삐, 니니 도아조.”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다 이용해야지.’

실비는 에녹만큼 나와 친하진 않았어도 기본적으로 동생들을 챙길 줄 아는 착한 애였으니 당연히 나를 도와줄 것이다.

‘하차니아에서 아빠 몰래 에녹의 훈련을 도와줄 윈터나이츠라면…….’

역시 실베스테르밖에 없었다.

“……싫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앙증맞게 두 팔까지 벌린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실비가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왜 시룬데?!”

뭘 도와달라고 할 건지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에녹만 좋아하면서.”

“…….”

“그동안 에녹과 노느라 바쁜 줄 알았는데.”

‘하이고, 이 속 좁은 자식 같으니…….’

며칠 홀대했다고 벌써 삐친 건가.

혀를 끌끌 차며 눈이라도 흘기고 싶었지만, 나는 지금 이 쪼잔한 둘째의 도움을 꼭 받아야만 했다.

“시삐.”

나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실베스테르의 손을 딱 붙잡은 채 내 포동포동한 뺨에 둘째의 차가운 손등을 눌렀다.

“이잉.”

“…….”

“잉!”

‘귀여운 척을 너무 대충했나.’

나는 입가가 풀리긴커녕 점점 굳어 가는 실베스테르의 얼굴에 뻘쭘해진 뒷목만 긁적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