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냄새가 안 나요!”
“뭐?”
“지금 방에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요! 지금 아가씨에게서 냄새가 하나도 안 나요.”
세실의 말에 라일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저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흐음! 흠!”
자신의 가까이에 다가와서 킁킁거리는 세실을 보며, 라일라는 흠칫하면서도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세실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전혀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고, 코를 틀어막지도 않았다. 원래 자신을 보고 그러지 않았던 세실이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옆에 다가와서 이렇게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은 적은 없었다.
“정말, 냄새가 안 나?”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체취와 함께해서 자신의 악취를 맡지 못하는 라일라는 조심스럽게 세실에게 물었다.
살짝, 라일라의 가슴이 떨려 왔다.
“네.”
세실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너, 코가 막힌 건 아니야?”
그렇게 말을 했지만, 라일라는 자신의 냄새가 그저 코가 막힌 정도로 맡지 못할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전혀요. 다른 냄새는 다 느끼는데요?”
그 다른 냄새가 무엇인지는 굳이 세실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방의 창문을 활짝 열었을 뿐이었다.
“따스한 햇볕의 포근한 냄새도 나고요, 저 아래 정원의 향긋한 꽃냄새도 분명히 맡아져요.”
세실은 환하게 웃으면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세실이 한 말이 믿기지 않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일라를.
“내, 내가 냄새가 안 난다고?”
“네.”
“정말?”
“네!”
라일라는 몇 번이나 물었고, 세실은 몇 번이나 대답해 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난 라일라가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갔다.
“라일라 아가씨!”
세실은 당황해서 그녀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지만, 당연히 라일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맨발로 방을 달려 나가 단숨에 1층까지 뛰어 내려간 라일라는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라일라가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라일라 아가씨!”
뒤쫓아 온 세실이 라일라를 소리쳐 불렀지만, 이미 라일라는 정원을 가로질러 달리고 있었다. 발바닥이 새까맣게 되어도 라일라가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라일라?”
세실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라일라를 불렀다. 이름을 불린 쪽으로 라일라가 고개를 돌리자 황태자궁으로 연결된 정원으로 막 들어선 비오스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라일라는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해 냈다. 그녀는 단숨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라일라, 잠옷 차림으로 아니, 거기다가 발은 맨발이잖아요. 여기서 지금 뭘 하는…….”
놀란 표정의 비오스트가 서둘러 라일라의 쪽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그런 비오스트를 쌩하니 지나쳐 버렸다.
“이봐, 너!”
대신 라일라가 다가간 것은 비오스트의 뒤를 따르고 있던 시종, 수리였다.
“네? 저요?”
이제껏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건 적이 없는 라일라가 비오스트를 제쳐 두고 자신에게 말을 걸자 당황한 수리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 너!”
“자, 잠시만요. 더는 다가오지 마십쇼!”
자신의 앞에 바싹 붙어서는 라일라를 보며, 더 정확하게는 라일라와 바싹 붙어 있는 자신을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비오스트를 보며 수리는 질겁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런 수리의 표정을 보며, 라일라의 얼굴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젖어 들었다.
“그래. 역시……. 내가 냄새가 안 날 리가 없지.”
수리가 질겁을 하며 물러나는 이유가 자신의 악취 때문이라고 짐작한 라일라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혹시나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실의 말이 사실이기를 빌었다. 자신이 어릴 적 꿈꾸었던, 자고 일어나면 자신의 냄새가 없어지기를 빌었던 그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간절하게 소망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거다. 그저 세실의 못된 장난이거나, 세실이 오늘 몸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느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작은 희망 뒤에 찾아온 거대한 절망감에 라일라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설 때였다.
“아, 그러네요.”
수리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냄새가 안 나네요?”
자신도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수리가 말했다. 언제나 라일라와 함께 있을 때, 입으로 숨을 쉬며 말을 하느라 늘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던 수리의 목소리가 아니라 온전한 수리의 제 목소리였다.
“정말 냄새가 안 나?”
라일라는 다시 물었다.
“정말 나한테서 냄새가 안 난다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라일라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라일라의 눈에서 뚝 떨어졌다.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라일라의 안에서 들끓은 그것이 눈물이 되어 흘렸다. 멈출 수도, 멈추려고 하지도 않는 눈물이었다.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소원을 빌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제발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기를.
매일 아침, 눈물을 흘리며 절망하던 시절 또한 있었다. 오늘도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하며.
그리고 오늘, 라일라는 다시 울었다.
“내 몸에서 냄새가 안 나.”
몇 명에게,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을 또다시 되뇌며 라일라는 울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릴 것만 같은 작고 마른 라일라가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서럽게 우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라일라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라일라.”
작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비오스트가 라일라에게 다가가자, 라일라는 몸을 돌려 그대로 비오스트의 품에 안겨 왔다.
“고마워.”
울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비오스트의 몸에 짓눌린 발음으로 흘러나왔다. 습한 숨이 비오스트의 옷을 뚫고 그의 가슴에 닿았다.
“당신을 만나고,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
라일라의 울음 섞인 고백에 비오스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고개를 내리자 더는 부스스하지 않은 금발이, 여전히 마른 어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라일라가 앙상한 팔을 커다랗게 벌리고 자신의 안고 있는 것도 보였다.
“고마워.”
다시 한번, 라일라가 비오스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 비오스트는 라일라의 얼굴이 닿아 있는 옷이 젖어 들어 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고요.”
비오스트는 조용히 말하며 라일라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들었다.
차마, 라일라를 바라볼 수 없었다.
* * *
달도 없이 별들만이 반짝이는 어두운 밤이었다. 검은 밤하늘 아래의 으슥한 골목길은 그야말로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딱히 먹을 것이 있지도 않을 것 같은 빈 쓰레기통을 뒤지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녀석답게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저 멀리 골목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고양이의 귀는 정확했다. 그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들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남자는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지, 고개까지 푹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걷고 있었다.
남자가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자 고양이는 재빠르게 뒤지던 쓰레기통을 포기하고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버렸다. 남자는 고양이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서 걸었다.
으슥한 골목길 중에서도 후미진 곳에 달린 작은 쪽문에 도착한 남자가 슬쩍 고개를 들고 손을 들어 노크했다. 남자의 노크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남자는 다시 손을 들어 한 번 더 노크했다.
그리고 1초, 2초, 3초.
후드에 가려진 남자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잘은 몰라도 뭔가 곧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조금 늦었네요?”
발랄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민 여자는 놀랍게도 엘리자베스였다. 공작가의 우아한 저택이 아니라 어두운 골목길의 집 안에서 나타난 엘리자베스가 문을 그대로 열어 놓고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름대로 약속 시각에 맞춰서 차도 준비해 뒀는데, 다 식었잖아요.”
엘리자베스는 투덜대며 의자에 앉았다. 엘리자베스가 의자에 앉는 순간, 의자는 그녀의 무게가 자신에게는 너무하다고 항의라도 하듯이 삐걱거렸다. 의자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앞에 놓인 테이블도 싸구려처럼 보였다.
물론 그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그녀가 준비해 놓았다는 찻잔도 싸구려처럼 보였다. 심지어 찻주전자도 없이 살짝 귀퉁이가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가 그 옆에 올려져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익숙하게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에서 찻잔에 물을 따랐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 역시도 황궁의 정원에서 보았던 그것과는 판이하였다. 화려해 보이기는 했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은 전혀 없는, 예쁘긴 하지만 어딘가 촌스러워 보이는 느낌을 감출 수 없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앉으세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서 여전히 서 있는 후드의 남자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녀가 머리를 까닥일 때, 머리 장식이 너무 심하게 반짝여서 누가 봐도 보석이 아니라 모조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태자궁에서와 똑같은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뿐이었다.
“왜요? 황태자 전하를 모시기에는 너무 누추한 자리인가요?”
엘리자베스가 찻잔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
엘리자베스의 부름에 응하듯, 남자가 후드를 벗었고, 그녀의 말처럼 그곳에는 비오스트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