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자, 잠시만…….”
끝내 견디다 못해 라일라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비오스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라일라가 멈추려는 기미를 보이자 그것에 저항이라도 하듯 더 억세게 깍지 낀 손을 거머쥐었을 뿐이었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데, 온몸은 찌릿찌릿하고, 아득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도 같고, 온몸이 둥둥 떠오르는 것도 같은 느낌에 라일라는 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아…….”
라일라의 숨이 거의 꼴딱꼴딱 넘어갈 때쯤에 비오스트는 마침내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물론 라일라를 배려해서는 아니었다.
라일라의 입술은 달콤하고 녹진한 맛이었다. 그 맛은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 다른 것을 맛보려는 것이었다.
비오스트는 입술을 내려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으윽!”
아팠던지 라일라는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 그녀를 달래기라도 하듯, 비오스트는 방금 자신이 깨물었던 곳에 혀를 내밀어 핥았다. 그 습한 숨에 라일라는 제 허리를 뒤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그녀의 체향이 짙어졌다.
그 움직임에 가까스로 조금 억제를 했던 비오스트의 눈에 다시 불꽃이 튀었다. 비오스트는 방금 자신이 깨물었던 목덜미의 바로 아래를 베어 물었다.
“아앗……!”
아까와는 조금 다른 신음이 라일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픔과 함께 달콤하고, 감미로운 유혹이 섞여 있는 신음이었다.
비오스트는 그런 라일라의 목소리에 부응이라도 하듯, 라일라의 목덜미를 깨물고, 여린 살을 가득 베어 물고 빨아 당겼다. 그러면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라일라는 달콤한 신음과 달콤한 체향을 내뿜었다.
“하아…….”
이제 방 안은 라일라의 향기로 가득했다. 비오스트의 머릿속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가 내뱉은 숨결에도 라일라의 향기가 배어 나올 것만 같았다.
비오스트가 입술을 더욱 아래로 내리자, 마른 라일라의 빗장뼈가 그의 혀에 걸렸다. 살짝 깨물자, 라일라는 몸을 뒤틀며 또 달콤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며, 비오스트는 거칠게 라일라의 드레스를 끌어 내렸다. 그러자 드레스 안에 숨겨져 있던 라일라의 가슴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마른 라일라의 체형에 어울리는 작고 동그란 가슴이었다. 한 번도 남에게 보여 준 적 없는 그것이 별안간 드러나자, 라일라는 당황해서 황급히 제 가슴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비오스트가 더욱더 빨랐다.
“읏!”
비오스트의 커다란 손이 라일라의 한쪽 가슴을 움켜쥐었고, 다른 한쪽은 미끄러져 내려간 비오스트의 입술이 차지했다. 그의 입안으로 하얗고 여린 살이 삼켜지자, 라일라는 가슴을 가리려던 손으로 침대의 시트를 움켜쥐었다.
라일라의 하얀 살점을 야금야금 맛보던 비오스트가 천천히 그 중심으로 입술을 옮겨 갔다. 그리고 덥석, 그것을 삼켰다. 그 순간, 라일라의 머릿속에서 하얀 번개가 내리쳤다.
“아, 아앗!!”
베개 위에 있던 라일라의 머리가 저도 모르게 뻣뻣하게 일으켜지며, 파르르 떨렸다.
“으읏…….”
라일라가 쾌감을 느낄 때마다, 그녀의 향은 진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비오스트를 더욱 미치게 했다. 그는 그저 라일라의 향에 취한 채 오로지 본능대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정신이 없는 라일라도, 비오스트 자신도 몰랐지만, 비오스트의 아래는 이미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비오스트는 라일라의 가슴이 온통 자신의 타액으로 번들거릴 때까지 그것을 물고, 삼키고, 핥아 대면서도 다른 한 손은 자신의 욕망이 시키는 대로 충실히 라일라의 아래를 더듬었다. 그의 손이 자신의 욕망을 분출할 곳을 찾아냈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꿀꺽.
짐승이 꽃을 삼키었다.
* * *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은 아니었다.
라일라는 눈을 뜨기도 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벌거벗은 그녀의 맨살에 따뜻한 체온이 닿아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누군가의 숨결이 닿아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살며시 라일라가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온통 살색이었다. 몇 번 눈을 깜박여 보아도 풍경은 바꾸지 않았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조용히 몸을 뒤로 빼내려고 하자, 부드럽게 자신의 등을 감싸 안는 손이 있었다.
“잘 잤어요, 라일라?”
다정한 목소리가 라일라의 정수리에서 들려왔다. 자주 듣던, 게다가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반가웠던 목소리였다. 하지만 오늘만은 그 언제나에 속하지 않는 날이었다.
“뭐, 그냥, 대충, 잤어.”
띄엄띄엄 라일라의 입에서 어딘가에서 황급히 주워 온 것 같은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목소리로.
“그래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라일라가 대충이라도 잤다고 하니. 저는 잘 자지 못했거든요.”
비오스트의 말에 그제야 라일라는 고개를 들어 비오스트를 쳐다보았다.
“왜? 잠자리가 불편했어?”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라일라의 목소리에는 저절로 걱정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라일라는 몰랐고, 비오스트는 알았다.
“아뇨. 내 품에 잠든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느라 그만 늦게 잠들었거든요.”
싱긋 미소를 지은 비오스트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라일라의 이마에 살짝 베이비 키스를 했다. 그 입술의 감촉에서 어제의 일을 다시 떠올려 버린 라일라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늦잠일지도 모르겠네요. 수리에게 혼나겠어요.”
비오스트가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의 나신이 라일라의 눈앞에 나타났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라일라가 제대로 보지 못한 비오스트의 몸을 비로소 제대로 보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그야말로 탄탄했다. 옷 위로도 알 수 있었던 넓은 어깨와 등은 물론, 옷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굵은 팔뚝과 허벅지는 오랜 시간 운동을 한 듯, 단단해 보였다.
비오스트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 뻗은 손은 어제 라일라의 몸 곳곳을 만졌던 손이었다. 그리고 지금을 물을 마시는 저 입술을 어제 라일라의 온몸을 탐했던 입술이었다.
그것을 라일라가 상기해 낸 순간, 그저 일상의 움직임이던 비오스트의 모든 행동이 그녀의 눈에는 모두 야하게 보였다.
“라일라?”
라일라를 쳐다보는 비오스트의 눈빛까지도.
“얼굴이 조금 빨간 것 같은데요?”
비오스트가 다가와 라일라의 이마를 짚자, 라일라의 얼굴은 더욱 달아올랐다.
“어젯밤에 무리해서…….”
“아, 아니야!”
비오스트의 입에서 어젯밤 일이 나오려고 하자 라일라는 황급히 소리쳤다.
“시종에게 혼나겠다며, 어서 가 봐. 난, 난 좀 더 자야겠어.”
붉어진 제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라일라는 시트를 끌어 올려 머리끝까지 덮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는 듯 비오스트를 등지고 돌아 누워 버렸다.
“그래요. 어젯밤에 너무 늦게 잤으니까요.”
라일라를 재우지 않은 장본인인 비오스트의 목소리에 이불 속에서도 라일라의 얼굴을 화끈 달아올랐다.
“쉬어요, 라일라.”
다정한 비오스트의 목소리와 다정한 손길이 이불 너머에서 라일라를 어루만졌다. 그 목소리와 손길에 라일라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다.
* * *
세실에게도 오늘 아침은 여느 날과 달랐다. 어제 미리 황태자께서 라일라와 하룻밤을 보낸다는 언질을 받은 그녀였다.
황태자를 모시는 데에 불편함이 없도록 방을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것도 바로 그녀였다.
“라일라 아가씨?”
조용히 방문을 두드리고, 세실은 귀를 기울였다. 혹시나 라일라가 울고 있다거나, 아파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세실은 비오스트의 본래 성격을 알았다. 세실의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비오스트를 돌보았고, 세실 역시 자라면서 어머니의 옆에서 비오스트를 보아 왔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그가 라일라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마치 엄청난 연기를 선보이는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말이다.
가끔은 그가 다정하고, 세심하며, 라일라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고 세실마저도 착각할 만큼, 비오스트의 연기는 대단했다.
“들어와.”
다행스럽게도 방문 너머에서 들린 라일라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마지못해서 그녀를 들여보낸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가씨?”
세실은 방긋 미소를 띠며 방문을 열었다. 부디 양을 탈을 쓰고 있는 늑대가 어젯밤에도 그 탈을 벗지 않고 얌전했기를 바라면서. 제발 자신이 양이라고 3천 번쯤 되뇌며 불쌍한 진짜 양을 잡아먹어 버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응.”
힐끗, 자신을 바라보는 라일라를 보며 세실은 안도했다. 라일라는 무사했다. 어디 피가 난 것 같지도 않았고, 자리에서도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몸도 성한 것 같았다.
참으로 웃기게도,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여성을 보며 세실은 그녀가 무사한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아…….”
하지만 이내 세실의 입에서는 안타까운 한숨이 토해 내어지고 말았다. 아까 라일라의 얼굴만 보았을 때는 그녀는 분명 무사해 보였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내려 보자면, 라일라의 목덜미와 드러난 가슴팍은 울긋불긋한 멍울이 한가득하였다.
지금은 그나마 붉은색이지, 시간이 지나 저것들이 전부 멍이 된다면…….
“왜 그렇게 쳐다봐?”
“아, 그게…….”
하지만 미리 라일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세실은 머릿속으로는 오늘 날씨는 아주 따뜻했지만 라일라에게 스카프라도 하나 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그녀에게 둘러댈 다른 말을 생각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았는지를 변명할 만한 것을 찾으려 했다. 오늘따라 예쁘시다든가, 귀엽다든가의 말을 했다가는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 말고 라일라에게 해 줄 수 있는 무언가 평소와 다른 점이…….
“어머!”
세실은 라일라에게서 평소와 다른 점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사실에 정말로 깜짝 놀랐다. 라일라를 보는 순간, 아니 이 방에 들어선 순간 그걸 먼저 알아차렸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