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마차를 준비해 둬.”
불타는 저택을 감흥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비오스트의 입에서 나온 말에 수리를 눈을 껌벅였다.
“무슨 마차요?”
“내 신부가 탈 마차.”
그의 말에 수리의 눈이 또 껌벅였다.
아니, 지금 비오스트와 수리가 앉아 있는 곳도 이미 마차였다. 그것도 제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가장 편안하며, 가장 훌륭한 황실 마차였다.
“이 마차 말고 다른 마차를 준비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말을 마친 비오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황태자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시종도 그를 따라 일어났다.
“어떤 마차를 준비하라는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신부는 아직 내가 황태자라는 걸 몰라.”
“그 말씀은, 마차를 타는 순간에도 모르게 하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왜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수리가 물었다.
제국에서 1등 신랑감-물론 황태자의 성격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수리는 생각하지만-인 황태자 비오스트였다.
꼭 대외적으로 상냥하며 착한 비오스트가 아니더라도, 남자가 황태자라면 어떤 여자라도 더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제국의 황태자비가 되는 것인데, 어느 여자가 싫어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비오스트를 수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신부는 수줍음이 많거든.”
마차에서 내린 비오스트는 목을 오른쪽으로 한번 , 왼쪽으로 한 번 꺾었다. 몸을 푸는 모습이 신부를 데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슨 운동이나 사냥을 하는 사람 같았다.
“아무리 수줍음 많은 여자라도 황태자 전하를 마다할 여자는 없습니다.”
“보통 여자라면 그렇지.”
비오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를 떠올렸다.
작고 깡마른, 조금만 세게 쥐면 부러질 것 같은 몸을 가졌으면서도 날카로운 발톱을 연신 세우던 고양이 같은 라일라.
하지만 조금만 어루만져 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저도 모르게 고롱고롱거리던 고양이 같은 라일라.
“어째서 그렇게 웃으십니까?”
“뭐?”
비오스트에게 재킷을 걸쳐 주며 수리가 묻자, 비오스트는 되레 그를 쳐다보았다.
“방금 웃으셨잖습니까?”
“뭐 좋은 일이 있다고 웃어? 헛소리하지 말고, 마차나 준비시켜 놔.”
턱짓으로 화려한 황실 마차를 치우라는 듯 까닥인 비오스트는 그대로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아니, 자기가 세상 재밌다는 듯이 웃어 놓고선…….”
그래서 제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리는 시종의 말을 듣지 못했다. 다시 들었다고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웃었다는 이야기 따위는 귀담아듣지도 않았을 테지만.
* * *
새빨간 버섯은 과일처럼 보였다. 먹음직스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아주 혐오스럽거나 못 먹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죽기로 결심하고, 독초를 찾기 위해서 숲을 헤맸다. 먹을 것을 찾을 때는 쓸데없이 잘만 보이던 것들이 정작 필요할 때가 되니 보이지 않았다.
결국, 찾아낸 것이 이 포이즌로즈였다. 장미처럼 붉고 아름답지만, 손가락이 따끔한 정도의 가시가 아니라 독을 품고 있는 버섯이었다.
분명 독버섯이긴 했지만, 맹독성은 아닌 데다가 크기가 작은 버섯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죽고 싶은 라일라는 자신이 먹고 죽을 만한 양을 모으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 움큼의 포이즌로즈를 딴 라일라는 또 숲을 헤매기 시작했다. 어디서 죽을지가 고민이었기 때문이었다.
포이즌로즈를 발견한 곳은 버섯이 자랄 만큼 습하고 어두웠다. 여기서 죽었다간 자신의 시체 위에서 버섯이 돋아날 것만 같아 어쩐지 찜찜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죽을 자리를, 어차피 시체를 거둬 줄 사람도 없으니 적어도 빨리 흙으로 돌아갈 자리를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어느덧 발걸음은 익숙한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와 있었다.
“결국, 여기인가…….”
새까맣게 불타 버린 오두막의 잔재를 바라보며 라일라는 중얼거렸다.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10년이 넘게 살았던 집이었고, 나름 숲에서는 볕이 잘 드는 곳에 지어진 오두막이었다. 살기에도, 죽기에도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불타 버린 집을 마주하고 앉아서 라일라는 다시금 새빨간 버섯을 바라보았다.
“넌 무슨 냄새가 날까?”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다른 냄새를 맡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떤 아름다운 향기든, 고약한 향이든, 자신에게 나는 악취에 비하면 너무도 소박하여 그 존재가 없어졌다.
이런 독버섯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면, 자신보다 더한 악취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 라일라는 하나를 집어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런 독한 것에도 자신보다 더한 악취가 나지 않았다.
하릴없이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독버섯보다도 더한 존재였다.
입을 벌리고, 붉은 버섯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별다른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냄새를 맡지 못해서인지 맛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라일라였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자, 라일라는 조금씩 제 턱을 움직여 그것을 씹기 시작했다.
“여기서 뭐 해요?”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라일라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웃는 얼굴의 비오스트가 서 있었다.
“와~ 맛있어 보이는 빨간 버섯이네요.”
웃는 얼굴의 비오스트가 손을 뻗어 새빨간 포이즌로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지그…… 퉷!”
얼른 그의 손을 잡아 말리려던 라일라는 입에 있는 버섯 때문에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자 입에 있던 것을 바닥으로 뱉어 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독버섯 때문에 벌써 혀가 싸해서 발음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난 라일라의 감정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아, 맛있어 보이기에요.”
“맛있어 보이면!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되는 줄 알아? 이게 뭔 줄 알고!”
“하지만 라일라도 먹고 있었잖아요?”
“그야……!!”
“이게 뭔데요?”
진중해 보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빛이 라일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일라가 먹는 것이라면 같이 먹고 싶다는 듯, 천진스러운 웃음을 띤 비오스트가 라일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이건…….”
“라일라.”
독버섯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죽으려고 이것을 먹고 있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라일라는 차마 비오스트를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자신을 부르는 그 다정한 목소리에도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마녀야.”
중얼거리는 그 목소리에 힘이라고는 없었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당신은 몰랐겠지만, 나는 냄새가 나. 아주 지독한 악취가.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마녀라고 해.”
라일라의 시선이 불탄 오두막을 향했다. 라일라를 따라서 비오스트의 시선 또한 불에 탄 오두막을 향했다.
“그래서 집이 저렇게 된 거야. 마녀를 불태워 죽이려고.”
모든 것이 선명했다.
자신은 냄새가 났다. 그래서 마녀였고, 그래서 죽어야 했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존재가 존재하는 것. 바로 그게 문제였다.
“라일라.”
다정한 손이 라일라의 뺨에 닿았고, 부드럽게 고개를 돌려 불탄 오두막이 아니라 자신을 쳐다보게 했다.
“당신은 냄새나지 않아요.”
“당신한테나 그런 거겠지. 당신이 냄새를 못 맡으니까.”
“그래요. 맞아요.”
거짓을 속삭이며 비오스트는 달콤하게 웃었다.
자신은 라일라의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악취보다 더 심한 관능적인 향기를 맡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글썽이는 라일라의 눈에서 나오는 애처로운 눈물의 향도, 뻣뻣한 금색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기도, 하얀 피부에서 나오는 살 내음도.
전부 비오스트를 흥분시키는 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당신은 마녀가 아니라, 그저 보통의 소녀랍니다.”
라일라의 향기에 취해서 더욱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비오스트는 조금 더 자세를 낮춰 라일라가 똑바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아니, 보통이라고는 못 하겠네요. 아주 귀여운 소녀죠.”
“거짓말.”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난…… 귀엽지 않아.”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난 머리카락도 제멋대로 뻗쳐 있고, 살결도 매끄럽지 않고, 키도 작은 데다가, 비쩍 말랐어. 아무리 악취 나는 마녀라도 눈 정도는 있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죠? 당신은 아무 냄새도 안 나고, 그러니까 마녀도 아니라고. 그리고…….”
상냥하고 탐욕스러운 비오스트의 눈이 라일라를 훑었다.
그녀의 말대로 금발은 뻣뻣했고, 살결은 그저 희기만 할 뿐 보통의 귀족 여인들처럼 꽃물로 목욕하거나 오일로 가꾸지 않아 거칠었다.
키가 작은 것도, 비쩍 마른 것도, 사실 예쁘다기보다는 음침하고 신경질적인 외모였다. 비오스트가 틀렸고, 라일라가 맞았다.
……세간의 눈에는.
하지만 오직 한 사람, 비오스트에게는 달랐다.
그 모든 외견을 압도할 만큼의 향을, 오직 황실의 자손인 비오스트가 맡을 수 있는 관능적인 향기를 입고 있는 라일라였다. 그 향기만으로 언제든 그를 발정 난 짐승으로 만들 수 있는 라일라였다.
외모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객관적이지 않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뭐 어때요? 내 눈에는 당신이 귀여운데.”
아주 잠깐, 아주 잠시, 창백한 라일라의 뺨에 아주 연한 핑크빛이 떠올랐다.
“그러니, 제발 나랑 같이 가겠어요? 집이 불타 버려서 당장 갈 곳도 없잖아요. 라일라, 당신이 오늘 밤에 잘 곳도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신경이 쓰여요.”
비오스트의 간절한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라일라의 이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낡은 치마를 구기고, 시선은 붉은 버섯을 향했다.
“제발요. 네?”
슬쩍 다가온 커다란 손이 라일라의 손을 잡았다. 거칠고 작은 손 위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 마치, 보호해 주듯 덮었다.
“나와 함께 가요.”
“……알았어.”
마침내 허락의 말을 내뱉는 라일라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슬며시 비오스트가 미소를 지었다.
“함께 가 준다고 해서 고마워요.”
다정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온도를 가진, 차가운 미소였다.
물론, 제 손을 잡은 그저 커다랗고 따뜻한 손만을 바라보고 있던 라일라는 보지 못한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