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라일라는 오도카니 쪼그리고 앉아서 불탄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숲에 불이라도 날까 싶어서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오두막 주변에 고랑을 파서 시냇물과 연결해 물길도 내어 주었다. 저 집이야 소중한 것도 없으니 불타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숲은 달랐다.
라일라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공해 준 고마운 은인 같은 존재였다.
추운 겨울에는 벽난로를 피울 수 있게 마른 나뭇가지를 주었고, 배고플 때는 나무 열매를 주었다. 더운 여름의 서늘한 그늘이 되어 준 것도, 추운 겨울에 바람막이가 되어 준 것도 모두 이 숲이었다.
“다 타 버렸네.”
어느덧 불이 꺼지고, 숯덩이처럼 까맣게 다 타 버린 오두막이었지만, 라일라는 그 곁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까맣게 타 버린 오두막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희뿌옇게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이제 불이 번질 염려는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라일라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갈 곳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불현듯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라일라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비오스트…….”
“불이 났었나요?”
다가오는 발걸음은 다급했다. 그리고 비오스트의 다정한 손이 라일라의 양팔을 붙들었다.
“다치지는 않았어요? 무사히 나온 건가요?”
걱정을 가득 담은 눈이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다치지…… 않았어.”
라일라는 그를 향해서 작게 중얼거렸다.
“불행 중 다행이네요.”
걱정이 가득한 눈이 곱게 접히며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라일라는 어쩐지 얼굴이 뜨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젯밤, 횃불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왔을 때처럼 말이다.
“이런……. 남아 있는 게 없네요. 전부 다 타 버렸어요.”
얼핏, 깨진 창문 너머로 오두막 안을 살펴보던 비오스트의 말에 그제야 라일라는 오두막 안을 쳐다보았다. 그저 불이 번질까 봐 걱정만 했지, 안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느린 걸음으로 오두막 곁으로 다가가 안을 쳐다보자 그의 말대로 새까맣게 탄 오두막 안이 보였다.
라일라가 매일 밤 누워 자던 침대는 이불의 안을 채워 놓은 지푸라기 때문인지 특히 더 타 버리고, 남은 것이 없었다. 밥을 먹거나 책을 보던 테이블도 다리가 타 버리고 주저앉아서 삐뚜름했다. 이가 맞지 않아 잘 닫히지 않던 옷장도 그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제가 10년이 넘게 살았던 집이건만, 그렇게 전부 불타 버린 모습을 봐도 여전히 라일라의 마음속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그녀가 탄식과 같은 한숨을 내쉰 것은 부엌 어딘가를 보았을 때였다.
원래는 불 위에 걸어 놓았던 스튜의 냄비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고리가 불에 타면서 냄비를 지탱하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이미 안에 내용물은 당연히 흔적도 없었고, 냄비도 불에 잔뜩 그슬려 형태로 간신히 냄비임을 알아볼 정도였다.
“왜요? 뭐 이상한 것이라도 있어요?”
옆에 있던 비오스트가 라일라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니.”
“속상하겠어요. 집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별로…….”
“어디 지낼 곳은 있어요?”
“…….”
조용한 침묵이 라일라를 감쌌다. 걱정스러운 비오스트의 시선이 고개 숙인 라일라의 정수리에 머물렀다.
“그럼 나랑 같이 가는 게 어때요?”
“뭐?”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잖아요. 나와 함께 가자고.”
“내가 왜 너랑 같이 가!”
“하지만, 갈 곳이 없잖아요? 이렇게 집이 불타 버렸으니?”
“내가 왜 갈 곳이 없어!”
“어디 갈 곳이 있어요?”
“그야……!”
없었다. 사실은 없었다.
저주받은 마녀를 환영할 곳 따위 없었다.
“역시 나와 같이 가는 게…….”
“부모님 집에 가면 돼.”
하지만 이 남자를 따라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많았다.
정체도 모르는 남자였고,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고, 또…….
‘……나한테 잘해 주는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생전 처음 받는 다른 사람의 호의는 기쁘면서, 어리둥절했다. 누군가 내밀어 준 손을 처음 보는 라일라는 그 손이 신기하면서도 경계했다.
남의 손을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어서,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손을 잡는 것인지 몰라서, 라일라는 감히 남의 손을 덥석 잡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계셨군요?”
비오스트는 라일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 그 부모님 집에 과연 발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난밤, 이미 수리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비오스트였다.
엄연히 남작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마녀사냥이었다. 그 마녀사냥에서 살아남은 마녀가 남작의 저택에 과연 성한 몸으로 입성할 수 있을까?
라일라는 순진하게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비오스트는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 댁은 어디죠?”
“…….”
“걱정되니, 바래다줄게요.”
“필요 없어.”
“그러지 말고, 같이 가는 게 어때요? 나도 어차피 돌아가야 하니까요.”
“필요 없다니까.”
“어딘데 그래요? 일단, 나는 이쪽으로 갈 거예요.”
비오스트는 당연히 남작의 저택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
그의 손가락을 보고 라일라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보며, 비오스트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이쪽인가요?”
“그래.”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겠네요.”
불퉁한 표정으로 말도 없이 먼저 걷기 시작한 라일라의 옆에 비오스트는 멋대로 바싹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저리 떨어져.”
“떨어지기에는 길이 너무 좁아요. 어쩔 수 없어요.”
“여긴 왜 온 거야?”
“그야, 지난번에 왔을 때 그 딸기를 다 먹지 못하고 돌아갔으니까 마저 먹을까 하고.”
“누가 남겨 놨을까 봐?”
시큰둥하게 말하는 라일라였지만, 실은 남겨 놨었다. 혹시나 그가 다시 온다면, 맛있게 완성한 스튜와 딸기를 내놓을 생각이었다,
이제는 다 타 버리고 없지만.
“뭐,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요.”
비오스트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웃어 버렸다.
“그런데 왜 부모님이랑 떨어져서 사는 거죠?”
“……다 컸으니까. 독립한 거야.”
“그렇군요. 그럼 혼자 산 지는 얼마 되지 않았겠네요?”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궁지에 몰린 라일라가 발을 멈추고, 비오스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너무 꼬치꼬치 물었나요?”
“그래.”
“어쩔 수 없죠. 궁금한걸요.”
비오스트는 애정이 담뿍 담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사르르 웃었다. 바람의 요정이 그 미소를 보고 비오스트에게 반해 버렸는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부는 바람에 비오스트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흔들렸다.
“귀가…….”
부는 바람이 귀를 덮고 있던 그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자 붉은 상처가 보였다. 뜨거운 무언가에 덴 듯한 상처였다.
“아아-”
잊고 있었다는 듯, 비오스트는 라일라의 지적에 슬쩍 웃었다.
“다친 거야?”
“네. 제가 생각보다 칠칠하지 못해서요.”
별것 아니라는 듯, 비오스트는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머리카락을 손으로 흐트러트려 귀를 덮어 버렸다.
“자, 갈까요?”
비오스트는 먼저 발을 뗐다. 저 혼자라면 빠르겠지만, 라일라와 함께라면 남작의 저택까지는 아직 한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라일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선 채였다.
“라일라?”
오솔길의 한쪽에 서서 낡은 제 옷의 치맛자락을 꽉 붙들고 있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치료해 줄까?”
“네?”
“다쳤다며, 치료해 줄까?”
라일라의 말에 비오스트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 치료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어디서 다치고 오셨냐며, 귀한 몸에 상처가 나서 황궁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경을 친다며 호들갑을 떤 수리가 소독도 하고, 약도 다 바른 상태였다.
제국에서 가장 약학에 능한 의원이 만든 연고였다. 이보다 더 나은 약은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눈앞에 여자는 의원도 뭣도 아니었고, 오히려 아는 것도 가진 것도 하나 없는 여자였다.
“그래. 너도 날 치료해 줬으니까.”
“아아-”
비오스트의 시선이 라일라의 손가락에 가서 닿았다. 보는 사람이 다 아파 보일 만큼 짧은 손톱이 여린 살을 채 덮지 못하고 있었다.
라일라가 말하는 치료란, 제가 라일라에게 해 주었던 그 거짓말을 말하는 것이 틀림이 없었다.
혀로 핥아 주는 것.
그 생각을 하자 비오스트의 안에 있던 욕망이 갑자기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은혜를 갚는다, 뭐 그런 건가요?”
“싫으며 말아! 네 녀석이 아프든지 말든지 나는 상관없으니까.”
정말이지 인내심이 짧은 고양이였다. 조금만 뭐라고 하면 금방 하악질을 하고 팩 토라져 버리는 고양이.
라일라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 따위 없다는 듯, 입술을 꼭 다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라일라가 막 비오스트를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그는 라일라의 손목을 붙들었다.
“치료, 받고 싶은데요.”
“뭐?”
“치료, 꼭 받고 싶다고요.”
비오스트가 다시 사르르 웃었다. 이번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괜히 라일라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결코 바람 탓은 아니었다.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비오스트를 올려다보며 라일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어쩐지 웃는 얼굴이 꼴 보기 싫었다.
마치, 옳거니! 잘 걸려들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얼굴 앞으로 제 귀를 가져다 대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뭔지 몰라도 제가 말을 잘못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낮춰 줄까요?”
라일라가 까치발을 들어야 간신히 제 귀에 라일라의 입술이 닿을 것 같아서 비오스트는 순순히 다리를 굽혀 주었다.
제 눈앞에 막상 비오스트의 귀가 디밀어지자, 라일라는 순간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의 귀에 있는 붉은 기를 보자 얼른 아프지 않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일라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