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꽃-13화 (13/88)

13.

라일라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제 눈앞의 덫을 노려보았다. 벌써 이러고 있었던 것이 몇 시간째인지……. 모르긴 해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긴 했다.

아침 일찍 밥을 먹고 나온 라일라의 배 속이 꼬르륵거리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일부러 그 소리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찍부터 설쳤건만, 아직도 허탕이었다. 노루나 사슴은커녕, 토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다.

“제발 사슴 한 마리만. 아니면 토끼라도. 뭐라도 좋으니, 제발 스테이크로 만들 수 있는 놈 하나만 걸리란 말이야.”

중얼거리는 라일라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젠장! 저따위 허섭스레기 같은 걸 덫이라고 한단 말이야? 쓰레기 같은 남작가 놈들!”

아주 예전에 남작가에서 보내온 물품 중에 있던 것이었다. 이걸 보면서 정말 기도 차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점점 고기를 보내 주지 않더니만, 짐 꾸러미에 이것이 들어 있었다. 알아서 집적 사냥을 해서 먹으라는 뜻을 알아차리곤 조용히 방구석으로 집어 던진 물건이었다.

“혹시 그때 고장이라도 났나?”

그때 너무 세게 집어 던져서 나무 부스러기 몇 조각이 오두막에 널려 있기는 했었다.

의심스러운 표정의 라일라가 살그머니 수풀 속에서 일어났다. 혹시 이 순간에 덫에 걸릴 만한 동물이 다가올까 봐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옆에 있던 기다란 나무 꼬챙이를 하나 주워 슬쩍 덫의 가운데 부분을 지그시 눌러 보았다.

챙캉!

덫에 걸린 나무 꼬챙이를 꼭 쥐고 있던 라일라는 움찔했다. 덫은 아주 잘 작동되고 있었다.

“근데 왜 하나도 안 잡히는 거야?”

불만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라일라는 문득, 이것 역시 자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젠장!”

냄새를 풍기는 자신이 여기에 있는 한, 접근하려는 동물은 없을지도 몰랐다. 동물도 썩은 냄새가 나는 곳은 피할 테니까.

“제기랄!”

라일라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덫에 걸린 나무 꼬챙이를 빼내려고 했지만, 그도 쉽지 않았다, 단단히 닫혀 버린 덫은 나무 꼬챙이가 맛난 먹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물고 놓지 않았다.

“놓으라고, 이 멍청한 것아!”

나무 꼬챙이를 세게 흔들어 보지만, 덫은 열릴 줄 몰랐다.

“으!! 진짜!”

라일라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종이와 라일라의 시선 사이로 숲의 청량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제길! 뭐 읽을 수가 있어야지.”

한참을 그렇게 설명서를 바라보고 있던 라일라는 도로 종이를 구겨 버렸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남작 영애지만 버림받은 아이였다.

그나마 어릴 때는 나이 많은 유모라도 있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악취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던 유모는 병환을 핑계로 고향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6개월, 3개월, 혹은 1개월, 어떨 때는 단 사흘. 몇 명의 유모가 바뀌었다. 그리고 라일라가 걷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무도 없었다.

냄새나는 아이를 돌볼 유모를 구하기를 남작도, 남작 부인도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라일라는 헛간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헛간에서 지내는 버림받은 아이에게 가정교사가 붙을 리 만무했다. 마구간에 오가는 사람들의 말을 엿들으며 어찌어찌 말은 배웠지만, 글은 그렇게 배울 수가 없었다.

오두막에 온 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심했다. 여기서는 오가는 사람도 없어서 온종일 사람 목소리도 듣지 못한 적도 많았고, 라일라 역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지나는 날이 더 많았다.

그 흔한 동화책 하나 가지지 못한 어린 소녀가 글을 배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나중에 불쏘시개로 써야지.”

덫의 옆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이빨을 벌리게 되어 있는 간단한 원리였지만, 그걸 읽을 줄 모르는 라일라에게는 그저 불쏘시개밖에 되지 못하는 설명서였다.

“에잇! 진짜!”

몇 번을 더 나무 꼬챙이를 흔들던 라일라는 결국 그것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됐어! 스테이크든 뭐든 내가 알 게 뭐야!”

라일라는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애초에 미친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서도 읽지 못하면서 덫을 놓아서 사냥하겠다는 발상을 한 자신이 이상했다.

스테이크를 좋아한다는 그 말이 자꾸 신경 쓰이는 자신이 이상했다.

간밤에 몇 년 동안 쓰지도 않았던 그 덫이 번뜩 생각이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것도 이상했다.

꼭두새벽부터 그걸 찾는다고 온 집 안을 뒤진 것도,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밖으로 나온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가장 이상한 것은 그 남자가 그 치료라는 것을 해 줄 때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이었다. 어딘가가 가려운 것 같기도 하고, 찌릿찌릿한 것 같기도 하고, 춥지도 않은데 닭살이 돋아나는 것도 그러했다.

자신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나타난 이후부터.

비오스트를 떠올린 라일라는 오두막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칫했다.

새까만 머리카락, 빛나는 황금의 눈동자. 상냥하게 웃던 그 얼굴.

잔뜩 짜증이 나서 곤두서 있던 라일라의 얼굴에서 짜증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라일라를 보고 처음으로 냄새난다고 하지 않은 남자였다. 아니,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예쁜 아가씨라고 말해 준 사람이었다.

또, 처음으로 그녀를 향해서 웃어 준 사람이었다.

“젠장! 빌어먹을!”

입으로는 욕을 내뱉지만, 라일라의 볼에는 살그머니 홍조가 깃들었다.

라일라는 발길을 되돌렸다. 그놈의 덫을 다시 한번 흔들어 볼 참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덫에 걸릴 멍청한 짐승을 기다려 볼 참이었다.

혹시나, 비오스트가 다시 찾아온다면 스테이크를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 * *

“이건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서 있는 아리아드네를 보며 시종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

물론, 그의 난처한 표정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아리아드네는 그에게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시종은 말없이 눈앞의 아리아드네를, 그리고 뒤쪽의 짐마차를 보았다. 참으로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뒤쪽에서 가만히 그 모양새를 보고 있던 남작이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아리아드네와 눈물의 이별식을 한 뒤라 눈가가 붉어져서 일부러 뒤에 서 있었던 그였다.

“그러고 보니, 황태자님께서 안 보이시는 군요.”

황태자비 후보를 손수 데려간다기에 당연히 타고 왔던 황실 마차를 타고 갈 줄 알고 아리아드네가 탈 마차도 준비시켜 놓지 않았는데 말이다.

“준비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제가 먼저 내려왔습니다.”

수리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이것 참 곤란하게 되었네요.”

“뭐가 곤란하게 되었단 말인가요?”

“그것이…….”

수리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두 부녀를 바라보았다.

“제가 남작님께 말씀드렸던 영애님은 이분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분명 황태자 전하께서 제 딸을 황궁으로 데려간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분명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황태자가 남작의 딸을 황태자비의 후보로 데려가겠다고 한 것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르라고 말한 것 역시 진짜였다.

“그런데 인제 와서 ‘이분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만 그 중간에서 약간의 장난질을 친 것은 수리였고, 황태자의 충실한 시종이자 제 목이 귀한 수리는 제 장난질에 황태자를 참여시킬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귀하신 황태자 전하께서는 지금 안락한 방에서 자신의 검을 닦으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남작의 정원에서 이런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서.

“그러니까, 발렌시아 남작 영애를 황태자비 후보로 황궁으로 모셔 가려는 것은 맞습니다만, 이 발렌시아 남작 영애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아니, 얘가 아닌 발렌시아 남작 영애라니! 나도 모르는 내 딸이 또 있기라도 하다는…… 거…….”

처음에는 화가 난 듯 속사포로 이야기를 하던 남작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뒤에는 끝내 그대로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있었다.

“서, 설마?”

“네. 맞습니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말을 더듬는 남작을 보며 수리는 살짝 웃어 주었다.

“말도 안 돼!”

“말 됩니다.”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비명처럼 소리치는 아리아드네를 향해서 역시, 수리는 방긋 웃어 주었다.

“저희가 원하는 발렌시아 남작 영애는 남작님의 장녀이신, 라일라 님이십니다.”

마지막 쐐기를 박은 수리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방긋방긋,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마도 황태자는 자신을 탓하지 않으리라.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 그 애를…… 황태자비로…… 황실에…….”

“모시고 갈 겁니다.”

언어능력이 퇴보한 남작을 대신해서 수리는 말끔하게 문장을 완성해 주었다.

“말도 안 돼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충분히 말이 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황태자님께서 그 애를 언제 봤다고?”

“숲속 오두막에 있으신 것을 봤다고 하시더군요. 그 사냥하던 날 말입니다.”

“설사 봤다고 치더라도! 어떻게 그따위 애를!!”

주먹을 쥔 아리아드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상대방이 황태자의 시종이라는 자각이 없었다면, 당장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는 놈의 입을 채찍으로 후려쳤을 것이다.

황태자의 직속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자신의 행동이 그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옆에 있는 하녀의 머리를 쥐어뜯고, 저 나무들을 발로 찼을 것이다.

그것들을 전부 할 수 없는 아리아드네였기에, 그저 자신의 주먹만 세게 쥐며 분노를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디 있소? 게다가 분명히 내가 우리 아이를 부탁하며 당신에게 돈까지 쥐여 줬지 않소.”

“네. 그러셨죠.”

“그래 놓고선, 아니 성공보수에 덤까지 받아 놓고선!”

“분명히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남작 영애가 황태자비 후보로 황궁에 가시게 되었으니까요.”

“아니, 그게 무슨! 내가 말한 딸은!!”

“라일라 님도 분명 남작님의 따님이 아니던가요? 게다가 훌륭한 장녀이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라일라도 자신의 딸이긴 했다.

자신이 버린 딸.

“따님이 두 분이다 보니 서로 간에 살짝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이제라도 오해가 풀렸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라일라 님이 오늘 당장 출발하는 것은 무리이시겠지요?”

“아니, 그게…….”

“그럼 내일까지 말미를 드리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원래 여기 있어야 하는 남작 영애분과 함께 뵙죠.”

그 말을 끝으로 수리는 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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