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일라의 소원은 완벽한 타살이었다.
가능하다면 고통 없이 죽는 편이 좋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고통이 있어도 좋으니 깔끔하게 죽고 싶었다.
부디, 상냥한 살인자가 나타나서 자신을 죽여 주기를.
다정하신 구원자가 나타나서 자신의 목숨을 거둬 가기를 항상 신께 기도했다.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신을 믿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어쨌든 라일라의 소원은 그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죽여 주는 것.
그리고 마침내 라일라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그녀의 목숨을 빼앗을, 아름답고 잔혹한 구원자가.
* * *
산길을 1시간쯤, 그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평원을 또 30분쯤.
라일라가 사는 오두막에서 그렇게 걸어야 남작의 저택이 보였다. 저 멀리서 저택이 보이고 나서도 또 10분쯤은 더 걸어야 저택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저택의 입구가 라일라의 눈에 보였다. 더불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경비병의 모습도.
라일라는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아무도 자신의 겉모습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더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언제나 자신을 한 번 더 점검하는 라일라였다.
그녀가 저택에 다가갈수록, 경비병의 인상은 더욱 찌푸려졌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라일라 역시 인상을 굳혔다.
원래도 무표정이었긴 하지만, 이제는 숫제 바위를 깎아 만든 사람처럼 딱딱한 얼굴이 되었다.
“우엑! 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야? 토할 것 같아.”
경비병의 혼잣말이 라일라의 발을 멈칫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라일라는 자신의 발을 재촉했고, 결국 그의 앞에 당도했다.
“어이, 어이. 거기 멈춰.”
입구에 서 있던 보초병은 들고 있는 창으로 라일라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는 아무나 얼씬거리는 곳이 아니라고. 남작님의 저택이야. 썩 꺼……. 응?”
험악한 인상을 하고 라일라에게 을러대던 남자의 코가 벌름거렸다. 그리고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우웩! 이 냄새 뭐야!”
남자는 속이 메스꺼운지 헛구역질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일라는 그 모양새를 치마를 쥐어뜯으며 보고 있었다.
“시궁창에 빠진 거야? 아니면, 시체랑 재미를 보고 온 거야, 뭐야?”
보초병은 무덤에서 되살아 나온 좀비를 마주한 것처럼 경계태세를 갖추며 라일라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경계와 함께 혐오와 역겨움이 어리어 있었다.
“그 창 저리 치워.”
내 코끝을 향하고 있는 창은 본 척도 않고, 라일라는 경비병에게 말했다.
“너나 그 썩은 냄새가 나는 몸뚱이를 당장 여기서 치워.”
그렇지 않으면 당장 찌르리라는 것처럼, 경비병은 말했다.
순간, 라일라는 갈등했다.
좀 더 미친년처럼 굴까? 제 몸을 더 들이대어 볼까? 그러면 과연 저 경비병은 자신의 목에 저 날카로운 창을 꿰뚫는 성스러운 행동을 해 줄까?
그래서 마침내 자신은 그의 말대로 이 썩은 냄새가 나는 몸뚱이에서 해방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라일라는 기꺼이 미친 척을 할 수 있었다. 저 경비병에게 더한 욕을 들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이 미친…….”
라일라가 경비병에게 미친 척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이었다.
“어쩐지 구린내가 나더라니…….”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목소리가 저택의 안쪽에서 들려왔다.
막 욕을 퍼부으려던 라일라도, 역시 욕설을 막 하려던 경비병도 입을 다물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고운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여인이 거기에 서 있었다.
“아이고, 아가씨! 어쩐 일로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경비병은 라일라를 대하던 때와는 딴판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덕에 라일라를 겨누고 있던 창이 위험하게 그녀의 코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라일라를 다치게 할 뻔한 경비병도, 다칠 뻔한 라일라도.
“어쩐 일이긴? 당신이 일을 똑바로 못 하니까, 내가 나오게 된 거잖아. 저 냄새나는 걸 당장 내 집 앞에서 치우지 않고 뭐 하고 있어?”
“아, 네네. 당장 치우겠습니다.”
경비병은 당장이라도 라일라를 끌어낼 것처럼 다가왔다가, 이내 다시 인상을 찌푸리고 조금 주저했다. 악취가 나는 라일라를 건드리기 싫어서 그런 것임이 틀림없었다.
“내 몸에 손대기만 해 봐? 아버님께 당장 고할 거야.”
조금 전까지 이자의 창에 찔려서 죽는 것이 참으로 달콤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라일라의 태도는 이미 변해 있었다.
죽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목이 꿰뚫려서 죽는 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라일라의 인생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여인의 앞에서는 아니었다. 저 여자의 앞에서는 비참하게 죽어 가는 꼴을 보여 줄 수 없었다.
“뭔, 미친 소리래?”
경비병은 라일라의 말을 미친 여자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그리고 자신의 혐오감을 참아 내며 그녀의 팔을 잡으려고 했다. 라일라가 재빨리 팔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말이다.
“당신, 발렌시아 남작가에서 돈을 받는 사병이잖아. 나는 엄연히 그 발렌시아 남작가의 일원이야.”
라일라의 말에 잠시 멈칫했던 경비병은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작고 깡마른, 볼품없어 보이는 여자였다.
날씬한 것이 아니라 못 먹어서 마른 몸에, 얼마 전까지 앓다가 일어난 것인가 싶을 만큼 안색은 나빴다.
옷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으며, 신고 있는 구두는 낡다 못해 한쪽에 빠끔히 구멍이 나 있었다.
게다가 가장 결정적으로, 그녀에게서는 말도 못 하는 악취가 풍겼다.
그런데 이 여자가 귀족이라고? 남작가의 일원이라고?
저 저택의 입구에 선 탐스러운 금발에 보석같이 아름다운 파란 눈을 가진 화려한 아리아드네의 가족이라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였다.
“어이! 이봐! 미친 소리 좀 작작 해. 그런 헛소리를 할 시간이 있으면 좀 씻고 다니기라도 하라고.”
비웃는 경비병을 무시하고, 라일라는 저 안쪽 아리아드네의 앞으로 한 발 더 다가갔다.
“아버님을 뵙고 싶어.”
“…….”
대문 안의 아리아드네는 말이 없었다.
“이 미친년이! 아가씨께 말 시키지 말라고, 네까짓 게 감히!”
“……없어.”
윽박질러서 이 미친 여자를 쫓아내려던 경비병의 귀에 쀼루퉁한 귀족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며 안쪽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도도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아리아드네가 보였다.
그녀 외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남몰래 흠모하던 아름답고 도도한 아리아드네 아가씨가 저 미친 여자의 말에 대답해 준 것이다.
그것도 감히 같은 아버지를 두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어머님은?”
“없어.”
자신이 들은 것이 헛것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목욕하고, 수십 번 손을 씻는다는, 더러운 것이라면 딱 질색이라는 아리아드네 아가씨가 저 더러운 악취를 풍기는 여자랑 대화하고 있었다.
“거짓말.”
“내가 너한테 그런 거짓말을 해서 뭐 하게? 아버님도, 어머님도 귀한 손님을 마중 나가시느라 안 계셔. 용건이 끝났으면 이제 꺼져 줄래?”
아리아드네는 팔랑거리며 부채를 부치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바람에 날려가는 냄새처럼 라일라가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초가…… 떨어져서 왔어.”
“그런데?”
없으니 달라는 말인 줄 알면서도 아리아드네는 그렇게 되물었다.
초는 귀한 물건이었다. 이 근방에서 초를 살 만한 사람은 남작가와 일부 부유한 상인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필요한 만큼 주문을 해서 썼고, 일반 시장에서는 팔지도 않는 물건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우리가 네 뒷바라지를 해 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이야말로 안락한 남작가에서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편안하게 사는 주제에 오두막으로 쫓겨난 가엾은 언니를 향해서 아리아드네는 그렇게 말했다.
“이제 너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결혼해서 남편에게 빌어먹든지, 알아서 돈을 벌든지 해야지, 대체 언제까지 우리한테 이렇게 기생해서 살 거야?”
지금 아리아드네가 하는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아리아드네도 라일라도 알았다.
이런 악취가 나는 여자와 결혼을 할 남자는 없었다. 적어도 제정신인 남자라면 말이다.
설사 누군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발렌시아가에서는 라일라를 정식으로 결혼시킬 수도 없었다.
악취가 나는 마녀라는 소문의 장녀를 남들 앞에 떳떳이 내놓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노려보는 라일라를 비웃으며, 자신의 작은 손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100실링짜리를 하나 꺼내 거지에게 적선이라도 하듯, 대문의 창살 사이로 툭- 집어 던졌다.
동그란 동화는 또르르 굴러와 라일라의 낡은 구두에 막혀 쓰러졌다.
“필요한 것 있으면 사서 써.”
“내가…… 시장을 못 간다는 걸 알잖아.”
“왜 못 가는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리아드네는 물었다.
경비병의 눈에는 보였다. 처음 나타날 때는 인상을 쓰고 있던 아리아드네의 얼굴에 어느새부터인가 미소가 떠올라 있는 것이.
기분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 상대방을 한껏 조롱하고 비웃는 그런 악의적인 쾌감이 배어든 미소였다.
그 조롱 어린 미소를 받으며 라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아……. 정말 우리 마을 사람들은 뭐 하나 몰라. 다른 동네 사람들은 잘도 마녀를 잡아서 화형시킨다는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미 아리아드네는 팔랑이는 부채를 부치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던져 놓고 간 동화만 뚫어지게 보고 있던 라일라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모멸감과 굴욕이 뒤엉킨 그녀의 얼굴은 맨 처음 저택에 당도했을 때보다 더욱 창백했다. 그리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녀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녀 대신 경비병이 얼른 바닥에 떨어진 돈을 주웠다.
다급하게 저택의 안쪽을 쳐다보자 돈의 주인인 아리아드네는 이미 사뿐사뿐 아름다운 정원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반대편을 바라보자 아까 그 깡마른 여자는 벌써 저 멀리까지 가 버린 뒤였다.
그리고 천천히 악취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