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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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후란 대륙의 중심부에 자리한 바델.

상업, 군사, 문화의 중심 국가인 바델의 한적한 시골길을 지금 한 젊은이가 커다란 직사각형 검 한 자루를 등에 차고 걸어가고 있었다. 검은 검집이 아닌 기묘한 금속 탈착 장치에 붙어 있었다.

“가자.”

너울진 언덕길은 점점 부드러워지는 지세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고, 젊은이는 머리칼을 봄바람에 날리며 가슴 가득 심호흡을 했다.

고향의 향기가 나서일까. 왠지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분에 연한 미소도 지어 보았다.

“얼마 만인가.”

스물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이는 검은색 흉갑을 두르고 있었고, 견갑과 팔 보호대 그리고 무릎과 정강이 보호대는 짙은 흑갈색으로 이계에서 넘어온 괴물 루키도의 가죽이었다. 흉갑은 그보다 더 단단한 이계의 마물 듀러의 껍질로 어지간한 고위급 마법까지 튕겨 낼 수 있었다.

“꽃향기….”

들꽃과 산야초들에서 나는 향기가 젊은이의 코끝에 감돌았다. 눈가를 스치고 또 가슴을 휘감으며 그예 마음의 수면을 흔들었다.

“일리아….”

허공으로 퍼져 나간 그 이름을 불러 본 지 얼마나 되었나. 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슴속에 소용돌이친 그 이름이 이제 다시 고향의 공기 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돌아왔어….”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결국 눈물이 차오르고 말았다. 발걸음이 자꾸 구름을 밟는 듯했다.

“선물을 가져왔어… 일리아….”

십 년 만의 귀향은 아직 건네지 못한 그 날의 선물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새하얀 봄 햇살이 눈물 난 제릭의 두 눈을 보석처럼 빛나게 했다.

가루모스와 악비온은 대마법사 룽켄의 수제자였다. 그중 가루모스는 스승의 뒤를 이어 대마법사의 지위에 오를 게 거의 확실시 되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가루모스는 좀 더 새롭고 깊은 마법의 세계를 탐구하던 중 우연히 열린 공간의 틈 사이로 마계를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아가 소통했으며 결국 마계의 주술을 응용해 새로운 강력한 마법력을 구현해 갔다.

하지만 그 모습을 훔쳐본 악비온은 당장 룽켄에게 고했고 스승에게 불려 갈 상황에서 가루모스는 도망을 택했다. 그 후 자신을 따르는 마법사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마법 세력을 구축했으니 이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양측은 격렬한 마법전을 벌였고 많은 사상자를 낸 끝에 가루모스는 패배하고 말았다. 전쟁 중에 가루모스의 가족과 친지들은 몰살을 당했고 홀로 도주한 가루모스는 악비온의 성을 급습해 그의 아내와 아들을 마계의 화염으로 녹여 버렸다.

결국, 다시 맞닥친 둘은 처절한 결투를 벌였고 가루모스의 패배와 도주로 마법 전쟁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 후 기나긴 세월 동안 가루모스는 발카람의 지하 동굴 속에서 지난날을 후회하고 또 분노하며 숨어 지냈고, 계속 마계와 교류하고 이계와 소통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마법 세계를 완성해 나갔다.

하지만 마법의 힘이 거대해져도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까닭은 악비온의 마지막 공격과 함께 가슴에 박힌 마법의 파편들이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고통의 파편은 제거할 수 없었고 더욱이 지상과 가까운 곳으로 올라가면 갈수록 고통은 가슴을 찢어 버릴 듯 격렬해졌으니 그건 벗을 수 없는 족쇄와도 같았다.

“악비온… 이 철천지원수….”

하지만 스승 룽켄의 뒤를 이어 대마법사가 된 악비온은 지상의 마법계를 완벽히 지배하고 있었고, 가루모스는 혼자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고통의 굴레 속에서 증오만을 키워 오던 가루모스에게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교류하던 마계 쪽에서 가슴의 고통을 잠재울 치유 마법을 만든 것이었다.

“오오, 드디어…!”

하지만 그 치유 마법을 돌리기 위해선 재료로 쓰일 순수한 영혼들이 필요했는데,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저마다 다른 영혼의 무늬 중에서도 꼭 맞는 순수함이 필요했다.

마계 쪽에선 그 영혼들의 좌표까지 알려 줬고 가루모스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기쁨도 잠시, 그 영혼을 가져다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런….”

마귀를 소환해 명을 할 순 있었다. 하지만 악비온의 마법사들에게 붙잡히면 십중팔구 제가 살기 위해 이곳을 실토할 게 빤했다. 이계의 괴물들 역시 신뢰할 수 없었다.

믿을 만한 부하가 하나도 없어 망연자실하던 가루모스 앞에 하프오크 한 마리가 나타난 건 어쩌면 운명인지 몰랐다.

“왜 울고 있느냐.”

자신의 운명을 비관해 깊고 깊은 동굴로 들어와 자살을 하려던 오크 고욤에게 가루모스는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인간 여자가 되고 싶은 암컷 오크는 그날 이후 가루모스를 위해 순수한 영혼들을 가져다 바쳤다.

“오오, 그래그래….”

하나 둘 셋 넷… 차근차근 너무도 쉽게 이뤄질 것만 같았던 그 꿈은 그러나 마지막 영혼 앞에서 고욤의 팔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이럴 수가….”

절망은 깊었지만 가루모스는 그 마지막 영혼이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것이란 예감을 느꼈다.

그리고 십 년의 기다림 끝에 역시 그 예감대로 마지막 열 번째 영혼이 나타났으니 고욤은 이미 마중을 나가 있었다.

“그래, 어서 오너라. 내가 널 이토록 기다리고 있었단다.”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며 가루모스는 다시금 복수의 희망을 꿈꾸었다. 그리고 이제 보니 고욤은 더 이상 과거의 오크가 아니었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

짙은 어둠이 내린 산속의 밤은 그러나 둥근 보름달과 수많은 별빛들에 적막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저 내일 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될 일리아를 생각하면 자꾸 가슴이 아려 오고 한숨 소리는 갈 데 모를 작은 새처럼 밤하늘을 날아다닐 뿐이었다.

“고향이 가까우니 뭔가 내 자신을 주체하기 힘들구나. 어린 시절 그때처럼….”

십 년 전 울부짖으며 고향 쥴른을 떠난 제릭은 머나먼 바다 건너 아직도 드래건과 요정과 오크들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또 다른 대륙 벨차라키로 건너갔다.

전쟁이 일상인 그곳은 때론 이계의 문이 열리며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심지어 마계의 틈까지 벌어지며 뜻 모를 마력이 넘나들기도 하는 혼돈의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십 년 동안 쉼 없이 끓어오르는 울분을 검 한 자루에 실어 허공을 갈랐고, 그 검날에 죽어 나간 괴물들은 셀 수가 없었다.

오크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베었고, 요정들과도 충돌했으며 심지어 전설적인 드래건 이이제케의 숨을 끊어 놓기도 했다. 인간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지만 제릭은 이제 늑대인간으로 변하지 않아도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바다 건너 벨차라키 대륙의 용병대 대장 제릭의 모습이었다.

“일리아….”

다시 바다를 건너와 고향으로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그 막강한 전사는 어린 소년의 마음을 가진 스물다섯 청년으로 변해 갔고, 드래건 앞에서도 당당하던 눈빛은 이렇게 쓸쓸한 한숨에 흔들리며 별 하늘을 헤었다.

일리아에게 씌워 주려던 그날의 화관이 떠오르자 제릭은 가슴이 메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오르고, 이 눈물은 내일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렸을 사랑 앞에 바칠 그리움이었다.

“보고 싶어….”

그런 제릭을 맞은편 높은 나무 위에서 누군가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언젠가 이곳으로 되돌아올 너를 말이야. 그리고 널 애타게 기다렸을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지. 넌 특별하니까.’

만월의 빛이 온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가운데 나무 위에선 푸르스름한 바람 한 자락이 흔들리고, 보고픔에 눈물짓는 한 젊은이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부끼며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 * * * * * *

다음 날.

아침 해가 산등성이를 물들일 무렵 제릭은 다시 귀향길에 올랐다. 늦은 오후면 일리아를 만나게 되리라. 벌써부터 나울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눈부신 오전 무렵, 초록 빛깔 숲길을 걸어가던 제릭은 가만히 걸음을 세웠다.

저만치 앞에 한 여인이 작은 바위 위에 앉아 왼손으로 오른 발목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 …… .”

여인은 허리에 날렵한 검 한 자루를 차고 있었고, 표정으로 보아 발목을 다친 듯했다. 이내 얼굴을 들어 제릭을 마주했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여인의 오른팔을 힘없이 들어 날리게 했고 제릭은 그 하늘거리는 모습에 시선을 보냈다.

여인은 오른팔이 없었다. 바람이 잦아들자 푸른 옷자락은 다시 차분해졌다.

제릭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인의 시선이 비켜 갔다 다시 마주치고, 팔 없는 옷자락은 어서 오라는 듯 나긋이 떠올라 흔들렸다. 말없는 서로를 바라보기를 잠시, 제릭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친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릴까요?”

여인은 한눈에도 아름다운 외모였고 옷차림은 가벼운 여행길에 나선 귀족 여인처럼 고급스러웠다.

“일행이 없습니까?”

여인은 찬찬히 도리질을 했다. 도리질을 하는 그 얼굴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느끼며, 또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며 제릭은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

맑고 차분한 그 눈빛에 경계심이 풀어졌지만 이 외딴 숲속에 왜 여자 혼자인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름다운 여인은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 이름은 제나. 현상금 사냥꾼이에요.”

현상금 사냥꾼. 단아하면서도 귀족적인 여인으로부터 들려온 뜻밖의 말에 제릭은 눈을 깜빡였다. 제나는 미소 띤 목소리로 말했다.

“한 살인범을 쫓고 있었는데 어젯밤 놓쳐 버렸어요. 그리고 방심을 하다 어둠 속에서 멧돼지 하나가 달려드는 걸 못 보고 말았죠. 피했는데 발목을 살짝 다치고 말았어요.”

여인의 발목엔 피멍이 들어 있었다.

“괜찮아요. 조금 시큰거리긴 해도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여인은 제릭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 달라는 미소가 그녀의 눈가를 지났다. 제릭은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도무지 현상금 사냥꾼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며 다가갔다.

손을 잡으니 따뜻했다. 부드럽게 당기니 여인이 한 걸음 앞에 마주 섰다.

웃음 짓는 여인의 눈매가 아침 햇살에 무척 매력적으로 빛났다. 제릭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틀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여인에게서 묻어오는 고운 향기에 가슴이 미묘한 물이랑을 그리는 걸 느끼며 제릭은 다시 여인을 보았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 더욱 묘했다.

그녀의 오른팔이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제릭의 시선에 제나는 담담히 말했다.

“어릴 적 어떤 짐승에게 물려 사라져 버렸어요. 오래전 이야기라 불편하지 않아요.”

제릭은 고개를 끄덕여 여인을 마주했다. 그래도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현상금이 붙은 범죄자를 쫓는다는 의구심은 떠나지 않았고, 제나는 또 그에 답했다.

“이래 봬도 검술이 아주 뛰어나답니다. 하지만 범죄자들을 잡는 데 더 유용한 건 검보다 표창 같은 원거리 무기죠. 물론 그보다 더 좋은 건 제 외모에 방심을 해 주는 남성들의 고마운 마음이고요.”

제릭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로 둘 사이의 안개 같은 거리감은 사라지고 기연처럼 만난 인연이 봄빛처럼 다가왔다.

“걸을 수 있겠습니까?”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등에 업힐 정도는 아니에요. 혼자 걸을 수 있어요. 근데 이 길을 따라 쥴른으로 가시는 건가요?”

“네.”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요. 혼자 가기에 심심하고 또 멧돼지가 덤벼들까 걱정도 됐는데 말이죠. 우리 같이 가요.”

우리….

여인에게서 들려온 그 말에 기분이 야릇해짐을 느끼며 제릭은 걸음을 옮겼다. 여인이 옆에서 따라 걸었고 발걸음은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눈길이 닿자 여인은 또 단아한 미소를 그렸다.

“쥴른에 가면 제가 차 한 잔 대접할게요. 배고프면 식사도요.”

“마을에 들어가진 않습니다.”

“그럼.”

“마을 옆을 잠시 지나쳐 갈 생각입니다. 거기까지만 동행을 하지요.”

제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일지 기연일지 아니면 운명일지 모를 바람이 둘 사이를 불어 갔다. 큰 검을 등에 찬 남자와 날렵하고 아름다운 검을 허리에 두른 여자는 그렇게 오래전 기억을 찾아 함께 숲길을 걸어갔다.

그러다 제나가 말했다.

“신기하네요.”

“뭐가요?”

“그냥요.”

둘의 모습을 하늘 위에서 푸르스름한 바람 한 자락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쥴른이 구릉지 너머로 가까워진 점심 무렵, 제릭과 제나는 나무 그늘이 반짝이는 편편한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다.

“안 먹을 거예요?”

제나는 과일과 견과류를 내밀었지만 제릭은 도리질을 할 뿐이었다. 제나는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후 과일을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그러면서 혼자만의 만감에 사로잡혀 있는 제릭을 살폈다.

“무슨 생각 해요?”

제나의 물음에 제릭은 푸른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거예요?”

제릭은 고향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마음속으로 답했다. 고향이 한 걸음 앞에 다가와 있다고….

제나는 조용히 말을 더 붙였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중인가 봐요?”

제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누군데요?”

제나의 나지막한 물음에 제릭은 서글픈 미소를 감췄다. 제나는 달콤한 과일 한 조각을 깨물었다. 바로 옆 나무의 높은 가지 위에서 투명한 푸른 바람이 한들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돌아왔다.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의 그 작은 신전….

그날의 핏빛 옹달샘은 어찌 되었을까.

말라 버렸을까.

꽃들은, 바위와 예쁜 돌들, 그리고 땅에 떨어졌던 그날의 왕관은….

제릭은 현상금 사냥꾼 제나가 따라오는 걸 느꼈지만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변함없는 어린 시절의 풍경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갈 때마다 심장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어렸을 적엔 아담하면서도 꽤 넓다고 생각했던 신전은 십 년의 세월 후 놀랍도록 작아져 있었고, 모습 또한 잡풀이 우거져 더 이상 그날의 궁전이 아니었다.

“ …… .”

황폐해진 현실 속에서 제릭의 고동 소리는 점차 지푸라기처럼 말라 갔다.

지난 세월 전쟁터에서 자신을 분노케 하고 불타오르게 한 건 바로 일리아가 쓰려져 있는 그날의 풍경이었다. 붉게 물든 옹달샘과 석상이 되어 잠겨 있는 그 얼굴….

“다 사라졌어….”

그대로일 거라는 슬픔이, 그리고 아픔이, 한 자락 바람이 되어 신전의 잡풀 위를 떠다녔다. 그때 조그맣게 발소리가 났다.

제나는 입구 쪽에 걸음을 멈추고 제릭을 바라보았다.

제릭은 투명하게 빛나는 옹달샘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이윽고 어깨가 내려앉았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달라졌구나 하는 아득함만 수면에 비친 하늘을 떠갔다.

제나는 가만히 떨리는 심호흡을 했다. 이제 공간이동 마법을 발하면 제릭과 함께 가루모스의 지하 동굴로 옮겨 가게 될 테고 그러면 그곳에서 지난날 끝내지 못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게 될 것이었다.

‘꿈이 이뤄지겠구나.’

십 년 전 이곳에서 한 소녀의 머리를 돌도끼로 강타했던 오크 고욤, 이제는 아름다운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만감 어린 심정을 만끽하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오크가 아니야.’

그때였다. 제릭이 서글픈 눈빛으로 왼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손 위에 별빛 하나가 떠올랐고 별빛은 곧 깨알같이 부서지더니 영롱한 왕관으로 나타났다.

그날의 화관을 닮은….

아름다운 보석들이 빛나는 왕관을 제릭은 두 손으로 감쌌다. 왕관의 앞쪽에 박힌 선명한 붉은 보석은 신의 꽃 체르칸을 닮았다.

제나는 뜻밖의 모습에 숨을 죽였다. 검사가 되었나 싶었는데 마법력까지 쓰는 마법검사였나 보다.

‘여전히 날 놀라게 하는구나.’

제릭은 왕관을 보며 슬픔에 잠겨 들었다. 그날 이곳에서 눈 감고 자신을 기다리던 일리아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아려 왔다.

비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짓는 제릭을 보며 제나는 마법을 발할 준비를 했다. 바로 지금 제릭과 함께 가루모스의 지하 동굴로 공간 이동을 할 태세였다.

‘가자.’

그때 제릭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옹달샘의 수면 위에 왕관을 내려놓았다. 씌워 주지 못한 그날의 왕관이 그렇게 일리아의 마지막 모습을 따라 샘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제릭의 얼굴에 물빛이 흔들리고 제나가 어금니를 깨물며 공간이동 마법을 발하려는 그때였다. 옹달샘이 갑자기 핏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제릭은 흠칫하며 일어섰고, 왕관이 침몰한 샘물은 일순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핏물을 게워 냈다.

순식간에 넘쳐 나는 그 핏빛은 신전 위를 강물처럼 흘러내렸고 제나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제릭은 즉시 안광을 토해 내며 등에서 커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래!”

일리아의 핏물이 궁전을 뒤덮는 그 비극 속에서 제릭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휘돌아 보았다.

“나를 기다렸구나! 나를 기다렸어! 지난 십 년 동안 내가 널 생각하듯 너도 날 애타게 기다렸구나! 어서 나와라! 어서 나와 나의 영혼을 가져가 보거라! 지난 세월을 기다리느라 가맣게 탔을 그 목을 내가 베어 주리라!”

제릭의 온몸에서 노을빛 불길이 뿜어 나왔다. 그 기운은 땅을 흔들었고 대기를 흔들었고 산을 뒤흔들며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을 태워 버릴 듯 확확 뻗어 나갔다.

제나는 입을 벌린 채 목석처럼 굳어 버렸다. 나무 위 높은 가지에 걸쳐 있던 푸르스름한 바람도 그 휘몰아치는 기운에 말려 팽개쳐지듯 날아가고 말았다.

‘으헉!’

라그헨이 사라지자 그가 펼쳤던 환영 마법이 풀리며 핏빛으로 들끓었던 옹달샘이 도로 차분해졌다. 강물처럼 넘쳐 나던 붉은 빛도 온데간데없어지고 신전 안엔 제릭이 뿜어낸 강대한 기운만이 파도쳤다.

대형 검을 부르쥔 채 제릭은 주춤했다.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어….”

어떻게 된 건가 싶었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잡풀이 우거진 신전은 그대로였고 잔잔한 옹달샘은 투명했으며 샘물 안에 잠겨 있는 왕관도 말없이 빛나고 있었다.

‘뭐지….’

혹 지난날의 감정에 사로잡혀 헛것을 본 것인가 싶었지만 분명 옹달샘이 핏빛으로 끓어올랐음에 제릭은 번개같이 이동해 제나의 목에 검을 겨눴다.

“누구냐.”

눈빛이 조금 전 옹달샘처럼 들끓었다.

“누가 보내서 왔느냐. 이제 보니 날 기다린 게 바로 너로구나? 그렇지 않은가?”

일렁이는 그 얼굴에 제나의 오른팔이 말없이 흔들렸다.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후 지난 십 년간 가루모스를 스승으로 삼아 마법사의 길을 걸어온 제나였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바다 건너 벨차라키 대륙에서 어린 드래건 한 마리를 산산조각 내버리기도 했던 그녀였다.

하물며 자신이 여전히 초라한 오크라면 모를까 현재의 마법사 제나 앞에 늑대인간쯤은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사냥감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아….’

그러나 방금 제릭이 뿜어낸 어마어마한 기운에 제나는 대항 마법은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의 모습이 그날의 오크로 돌아가 버린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스쳤다.

‘대체….’

종적을 감추어 버린 지난 십 년 동안 늑대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제나는 자신의 향한 대형 검 앞에 천천히 도리질을 했다.

“나는….”

“정체를 밝혀라.”

“어릴 적… 짐승에게 팔 하나를 잃어버린… 여자일 뿐….”

겁먹은 여인의 얼굴에서 빚어지는 그 떨리는 목소리에 이글거리던 제릭의 눈빛이 차차 힘을 잃어 갔다.

이내 검을 내려놓고 잠시 허공을 보더니 나지막이 한숨을 뱉었다. 봄바람이 흘러가는 작은 신전은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돌아보아도 옹달샘은 투명하게 빛나고 그 어디에도 끓어넘치던 핏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 .”

제릭의 표정이 어수선해졌다. 지난날의 감정에 사로잡혀 잠시 눈이 뒤집혔나 보았다. 일리아에게 씌워 주지 못한 그날의 왕관이 아른거리자 그만 가슴에 불이 붙어 버렸나 보았다.

“하아….”

한숨을 토하고 옹달샘으로 걸어갔다.

물속에 잠겨 있는 왕관을 내려다보았다.

‘일리아….’

주체할 수 없는 비감이 온 가슴에 너울졌다. 탄식하며 하늘을 우러르는 그의 얼굴에 결국 눈물이 굴러 내렸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날아와 나뭇가지에 휘감기는 요정 마법사 라그헨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내려다봤다.

‘이제 보니 몸 안에 마법력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모양이야. 드래건처럼 말이야. 아무튼 저 오크가 영혼을 꺼내 가는 건 불가능해져 버린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며 제나는 콩닥콩닥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다. 만약 조금 전 공간이동 마법을 발했다면 이번엔 팔이 아닌 자신의 목이 달아났을까.

‘제릭….’

엄청난 괴물이 되어 돌아온 늑대 소년을 보며 제나는 그날 돌도끼를 휘두르던 오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서로는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바델국의 한 시골 마을, 쥴른에 밤이 내렸다.

어둠 속에 불이 밝혀진 집집마다 낮에 있었던 한 차례 지진에 대한 걱정스러운 이야기가 오갔다.

주변 다른 마을에는 약한 미동만 느껴졌다고 하니 지진은 이곳 쥴른에서 일어난 게 틀림없다고 두런거렸다. 혹시나 무슨 변고가 생기는 건 아닐까 하고….

똑똑….

밤이 깊어 가는 시각, 히엔의 집 문에 나지막이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예민하고 귀 밝은 히엔이 나오리라는 예상처럼 곧 누구냐는 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히엔은 마당에 서 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주춤했다. 등 뒤로 커다란 칼자루가 보이자 놀라며 물러서려는 그녀의 귀에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히엔은 가만히 움직임을 멈췄다.

아주머니….

낯선 듯 어쩌면 낯설지 않은 그 어감에 히엔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만월이 구름을 벗어나며 젊은 남성의 얼굴을 비췄다.

히엔은 건장한 그 청년을 들여다보듯 하며 눈을 깜빡였다. 설마 하는 기색이 스칠 때 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강하세요.”

그 말과 동시에 히엔의 표정이 확 변했다. 눈이 커지고 입이 열리며 두 손을 내밀었다.

“제릭….”

금세 눈물에 덮이는 히엔을 보며 제릭은 애써 미소를 지으려다 그만 고개를 떨어뜨렸다. 히엔이 놀라는 숨을 집어 삼키고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제릭….”

제릭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나 버린 어머니를 대신해 젖을 물리고 아들처럼 키워 준 히엔을 향해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전쟁이 휘몰아치는 벨차라키 대륙에서 이름을 떨치던 용병 대장의 모습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머니와 같은 히엔 앞에서 제릭은 어느새 어린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흘러 눈가에 주름이 진 히엔을 보며 마지막으로 그 손을 꼭 잡았다.

“고맙습니다.”

“제릭….”

눈물을 글썽이는 히엔에게 제릭은 달빛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과 애통하고 처절했던 기억이 공존하는 이곳은 가슴속에 묻겠다고, 제릭은 눈물과 미소로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히….”

한 소녀를 죽인 괴물이 머무를 수 있는 고향은 없었다.

돌아갈 곳은 그 울분을 쏟아 낼 전쟁터뿐….

횃불이 일렁이는 지하 동굴엔 무거운 침묵만이 쌓여 갔다.

한때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마법사와 하프오크로, 한때는 주인인 마스터와 그의 명을 받아 영혼을 구해 오는 부하로, 그리고 이젠 복수를 꿈꾸는 노쇠한 마법사와 그의 제자로 둘은 마주 앉아 있었다.

가루모스가 긴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가슴의 상처를 치유하고 철천지원수인 악비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 그 희망이 기적처럼 다시 나타났는데 십 년 전 그때처럼 뜻밖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정녕 그리도 강해 보였단 말이냐? 직접 내 앞에 데려오기 두려울 정도로?”

제나도 한숨을 쉬며 답했다.

“설마 그자가 스승님의 상대가 될 리는 없겠지요. 감히….”

“그렇지, 감히.”

“하지만 만에 하나 데려오는 도중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까 그게 두려웠어요. 혹시라도 뭔가 뜻밖의 상황이 벌어져 그 영혼을 영영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스승님과 제 꿈은 모두 안개처럼 사라지는 게 되잖아요.”

몇 번 들어도 옳은 말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나쁠 것 없었다. 다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복수의 기회와 이미 흘러가 버린 그 세월들이 너무 아쉬워 이제 백이십 세를 훌쩍 넘긴 가루모스는 땅 꺼지듯 어깨를 떨어뜨렸다.

“정말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 정말 하나도 없어.”

쓸쓸해지는 늙은 스승에 제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루모스의 무릎 위에 앉았다. 쳐다보는 가루모스를 어린아이 달래듯 웃어 주며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마세요. 일단은 제가 그 실체를 파악해 볼게요.”

“그런 다음엔?”

“위험이 크지 않다면 제 손에서 해결을 하든지 아니면 스승님께서 이곳에 확실한 덫을 놓고 있다가 데려오는 즉시 사로잡아 버리면 되잖아요.”

“그렇긴 하지.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겠지.”

가루모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자 제나는 다시 입맞춤을 한 후 다정히 말했다.

“마지막 영혼을 얻게 되면 곧바로 제 팔을 만들어 주실 거죠?”

“당연하지. 내 복수극이 시작될 수만 있다면 너의 팔뿐이겠느냐? 널 최강의 전사로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철천지원수 악비온을 죽인 다음엔 널 여왕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음이야.”

그것이 제나가 이 늙은 마법사를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팔 하나의 아쉬움보다 하나둘 배워 나갈 때마다 강력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더 달콤했고, 나아가 혹시라도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상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렜다.

“되고 싶어요. 여왕….”

“그 꿈이 이뤄질 거야. 사랑한다, 제나야.”

가루모스의 주름진 손이 제나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구름을 벗어난 달이 세상을 비추자 백여 가구가 모여 사는 쥴른의 밤 풍경이 돋아났다.

그중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한 한 집의 벽 쪽에 제릭이 서 있었다. 눈빛이 젖어 들고 포근한 봄밤의 공기는 사무치는 추억을 안겨 주고 있었다.

“일리아….”

마법력을 발하자 벽이 투명해지며 집 안의 모습이 펼쳐졌다. 방에는 잠든 일리아의 아버지 블런의 모습… 거실엔 홀로 잠들지 못한 일리아의 어머니가 양말을 기우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 벽 쪽의 낮은 단에는….

사랑하는 일리아가 있었다. 머리를 예쁜 천으로 받혀 놓은 그날의 모습에 제릭은 가슴이 미어져 갔다.

“아아….”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돌아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무릎을 꿇고 그 얼굴을 만져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비극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되니까. 괴물은 더 이상 나타날 수 없으니까.

“미안….”

무겁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모든 게 미안하고 괴롭고 또 서러워 제릭은 그저 뜨거운 눈물만 하염없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짙은 암흑이 세상을 뒤덮고 달도 구름 너머로 사라진 시각,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엔 은밀한 기운들이 감돌고 있었다.

그곳은 아주 오래된 자그마한 신전이었고, 옹달샘 주변에 서 있는 네 마법사는 어두운 덩어리들만 같았다.

“아무래도….”

그리고 그들은 오늘 벌어진 의문의 지진과 그로부터 퍼져 나온 알 수 없는 마법력의 파장에 대해 교감을 나누는 중이었다.

“둘 중 하나같습니다.”

회색 수염이 기다란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어떤 자가 우리의 자연 마법에 드래건의 원류 마법이나 요정계의 마법 또는 이계의 주술까지 뒤섞어 새로운 마법을 펼쳤을 가능성….”

나머지 세 마법사는 침묵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미 그런 마법으로 탑을 쌓은 자가, 또는 그의 하수인이 등장했을 가능성입니다.”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두 번째 가능성은 오래전 자연 마법계에서 축출된 그 이름이었다.

“가루모스….”

아후란의 인간족이 구축한 자연 마법계는 이질적인 다른 마법들을 섞는 걸 금지하고 있었다.

까닭은 그 위력의 달콤함에 사로잡혀 이계와 마계의 마법까지 손을 뻗을 때 자칫 괴물처럼 이성을 잃어버리거나 악마화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류화 돼 있는 자연 마법계가 혹시라도 그 주도권을 신진세력에게 빼앗길까 하는 염려도 있긴 했지만, 아무튼 표면적인 이유는 혼용에 따른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금기에 해당되는 특이한 마법력이 이 쥴른에서 감지되어 네 마법사가 이 어두운 새벽에 모여 생각을 모으는 중이었다.

“그러니 이 지역으로부터 시작해 좀 더 감시의 눈을 크게 뜰 필요가 있겠습니다. 혹시라도 가루모스와 연관된 일이라면 한 나라 전체를 뒤집는 한이 있더라도 그 뿌리를 찾아야 할 테니까요.”

연장자인 툴루안의 이야기에 나머지 세 마법사가 동의를 표했다. 그러다 한 마법사가 옹달샘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어두워 전혀 보이지 않는 물속에 무언가가 은은한 빛을 띠는 듯해서였다.

그때였다. 모두가 한 모습으로 흠칫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망치는 빛줄기에 네 마법사는 모두 쏜살같이 하늘로 솟구쳐 그 뒤를 좇았다.

때마침 구름을 벗어나는 만월….

달빛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푸르스름한 바람은 가만히 몸을 사렸다.

‘만지지 마.’

옹달샘 속의 왕관은 오직 한 소녀만을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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