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2/24)

<12>

군막 안엔 악비온과 크로닌, 나르팟 렌 그리고 랑칸콘루가 둘러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제릭은 가 버렸습니다.”

랑칸콘루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크로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제안을 거부하더군요.”

렌이 물었다.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요?”

악비온이 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는 말없이 차를 마셨다.

그리고 잠시 후 랑칸콘루가 밝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신의 이름으로 그의 앞날에 행복을 기원합니다.”

모두는 고개를 끄덕여 그 새로운 희망에 동의했다.

* * * * * * *

화창한 햇살이 나리는 옛 신전 터에서 일리아는 보석 왕관이 아닌 봄꽃 화관을 쓴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사랑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사랑하는 이여

늘 내 곁에 있어 주오

멀리 가지 말고 언제나 가까이에

슬플 때 내가 안아 줄게

힘들 때 내가 노래할게

내 품을 떠나지 마오

사랑하는 이여

늘 내 곁에 있어 주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하늘같은 사랑도 꿈도

구름 되어 흩어져 가고

남는 건 해 질 녘에 돌아오는 그대뿐

아아, 추억은 이렇게 쌓이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사랑하는 이여, 부디

부디 멀리 가지 마오

늘 내 곁에 머물러 주오

영원히 그리고 또 영원히….

* * * * * * *

말 두 마리가 끄는 수레가 천천히 들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마부석엔 벤차드와 파나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고 뒤쪽엔 제릭이 누워 푸른 하늘을 향해 작은 꽃 하나를 빙그르… 빙그르… 돌려보고 있었다.

텅 빈 오른팔이 누군가의 옛 이야기만 같았다.

푸른색 깃털로 다시 변모한 작은 새는 그런 제릭의 가슴 위를 종종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제릭이 몸을 일으켰다. 저 먼 하늘 어딘가에서 그 옛날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일리아….”

하지만 상상이었을까. 벤차드와 파나가 환한 얼굴로 뒤돌아보고 에르카는 자신의 노래라는 듯 맑은 새소리로 날갯짓을 했다. 제릭은 그리움이 빛나는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래, 어서 가자.”

푸르스름한 바람이 제릭의 손에서 꽃을 가져갔다. 머나먼 하늘을 넘어 사랑 노래를 전해 줬으니 이 꽃은 자기 거라고 바람은 하늘 높이 떠오르며 꽃을 흔들었다.

나중에 한 번 들르겠다고….

행복하라고….

빛나는 햇살 아래 평화로운 수레가 들길을 멀어지고 있었다.

< 제릭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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