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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는 할 일 다하고 사표씁니다-173화 (173/182)

특별 외전 13화

“흠.”

엄마는 제 안색을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미간을 찌푸렸어요.

“여섯 살이라면 아직 과도한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은 성장에 좋지 않아. 배우는 건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무리하지 않도록 유의하도록 해.”

“오빠한테는 무리하지 말라고 안 하면서.”

저는 괜히 툴툴대면서 발로 잔디를 툭툭 쳤어요.

“엄마는 엄마 닮은 오빠만 예뻐하는 거죠?”

사실 그런 느낌은 받은 적 없었지만 그동안의 설움이 좀 북받쳐 올랐거든요.

외고모할머니가 눈을 크게 뜨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어요.

“리체, 혹시 편애했니? 하지만 네가 그럴 리는 없는데.”

엄마 역시 놀란 듯이 저를 안아 들었어요. 엄마의 예쁜 드레스에 흙이 묻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면서 말이에요.

“절대 아니야, 유리아. 엄마는 세드리안도 유리아도 똑같이 사랑해. 하…… 아무래도…….”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리기까지 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야겠어. 너무 일에만 열중한 것 같아. 에르안에게만 육아를 맡기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건 사실이었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아빠가 매일 그렇게 말했거든요. 아빠도 엄마와 항상 붙어 있고 싶지만, 엄마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니까 참고 기다려 줘야 한다고요. 엄마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고 또 그래서 표창장까지 받는다고 말이에요.

저는 그래서 고개를 저으면서 어른스럽게 말했어요.

“아니에요, 엄마. 엄마는 저랑 함께할 시간에 열심히 연구해서 표창장까지 받는 훌륭한 의사잖아요.”

“……역시.”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어요.

“내가 받는 표창장에는 항상 대가가 있더라…….”

“괜찮아요. 아빠가 항상 같이 있어 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 칭얼거렸어요.

“……저는 오빠처럼 엄마를 닮아 의학 천재가 아니라서 슬퍼요. 다들 엄마를 좋아하는데.”

“다들 나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유리아.”

엄마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조조곤조곤 말해 주었어요.

“다들 엄마가 의사라서 좋아해 주는 건 아니야. 귀엽고 착한 데다가 똑똑해서 그런 거지.”

“맞아. 안 귀여운 의사는 잘 되어 봤자 아르가야.”

외고모할머니가 냉큼 말했고, 엄마가 제 볼에 뽀뽀를 해 주면서 말을 이었어요.

“그러니까 의학 천재가 아니라고 해서 슬퍼할 필요가 없단다.”

“그래, 아르가 놈을 보라고. 의학 천재지만 안 귀엽고 성격 더러워서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잖니?”

저는 외할아버지에게 죄송해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제 얼굴을 본 엄마가 싱긋 웃으며 볼을 비볐어요.

“우리 유리아, 마음 풀렸구나.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 엄마가 다 현명하게 들어 줄게.”

“……네.”

“자, 그럼 함께 갈까? 할머니가 특별히 엄마랑 유리아랑 세트로 하라고 사파이어 브로치도 똑같이 맞춰 주셨는데.”

저는 신나서 엄마와 외고모할머니의 손을 잡고 연회장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어요.

* * *

저는 연회가 처음이었어요!

연회장은 너무 예뻤고 잔뜩 꾸민 사람들이 곳곳에 들어차 있었어요. 매일매일 연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있었답니다.

“에르안, 세드리안은 어디 있어요?”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아빠는 번개같이 다가왔고 엄마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어요. 아마 저는 엄마가, 오빠는 아빠가 데려오기로 했나 봐요.

“장인어른께서 직접 데려오실 거야.”

“어휴, 뻔하네.”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어요.

“분명히 세드리안하고 약초학 얘기 하고 싶어서 아빠가 먼저 선수 친 거겠죠. 그래도 오늘은 세르이어스 성에서 열린 연회 날인데 부자의 동시 입장을 막다니.”

“뭐…….”

아빠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대답했어요.

“어린 너와 의학 얘기를 하지 못했으니, 세드리안하고 하고 싶은 마음이시겠지.”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지만.”

저는 이미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엄마 아빠가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어요.

오늘 오후에 저랑 술래잡기했던 귀족 자제들이 저쪽에 몰려 있었거든요. 제가 저기 가서 또 재미있게 놀 생각에 들떠 있는데 엄마 아빠의 대화가 이어졌어요.

“에르안, 주양육자가 당신인데 왜 애들이 저를 더 좋아할까요? 게다가 당신 애들한테 정말 잘하잖아.”

“그건 당연한 거야, 리체.”

“당연하다니?”

“네가 나보다 훨씬 귀엽고 예쁘고 착하잖아. 누구든 나보다 널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어…… 음…… 그건 맞지만 그래도.”

“물론 조금 서운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아이들이라도 나보다 네가 더 좋을 것 같아. 그건 진리지.”

제 손을 붙들고 있던 외고모할머니가 옅은 한숨을 쉬었어요.

“내 조카사위는 정말 엘리자베스같군.”

“장수풍뎅이요?”

“응. 걔는 죽을 때까지 늘 똑같았어. 먹이 좋아하고 말 못하고. 네 아빠도 리체 앞에서 단순하기로는 장수풍뎅이 수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를 닮지 않기로 한 건 좋은 선택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빠랑 세드리안은 왜 이렇게 안 오지?”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시계를 바라보았어요.

“이미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곧 내가 인사말도 해야 하고.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야겠어.”

“제가 갈게요!”

저는 손을 번쩍 들고서 외쳤어요. 얼른 세드리안을 만나서 제 검을 자랑하고 싶기도 했거든요.

“제가 다 데리고 올게요!”

“음, 그럴래? 지금 빨리 갔다 오면 인사말까지 시간은 맞출 수 있겠구나.”

엄마는 제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혼자 보낼 수는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마침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었어요.

“아가씨, 저랑 같이 가요.”

오늘 특히 멋지게 차려입은 디엘이 손을 내밀며 말했어요. 그렇게 저는 디엘과 함께 연회장에서 세드리안의 방으로 출발했답니다.

연회장에서 세드리안의 방은 꽤 멀어서 복도를 한참이나 걸어야 했어요.

“그런데 아가씨, 이 검은 뭔가요?”

“외고모할머니가 주셨어!”

“……세이린 님이요?”

저는 디엘 앞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검을 배운 대로 휘둘러보았어요.

제 검이 휙휙 소리를 낼 때마다 디엘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답니다.

“어때? 나 잘하지?”

“불안할 정도로 잘하시는군요. 이제 검을 좀 집어넣으실까요?”

“알았어. 그런데 디엘, 나 외고모할머니 닮은 것 같아! 검술에 재능 있대.”

제가 뿌듯해서 말하자 디엘은 옅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어요.

“이런 비극이……. 성격마저 닮는다면 아가씨와 오래도록 편히 지내기는 글렀군요.”

저는 그 말에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아주 커다란 안경을 쓰고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진 키 작은 여자가 시녀 몇 명을 끌고 복도 맞은편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어요.

“앗.”

당연히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디엘은 그녀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자세를 공손히 했어요.

“제, 제국의 황태자비 전하를 뵙습니다.”

황태자비요? 하긴, 아주 예전에 엄마 아빠가 황태자비에 대해서 한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어요.

“제이드 황태자님, 결혼하신다면서요? 황후님과 젠시 공비님께서 직접 정략혼을 주선하셨다던데.”

“나도 들었어. 그 꽃밭 대가리에 딱 맞는 신붓감이라고 하더군. 딱 지능과 애국심만 봤대.”

“……에르안, 바르고 고운 말을 쓸까요? 착해지기로 했잖아요.”

“오, 세르이어스 성의 사용인인가? 길을 잘못 든 것 같아서……. 연회장이 어디지?”

“저쪽으로 죽 가셔서 코너를 오른쪽으로 두 번 돌면 됩니다.”

“아하, 고맙네.”

황태자비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직접 감사 인사를 했고 디엘은 허리까지 굽혀 가며 예를 표했어요.

그녀는 그대로 우리를 지나쳐 가려다가 제 얼굴을 보고 나서는 귀엽다는 듯이 발걸음을 멈췄어요.

“흐음. 이 아이는…… 세르이어스의 공녀인가?”

“예.”

생각해 보니 너무 신기해서 예를 표하는 것도 까먹었지 뭐예요. 다 배웠었는데, 유모가 나중에 알면 혼을 낼 일이었어요.

저는 빠르게 치맛자락을 잡고 무릎을 굽히며 인사했어요.

“제국의 황태자비 전하를 뵙습니다. 유리아 세르이어스입니다. 성의 연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래, 공녀. 제국을 전염병에서 구한 우리 리체 양의 축하 연회인데 당연히 황실에서도 와서 감사를 표해야지.”

황태자비의 눈이 안경 속에서 반달처럼 휘어졌어요.

“황태자님은 지금 아오토 산맥에서 산적 소탕 중이라 오지 못하고 내가 직접 왔단다.”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올바른 대답을 찾아냈어요.

“아아…… 산적 소탕이라니, 상심이 크시겠어요.”

가끔 아빠가 영지 접경에 도적들을 직접 소탕하러 갈 때면 엄마의 안색이 안 좋았거든요. 말로는 ‘에르안을 만나는 도적들이 불쌍하지. 전혀 걱정 안 돼.’라고 했지만 마음 쓰는 것이 눈에 보였어요.

그래서 한 말이었는데, 황태자비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어요.

“글쎄? 내가 보냈는걸.”

“네?”

“황태자님은 제국의 아주 큰 인재지. 머리만 빼고…… 하지만 걱정하지 마, 공녀.”

황태자비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어요.

“괜히 말도 안 되는 신념을 가지고 멍청한데 열의 넘치게 행동하는 황태자보다는 백지 황태자가 백번 나아. 심지어 내가 아주 똑똑한 데다가 애국심이 넘치거든.”

말이 너무 빨라서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니 제국의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공녀. 나는 이런 어린이들만 보면 꼭 안심시켜 주고 싶더라고. 어린이는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살아야 하니까.”

황태자비는 뒤에서 따라오던 시녀에게 말해서 사탕까지 하나 주었어요. 좀 이상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일단 좋은 사람 같았어요.

안 그래도 여섯 살이 되어 걱정거리가 늘고 있었는데 제국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었어요. 지금까지 제국 걱정을 해 볼 생각은 안 해 봤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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