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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는 할 일 다하고 사표씁니다-161화 (특별 외전) (161/182)

특별 외전 1화

외전 4. 주치의가 아프면

결혼식 날, 우리는 모두 아빠의 인내심에 감탄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와중에 울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누구나 아빠는 내 결혼식 내내 대성통곡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물론 결혼식이 끝나고 손님들을 보내자마자 아빠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허엉, 으허어어엉…… 리체, 네가 이렇게 가면 대체 우리는 언제 또 다시!”

“곧 봐요, 아빠.”

나는 아빠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신혼여행 다녀오자마자 정상 출근할게요.”

“으허어어어엉…….”

내 손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아빠를 억지로 떼어 낸 사람은 고모였다.

“추해, 인간아. 나한테 한 대 맞기 전에 그만해.”

고모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말을 망설임 없이 하며 내게 말했다.

“리체, 가라. 일주일 뒤에 보자.”

“아빠,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그거 진짜 잘 관찰하고 올게요.”

아빠는 훌쩍이다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윽, 흑…… 생산 과정을 꼭 잘 보고 와…… 흐으으윽.”

그렇게 나는 결혼식이 끝나고 에르안과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다.

신혼여행에는 공작가의 하녀 몇 명과 지켈이 동행했다.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바로 남부의 이르비아였다. 그러니까 에르안이 어린 시절 5년간 요양을 떠나 있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하필…… 이르비아라니요.”

지켈은 투덜대면서 한숨을 쉬었다. 에르안에게 듣자 하니 지켈은 이르비아의 공주인 셀리아나와 미묘한 사이라고 했다. 둘이 서로 좋아하면서 신분의 차이 운운하며 뻗대고 있다고…….

“누구를 좀 닮긴 했지.”

에르안은 장난스럽게 말했고 나는 한때 셀리아나를 질투했던 것이 민망해서 딴청을 피우며 화제를 돌렸다.

“신혼여행, 완전 기대돼요.”

신혼 여행지를 고르는 데에는 딱히 의견 충돌이 없었다. 우리 둘 다 완전한 합의를 이루며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 네가 없던 5년이지……. 매일 네 생각만 하면서 돌아갈 날들만 손꼽았어.”

에르안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보고 싶어 죽겠는데 비둘기만 간절히 기다리던 고통스러운 시기였지. 다시 가서 너와의 추억으로 덮어 버리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물론 나 역시 만족해서 대답했다.

“살살이풀 전용 용기, 이거 진짜 보면 볼수록 대단한 것 같아요. 아빠도 너무 신기해하시더라고요. 다시 남부에 가고 싶을 정도래요. 저도 궁금하고요.”

둘이 살짝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둘 다 원하는 곳이 같으니 그러면 된 것이었다.

“너무 설레. 남부는 또 휴양지로 아주 좋거든. 바다가 눈앞에 보이는 별장을 예약해 놓을게. 또 원하는 것 있어?”

“그럼 부탁 좀 할게요.”

“말만 해. 허니문에 걸맞은 어떤 로맨틱한 볼거리든, 어떤 맛있는 음식이든, 어떤 달콤한 서비스든…….”

“약초 전용 용기 생산 공장을 견학하고 싶어요. 혹시 가능할까요?”

솔직히 반쯤은 놀리는 것이었고 반쯤은 진심이었다. 남부인 이르비아는 식생이 대륙과 완전히 달라서 신기한 약초도 많을 것이고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사실이 설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르비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할 때 고려해야 할 요인이 있었다. 배를 타고 꽤 오랫동안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는 배를 처음 타 봐요.”

나는 갑판에 나와서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며 설레서 말했다. 지난번 라베리 섬에 들르려고 했을 때에도 기상 악화로 실패했고, 메일리스 공국으로 갈 때에는 육로를 이용했다.

“너무 멋있다!”

바닷바람은 시원했고 파도가 배를 만나 하얗게 부서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내가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물을 홀린 듯 바라보자 내 옆에 서 있던 노부인이 생긋 웃으며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었다.

“아가씨, 이르비아로 향하는 항해가 처음인가요?”

“네! 바닷바람이 상쾌하고 좋네요.”

“저기 서쪽 갑판으로 가면 멀리서 돌고래 떼가 보일 거예요. 한번 가 봐요.”

“돌고래요? 와, 감사합니다.”

돌고래라니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나는 쾌활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이르비아로 향하는 뱃길을 잘 알고 계신가 봐요.”

“사업 때문에 주로 제국에 머물지만, 원래 이르비아에 본가가 있어서요. 게다가 이번에는 내가 친딸같이 예뻐했던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서.”

노부인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신혼부부 같은데 보기가 몹시 좋네요. 우리 조카도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텐데.”

“멀리서 축하하러 달려가는 이모님도 있는데, 당연히 행복하게 살 거예요.”

우리는 감사인사를 하고 노부인이 가르쳐 준 서쪽 갑판으로 이동했다. 서쪽 갑판에는 아무도 없어서 한가했다. 과연 저 멀리서 돌고래 떼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에르안에게 말했다.

“배가 생각보다 아주 크지는 않네요?”

“해적이 소탕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남부와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으니까.”

에르안은 나를 안아 들어 저 멀리 있는 돌고래 떼를 더 자세히 보게 해 주면서 말했다.

“그 망할 해적들만 없었어도…… 분기에 한 번씩은 널 볼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낮은 목소리가 슬슬 분노에 차기 시작했다.

“아니면 내가 그때 조금만 나이가 들었더라도. 해군에 지원해서 해적과 제이드를 바다에 일찌감치 다 처넣어 버렸을 거야.”

“……음, 에르안.”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 아주 옛날이야기이고 5년간 이르비아에 있었다고 해도 그다지 손해 본 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신경 세포 힘들게 이렇게 생생하게 분노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떻게 손해가 아니야. 네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못 봤다고.”

에르안은 슬픈 어조로 칭얼대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열네 살 리체의 볼살은 얼마나 귀여웠을지, 열다섯 살 리체의 키는 얼마나 작았을지, 열여섯 살 리체의 머리카락은 얼마나 길었는지 평생 모른단 말이야.”

“…….”

그건 나 자신도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르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지금 알려 줄 수도 없었다.

에르안은 내 목에 자신의 입술을 꾹 누르며 보채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손해 본 것이 없다니…….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해.”

내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봐서 원하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지금이라도 실컷 보세요.”

“그러려고. 그런데 말이야, 리체.”

에르안이 내 머리카락을 쓸며 짙어진 눈빛으로 말했다.

“바다는…… 사실 선실에서도 잘 보여.”

“네?”

“선실에서 너는 바다를 보고, 나는 너를 보면 안 될까? 아주 잠시만.”

나는 결국 에르안에게 안기다시피 하여 선실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르비아로 향하는 이 유람선에서 우리가 쓰는 방이 가장 넓고 좋았다. 왠지 방에 놓여 있는 가구라든가 하는 것들이 싹 다 내 취향인 것을 봐서 에르안의 입김이 이미 작용해 있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묻지 않기로 했다.

물론 단둘만 있게 되자 그의 애정 표현은 훨씬 더 짙어졌고 말이다.

“으…… 그냥 보고 싶다면서 들어온 거잖아요.”

나는 바다가 보이는 창문을 옆에 둔 채 누울 수 있었지만 정작 바다는 많이 보지 못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에르안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내게 세상 다정하게 굴면서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집요하게 나를 봐주지 않았다.

“이건 반칙이야…….”

“글쎄, 리체.”

그는 나른한 맹수처럼 여유 있게 말했지만 숨길 수 없는 다급함과 욕망이 손길 하나하나에 묻어 있었다.

“보기만 한다고는 안 했는데.”

요망하게 눈을 휘어 보이며 웃는 에르안과는 달리, 나는 웃을 여유도 없이 숨이 가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열감이 민망하여 나는 짐짓 부루퉁하게 중얼거렸다.

“배 탄 지 얼마나 됐다고……. 진짜 제정신이 아니야.”

“당연하지.”

에르안은 내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며 속삭였다.

“네가 내 앞에 있는데 어떻게 제정신이야.”

또 다시 뜨거운 체온에 뒤덮이면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내 아내, 내 부인, 내 사람……. 이제부터 이렇게 부를 수 있겠지.”

귓가에 흐르는 에르안의 속삭임이 달았다.

“그래서 나 오늘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어.”

그 말을 듣자 결국 나 역시 무너지듯 그를 꼭 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매일매일, 이렇게 너를 안을 거야…….”

그런데 에르안의 그 말은 슬프게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 다음날부터 내가 극심한 뱃멀미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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