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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50)화 (15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외전 9화

다프네가 도움을 요청한 마을의 대표는 고맙게도 그녀의 요청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는 현재 마을에 있는 세 대의 마차와 다섯 대의 수레를 구조에 지원하도록 마을 사람을 설득했다.

사람들을 태울 마차는 핸드카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갔다. 몇 번인가 눈이 쌓인 구간에서 멈추어서 삽질을 한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큰 문제 없이 사고를 당한 열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열차 내부는 사고로 인해 혼란이 깊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무척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열차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노력과 배려가 있었다.

연주가는 차가워진 손가락으로 감미로운 곡을 연주해 주었다. 상인은 호객 행위 때나 선보이는 입담이나 재주를 보여 주었다. 장거리 여행으로 옷을 많이 챙겨 온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해도,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회오리바람에 무서운 감정이 들 때면, 그들은 맨몸으로 이에 맞서는 공작의 약혼녀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끔찍한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그들을 진정시켜 주고 상황을 파악해 주었다. 그런 행동력이면 틀림없이 마을에 도착하여 그들을 구조하러 와 줄 것이라 재차 믿음을 되새겼다.

다행히 구조 마차는 그들의 믿음이 바닥을 보이기 이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지붕이 있는 마차의 자리를 보호가 필요한 약자에게 양보했다.

추위를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수레는 건강한 사람들의 자리가 되었다. 연장자 가운데에서도 연약한 젊은이를 위해 기꺼이 마차 자리를 양보한 사람도 있었다.

고작 몇 대의 마차로는 열차의 많은 인원을 모두 태울 수가 없었으므로, 이와 같은 과정은 새벽 별이 밝아 오는 시간까지 줄곧 반복되었다.

중간에 몇 번이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지만, 구조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마차를 모는 사람들도 계속 여러 사람과 교대하며 다녀왔고, 추위에 떤 승객들이 마을에 도착하면 누군가가 따듯한 수프를 한 컵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임산부나 어린이 그리고 노약자는 마을 주민의 집이나 간이역의 당직실 등에서 따듯하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받았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을 모두 집으로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을에서 유일하게 큰 예배당의 문을 열기로 했다.

예전에는 사제가 파견되었으나, 마을의 규모가 점차 작아지면서 이제는 그저 마을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기도를 하는 곳이었다.

신성한 공간에 대한 예우로 주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로에 불을 붙여 공기를 덥히고, 포근한 이불을 가져오니 그럭저럭 하루 이틀은 지낼 만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마지막 마차입니다!”

예배당을 둘러보며 필요한 물품을 확인하던 다프네는 전해 온 소식을 듣고서 얼른 역으로 돌아왔다.

마침 도착한 마차와 수레에서 마지막까지 구조를 양보해 준 사람들이 내렸다. 이 중에는 일등석 자리에서 만난 귀족은 물론 리디아 슬로언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리디아 님!”

다프네는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이 너무나도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비록 곧바로 후회했지만 말이다. 리디아 슬로언은 이런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다프네는 그녀를 끌어안았던 팔을 슬그머니 풀며 사과를 건네려고 했다. 하지만 어째 리디아의 팔이 그녀의 등을 꾹 누르며 강하게 안아 주는 것이 아닌가.

“……?”

조금 낯선 반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으니, 곧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거기에 따듯한 격려의 말까지……! 다프네는 여전히 그녀를 안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열차에서 사람들을 진정시키시느라 더 힘드셨을 걸 알아요.”

“아뇨, 그곳에는 즐거운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즐거…… 웠어요?”

다프네는 리디아의 품에서 한 걸음 멀어지며 조심스레 질문을 건네었다.

“공작님의 지역에서, 공작님의 약혼녀께서 직접 달려가셨으니까요.”

“그분은 신분에 따라 인명 구조의 속도를 달리하지 않는걸요.”

“물론 저도 그건 압니다.”

리디아는 씩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이동해 온 사람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기쁜 얼굴로 서로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작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전 그렇게까지…….”

다프네는 왠지 부끄러운 생각에 말끝을 흐렸다. 그렇게까지 깊이 고려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저도 압니다, 당신이 아무런 생각 없이 눈보라 속으로 달려들었다는 것 정도는.”

팔짱을 낀 리디아는 어째 평소의 냉담한 투로 돌아와 있었다.

“그게 당신의 장점이죠.”

“장점…… 이요?”

“타인을 위할 때 더 많은 힘을 내는 것 말입니다.”

그건 마침 페이지 부인이 다프네에게 해 주었던 이야기와 같은 말이어서 조금 기쁜 마음이 들었다.

“뭐, 이만하기에 다행입니다. 비록 왕실의 관심을 받을 기회는 송두리째 날아간 듯하지만 말입니다.”

리디아는 여전히 흐리기만 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왕실 사람들은 이미 클롯모어에 도착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죠…….”

그때, 마침 따듯한 외투를 빌려주었던 노부인이 수프를 받아 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다프네는 리디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그녀에게 다가섰다.

“팔은 괜찮으세요?”

“아주 멀쩡해요. 멍 하나 들지 않았다오.”

“다행이에요. 그리고 이 외투 돌려 드릴게요……. 정말 따듯했어요, 꼭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요.”

노부인은 빙긋 웃고는 다프네가 돌려주는 외투를 받아 들었다.

“귀한 아가씨는 어서 클롯모어로 가야 할 텐데. 결혼식이 있다고 신문에서 읽었다오.”

“괜찮아요, 당분간은 여기에 있을 생각이거든요.”

다프네는 적어도 사흘간은 여기에서 승객들이 무사히 집이나 목적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살필 예정이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을 텐데.”

“뭐, 결혼식에만 늦지 않으면 어떻게든 되겠죠.”

“예식 절차는 아주 복잡하다오. 미리 연습하지 않으면 분명 헷갈릴 텐데.”

그건 그렇긴 했다. 비록 지난 생에서 결혼식을 치러 본 바 있기는 했지만, 손님도 거의 없이 간략하게 꼭 필요한 맹세만 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예전에 수도에서 귀족 가문의 하녀를 했었지요. 아가씨가 원하면 절차를 알려 줄 수도 있을 거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프네는 그녀를 역무원의 당직실로 안내하며 답했다.

“푹 쉬셔야 해요. 아셨죠? 곧 이웃 마을에서 의사 선생님이 오신다니 꼭 팔도 보이셔야 하고요.”

당부를 마친 다프네는 얼른 달려가, 새로 도착한 사람들을 예배당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노부인은 당직실 앞에서 다프네를 한참이나 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곧 다른 부인의 권유에 따라 당직실 내부로 들어갔다.

* * *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즈음에는 구름도 걷히고, 굵었던 눈발도 점자 찾아 들었다.

한바탕 전쟁 같은 밤을 보낸 역으로 새벽 사이에 수도에서 출발한 열차가 도착했다.

승객들을 돌볼 의사와 마법사 그리고 왕실에 속한 하인들이었다. 슬로언 공작의 요청에 따라 급히 파견된 이들로, 이들은 열차의 승객들을 돌봐 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과 함께 왕실 기사와 치안대원들도 함께 와 주었다. 그들은 레일 위에 쓰러진 나무를 치우는 등 복구를 위한 인력이었다.

치안대원이라면 몰라도, 왕실 기사까지 보내 주다니.

다프네는 대체 리암이 어떤 말로 요청을 보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들은 왕족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어, 마을은 활기와 안정을 되찾았다.

큰 문제가 없는 승객 중 일부는 수도에서 온 열차를 타고서, 먼저 수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후에 해가 반짝 나서, 수도 방향으로는 무리 없이 열차를 운행할 수 있었던 덕이었다.

다프네는 그들의 집 주소와 사고 열차에 두고 온 짐 가방의 특징을 받아 적었다. 후에 열차에서 가방을 가지고 나오면 그쪽으로 보내 주기로 약속하고서.

다만 아직은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다. 정해 놓은 목적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사람이 많은 탓이기도 했다.

다프네는 재난을 당한 사람 대부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까지 무슨 일로 가는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특별한 일 없이 기다림만이 남은 이들은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프네에게 들려주며 무척 즐거워했다.

‘다행이다.’

온종일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던 다프네는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예배당의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겨우 휴식을 취했다.

마을 대표가 부부 침실을 양보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런 방이 하나라도 있다면 부디 몸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내어 달라 부탁하여, 그녀는 예배당의 커다란 기둥이 유일한 기댈 곳이 되었다.

벽난로와 거리가 멀어 다소 싸늘했지만,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제법 좋은 자리였다.

게다가 바로 앞에 있는 낡고 커다란 창문으로 하늘이 투명하게 올려다보인다는 점도 좋았다. 이제는 날씨가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일뿐이니까…….

‘내일은 더 맑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의 짐 가방을 가지러 가거나, 열차 앞에 쓰러진 나무들도 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하루 만에 굉장히 안정되었어. 공작님이 빠르게 대처해 주셔서…….’

다프네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지금쯤 클롯모어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리암을 생각했다.

‘내가 없어서, 결혼식 준비를 혼자 다 하고 계시겠네.’

왠지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는 줄곧 무거웠던 눈꺼풀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왠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다프네는 기둥에 가만히 고개를 기대었다.

그런데…… 차가워야 할 기둥은 왠지 참 따스했다. 게다가 왠지 편안한 향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다프네는 참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잠을 이겨 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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