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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외전 7화

조명의 파편이 주변으로 날아들며 다프네의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거운 아픔에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다프네는 줄곧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던 열차가 어느새 완전히 정지했음을 깨달았다.

“…….”

고막이 터질 것 같았던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낯선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규칙적인 열차 엔진의 진동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리디아 님, 괜찮으세요?”

얼른 곁을 돌아보자 몹시 놀란 듯한 리디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프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빛이 적어 분별이 어려운 시야에도 열차의 참상을 알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갑자기 몸이 쏠리며 서로 자리가 뒤섞여 버린 사람들, 그리고 바닥을 구르는 무거운 짐가방들.

“……!”

그리고 다프네는 곧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던 노부인이 어깨를 쥔 채로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부인.”

다프네는 얼른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반쯤 열린 트렁크 가방을 옆으로 치웠다.

“많이 다치셨어요? 괜찮으세요?”

“팔에 가방이…….”

다프네는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의사가 아니라 함부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피가 흐르거나 이상하게 비틀어진 모양은 아니라서 다소 안심했다.

“열차에 응급처치 도구가 있는지 알아볼게요. 여기 앉아 계세요.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다프네는 자리 위에 남아 있는 몇 개의 짐가방을 아예 아래로 내려 두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다른 사람들도 더 열차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저마다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주며 괜찮은지 묻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굉장히 급하게 서는 것 같았는데.”

“설마 열차가 고장 난 건 아니겠지? 이런 날씨에…….”

누군가가 꺼낸 이야기에 열차에 있던 사람 모두가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아예 쏟아 내는 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복구나 구조가 늦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고 있었다. 매해 폭설과 관련된 열차 사고 기사는 빠짐없이 등장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 사건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리라고 예측해 본 적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차장을 불러옵시다! 이게 말이 돼? 이렇게 갑자기 열차를 세우다니!”

“이런 사고를 내놓고 뭘 하는 거야? 설마 도망간 건 아니겠지?”

격양된 목소리가 점차 열차를 가득 채우려고 했기 때문에, 다프네는 일단 의자 위로 올라가 “잠시만요!”라며 외쳤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 짧은 순간, 그녀는 한쪽 손을 가볍게 들고서 그들에게 질문을 건넸다.

“치료가 필요한 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거기 아이 어머니, 괜찮으세요?”

다프네는 어린 사내아이를 꼭 안고 있는 여인을 가리켰다. 다행히 그녀와 아이는 무사해 보였다. 다만…….

“배가 아파요! 엄마가요!”

아이가 얼른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며 외쳤다. 아이가 비켜서자 여인의 배가 꽤 불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의 사람들은 얼른 흥분을 가라앉히고 푹신한 담요를 챙겨 주었다.

“그리고 또 다치신 분 없으세요?”

다프네가 또 다른 곳을 둘러보며 묻자, 몇몇 사람이 제 옆 사람을 대신하여 손을 들어 주었다. 대부분 가방이 떨어지며 생긴 타박상과 열차가 멈출 때 앞으로 처박히며 생긴 상처인 듯했다.

“네, 일단 혹시 모르니 다치지 않은 분들께서는 짐칸 위에 있는 가방을 전부 내려 주세요. 그리고…….”

다프네는 리디아를 돌아보았다.

“치료가 시급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주시고요. 더 위급한 사람이 우선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리디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이처럼 덧붙였다.

“……슬로언 마님.”

그 호칭은 엄밀하게 말하면 굉장히 잘못된 것이었으나, 열차 안에 여전히 남아 있던 작은 소란을 잠재우기에는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다프네는 리디아와 넌지시 눈빛을 주고받았다.

“제가 차장을 만나고 올게요. 돌아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말씀드릴 거고요.”

다프네는 유리 파편이 밟히는 복도를 지나 닫힌 문을 열었다. 이등석과 삼등석 사이에는 마침 열차 승무원들의 휴식 공간과 근무 공간이 작게 마련되어 있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다친 것은 차장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채로 열차 내선 수화기에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답하세요! 기관장님!”

수화기 너머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는 사실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래서야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알아낼 방법이 없지 않을까.

“엔진 칸으로 이동하죠.”

다프네가 그의 뒤로 나가서며 권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힉 소리를 질렀다.

문을 여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듯했다.

“아, 소, 손님 지금 정황을 파악하고 있으니…….”

“여기 응급 치료 도구가 있나요?”

“예, 예!”

“이리 주세요. 여분이 있으면 더 챙기시고요.”

다프네는 그에게서 받은 가방을 얼른 삼등석 문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엔진룸으로 가 보죠.”

“예, 예?”

느닷없이 나타나 명령을 하는 모습에 그가 당황했기 때문에 다프네는 별수 없이 리디아의 지혜를 빌리기로 했다.

“슬로언 공작의 약혼녀예요.”

“헉!”

공작이 곧 결혼한다는 소식은 이미 신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앞장서세요, 엔진룸으로.”

“예, 가시죠.”

그는 바로 이등석 칸의 문을 열었다. 푹신한 의자로 만들어진 자리라는 점은 달랐지만, 사람들의 혼란은 뒤 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죠?”

“뭐랑 부딪힌 건가요?!”

그들이 길을 막고 항의하는 모습에 차장은 크게 소리를 내었다.

“지금 그걸 확인하러 가는 중입니다! 비켜 주세요! 확인해야 저도 여러분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승객들은 몇 마디 불만을 더 내뱉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길을 비켜 주었다.

다프네는 또 다른 이등석을 지나고, 가장 앞에 있는 일등석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일등석 담당 차장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일등석 승객으로 보이는 귀족 여성이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뭔가 부딪치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다프네 일행에게 질문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도 아는 것은 없으니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이제 차장은 엔진룸의 문에 제 열쇠를 꽂아 넣었다. 달칵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곧 문이 열렸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레버와 버튼과 파이프로 채워진 양쪽 벽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쓰러진 기관장의 모습이 보였다.

“기관장님!”

차장이 그에게 달려가는 사이, 다프네는 엔진룸 오른편에 난 작고 긴 창문으로 밖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열차는 마침 산 아래로 들어서는 길이었고, 폭설로 인해 쓰러진 나무 몇 그루가 선로를 막은 듯했다.

“……아.”

다프네는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뒤늦게 쓰러진 나무를 발견한 기관장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결국에는 부딪쳐 사고가 난 것이다.

그나마 속도를 줄였기에 이 정도였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최악의 탈선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나요?”

다프네가 물었지만, 차장은 곤란한 듯 울상만 지었다.

“아, 그게 전…… 외부 통신 장치는 다룰 줄 몰라서요.”

그는 기절한 기관장을 흔들어 보기도 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기관장님이 일어나지 않으시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일단 승객들의 치료 같은 것부터 하고 있을까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한데요.”

다프네는 턱을 문지르며 바깥을 내다보다가 차장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다음 열차와의 시간 차이는 얼마나 되죠?”

다프네가 건넨 물음의 뜻을 이해한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사고 사실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으면, 다음 열차와의 충돌로 2차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었다.

“저, 저녁 시간이라 배차 간격이 짧습니다. 1시간 정도…….”

그가 더듬거리며 답했다. 지금 그들이 탑승한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지 않으면, 해당 역장이 이상을 감지하고 소식을 전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아!”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그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열차 뒤편에 비상용 신호탄이 있습니다!”

“돌아가죠.”

다프네는 곧바로 계단을 내려갔다. 아까의 일등석 귀족 여성에게 기관장을 돌봐 달라고 부탁한 후에는 지나왔던 객실을 그대로 지나며 열차의 가장 마지막 칸에 도착했다.

‘비상용에만 사용할 것.’이라고 적힌 함의 잠금을 풀자, 원통형의 붉은색 신호탄이 있었다.

이를 집어 든 차장은 열차의 가장 마지막 문을 확 열어젖혔다. 순간 새하얀 눈이 날카로이 날아들어, 다프네는 팔로 제 얼굴을 가려야 했다.

겨우 바람에 익숙해져 고개를 들었을 때는 창문 너머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굵은 눈발이 쏟아지고 있었다.

철로 위로 어느새 소복하게 눈이 쌓였을 정도로.

“서두르죠.”

다프네는 그를 재촉하여 열차 바깥으로 나섰다. 차장은 조금 떨리는 손으로 신호탄 윗면의 포장을 찢어 내어 드러난 마찰 면을 열차 바닥에 세게 긁어 불씨를 일으켰다.

신호탄에서는 금방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기 때문에 그는 이를 높이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도 잠시.

“……?”

가느다란 연기는 곧 거센 바람에 흩어져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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