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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41)화 (141/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41화

“…….”

아셔는 다프네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옷소매를 흉측한 모양으로 길게 빼내어 그녀의 손안으로 툭 떨어뜨렸다.

“이게 뭐죠?”

다프네가 그의 헐렁한 옷소매를 쥐어 악수하듯 흔들며 묻자, 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우리 가문의 인사법입니다.”

“흉측하네요.”

“닥치세요.”

그는 옷소매를 쑥 빼내고는 다프네를 뾰족하게 노려보았다.

“……그, 그동안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굴욕을 삼키는 목소리로 그리 이야기하고는 획하고 몸을 돌려서 응접실을 나가 버렸다.

그의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꽤 멀리까지 들려왔다.

“왜 저렇게 화가 났담?”

다프네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곧 리암의 드레스 룸을 정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 * *

“누나!”

저녁이 되자 퇴근한 사무엘이 저택으로 그녀를 찾아왔다. 제조한 향수를 병으로 옮겨 담던 다프네는 얼른 일을 마치고 사무엘과 함께 정원을 산책했다.

“춥지 않아?”

사무엘이 걱정하여 묻는 말에 다프네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온종일 실내에서 일해서 바깥바람이 쐬고 싶을 정도야. 넌 추워?”

“아니, 전혀.”

사무엘은 다프네가 사 준 장갑을 앞으로 내보였다.

“누나가 사 준 거 잘 쓰고 있으니까.”

“착하네.”

다프네는 사무엘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사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키가 너무 자라 버려서 어려웠다.

“자아.”

다프네의 마음을 알았는지, 사무엘이 살짝 무릎을 숙여서 머리를 내밀었다.

“칭찬해 줘도 돼, 누나.”

“너도 참, 여태 이렇게 어린애 같아서 어떻게 하니?”

다프네는 괜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동생을 쓰다듬었다.

“어린애라며.”

“뭐, 그렇기는 하지만.”

다프네는 다시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고서, 정원 길 사이로 나아갔다.

“저기, 있잖아.”

곧 뒤따라온 사무엘이 뭔가 어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렵지는 않아? 오늘…… 끝나잖아.”

“음…….”

다프네는 동생이 염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다.

지난 생에 사무엘이 죽은 것이 마침 오늘이지 않았나. 그것이 애슐리의 짓이었다는 게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무엘은 여전히 그 사실을 불안하게 여겼다.

“안 무서워.”

“하지만, 누나가 리암 형의 청혼을 여태까지 거절해 온 건…….”

“사무엘, 아니야.”

다프네는 재빠르게 동생을 안심시켰다.

사실 그들의 마음이 이어진 이후로, 리암은 몇 번이나 다프네에게 노골적인 청혼을 했다.

비록 다프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는 맹약을 올바른 형태로 끝내고 싶었던 것뿐이야. 오백 년이나 이어진 것이잖아.”

“정말…… 그것뿐이지? 이상한 기색이 느껴지거나…… 그런 건 없는 거지?”

“정말이야.”

다프네는 걸음을 멈추고서 두려워하는 동생을 마주 바라보았다.

“날 믿어 줘, 사무엘.”

사무엘은 잠시 다프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최대한 누나랑 계속 같이 있을게. 저녁 점호까지는 돌아가야 하지만…….”

“나야 좋지!”

다프네는 빙긋 웃으며 동생의 팔을 붙잡았다.

짧은 겨울 햇살이 그새 넘어가 어느새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 * *

리암이 ‘자정에는 같이 있을까?’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12시가 되기 전, 다프네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리암의 방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안녕, 내 우수한 수행원.”

리암이 먼저 찾아와 있었다.

다프네는 복도 주변을 살펴보았다. 혹시 누군가가 이런 모습을 본다면 부끄러울 테니까.

“아무도 없어. 정확히는 내가 들어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건 이미 다들 알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만.”

“그야 알겠지.”

리암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서튼’의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오백 년의 마지막 날이잖아. 어떻게 우리가 함께 있지 않을 수가 있겠어.”

“……하긴.”

“앉아도 되지? 서튼.”

다프네는 그가 굳이 ‘서튼’이라는 말을 덧붙였음을 알고 조금 웃어 버렸다.

“네, 그러시죠. 아직 거절할 권한 따위는 없지만요.”

“그게 이 맹약의 즐겁고도 미쳐 버릴 일이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 네.”

리암은 그들 사이에 사랑이라도 생긴다면, 다프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명령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을 거라며.

“하지만 잘 절제하셨습니다.”

“알아주니 기쁜데.”

“한 번도…… 강제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는 눈치를 무척 잘 살피는 편이었고, 다프네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그 이상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 결과로 리암은 꽤 깊은 인내를 가져야 했을 것이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절…… 멋대로 하실 수도 있으셨는데.”

“아니, 단 한 번도.”

바로 돌아온 대답은 꽤 진심이 섞여 있었다.

“그대가 나를 진심으로 바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거든. 이리 오겠어?”

그가 두 팔을 벌리자, 다프네는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 위로 앉았다. 오랫동안 연인으로 지내며 이렇게 끌어안는 일도 제법 익숙해졌다.

“공작님은…….”

다프네는 그의 양쪽 어깨 위로 팔을 두르며 천천히 질문을 건네었다.

“맹약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호겠지.”

“서튼의 피가 세간의 연구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란 말씀이시죠?”

“그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흘러내린 다프네의 긴 은발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렇다면…… 왜 오백 년이었을까요?”

그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였던 모양이다. 리암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게, 왜였을까?”

“오백 년이면 적당히 대마법사의 명성은 잊히리라 생각한 걸까요? 피도 흐려졌을 테고요.”

“음, 그럴지도 모르지.”

이제는 서튼이라는 마법사에 대해 모르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

“아니면, 그가 오백 년 후에 환생하는 걸지도.”

한참 만에 돌아온 리암의 답은 너무나도 황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돌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환생하는 사람이 없다고 어떻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디에서 환생하는 걸까요?”

“음, 글쎄. 잘은 몰라도 아마 서튼 직계의 피를…… 아.”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는 어째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미안, 못 들은 척해 줘.”

그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으므로, 다프네는 그만 쿡쿡 웃어 버렸다.

“주인의 말에 웃다니, 못된 서튼이네.”

말은 그렇게 해도, 리암은 다프네의 허리를 힘주어 안으며 그들의 간격을 바짝 좁혔다.

“키스해도 될까?”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차분하게 입술 끝을 맞대었다. 몇 년이나 해 온 애정의 행위임에도 순간마다 숨길 수 없는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아마 그의 진심이 가장 노골적으로, 그것도 매번 훨씬 더 크고 확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시간…….”

잠시 입술이 떨어졌을 때, 다프네가 흐릿하게 중얼거린 말에도 리암은 대답 대신 깊은 입맞춤을 해 왔다.

다프네는 감각적으로 바로 지금이 ‘그 시간’임을 알았다. 그 둘의 피가 하나로 엮인 마법이 풀리는…….

“하아.”

한참 만에 입술을 떨어뜨려 그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시간부터는 그대가 내 주인이야, 다프네 서튼.”

“지나쳐요.”

“아니, 전혀 안 그래.”

그는 다프네를 침대 위로 눕히고는 그 위로 제 몸을 기울여 시선을 마주했다.

“원래 모든 부인은 남편의 고삐를 쥐는 거야.”

“……그런 말은 어디에서 배웠어요?”

“그냥, 내가 생각한 거야. 그렇게 되면 기쁠 것 같아서.”

“그건 제게 슬로언 공작의 고삐를 넘기신다는 뜻인가요?”

그는 다프네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질문을 건네었다.

“그냥…… 보통의 리암이라면 싫을까?”

“설마요.”

다프네는 곧바로 답하며 그의 얼굴을 쥐었다.

“아주 좋아하는걸요.”

“물론 내가 더 좋아해, 나의 주인 아가씨.”

곧바로 돌아오는 답을 들을 때, 다프네는 새삼 그가 참아 왔던 인내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깨달았다. 그만큼 상대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일이었다.

“아 정말.”

아무래도 다프네는 그와는 달리 그다지 참을성이 없었던 모양이다.

당장 그를 바랐다.

영원을 약속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상대로서.

“……안아 주세요, 제가.”

혼자이지 않도록.

진짜 바람은 말하지 않아도 그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강하게 끌어당겨진 몸이 맞닿아 서로의 존재가 분명하게 느껴질 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그건 마치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마침 이 겨울의 첫 번째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락거리는 그 다정한 소리를…… 이번만큼은 듣지 못했다.

잠시 떨어진 입술이 다시 성급하게 맞붙었다.

이제는 정말로 떨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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