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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40)화 (14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40화

시간이 흘러 클롯모어의 어느 평범한 겨울 아침.

다프네는 남성용 옷가지와 장신구를 챙겨 리암의 침실로 향했다. 작게 노크를 했지만, 대답이 없기에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적막이 가득했다.

리암이 이렇게 늦잠을 자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마 어제 수도에서 ‘단기 노동’을 시켜 달라며 찾아온 친구, 엘에게 밤새도록 시달리느라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그가 더 자도록 두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사이에 인기척을 느낀 리암이 먼저 일어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아니야.”

그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답하면서도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야지. 오늘인데.”

다프네는 그의 옷을 걸어 두고 커튼을 걷었다. 겨울치고 그다지 춥지 않은 온화한 날씨였다.

그사이에 침대에서 빠져나온 리암은 욕실에서 간단히 몸을 씻고 나왔다. 여전히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면서 툴툴거리는 소리에 다프네는 조금 웃고 말았다.

“오늘은 요청하신 대로 예복을 가져오긴 했습니다만, 정말로 온종일 이 불편한 옷을 입으실 겁니까?”

“음?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아. 게다가 이 옷은 굉장한 장점이 있지.”

대체 무슨? 다프네가 그의 맨몸에 셔츠를 입히며 궁금해하자, 리암은 뻔뻔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그대가 날 흘끔거리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

“분명 예복을 입은 내가 근사해서 시선을 뗄 수 없는 거겠지. 이해해. 나도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거든. 이렇게 멋진 남자가 있다니.”

다프네는 썩은 무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헛소리에 어울리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러니까 미간을 잔뜩 구기는 것 말이다.

“내가 그 표정을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아, 예. 정면을 봐 주시죠.”

다프네는 심드렁하게 답하며 그의 뒤로 돌아가 셔츠 깃을 바로잡았다.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딱 감당하기 좋은 정도야.”

다프네는 은쟁반에 담아 온 커프스단추 상자 몇 가지를 내보였다. 리암은 고민하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순금 장식이 달린 것을 골랐다.

“오늘은 이게 좋겠어.”

“오늘도 말입니까?”

다프네는 ‘부디 다른 것을 고르세요.’라는 뜻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벌써 일 년째 같은 것을 고르고 있었으니까.

어쩌다가 다프네가 다른 커프스단추만 챙겨 와도 반드시 이를 다시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이라도 좀 다른 것을 하기를 바랐는데…….

“그래, 오늘도.”

리암은 다프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 감각 있는 연인이 직접 고른 거라서 도무지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거든.”

게다가 더 반박할 수 없도록 기특한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오늘 막 선물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들뜬 얼굴로 단추를 끼우고는 근사하게 미소 지었다.

“아마 내일도 쓸 거야. 이제 이걸 가져다주는 건 그대의 업무가 아니게 되겠지만.”

다프네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오늘은 오랜 맹약의 마지막 날이었다. 처음 이 맹약을 맺을 때만 해도 족쇄와도 같은 맹약이 어서 끝나기를 바랐지만, 막상 오늘이 오니…….

‘좀…… 아쉬울지도.’

이후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도 있을 테지만, 다프네는 과감하게 퇴직을 결정했다.

“어라,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건가?”

“아닙니다.”

“고개 들어 봐, 얼굴 보고 싶어.”

그가 부드럽게 양쪽 뺨을 쥔 채로 건넨 요청에 다프네는 되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일하는 중에는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가끔 그대도 내키면 내게 키스해서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았나?”

“그, 그건.”

그건 집무실에서 일하는 리암이 너무나도 지쳐 보였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건전한 응원이었습니다.”

“응, 그래, 응원.”

그는 기어코 다프네의 고개를 당겨 올리더니 이마와 콧날 그리고 양쪽 뺨으로 짧은 키스를 흩뿌렸다. 아주 예뻐 죽겠다는 듯이.

“어때, 꽤 건전했지?”

입술을 떨어뜨리고 나서 그는 장난스레 미소를 지었다.

정말 주인만 아니었다면, 얼굴을 한 대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얄미웠다.

* * *

리암의 시중을 끝내고 나오니 마침 도착한 리디아 슬로언과 딱 마주쳤기 때문에, 다프네는 얼른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디아 님.”

“그대의 감사를 들을 이유는 없습니다. 가문의 일로 온 것이니.”

그녀는 특유의 오만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하고는 잠시 다프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을 망설이는 듯하여 다프네가 먼저 질문을 건넸다.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기억은…… 흠.”

어색하게 묻는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리디아 나름대로 다프네를 걱정했던 모양이다.

“예전에 몇 가지가 우연히 떠오른 이후로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제는 딱히 불편하지 않아서요.”

그로부터 벌써 2년도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 다프네의 상태는 더 나아지지 않았다. 아쉽기는 했지만, 이제는 딱히 연연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공정한 과정을 거쳐 공작님의 수행원을 선발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공작님은 당분간 수행원 없이 지낼 거라고 하셨는데, 리디아 님께서 직접 후임을 고르실 건가요?”

“……사용인을 뽑고 관리하는 건 안주인의 역할입니다만.”

“네?”

리디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작았던 탓에 다프네는 제대로 듣지 못하여 되물었다.

“흠, 아닙니다. 어쨌든 저택에서는 언제 나갈 겁니까?”

다프네는 클롯모어 내 마을에 집을 한 채 구했는데, 그곳에서 사무엘과 함께 살기로 했다.

“공작님께서는 언제든지 먼저 가도 좋다고 하셨지만, 저는 자정까지는 책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훌륭한 자세입니다. 그럼 후일에 또 뵙죠.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아, 네! 저야말로 여러 가지로 신세가…….”

다프네도 얼른 허리를 숙여서 감사의 인사를 했지만, 리디아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가 버렸다.

“마지막까지 싸늘하시네.”

다프네가 홀로 중얼거릴 때, 바로 뒤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끄러워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브리!”

다프네는 얼른 돌아가 가장 친한 친구와 팔짱을 꼈다.

“수도에서 언제 왔어요? 동생분은 이제 완전히 괜찮은 거예요?”

“네. 앞으로도 병원은 정기적으로 다니겠지만, 드디어 퇴원했답니다.”

“축하해요, 정말.”

다프네는 브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저도 빨리 브리의 동생을 만나 보고 싶어요. 분명 귀엽겠죠?”

브리 역시 동생과 함께 살 집을 마을에 구했다. 앞으로는 저택으로 출퇴근하며 일할 예정이었다.

“네, 제 눈에는 아주 귀여워요. 아…… 그렇지. 다프네, 커빙턴 양께서 응접실에서 찾으세요.”

“지금요?”

“네, 앨러스테어 님이 지금 도착하신 터라 미리 도움을 청한다고 하시던데요.”

“아…… 또 그 일이군요. 얼른 가 볼게요.”

“그렇게 해요.”

다프네는 얼른 사용인 계단으로 향했다.

사실 피오나와 처음 만났던 기억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휴가마다 클롯모어에 꼭 한 번씩 들르는 터라 두 사람은 금방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피오나는 결혼을 조르는 앨러스테어를 무찌르는 무기로써 다프네를 활용하곤 했다.

「그게,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꽃과 반지 그리고 시 한 편도 없이 서류만 산처럼 쌓아 와서 사인을 조르는 거 말이에요!」

하지만 다프네가 전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그건 피오나 쪽에서 먼저 했던 청혼 방식이라고 들었는데.

“어라?”

그런데 다프네가 응접실 앞에 도착해 보니, 어째 다른 사용인들이 그 입구를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왜 다들 여기에?”

다프네가 다가가며 물었는데, 그들은 모두 동시에 손가락을 입가에 댄 채로 침묵을 요청했다.

다프네는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슬쩍 내부를 엿보았다.

그 안에는 백 송이도 넘어 보이는 꽃다발을 든 앨러스테어가 굴욕을 참는 얼굴로 구애의 시를 암송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다프네가 건넸던 조언을 제대로 들은 듯했다.

다프네는 물러나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다른 사용인들이 아쉬워하는 듯했으나, 이들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어떻게든 지켜 주고 싶었으므로.

“자, 다들 가서 일할까요?”

다프네가 모두를 격려하여 일터로 돌려보내고 나니,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아셔가 안경을 고쳐 쓰며 다가왔다.

“잘했습니다. 월급 도둑들을 잘 처치했군요.”

웬일로 그가 칭찬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친절한 걸까 싶었는데.

“우후후,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제 퇴직 서류를 꾸미는 일이 그렇게 좋은 건가요.”

“당연하죠!”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응접실 쪽을 바라보고는 얼른 헛기침했다.

“어쨌든 따라와요. 사인해야 할 서류가 있으니까.”

다프네는 빈 응접실에서 월급 명세와 비밀 유지 각서 등에 사인했다. 그녀가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며 읽는 사이에 아셔는 쉼 없이 불만을 내비쳤다.

“역시 당신 동생이 와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런 인재를 치안대에 빼앗기다니. 거기 밑줄 친 부분은 꼼꼼히 봐요. 어쨌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 벌써 다 했습니까?”

“네, 아셔가 읽기 좋게 정리를 잘해 준 덕분이죠. 고마워요. 이상한 내용도 없던데요?”

다프네가 칭찬하자, 그는 사인을 마친 서류를 황급히 채 갔다.

“어…… 고마웠어요. 아셔 덕분에 굉장히 편하게 생활했어요.”

“따, 딱히 당신 좋으라고 한 일들은 아닙니다.”

“알아요, 공작님에 대한 충성이죠?”

“당연하죠.”

그는 확인을 마친 서류를 봉투 안으로 쓱 밀어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쪼록 마을에서는 마주치지 맙시다.”

“……네?”

다프네가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묻자, 그는 어째 새빨개진 얼굴로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기랄, 어쩔 수 없군요. 인사 정도는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딱 거기까지입니다. 알겠습니까? 다가오지 마세요!”

“어…… 네. 좋아요.”

다프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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