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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8)화 (138/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8화

그다음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다프네는 자신이 그를 거절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공작님께서 이 주택을 소중하게 여기셨던 건?’

그런 이유였을까.

“괜찮아?”

그가 허리를 깊이 숙여 건넨 걱정의 말에, 다프네는 얼굴을 확 붉힌 채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님은 미쳤어.’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수도의 주택을 사들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세입자도 없이, 그저 관리하는 비용만 쓸 뿐인데.

“……낭비입니다.”

“음?”

그건 다프네 자신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사실 알뜰한 그대라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긴 했어.”

“…….”

“내가 가문 대대로 사용한 집에서 여기로 옮겨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야말로 애물단지 같은 집이었다.

그런데도 이 공간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에서는 깊은 애정이 묻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왠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 집을 아끼는 마음이, 정말로 다프네로 인해 생겨난 것인지.

“저어.”

다프네는 여태 쥐고 있던 그의 손을 조금 당겼다. 그의 시선을 바라는 것이다.

“응?”

그가 곧바로 바라보며 답을 해 올 때, 다프네는 단숨에 질문을 건네었다. 괜히 이야기를 짜내느라 고민하다가는 에두르는 말만 하게 될 것 같았으므로.

“키스했나요?”

순간 그의 얼굴이 당혹으로 굳어 버렸다. 역시 너무 노골적이었을까. 그래도 다프네는 그에게 함부로 사과하지 않기로 했다.

“알고…… 싶어서요.”

“다프네, 혹시 기억…… 난 건가?”

그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겨우 건넨 질문에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하지는 않지만요.”

갑자기 몰려온 긴장으로 심장이 막힌 듯 답답해졌기 때문에 그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깊이 호흡했다.

“다프네, 일단 돌아가자. 우리 가면서 이야기해. 지금은 머리도 젖었고.”

걱정되었는지, 리암은 저를 붙잡은 다프네의 손을 당겼다. 다만 다프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더 미룰 수는 없었으므로.

“말하게 해 주세요, 여기에서.”

“다프네.”

그가 나무라듯 부르는 말에도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소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기여야 합니다. 지금이어야 하고요.”

그는 무어라고 더 설득하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으나 이내 포기한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프네는 조금 벌어진 거리를 다시 좁혔다. 서로 발끝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후에는 고개를 높이 들어 그를 올곧게 응시했다.

조금 긴장했는지 그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에는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남자는 수많은 귀족과 가문의 장로들은 물론 왕까지도 긴장케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고작 다프네 같은 사람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잠시 떨리던 그의 눈동자가 비로소 그녀에게 돌아왔고, 동시에 다프네는 그의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좋아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음절마다 주의를 기울이며 느릿하게 고백의 말을 건네었다. 어렴풋한 미소를 지은 채로.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공작님의 차를 제가 운전하는 것 말입니다.”

그는 금방 실망한 기색으로 양어깨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런 말이 덧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수도까지 함께 이동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사실은 좋았습니다.”

“혼자 보낼 수가 있어야지.”

“기록실에서 함께 차를 타고 올 때도 좋았고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을 존중해 주시는 점과 또…….”

다프네는 그와 있었던 일을 떠오르는 대로 열거했다. 그중에는 ‘싸울 때도 좋았습니다.’라는 말도 있어서, 어느새 그 역시 다프네를 따라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제게…… 고백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

“그때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공작님이 약혼녀분을 잊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내 약혼녀가 아니기도 했어. 뭔가…… 변명하는 것 같지만.”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말씀해 주시는 편이 나아요, 그렇지 않으면 알지 못하니까. 그리고…….”

어느새 가득 쌓인 기억을 헤아리고, 다프네는 처음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그 망설임이 어떤 암시라도 되었는지, 그의 표정에서 약간의 조바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줄곧 이어지는 집요한 시선에 다프네는 고개를 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이를 억지로 억누르며, 오히려 발끝을 살짝 들었다.

좁아진 시야에 오직 그만이 보일 때는 가까스로 소중히 품어 온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당신이 좋아요.”

리암의 표정에는 아주 약간의 변화도 없었다. 혹시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다프네는 다시 이야기를 건넸다.

처음과 비교하면 두 번째는 아주 쉬웠다. 답을 아는 문제를 푸는 것처럼.

“좋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왠지 마음이 가벼워져 미소까지 흘러나왔다.

다프네는 자신이 그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홀로 끌어안은 채 지내 왔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정말로 좋…….”

“자, 잠깐만.”

고삐가 풀려 버린 마음이 자꾸만 흘러나오려는 것을 리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막아섰다.

“그러니까, 그대의 좋아한다는 말은.”

그는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듯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좋은 고용주라는 뜻이겠지?”

그 대답에서는 왠지 지금까지 리암이 겪어 와야 했던 다양한 고통이 느껴졌다.

“여태껏 제가…… 그 정도로 눈치 없이 굴었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음……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죄송합니다.”

다프네는 어느새 완전히 사용인의 어투로 돌아가 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바짝 들어 올렸던 두 발꿈치도 내려가 그들의 거리가 다소 멀어졌다.

“……아냐, 익숙해.”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도 기뻤어. 어떤 식으로든 그대가 날 좋아한다는 건 감사한 일…….”

아무래도 그의 오해가 멋대로 깊어지는 것 같아서, 다프네는 그의 말을 단호히 막아섰다.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로요.”

순간 그의 두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말도 안 돼.”

“어째서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대는 내가 저지른 일을 몰라서 그래. 내가 얼마나 졸렬한!”

“아, 공작님이 졸렬하다는 건 누구보다도 제가 제일 잘 알아서.”

“…….”

“농담입니다, 반 정도의 진심이 섞인.”

“아, 정말.”

리암은 잠시 제 이마를 쓸어 내고는 곤란한 듯 조금 울상을 지었다. 왠지 입술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처음에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듣지 못했습니다만.”

“……여기는 아니지만.”

“그럼 어디인데요?”

“…….”

그는 귀까지 붉힌 채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창피해하는 모습이 왠지 재미있어서 다프네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무래도 그 기억은 다프네가 시간을 들여서 떠올려야 할 모양이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다프네는 웃음이 남은 얼굴로 여태 붙잡고 있던 그의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지금도 줄곧 잡고 있었는데.”

그건 꽤 노골적인 바람을 전하는 말이라, 그 이야기의 끝에서는 왠지 얼굴이 달아올라 시선을 비스듬히 내리게 되었다.

역시 좀 갑작스러운 말이었을까 싶어, 다프네는 ‘농담이에요.’라며 얼버무리려고 했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뺨을 쥐어 올리기 전까지는.

“아…….”

탄성에 가까운 소리를 낸 것도 잠시, 허리를 깊이 숙인 그가 입술 끝을 맞췄다.

가볍게 닿고 떨어지는 키스가 남긴 잔열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는 다시 입술을 맞추었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더 지긋하게.

다프네는 이제야 사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예민해진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들을 하나씩 헤아렸다. 비 내음이 섞인 그의 향, 틈 없이 맞닿은 채로 서로를 쥔 손바닥의 열기, 끊임없이 귓가를 울려 대는 심장 소리, 그리고.

“다프네.”

맞댄 입술이 스치며 들려오는 달콤한 부름.

“좋아하고 있어,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서.”

다프네는 그 호흡에 가까운 말이 입술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것이 참 기뻤다.

그의 고백이 몸 안에 새겨지는 듯해서.

그는 입술 끝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맞추고는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나는 공식적으로 그대 소유야. 돌이킬 수 없어.”

“공작님이야말로, 돌이키실 수 없어요.”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그는 다시 허리를 숙여 다프네의 한쪽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 정말, 왜 이리도…….”

잠시 멀어지는가 싶더니 그는 다른 쪽 뺨에도 공평하게 키스했다.

“……부드럽지? 대체 뭐로 만들어진 거야?”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한 후에는 다시 입술 위로 입을 맞추었다. 도무지 멈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아, 정말 너무 좋아해.”

앓는 듯한 고백의 말이 다시 흘러나왔는데, 정말이지 어떤 꾸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날것의 진심이 전부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상대의 순수한 애정을 알게 되는 것만큼 안정감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이 변하지 않는 감정을, 다프네도 그에게 말해 주고 싶어졌다.

“저도, 정말 너무 좋…… 흣.”

그 고백의 일부는 소리가 아니라 조금 더 깊은 키스가 되어 그에게 녹아들었다.

이제는 심장의 울림까지 전해질 정도로 몸이 가까워지고, 섞일 듯이 완전히 맞닿았는데도 다프네는 여전히 그와의 거리가 아쉬워서, 붙잡은 손에 꾹 힘을 주었다.

그 마음까지 전해졌는지, 서로를 찾고 엮어 내는 열렬한 키스는 한참이나 더 오랫동안 달콤하게 이어졌다.

다프네는 왠지 오늘은 타운하우스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고마운 변명이 되어 줄 비가 다시 폭풍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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