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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2)화 (13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2화

리암이 마을로 내려간 후 비는 금방 멎었다.

그는 외곽 지역까지 달려가 농장에 새로이 들여온 과일 선별 기구를 살펴보고, 목장에 울타리 수리 상황도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무사히 진행 중인 창고 공사 현장도 가 보았다.

비록 길이 질척하여 그의 옷이 엉망이 되었지만, 리암은 이렇게 실제로 마을을 돌아보는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던 일이라고 해도, 오늘은 어쩐지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프네 때문이다.

그녀가 차에서 그만두었던 말이 줄곧 신경 쓰였다.

「공작님, 혹시 우리가…….」

그 뒤에는 어떤 말이 생략되어 있었을까?

리암은 섣부르기는 하지만, 혹시 다프네가 그들의 관계가 달라졌었음을 알아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의사는 감정을 들켜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다프네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리암은 지금까지 다프네의 앞에서 엄격한 공작의 모습을 유지해 왔다.

물론 정신이 풀려서 귀엽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적도 있지만, 금방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이성적인 대응을 해 왔다.

그런데도 그들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다니.

역시 다프네 서튼은 똑똑했다.

그가 반하는 것이 새삼 당연하구나 싶을 정도였다.

이제 그는 마음이 잔뜩 들떠, 다프네가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당돌하게 묻는 순간까지 상상하고 말았다.

그를 조심스레 올려다보며 그렇게 물으면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그 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그는 운전대를 뽑아 버릴 듯 두 손에 가득 힘을 주고, 평소보다 훨씬 속도를 높여 저택으로 달려왔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공작님.”

현관 앞으로 그녀가 마중을 나왔다.

“진찰은 잘 받았어?”

그는 저도 모르게 친근한 태도로 그녀에게 다가가 모자를 건네주었다.

“아…… 예. 걱정해 주신 덕분에.”

그런데 어째 다프네는 잔뜩 굳은 얼굴로 겨우 대답을 건네는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지그시 내려다보니, 다프네는 살그머니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아, 아뇨.”

짧은 대답 후, 다프네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를 숙였다.

“뒤따르겠습니다.”

그건 어째 ‘더 묻지 말아 달라’는 신호인 것 같아서, 리암은 별수 없이 현관으로 향해야 했다.

바로 뒤에서 다프네의 가벼운 걸음 소리가 따라왔다.

리암은 괜한 미련에 몇 번 정도 그녀를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째 다프네의 걸음은 더욱 느려지기만 하여 그들의 간격이 벌어질 뿐이었다.

‘왜……?’

결국, 그는 다프네가 주어진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묻는 것조차도.

그녀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리암은 왠지 허탈한 마음이 몰려왔다.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서 온갖 망상을 해댄 후유증 같은 것이리라.

리암은 침대로 툭 몸을 떨어뜨렸다.

근처에 아셔가 ‘확인해 주세요.’라며 가져다 놓은 편지 봉투가 하나 있었지만 그걸 읽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 * *

리암의 시중을 든 후, 그의 옷가지를 챙겨서 계단을 내려오는 길. 다프네는 잠시 계단 창가에 멈추어 서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끄러운 질문을 할 뻔했어.’

만약 그 신문을 보지 못했다면, 돌아온 리암에게 이렇게 질문을 건넸을 것이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죠?’라고.

그와 다프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분명 착각이었다. 그저 리암의 분위기가 바뀐 것뿐이다.

‘약혼녀를 잃었으니 깊이 상심하시는 것도 당연해.’

게다가 리암은 그녀를 깊이 사랑했음이 분명했다. 옛 약혼녀의 집을 산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냥, 그 집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지가 않았어.」

「그 집에는 추억이 있어서…… 정말로 소중한.」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혹시, 그 약혼녀도 애슐리로 인해 잃었던 것은 아닐까.

다프네는 가까운 시일 내에 그녀에 관해 조사를 더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서튼으로서 주인의 상심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결심할 때, 다프네는 끌어안고 있던 그의 옷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비에 젖고 흙이 묻어서 엉망이 된 것에서는 또 어째서인지 그녀를 안정케 하는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상해.’

다프네는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잠시 그의 옷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로 자신도 모르게 그리되고 말았다.

용기를 내어 세상이 모르게 살짝 호흡하는 순간에는 심장 한편이 무언가에 짓눌린 듯 아팠다.

이런 아픔이 어디에서 오더라…….

옷가지에 자신을 묻은 채로 잠시 고민하던 다프네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은 소용도 없는 마음의 정체를 굳이 밝혀 두고 싶지는 않았다.

쾅.

그때, 계단 위에서 요란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프네는 깜짝 놀라서 다시 자리에서 멈추어 서고 말았다.

사용인 계단에서 소란스럽게 구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특히 주인이 계시는 2층을 지날 때는 소리를 죽이는 것이 이 저택의 규칙이었다.

대체 누가 감히 사용인의 규칙을 어긴 거지?

* * *

“그래도 일은 해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리암은 침대에 엎드렸던 몸을 거의 기다시피 하여 아셔가 가져다 놓은 편지를 살폈다.

편지 앞에는 아셔의 메모가 하나 붙어 있었다.

[신문사에서 기사에 대해 사과문을 보내왔습니다. 곧 신문에도 실릴 예정이라고 하니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기사?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셔가 ‘기사 중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은 제 선에서 대응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에 관한 결과가 하나 도착한 모양이었다.

리암은 별생각 없이 아셔의 쪽지와 함께 첨부된 기사 조각을 읽어 보았다.

[슬로언 공작은 린든 남작이 경매에 내놓은 주택을 가장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아무래도 차에서 다프네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바로 그 기사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셔가 왜 이런 시답지 않은 기사에 발끈하고 대응했을까. 사실 틀린 말도 아닌데.

다프네와의 좋은 추억이 있는 집을 타인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는 린든 남작의 집을 욕심 내었다.

다소 바보 같은 동기이기는 했지만…….

[공작은 죽은 약혼녀의 주택을 매입하는 것으로, 깊은 그리움을 채우려는 듯 보인다.]

“……음?”

거기에는 집을 구매할 당시에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이상한 이야기가 섞여 있었다.

맙소사, 이래서야 아셔가 항의하는 글을 보내는 것도 마땅했다. 만약 기억을 잃은 다프네가 이런 기사를 본다면 리암을 두고 대단한 오해를…….

「공작님의 사소한 부분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돌아가면 마저 읽어 볼 생각입니다.」

“설마 읽었나!”

그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정신없이 문가로 달려가 문을 확 열어젖힌 후에는 잠시 그대로 멈칫거렸다.

‘아니지.’

다프네의 태도가 변한 것이 꼭 그 기사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든 탓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리암은 그녀가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는 일에 대해 변명을 하는 셈이었다. 얼마나 어이없어할까.

‘……하지만.’

저런 오해는 달갑지가 않았다. 설령 다프네가 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복도로 빠져나왔다.

역시 변명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잘못된 기사를 정정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뿐이다.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사실관계를 제대로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겠는가. 기억이 돌아왔을 때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셔의 편지와 사과문을 가져올 것을 그랬나.’

복도 한복판에서 리암은 뒤늦게 증거가 될 물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걸 다시 가지러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점점 심장이 성급하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아예 다른 소리를 전부 차단해 버릴 정도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다.

리암은 사용인이 사용하는 계단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직 집사가 촛불을 밝혀 주지 않아서 다소 어두웠으나, 벽을 따라 길게 난 창문으로 달빛이 내려 시야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프네는 계단을 모두 내려갔을까?

빠르게 그 뒤를 따라 달리자 곧 반층 아래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다프네는 몹시 놀란 눈으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옷을 꼭 보물처럼 끌어안은 채로.

다행이다.

리암은 일단 안도가 들었다.

적어도 지금 바로 다프네에게 사실관계를 전부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여전히 반층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선 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애매하게 입술만 벌린 채로 멈칫거리고 말았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말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그는 명석한 두뇌를 재빠르게 회전시켰다.

몇 가지 문장이 금방 완성되었다.

1. 힐링엄 양을 생각해서 집을 산 것이 아니다.

2. 힐링엄 양은 형님의 약혼녀다. 좋아할 리 없다.

3. 내가 그리워하는 건 힐링엄 양이 아니다.

세 가지 모두 괜찮았기 때문에, 그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공작님은 사용인 계단을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그의 머뭇거림이 조금 길어졌기 때문인지, 지긋하게 올려다보던 다프네가 차분하게 그를 나무랐다.

“게다가 미친 사람처럼 쿵쾅쿵쾅 뛰어다니시면 안 됩니다.”

“음? 뭐라고?”

리암은 아직도 세 가지 안 중에 무엇이 좋은지 고민하는 터라 다프네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 밤에 겅중겅중 뛰지 마시라고요! 미친 사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얼굴을 확 일그러뜨리며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힐난하는 다프네를 보는 순간에는, 어째 뇌를 거치지 않은 솔직한 말이 저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오고 말았다.

“아…… 좋아해, 다프네 서튼.”

이를 들은 다프네의 얼굴이 몹시 구겨졌다.

그의 이 끔찍한 말에 질색하여 ‘진짜 미치셨습니까?’라는 말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에 리암은 어쩔 수 없이 그날과 같은 답밖에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깊이 사랑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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