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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8)화 (128/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8화

리암은 괜히 속상한 마음에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다른 질문은 더 없나?”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차하면 아셔에게 묻겠습니다.”

“그걸 왜!”

다른 남자한테 물어본다는 건가, 라고 물으려던 리암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바쁜 공작님을 귀찮게 하는 것은 사용인의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

“아셔가 더 편하기도 하고요.”

“……뭐!”

“방이 가까우니까요.”

“내, 내 방도 그렇게 멀지는 않은데…….”

리암은 의기소침한 채로 답했지만, 차마 그에게만 물어봐 달라는 고집스러운 말은 건네지 못했다. 혹시 다프네가 그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흠, 그리고 당분간은 휴가를 보내도록 해.”

“휴가요?”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잖아. 그리고 사무엘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필요할 테고.”

조금 전에 사건 개요를 설명하면서, 리암은 사무엘이 치안대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 둔 상태였다.

다프네는 사무엘이 멋대로 오린샤이어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조금 분노하면서도, 결국에는 여린 동생이 그런 험한 직업을 잘 버텨 낼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건 예전에 다프네가 보였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리암은 새삼 사무엘이 부러워졌다.

어느 시간의 다프네든 같은 마음으로 사무엘을 좋아해 주는구나 싶어서…….

“업무로 돌아오는 건 조금 시간을 두어도 좋아.”

“그럼 공작님의 수행원 자리는 어떻게 합니까? 언제까지나 아셔나 집사님께 부탁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뭐…… 새로운 사람을 뽑거나.”

불현듯 흘러나온 말이었는데, 리암은 왠지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새로운 인물을 뽑아서 함께 일하도록 한다면, 그녀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을 터다.

아니,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았다.

게다가 맹약 기간을 마친 다프네가 편하게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사이에 기억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제 생각해 보니, 단순히 기억이 떠오르는 것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프네가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때와 같은 감정을 품은 채로 리암을 생각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느새 리암은 자신이 상처받게 될 미래만을 상정하고 있었다. 아마 이 역시 소심한 본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단 휴가는 안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음?”

“의사 선생님께서도 제게 일상을 지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고요.”

“그, 그런가.”

“공작님을 모시는 일이 저의 일상이니까요.”

리암은 그녀가 자신을 ‘일상’에 포함해 준 것이 기뻐서, 괜히 입술이 삐죽삐죽 올라가려고 했다. 물론 얼른 참아 냈지만.

“그리고 사람을 뽑는 것도 그다지 찬성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대가 힘들지 않을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다프네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리암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저는 서튼입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제게 주어진 의무를 게을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기억이 불완전하여 다소 부족한 면은 있겠지만…….”

그저 시선이 얽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뿐인데, 리암의 심장은 어째 멋대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제가 공작님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그 갸륵한 말이 들려온 순간에는, 애써 눌러두었던 커다란 감정이 그도 모르게 홀랑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미치겠네, 역시 난 그대가…… 아니.”

“예?”

“응…… 아니야. 하, 그래. 아니지.”

다행히 리암은 얼른 입을 다무는 것으로, 이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장담하건대, 분명 리암은 말라서 죽고 말 것이다.

* * *

하루가 지나자 반가운 인물이 다프네를 찾아왔다.

“누나!”

“사, 사무엘……?!”

리암의 방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던 다프네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사무엘이…… 우람했다.

빵 봉지도 겨우 들 듯 가녀렸던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프네가 이렇게 놀라는 사이, 사무엘은 두 팔을 벌려 다프네를 와락 끌어안고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 나…… 누나가 정말로 일어나지 못하는 줄 알고…….”

하지만 어수룩하고 귀여운 면은 여전히 다프네가 기억하는 사무엘 그대로였다.

다프네는 이제야 팔을 뻗어 사무엘의 단단한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내가 깨어나는 건 당연하잖아, 네가 있는데.”

“히끅.”

“너 설마…… 진짜 울어?”

다프네는 살짝 동생의 어깨를 밀어내며 질문을 건넸다.

“아니. 히끅, 아, 안 우는데…… 훌쩍.”

사무엘은 다시 다프네를 와락 끌어안은 채로 열심히 도리질해 대었다.

“나, 정말로…… 으헝.”

안 울기는.

다프네는 피식 웃고는 다시 동생의 등을 몇 번이나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래도 몸만 컸지, 마음은 아직도 빵 봉지밖에 담당하지 못할 만큼 여린 듯했으니까.

복도에서 오열하던 사무엘이 울음을 그친 후, 다프네는 동생과 함께 ‘서튼’의 방으로 왔다.

창가에는 여전히 사무엘이 가져다 놓은 뿌리 식물이 있었는데, 강한 햇살과 바람을 맞아서 반쯤 말라붙어 있었다.

사무엘은 작은 스툴에 앉았다. 그의 커다란 몸에 비교하면 스툴이 가여울 정도로 작아서 다프네는 조금 웃어 버리고 말았다.

“저기 있잖아, 누나.”

사무엘은 제 앞에 마주 앉은 다프네의 얼굴을 가까운 곳에서 들여다보았다.

“음?”

“정말로…… 기억이 안 나?”

“아.”

다프네는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응…… 미안해.”

“아니!”

사무엘은 얼른 두 손을 휘저었다.

“원망하려는 게 아니라, 너무 걱정돼서……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어?”

“몸은 이제 아프지 않아. 가끔 두통이 오는 걸 제외하면.”

“어떻게 해.”

사무엘이 울상을 지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손을 휘저었다.

“아니, 괜찮아. 오늘은 특히 상태가 좋은 것 같고. 아 참.”

다프네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두 손을 마주 부딪쳤다.

“내가 너에게도 말했겠지?”

“말하다니, 뭘?”

“내가 시간을 돌아온 거 말이야.”

다프네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생판 남인 리암에게 이야기를 했을 정도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무엘에게는 먼저 말했을 테니까.

“무슨…… 시간?”

하지만 사무엘의 반응은 그녀가 생각하던 것과는 달랐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두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으니까.

“내가 네게 말…… 안 했어?”

“누나가 나한테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사무엘은 머쓱하게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난 나중에 들을 생각이었거든. 누나가…… 많이 아프니까.”

다프네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그 사실을 사무엘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서, 공작님께 먼저 보고드렸다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지. 대체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누나, 괜찮아?”

“아, 응.”

다프네는 애써 빙긋 웃었다.

“내가 네게 먼저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게 좀 믿어지지 않아서.”

사무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프네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누나를 곤란하게 한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듯했다.

“나한테는 중요한 비밀이 하나 있었거든.”

“비…… 밀? 아까 이야기한 그 ‘시간’ 말이야?”

“응, 나는 맹약이 끝나는 스물두 살의 겨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로 시간을 거슬러 왔어.”

다프네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넸다.

아마 사무엘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다시 의사를 불러오자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시간을 거슬러 왔구나.”

그런데 사무엘은 약간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이런 말을…… 믿어?”

생각 외의 반응에 오히려 다프네가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아니, 이런 상식 외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리 간단히 믿는단 말인가.

“응, 믿지. 그래서 대체 누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다프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가 겪은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사무엘은 고개만 끄덕이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을 때는 음산한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쏴 버릴걸.”

“응?”

처음 보는 사무엘의 싸늘한 분위기에 다프네가 놀란 기색을 보이자, 그는 얼른 평소의 부드러운 얼굴로 돌아왔다.

“아, 아니! 누나가 왜 그 남자랑 가까이하지 말라고 충고했는지 알 것 같아서.”

“내가 그랬어?”

“응, 좀 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일찍 알았다면 어떻게 하려고?”

“음? 아, 아니야. 그냥 난…… 누나가 혼자서 너무 오랫동안 힘들었을 것 같아서.”

“분명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다프네는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었다.

“대부분은 이제 기억이 안 나니까. 지금은 그냥 저절로 해결된 기분이라 좀 이상하기도 해.”

“저절로라니!”

사무엘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누나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런데도 난 제대로 돕지도 못하고 보호만 받아서…….”

“내가 널 제대로 보호했다면 다행이야. 그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

“으.”

그는 감격했는지 어째 다시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나도 누나를 항상 보호하고 싶었는데.”

“알아. 내가 널 보호해 준 만큼, 네가 날 보호해 주었을 테니까.”

다프네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비록 그녀는 일부 기억을 잃었지만, 그사이에 사무엘이 자신을 위해서 큰 노력을 했으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사무엘은 늘 그런 동생이었으므로.

하지만 사무엘은 괴로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아무것도 못했어. 공작님에 비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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