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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5)화 (125/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5화

리암이 커빙턴 가족과의 만찬을 무사히 치른 다음 날, 피오나와 가족들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앨러스테어도 오랫동안 클롯모어에서 고생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리디아는 저택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다프네의 방에 들렀는데, 아무래도 그녀를 깊이 걱정하는 눈치였다.

“걱정이라뇨, 공작님. 저는 그녀가 서튼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누워만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입니다.”

물론 리디아는 제 마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했지만 말이다.

“아무쪼록 서튼이 깨어나는 대로 제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약속하지. 내가 없는 클롯모어를 지켜 주느라 고생이 많았어. 그대에게는 정말로 큰 빚을 졌어.”

“저는 리디아 슬로언입니다. 옳고 그름은 금방 파악합니다.”

그녀가 가문의 이름에 약간의 자부심을 섞어서 답했기 때문에, 리암은 씩 미소만 지었다.

그들이 모두 떠난 후, 사무엘이 찾아왔다. 꽃 한 송이를 손에 곱게 쥔 모습으로. 리암은 그 꽃을 무척 흥미롭게 바라보았는데, 그건 긴 줄기 아래로 뿌리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옥에 들어간 사이에 마을 꽃집의 운영 방침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사무엘은 살짝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오는 길에 예뻐서 누나에게 보여 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 조절에 실패하여 뿌리까지 쭉 시원하게 뽑아 버린 모양이었다.

“뿌리를 떼어 내다가 줄기가 으스러지면 곤란하니까 이대로 가져왔어.”

“하긴.”

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엘의 섬세한 성격과 달리, 그가 지닌 힘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것이라 내구성이 좋지 않은 것은 간단히 짓이겨질 수 있었다.

“혹시 하녀분께 손질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

“그야 어렵지 않지만.”

리암은 사무엘의 손에서 꽃을 받아 뿌리에 남은 흙 일부를 툭툭 털어 내고 돌려주었다.

“내가 아는 다프네 서튼이라면 이 상태를 더 재미있어 하겠지.”

리암은 씩 웃으며 앞장을 섰다.

“혀, 형. 정말로 이대로 누나에게 주라고?”

“응.”

“하지만, 하지만.”

그를 따라오는 사무엘은 꼭 거대한 강아지처럼 두 다리를 동동거렸다.

리암은 다프네가 제 동생의 그런 모습을 무척 좋아하리라는 것에 그가 지닌 모든 구두를 걸 수 있었다.

그러니 어서 보여 주고 싶었다.

그녀라면 사랑스러운 동생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눈을 뜨지 않을까.

그것이 얼마나 논리적이지 못한 기대인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에 기대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벌써 일주일째, 그녀는 마법과 약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치료가 몇 주 더 이어지면, 그녀의 몸은 서서히 혼자서 생존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더구나 다프네는 애슐리가 만든 수상한 약을 거의 매일 마신 탓에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형?”

뒤에서 사무엘이 부르는 소리에 리암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서튼’이라 적힌 문이 보였다.

그는 이제야 자신이 문고리를 쥔 채로 한참이나 머뭇거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미안.”

리암은 작게 사과하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할 일이 떠올라서.”

“……어?”

“천천히 만나고 돌아가. 아예 자고 가면 더 좋고.”

“야간 근무라 자고 가는 건 무리지만…… 형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꽃을 든 사무엘이 걱정스레 묻는 말에 리암은 어색하게나마 씩 미소를 지었다.

“할 일이 떠오른 것뿐이야.”

사무엘은 작은 목소리로 ‘아닌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리긴 해도 리암을 더 붙잡지는 않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리암은 사무엘의 우람한 팔을 툭툭 두드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얼른 걸음을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어째서일까, 그의 심장이 자꾸만 불안으로 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며칠째 다프네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는 또 다른 죄책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집무실로 뛰어 들어간 리암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류부터 집어 들었다.

무엇이든 당장 할 일이 필요했다.

* * *

“저는 공작님께서 저를 서부 엠버혼으로 보내실 줄 알았습니다.”

아셔는 편지 봉투를 봉하고, 긴급할 때 사용하는 값비싼 우표를 붙였다. 그 안에는 새로운 서부 엠버혼 지방관의 임명장이 들어 있었다.

“그대가 어느 정도 그러길 바란 건 알고 있었어.”

애초에 그곳은 아셔가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니었나. 당연히 아셔는 그 지역에 대해 굉장한 애착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해.”

“사실은…….”

잠시 머뭇거리던 아셔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겨우 질문을 이어 갔다.

“절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십니까?”

그가 서부 엠버혼에서 아버지의 뒤처리를 맡아 할 때, 그는 어쩔 수 없이 지역 주민으로부터 여러 차례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아비의 죄가 아들과는 상관없다는 상식 따위는 전대미문의 범죄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잊혔다.

‘마플’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 아비의 공범처럼 취급했다.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못해.”

“전 상관없었습니다. 정말로요. 어떤 말을 듣는다고 해도…….”

“아셔.”

리암은 그의 말을 끊어 냈다.

“사람의 마음은 약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가볍게 자신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게 되기도 해. 경험자의 말이니까 믿어도 좋아.”

아셔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야 처음으로 알게 된 리암의 진짜 유년 시절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아셔는 그런 정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음, 그리고 그대를 서부 엠버혼으로 보내지 않은 건 단순한 보호 차원은 아니야.”

리암은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아셔를 진지한 시선으로 마주했다.

“내게 그대가 필요해서.”

“…….”

“사실은 그 마음이 더 커.”

그가 살짝 미소까지 지으며 건넨 말에, 아셔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이제는.”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아셔는 우물거리는 말투로 겨우 대답을 건넸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거야. 부디 내게 적절한 조언을 해 줘.”

“그럼 모처럼이니 바로 하겠습니다.”

아셔는 자리에서 일어나 리암의 책상 앞으로 척척 다가왔다.

리암은 자리에 앉은 채로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그가 할 조언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일단…… 어, 음. 저기, 공작님에 관한 기사 중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은 제 선에서 대응하겠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어, 그렇게 해. 그런데 그게 조언인가?”

“아뇨! 당연히 아니죠!”

아셔는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안경을 고쳐 썼다.

“공작님은 조금도 발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음?”

“그러니까, 그 회피 성향 말입니다!”

“내게…… 그런 성향이 있던가?”

“있죠!”

아셔는 어째 버럭 소리까지 질렀다.

“예전에 선대 공작님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배회하시더니.”

“아 그건…….”

리암이 무어라고 변명하려고 했지만, 아셔는 틈을 주지 않고 따지고 들었다.

“서튼 양의 병문안을 가는 것도 지나치게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게 회피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런가? 리암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혼자서 속앓이만 하지 마시고, 제대로 서튼 양에게 말씀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요!”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어.”

“예시를 든 겁니다. 제 마음이 그렇다고요! 저 월급 도둑은 지금 누워서 잠을 자면서도 돈을 받고 있단 말입니다! 아주 아까워 죽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셔도 다프네가 걱정되어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매일 마법사와 의사에게 왜 다프네의 차도가 보이지 않느냐 닦달할 정도니까.

“그러니까 당장 가셔서 저 월급 도둑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십시오. 누가 압니까? 맹약으로 명령하면 마법사 서튼의 가호로 당장 벌떡 일어날지?”

“그런 편리한 기능은 없을 거야. 어쨌든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은 한번 가 볼게.”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알았어. 이제 가 봐, 늦은 시간까지 고생했는데.”

아셔는 알겠다며 물러선 후에도 몇 번이나 리암을 돌아보며 ‘꼭 가세요.’라는 당부를 덧붙이고서야 겨우 제 방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리암은 잠시 크게 한숨을 쉬었다.

‘회피…… 라.’

모르고 있었는데, 아셔의 말을 듣고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게다가 그가 했던 조언에 혹하는 마음도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다프네는 지금까지 그가 서튼이라고 부르며 요청한 일은 반드시 완수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깨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어째 기대감을 억누르는 것이 힘들었다.

결국, 그는 달이 기운 늦은 밤에 홀린 듯이 다프네의 방으로 향하고 말았다.

조금 빠른가 싶었던 걸음이 아예 달리는 모양새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계단을 내려가 그녀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이제 그는 망설이지 않고서 문을 밀어 열었다.

노크해야 한다는 상식마저 떠올리지 못할 만큼 다급했다.

그녀의 방은 고요했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가빠진 그의 호흡 소리나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느껴질 만큼.

몇 걸음 안으로 들어온 리암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침대에는 가지런히 누운 다프네가 있었다. 담요 대신 아버지의 코트를 가지런히 덮은 채였다. 아마 사무엘이 그리해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옆으로 조용히 타오르는 램프가 하나 있었다. 언제든 그녀가 깨어나면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미리 켜 놓은 듯했다.

문득 바람이 불어오기에, 고개를 들어 보니 조금 열린 창문 앞에는 사무엘이 가져다 놓았을 꽃이 놓여 있었다.

뿌리까지 얌전하게 놓인 것이 어째 약초라도 말리는 듯한 모습이라, 리암은 저도 모르게 조금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귀엽다니까.”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다프네의 곁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섰다.

잠든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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