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3화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 같은 팽팽한 분위기에 리암이 조용히 다가섰다.
“제가 말한 증인은 토마스입니다.”
애슐리가 떨리는 시선을 돌려 리암을 바라보았다.
“형님의 실험실에서 제가 구해 온 아이 말입니다.”
애슐리는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지만, 여전히 입 안을 채운 차가운 총구 탓에 신음에 가까운 소리밖에 내지 못했다.
“어느 마법사의 도움으로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아이는 형님을 만난 일을 기억해 냈고, 수도에 남은 의사와 마법사들은 그가 증언하기에 충분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
애슐리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고, 리암은 사무엘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자유롭게 해 주어도 좋다는 뜻이리라.
입 안을 무자비하게 쑤셔 대던 총구가 빠져나가자, 애슐리는 턱과 입술에 타액이 덕지덕지 묻은 것도 개의치 않고 리암의 앞으로 다가갔다.
“벌써 기억이 돌아왔다고? 그럴 리 없다. 이 정도의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어……!”
“하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수도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돼, 불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대체 그 마법사가 누구지? 지금까지 내가 투약한 기간과 약이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 보면…….”
애슐리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리암은 턱을 들어 치안대원에게 애슐리를 가리켰다.
“방금 제 입으로 죄를 인정했다. 죄인을 포박하도록.”
“그 빌어먹을 마법사가 누군지 말해! 아이에게 뭘 먹인 거지? 아, 아니…… 치료 마법인가?”
그가 끊임없이 질문을 건넸지만, 리암은 물론 누구도 이에 답하지 않았다.
“대답해라, 리암! 네가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발악하던 그는 곧 치안대원에게 손과 팔이 묶였다.
제어되지 않은 마력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고작 빛이 흐르고 마는 정도의 일이었다.
“왕명에 따라 바로 수도로 이송하도록.”
“웃기지 마라, 난 공작가를 손에 넣었다!”
애슐리는 마력을 봉인하는 굴욕스러운 장치를 목에 걸고서도 바득바득 소리를 질렀다.
“누구도 감히 날 건드릴 수는 없어! 내 아이가 공작이 되면……!”
그 목소리가 천장을 울리며 사그라질 때, 다프네가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잔뜩 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애슐리가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제가 미래를 안다고 말씀드렸죠.”
다프네는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속삭였다. 오직 애슐리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길 일은 없었어요.”
“……!”
그가 흠칫 놀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에 다프네는 한 번 더 확실한 답을 건넸다.
“불가능했던 거겠죠.”
“너!”
애슐리는 순간적인 분노로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씩씩거리는 호흡만을 이어 갈 뿐이었다.
“이제는 당신이 조금씩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닥쳐, 말도 안 되는!”
“그 의심이 옳아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은 결혼 생활 중에 단 한 번도…….”
“시끄러워! 너 같은 건 죽여……!”
그가 이성을 잃고서 다프네를 향해 달려들려 하기에, 옆에 있던 치안대원이 얼른 애슐리의 목덜미를 강하게 가격했다.
“……헉!”
그는 곧 완전히 힘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고, 치안대원은 그를 빠르게 이송하기 시작했다.
양쪽에 앉아 있던 하객들은 모두 고개를 쭉 빼고서 예식 중에 신랑이 끌려 나가는 기이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중에는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발 빠르게 빠져나가는 기자도 있었다. 이제 애슐리의 악행이 왕국 곳곳으로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누나.”
다프네는 끌려가는 애슐리를 바라보다가, 저를 부르는 동생을 돌아보았다. 사무엘은 염려가 가득한 얼굴로 다프네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프네는 이제야 그간 사무엘과 제대로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 여린 아이가 얼마나 불안해했을지 생각하자,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해, 누나.”
그런데 어째 사과를 건네는 것은 사무엘 쪽이었다.
“응?”
“누나가 저 남자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했는데…… 나, 너무 화가 나서.”
사무엘은 불안한 눈빛을 한 채로 두 손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프네가 화를 내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했다.
“무슨 소리야. 사과는 내가 해야지.”
다프네는 팔을 높이 들어서 쑥 자라 버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널…… 걱정시켰으니까.”
“내가 누나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란 말이야.”
사무엘은 꼭 반발하듯 이야기하면서도 다프네가 쓰다듬기 좋게 무릎을 살짝 굽혔다.
“이 조그만 게.”
“조그맣다니…….”
울상을 지은 그는 뭐라고 항변하려는 듯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이제 다른 치안대원들과 함께 이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리라.
“어서 가, 사무엘.”
다프네가 먼저 그를 쓰다듬던 손을 놓고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누나.”
“무사히 다녀온 후에 이야기하자. 사실 나…… 네게 해야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내가 아주 신기한 일을 겪었거든.”
“응, 꼭 전부 들려줘.”
자세를 바로 한 사무엘은 치안대의 인사법으로 멋진 경례를 올려붙이고, 곧장 몸을 돌려 예배당 밖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처음으로 듬직하게 느껴지는 동생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정말로 그럴…… 마음이었는데.
“…….”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와 마주 선 남자에게 시선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공작…… 님.”
그리고 다프네는 평소와 다름없이, 허리를 숙여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다프네.”
그는 어째 그 자리에서 주저할 뿐,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지는 못했다.
조금 전에 애슐리를 대할 때의 당당하던 모습은 이제 더 볼 수 없었다.
“음, 내가…… 그대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 있는데.”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걸까?
다프네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괜찮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다. 무슨 일이든 말이다. 하지만 리암의 이야기가 먼저였다.
“저택으로 돌아가면, 치안대장이 직접 그대의 증언을 정리할 거야.”
“……네.”
“가능한 선까지만 이야기하면 돼. 조금 전에 그가 자신의 죄를 입에 담았기 때문에 죄는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대가 무리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조사에 응하겠습니다.”
다프네가 애매한 거리에서 멈추어 선 채 건넨 답에,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전부 그대 덕분이야.”
이를 마지막으로 리암은 몸을 돌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그를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만두기로 했다.
수도행 열차가 곧 출발할 예정이었다. 쓸데없는 일로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치안대원들과 리암 그리고 힘없이 이송되는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정말로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애슐리가 저지른 죄는 무시무시한 것뿐이니, 다시는 바깥으로 풀려나지 못할 것이다. 마법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조치가 취해질 것이고.
‘이제 사무엘은 무사해.’
무엇보다 조금 전에 사무엘은 직접 애슐리를 위협하며 다프네까지 지켜 주려고 하지 않았나. 그 강인한 아이는 누구에게도 쉽게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미래가 바뀐 거야.’
다프네는 오랫동안 제 머릿속을 지배했던 그 끔찍한 불꽃의 열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얽매어 있던 마음이 속박에서 풀려나는 순간.
다프네의 시야가 새카맣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불타오르던 사무엘의 죽음을 향해 뛰어들었을 때와 굉장히 비슷한 감각이 몰려왔다.
꼭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설마…… 다시 시간이 되돌아가는 걸까?
‘안 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다프네는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 *
사흘 후, 애슐리 슬로언은 사형이 확정되었다.
어린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이용하여 그 목숨을 앗은 죄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를 도운 원장 역시 원래대로라면 사형에 처해야 옳으나, 애슐리에게 줄곧 협박을 당해 온 것과 조사에 협조적이었던 점에서 약간의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는 아픈 아이를 이 세상에 홀로 남겨 두고 죽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애슐리의 형 집행은 재판 이후 바로 치러졌다.
생의 마지막에서 애슐리가 갈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대체 토마스의 기억을 어떻게 일깨웠는가.
그 일을 해낸 마법사는 대체 누구인가.
그 간절한 물음에도 리암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하여 애슐리는 마지막까지 미쳐 돌아가는 꼴만 보이다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로는 다시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이 돌아왔다.
약을 빼돌렸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왕실에 감금되었던 피오나 커빙턴은 건강한 모습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애초에 왕실에서도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지냈기 때문에, 건강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왕은 커빙턴 가문에 직접 사과하는 편지를 쓰고, 그녀가 가족들과 지낼 수 있도록 오랜 휴가를 허락했다.
클롯모어행 급행열차의 일등석을 타고 공작령으로 돌아온 피오나의 곁에는 난동을 피워 귀족 감옥에 갇혔던 앨러스테어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조금 놀라운 일이 있었다.
앨러스테어가 피오나에게 혼인 서류를 가지고 왔는지 물은 것이다.
“예전에 내가 사인해서 준 거 말이야.”
어째 다급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물음에, 피오나는 비스킷을 와작와작 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음…… 없는데?”
“뭐? 항상 들고 다니는 거 아니었어?”
앨러스테어는 피오나가 끌어안은 간식 바구니를 획 빼앗으며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건 미친 짓이야.”
“…….”
“인생 길어, 앨러스테어. 그런데 평생 단위 계약을 그렇게 일찍 맺어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잖아.”
“너…… 대체 어떤 마법사들이랑 섞여 지내는 거야?”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잖아? 안 그래?”
피오나는 손끝을 까딱여, 바구니 속에 든 비스킷 몇 개를 허공으로 둥실 띄워 제 입 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됐고, 내가 잘못했으니까. 돌아가면 당장 서류부터 다시 작성해서 제출하자.”
“왜?”
피오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묻자, 앨러스테어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며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그런 일을 당하는데, 약혼자 따위는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었잖아!”
“괜찮아, 부모님이랑 공작님이 잘 챙겨 주셨어. 특히 공작님은 거의 매일 찾아오셨어. 게다가 전하께서도 이틀에 한 번은 날 위로한다며 와 주셨는걸. 전하는 엄정 잘생기고 다정하시더라. 이제는 자주 못 뵌다니 아쉬울 정도야.”
“그게 괜찮지 않은 거야! 피오나 커빙턴은 내 약혼녀야. 그런데 나만 면회를 제한하다니!”
앨러스테어는 그 기가 막힌 대처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고 있었다.
“네 오라버니들의 기고만장한 꼴을 보는 것도 지긋지긋해.”
바로 피오나라면 내장을 빼줄 남자 형제들과 아버지의 조치였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대단한 권위를 이용해서 앨러스테어의 면회를 철저하게 금지했다.
“그러니까 빨리 법적 권리를 줘.”
“으음.”
피오나는 비스킷에 치즈를 두껍게 발라 먹으며 고민하는 듯 제 턱을 만지작거렸다.
“아, 청혼 같은 건 도착하면 어떻게든 제대로 해 볼 테니까 달라고!”
“……싫어.”
“그래, 잘 생각…… 아니, 뭐라고?”
앨러스테어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피오나는 그의 입에 비스킷을 쏙 밀어 넣으며 샐쭉 미소 지었다.
“그야, 나한테도 꿈과 로망이 있으니까!”
그는 멍하니 피오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등받이에 몸을 깊이 기대며 비스킷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하긴, 뭐…… 지금은 공작님도 결혼 이야기나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겠지.”
“서튼 때문이지?”
“아무래도.”
앨러스테어는 피오나에게 간식 바구니를 돌려주고는 깊이 한숨을 쉬었다.
“벌써 깨어나지 않은 지 일주일이 되었으니까.”